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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6) (248/250)

248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6)

―오늘 아침 제주특별자치도 지형준 도지사가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사임의 변에서는 천상호텔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 함께 어디까지나 자신은 밍싱그룹의 국내 정관계 로비 과정에서 생겨난 희생양임을 주장했습니다…….

"끝까지 자기는 피해자라 이거군요."

"자멸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는 대한뉴스와 폭로 공방을 벌여 봤자 본인 발등만 찍는 격이었으니까요."

강준과 미래당의 당수 함지훈, 그리고 광역수사대 경제수사과 팀장 이진철이 을지로 SS재보험 사무실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그간의 경찰 조사로 금융위원회는 발칵 뒤집혔다. 이진철의 광역수사대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해 보니 예상보다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부당하게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었다.

마치 눈먼 돈처럼 밍싱그룹 산하의 밍싱건설과 밍싱보험에 수천억 원 대의 불법 대출이 나간 게 세상에 드러났다. 그중에는 밍싱그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화영컴퍼니도 목록에 올라 있었다.

결국 돈줄을 따라가 보니 밍싱그룹의 실체가 드러난 격이었다.

"이건 밍싱그룹을 탓하고만 있을 문제는 아닙니다. 금융위원회부터 완전히 갈아엎어야죠! 밍싱그룹도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이용한 겁니다. 욕만 할 게 아니라 이용당한 우리도 반성하고 뜯어고쳐야죠!"

흥분한 함지훈이 이번 일을 계기로 관료조직을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요 며칠간 밍싱그룹의 정경유착 대출 게이트는 그가 주도해서 끌어갔다.

의원 한 석도 없는 미래당은 일순간에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고, 공석이 된 제주 도지사 보궐선거에 함지훈이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온라인상에서 쏟아졌다.

"근데, 함 의원님 정말 출마 안 하실 겁니까?"

"제가 보여준 게 있어야죠…… 전 그저 밍싱그룹의 정경유착을 파고들었을 뿐입니다. 누군가를 반대했을 뿐인 거죠…… 본디 선거란 업적이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강준의 물음에 함지훈이 냉소적으로 답했다. 그는 사람들의 지지와는 달리 아직 본인의 준비가 덜 되어있었다.

"업적이야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만든다고요……?"

"밍싱건설이 싸지른 똥 누군가는 치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보험사인 밍싱보험에서도 피해보상에 대한 협상에 제대로 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협상을 한번 맡아서 해보시죠."

옆에 있던 이진철도 말을 거들었다. 일전에 강준의 계획을 들었던 적이 있는 그였다.

"함 의원님이 나서서 중국 측과 협상하셔야 합니다. 이건 완전 먹튀거든요! 우리가 호구도 아니고…… 단물만 쪽 빼먹고 사고 터지면 남몰라라 하고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이죠!"

그는 밍싱건설의 수사를 하면서 책임질 만한 임원들이 모두 중국에 체류 중이라는 사실에 답답해했었다. 결국 전 대표였던 이종도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책임이 한정적이라는 게 수사 결론이었다.

"흐음…… 제가 미래당의 당 대표로서 중국 외교 라인에 협상 제안을 해보겠습니다. 이 경정님이 말씀대로 책임당사자인 밍싱그룹이 묵묵부답이니 어쩌겠습니까? 외교 문제로 풀어야죠."

"그리고 함 의원님…… 보궐선거에는 일단 출마하십시오."

"박 소장님 그건 좀…… 지금의 인기를 이용하려는 거밖에는 안 됩니다."

"이용하셔야죠. 대한당과 민한당이 지금은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이번 사안에 목소리를 못 내는 것뿐입니다. 지금 미래당에 총선에서 당선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기회를 놓치게 되면 함 의원님이 말씀하시는 실용주의 정치건 뭐건 해보지도 못하고 끝날 겁니다."

강준은 냉정한 말투로 함지훈에게 본인의 처지를 알려줬다. 그러지 않으면 그가 결단하지 못하고 소중한 시간만 낭비할 테기 때문이었다.

"네…… 고심해 보겠습니다."

