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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화. 지미 리의 망명 (249/250)

249화. 지미 리의 망명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시위대는 홍콩섬 빅토리아 공원에서 센트럴 차트가든까지 시가행진을 벌이며, 행정장관 보통선거 시행과 범민주파에 대한 탄압 반대를 외쳤습니다! 그에 따라 홍콩 경찰은 배후로 지목된 유력 범민주파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습니다!

TV 화면에서는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속보로 흘러나왔다.

강준은 을지로 사무실에서 그 뉴스를 최은정 이사와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전날 핑과일보의 지미 리가 최은정에게 메일 한 통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망명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강준은 홍콩 경찰의 범민주파 인사들에 대한 체포 움직임과 지미 리의 망명 요청이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귀 전 강준이 본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더 격화됐었고, 대부분의 범민주파 인사들이 체포되거나 망명했었다.

일국양제의 약속을 어기고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은 것이었다.

"강준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요. 핑과일보 지미 리라면 홍콩의 대표적인 사업가잖아요? 의류 사업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 아닌가요?"

"그런 지미 리가 본진이나 다름없는 홍콩을 버려 둔 채 망명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거죠?"

"네, 솔직히요. 지난 우산혁명 때도 체포된 인사들이 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잖아요? 홍콩이라는 글로벌 도시의 상징성도 있는데 중국 정부가 앞으로도 심하게 탄압할 거 같지는 않거든요……."

빗물에 젖듯 홍콩 의회와 반중 인사들이 하나씩 갈려 나갈 터였지만, 아직은 그 본색이 다 드러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마 지미 대표는 위험을 감지했을 겁니다. 범민주진영의 상징적인 인물이니 공안에서도 내내 주시했을 거고요…… 그리고 어쩌면 지미 리는 한국에서 장기적인 투쟁 계획을 하고 오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간 강준은 핑과일보에 정보 협조를 요청할 때마다 어려운 순간이 오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해 뒀었다. 하지만 정말 지미 리가 한국으로 망명 요청을 할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강준이었다.

"지금 한국 비자 신청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로 오는 비행기표를 보내 줬어요. 망명 신청은 한국에 도착해서 절차를 밟으면 될 것 같고요."

"어쩌면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거 같네요. 천상호텔이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로 거듭나려면 외국계 기업들도 유치해야 한다고 했었잖습니까?"

김철희 대표의 제안대로 천상호텔의 재건 계획은 지방정부에 기업 유치가 가능한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로 방향을 잡은 찰나였다.

SS재보험의 데이터분석팀도 그곳에 합류하기로 결정된 상태였다. 영업이 필요한 부서는 서울에 남았지만, 전산 업무에 치중하는 김준혁이 이끄는 데이터분석팀은 과감히 제주로 사옥을 옮기기로 했다.

"지미 리도 강준 씨 생각에 동의할까요?"

"얘기라도 해 봐야죠."

강준은 핑과일보의 자산이 그간 꾸준히 해외로 이전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주로의 핑과일보 이전이 영 엉뚱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주인 지미 리가 해외로의 망명까지 고려한 마당이라면…….’

* * *

다음 날 제주국제공항.

지미 리는 무거운 얼굴로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지미 대표님의 망명 신청은 외교부와 출입국관리소에 보고가 들어간 상태입니다."

"……감사합니다."

"제주 도지사님께서도 지미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게 관심을 주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만나겠습니다. 지금 홍콩의 상황을 누군가는 꼭 알려야 하니까요……."

강준은 지미 리를 태운 차량을 제주특별자치도청 건물로 몰았다. 이미 연락을 받은 함지훈이 비서들과 함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핑과일보 사주의 망명은 결코 사소한 일은 아니었다. 자칫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함 지사는 성대한 환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의전에 소홀하게 하지는 않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함 지사의 집무실로 올라간 강준 일행은 지미 리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제가 혼자 살자고 망명을 하자는 건 아닙니다……."

"물론 그 점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요."

함 지사의 말에 지미 리가 고개를 들며 반박했다.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훨씬 더 은밀하고 정교하게 홍콩의 모든 분야를 친중파 인사로 교체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의회를 무력화시키려고 합니다."

"명목상의 민주주의만을 남겨두려는 셈이군요."

"한국이 홍콩 문제에 대해 더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얽힌 게 많아서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요……."

아직 정치적 기반이 약한 함 지사로서도 대놓고 중국과 각을 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 전 터진 사드 사태로 인해 중국의 경제보복이 얼마나 한국에 타격을 주는지를 실감한 정부였다.

괜히 앞장섰다간 경제를 망친다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컸다.

"저희도 홍콩의 목소리에 더욱 특별한 관심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여기로 오면서 박강준 소장께 얘기 전해 들었습니다. 핑과일보의 사옥 이전을 고려해 달라고 하더군요."

미리 전해 듣지 못한 정보였지만, 함지훈 지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로서는 막 추진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에 홍콩의 대표 언론인 핑과일보가 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만약 핑과일보가 제주로 이전한다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저희 핑과일보가 안전을 담보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망명이라는 측면에서는 외교적인 압박은 받을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미 리는 굳은 얼굴로 한 차례 침음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몇 년 전 실종됐던 밍싱그룹의 샤오빙(肖斌) 회장이 얼마 전에 살해당한 채 발견됐습니다. 그 배후로는 상하이방의 실세인 장칭이 있고요…… 우린 여기서 그걸 터트릴 겁니다."

