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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삼각관계 (38/106)

38화. 삼각관계

플로리아와 제리헤이드,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낀 건지 특종을 잡기 위해 파티장에 참석해 있던 기자들이 어느새 하나둘 움직이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챙겨온 노트를 꺼내 서둘러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 시각,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플로리아는 우연히 그 모습을 눈치채고 제리헤이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드,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이러다 우리에 관한 기사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일이라면 걱정마세요. 그러길 바라고 하는 행동입니다. 이미 마음을 정했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서로 편할 것 같아서요.”

그 순간, 서로 속삭이듯 말하는 두 사람을 카르티스가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남들은 모르는 강한 불쾌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남들 시선 때문이라도 자신과 붙어 다녔을 플로리아가, 황제는 안전에도 없고 다른 남자와 귓속말을 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자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일부러 저러는 건가?’

플로리아가 분명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거라고 생각한 카르티스는 아무래도 이제 더 이상은 참아주기가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화해를 하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단 생각도 사라졌다. 그저 제리헤이드와 사이가 좋은 것 같은 그 모습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 조금 떨어져 있던 카르티스와 플로리아 사이에 한 기자가 나타났다.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저 혹시, 두 분 인터뷰 좀 가능하실까요?”

그러자 카르티스는 마침 잘 됐다는 듯 그 기자의 물음에 호응했다.

“좋소. 그 인터뷰 응하도록 하지. 황후도 잠시 시간 괜찮지 않소?”

카르티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플로리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무례한 짓을 하고 있는지 기자에게 전부 까발려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 생각이었다.

아무리 제리헤이드를 정부로 들일 예정이라고 해도 아직 정식 정부도 아닌 사람을 제 남편보다 앞세워 데리고 다니다니…….

남들이 들으면 분명 플로리아를 욕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는 사전에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즉석 인터뷰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플로리아가 딱 잘라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네?”

두 부부가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자 오히려 기자가 더 당황했다.

“폐하와 제가 굳이 함께 인터뷰 할 필요는 없진 않나요?”

“아. 그, 그렇긴 한데…….”

“그럼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플로리아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그 자리를 벗어나자, 제리헤이드가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분노에 찬 카르티스의 시선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저, 폐하. 지금 가신 두 분……. 혹시 무슨 친분이 있으신 겁니까? 부쩍 가까워 보이셔서요.”

그 순간, 카르티스의 앞에 서 있던 기자가 자신의 노트를 펼치며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으시오? 알다시피 나도 바쁜 사람이오. 그런 시답잖은 질문에 대답할 만큼 그리 한가해 보이나?”

그러자 조금 전 인터뷰에 응하겠다던 대답은 온데간데없이 카르티스는 되려 화를 내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뭐야, 지금? 아무래도 저 황제 부부한테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설마 삼각관계?”

기자는 서둘러 그 내용을 노트에 빽빽하게 적더니 품 안에 소중히 챙겨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

한편, 에이니는 헬렌이 돌아간 후 서둘러서 안젤리나를 찾아갔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에이니?”

그러자 안젤리나가 부쩍 피곤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접실 안으로 들였다.

“그냥 오랜만에 함께 대화나 좀 할까 해서요. 그런데 안젤리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안색이 안 좋은데…….”

“아, 아니에요. 이렇게 시간 내서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사실 안젤리나는 얼마 전부터 죽은 데이지에 대한 꿈을 꾸지 않는 대신, 가짜 임신에 대한 부담감이 커져서 그런지 남들에게 유산 사실을 강제로 들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매일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임신 중에는 숙면이 힘들다고는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 건가요?”

에이니의 말에, 안젤리나가 살짝 볼록하게 올라온 자신의 가짜 배를 쓰다듬었다.

사실 밤새 악몽으로 뒤척인 탓에 오늘은 유난히 더 피곤해서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복대도 안 하고 편하게 있었는데…….

에이니가 갑자기 찾아왔다는 말에 할 수 없이 오늘도 급하게 복대를 해야만 했다.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새벽에 자꾸 깨다 보니 조금 피곤하네요.”

“이런. 고생이군요. 아! 그런데 안젤리나. 혹시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무슨 소문이요?”

에이니는 정말 걱정이 돼서 묻는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사실 그녀가 오늘 안젤리나를 찾아온 용건은 이거 하나였다.