"장칭이라면…… 베이징의 2인자가 아닙니까?"

"그렇죠. 그가 지금의 권력을 만들어 낸 겁니다. 밍싱그룹은 인민들의 돈으로 만든 국영기업이나 다름없었는데 이번에 파산하게 되면서 그 책임소재가 공중에 붕 뜨게 된 겁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강준이 나섰다.

"그게 폭로된다면 지금의 베이징 권력도 무사할 수 없겠군요. 인민을 배신한 거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희 핑과일보 직원들의 안전에 대해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경호가 필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더군다나 이곳 제주도는 본토인들도 상당히 많이 오가는 관광지가 아닙니까? 테러나 납치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강준은 함지훈을 돌아보며 말했다.

"함 지사님, 이건 정치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난감한 표정의 함 지사였다. 하지만 회귀 전 강준이 봤던 정치판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천상호텔의 붕괴사건으로 인해 여론은 국내의 중국 자본에 대해 무척이나 큰 반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지미 리는 홍콩의 민주화 상징이었다. 거대 양당이 아무리 경제 이슈로 조심스럽기는 해도 미래당이 굳이 나선다면 반대할 명분도 크지 않았다.

"홍콩은 영국에서 반환될 때, 일국양제를 50년간 보장받았어요. 그 약속을 먼저 어긴 건 베이징의 권력이죠."

최은정이 단호하게 말했고 그 말에 지미 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베이징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홍콩의 민주화 인사들을 자기네 마음대로 구금하고 처벌하려고 합니다. 한국도 그런 시기를 겪어오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이 도와주십시오."

지미 리의 호소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함 지사님, 어차피 미래당이 눈치 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총선에서 비례대표 지지율이 필요하신 겁니까? 그래서 말 잘 듣는 당원들에게 국회의원 자리 안겨 주시려고 하는 겁니까?"

강준은 자신이 함 지사에게 이 정도 직언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강준 씨……!"

듣고 있던 최은정이 그런 강준을 말렸다.

"……박 소장님 말대로…… 그런 건 아닙니다만, 저 역시도 지미 리 대표님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함 지사는 한 차례 침묵 후, 말을 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저희 제주도가 공식적으로 홍콩의 글로벌 회사들을 유치하는 모양새를 취하겠습니다. 그쪽에는 아시아 지사들이 많으니 분명 수요가 있을 겁니다."

글로벌 중심인 홍콩을 제주로 옮겨오겠다고 대놓고 말한 함 지사였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홍콩을 자신의 본진으로 생각하는 지미 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인지도 몰랐다.

"……."

"지미 대표님, 저도 한국에서 홍콩의 편을 들려면 정치적 부담이 있습니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 편승하자는 의견이 지금으로서는 다수니까요."

"이해합니다. 서로 주고받을 게 있어야 하니까요……."

"저 역시 지미 대표님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 지사는 지미 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미 리는 아직 다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지만 강준을 한번 돌아보고는 함 지사의 손을 맞잡았다.

* * *

정치권에서의 파장은 대단했다. 한마디로 함지훈 지사의 미래당이 국익을 해친다는 말이었다.

―지금 일개 지자체장이 나라 경제를 망치려고 합니다.

―제주도 경제 하나 살리자고 중국과의 균형 외교를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자는 겁니까!

―우리가 중국과 경제교류 규모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한 해 수출액의 몇 프로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는지 아시냐고요!

함지훈은 사방에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어부지리로 그가 제주 도지사에 당선됐다고 생각하는 거대 양당의 지도층들은 이번 기회에 함 지사를 날려야겠다는 듯 작정하고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함 지사가 잘 버티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요. 이거 우리가 뭐라도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다 전임 도지사처럼 사퇴하게 생겼어요……."

최은정도 답답한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핑과일보를 따라서 다른 외신언론의 아시아 지사들이 제주 비즈니스 센터로 들어오게 된 건 성과입니다."

"강준 씨, 그것도 함 지사가 자리보전하는 데는 별반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요?"

"아뇨.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전 세계에 제주도가 세계 평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리게 될 테니까요."

강준의 얘기를 듣던 최은정이 슬며시 웃으며 강준에게로 다가왔다.

"또 무슨 꿍꿍이예요? 나한테 공유 안 한 뭔가가 있죠?"

"어…… 어! 귀신이시네. 어떻게 알았습니까?"

"왜 몰라요. 이 세상에서 강준 씨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일걸요? 얼굴만 봐도 딱 안다고요!"

최은정은 강준의 얼굴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답했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강준은 얼마 전 국정원으로부터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흑룡회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었다.

강준이 나서서 흑룡회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라는 의도였다.

‘국정원 그놈들은 꼭 지네들 곤란한 것만 나한테 던져 주더라……!’

강준은 최은정 앞에서 푸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을 떠안고 가야 하는 게 강준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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