“황궁 안에 이상한 얘기가 퍼졌더라구요. 안젤리나가 서쪽 정원에서 하녀의 뺨을 때렸다고…….”

“아…….”

그 말에 안젤리나는 당황한 듯 눈동자를 심하게 이리저리 굴렸다.

‘아니, 대체 누가 그 소문을 퍼트린 거야? 해리스인가?’

그녀는 그 생각을 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설마, 사실은 아니죠?”

“실은, 맞아요. 제가 그런 거.”

“네? 정말 하녀의 뺨을 때렸다는 건가요?”

“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곳이 황후 폐하 전용 정원인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하녀가 글쎄 아주 무례한 말투로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하지 뭔가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녀는 이번에도 서쪽 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금 각색해서 이야기했다.

아무리 에이니와 친구라고 해도 전부 진실만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역시. 안젤리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체 성격 고약한 그 하녀가 누군지 궁금하네요.”

“황후 폐하의 밑에 있는 하녀 같았어요. 그래서 저를 얕본 건지.”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괜히 배속의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 테니.”

에이니는 안젤리나를 걱정하는 척하며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봤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건 아니지만, 분명 안젤리나가 하녀의 말투를 꼬투리 잡아서 그녀의 뺨까지 때렸을 상황이 눈에 훤했다.

‘안 봐도 뻔하지.’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까지 걱정한 것보다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일단은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안젤리나는 플로리아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위험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에이니는 일단 다른 말로 대화 주제를 옮겨버렸다.

“아 참. 그럼 아이는 언제 출산하는 거죠?”

“추, 출산이요? 그게…… 그러니까…….”

이상하게 말을 더듬던 안젤리나가 한참 만에 겨우 대답했다.

“그게, 아마…… 겨, 겨울쯤 일 거예요.”

그녀는 비교적 짧은 문장을 말하면서도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사실 갑자기 출산 예정일을 제멋대로 계산하려니 머릿속이 새하얘졌기 때문이었다.

“음, 그렇군요.”

“저 미안한데, 에이니. 그만 돌아가 줄래요? 제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안젤리나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제 방문 목적이 사라진 에이니도 별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래요.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죠. 그럼 오늘은 푹 쉬어요.”

“네, 고마워요.”

그런데 그 순간, 에이니를 빨리 배웅하고 보내기 위해 몇 걸음 걷던 안젤리나의 드레스 안쪽에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얼핏 보기엔 하얗고 부드러운 천으로 된 물체 같았다.

“안젤리나, 방금 그게 뭐죠?”

에이니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으며 다가갔다. 이제 배가 조금씩 나와서 몸을 숙이기 불편할 안젤리나를 대신해 떨어진 것을 주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에이니가 손을 뻗기도 전에 안젤리나가 먼저 재빠르게 숙여 그 물건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사실 그건, 에이니가 왔다는 얘기에 몇 분 전 급하게 배에 둘렀던 복대였다.

오늘따라 귀찮아서 대충 감싸다 보니 매듭이 느슨해져서 풀려버린 것이었다.

‘어떡해! 설마 에이니가 제대로 본 건 아니겠지?’

안젤리나는 아까보다도 더 식은땀을 흘리며 분위기를 살폈으나, 다행히 눈치를 채진 못한 것 같았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늘 배가 좀 차가워서 감고 있던 건데…… 그게 빠졌나 봐요. 그, 그럼 조심히 가요.”

그 말을 끝으로 안젤리나는 침실 쪽으로 먼저 사라져 버렸다.

‘그건 그렇고 대체 왜 저렇게 당황하는 거지?’

에이니는 그대로 서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내 응접실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얼핏 본 게 전부지만 분명 뭔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모양이었는데…….

문 앞에 멈춰 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에에니는 문득 방금 떨어진 그 물건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설마 안젤리나 저 여자, 배에 복대를 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

카르티스를 뒤로한 채 파티장을 잠시 빠져나온 플로리아는 근처에 인적이 드문 곳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저기, 제드?”

“네, 황후 폐하.”

“정말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급히 해결할 일이 좀 생겨서요. 괜찮다면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줄래요?”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제리헤이드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굳이 캐묻진 않기로 했다.

아마 지금 바로 말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먼저 묻지 않아도 얘기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전 괜찮으니 천천히 다녀오세요. 여기 있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금방 돌아오도록 하죠.”

플로리아는 그 말을 남긴 채, 어딘가로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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