"고심할 게 뭐가 있습니다. 일단 출마 선언하고 그다음에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밍싱그룹과의 협상에 온 힘을 다 쓰십시오. 그걸 잘 해내면 제주도 지사 당선은 따라오는 거니까요."

강준은 함지훈이 거대 정당의 중진인 지형준보다는 뭔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줄 거라 기대했다. 어쩌면 오직 관광자원에만 의존하는 도정(道政)을 변화시켜 줄 도지사가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한 달 뒤 밍싱그룹은 공식적으로 파산선언을 했다.

함지훈을 필두로 한 한국 정치권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파산선언 직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베이징에서는 밍싱그룹의 관계자들을 다시 줄줄이 소환조사했고, 부패 혐의로 모조리 구속했다.

그리고 상하이 증권거래소에서 밍싱그룹 관계사들의 상장폐지가 잇따랐다. 천상호텔 붕괴사고와 관련해 가장 큰 피해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밍싱보험도 퇴출당했다.

무리한 사업확장과 과도한 부채차입, 그리고 한국 시중은행들의 대출금 상환 압박이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고 현지에서 보도했다.

근데 국영기업에 버금가는 시총을 자랑하던 밍싱그룹이 겨우 몇천억 원 규모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했다고?

다분히 의도가 넘치는 고의부도였다.

파장은 상당했다. 로이즈 재보험시장의 신뢰도가 추락했으며 천상호텔의 사고로 인한 유족들의 피해보상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한국 정부의 구호비용에 대한 구상권 청구도 요원해져 버렸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반전의 실마리가 생겼다. 그건 SS재보험 데이터분석팀에서 밍싱그룹이 한국에 남긴 자산 내역을 찾아낸 것이었다.

뜻밖의 곳에 밍싱그룹의 자산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들이었다. 밍싱그룹이 대주주인 부동산 투자회사의 명의로 수천 채의 아파트가 등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곧장 미래당의 함지훈에게 전해졌다.

"제가 제주도지사에 당선되는 순간 저는 행정명령을 통해 밍싱그룹의 국내 모든 자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겠습니다!"

제주지사 보궐선거 국면에서 터져 나온 밍싱그룹 자산에 대한 소식은 이내 여론을 들끓게 했고, 그와 정비례해서 함지훈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국회는 그런 시류에 편승이라도 하듯 일제히 밍싱그룹에 대한 자산압류를 성토해댔고, 결국 검찰이 나서 밍싱그룹 산하의 부동산투자회사 소유 부동산을 가압류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검찰은 밍싱그룹의 막대한 자금이 파산 직전에 화영컴퍼니로 흘러 들어간 사실이 확인된 것이었다.

결국 화영컴퍼니의 장선우 대표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장선우가 대한뉴스의 보도국장 출신이라는 점이 화제로 떠올랐다.

대한뉴스의 조용호 회장이 전직 도지사인 지형준을 손절하면서까지 잘라내려고 했던 꼬리가 결국 잡히고 말았던 것이었다.

함지훈의 보궐선거를 방해하던 마지막 세력이 그때부터 힘을 쓰지 못했다. 대한뉴스발 보도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고, 함지훈에 대한 마타도어도 실패했다.

그렇게 제주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함지훈은 압승했다.

일개 마이너 언론 출신의 함지훈이 정치계에 입문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장 자리를 꿰찬 것이었다.

* * *

제주시청.

"축하할 일이 함 지사님께 있는 것만은 아니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진철 총경님!"

도지사 당선자인 함지훈이 오히려 이진철을 향해 축하의 손뼉을 쳐 줬다.

"이거 참 민망해서…… 오늘은 함 지사님 축하 자리 아니었나요?"

"같이 축하할 일 생기면 좋은 거죠! 하하!"

강준은 둘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진철은 밍싱그룹의 불법 대출 게이트를 조사한 공로로 총경으로 특진됐다. 경정이 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파격적인 특진이었다.

그만큼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밍싱그룹의 퇴출과 자산압류를 자신들의 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계속 광역수사대에 계시는 겁니까?"

강준의 물음에 이진철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

"들으면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왜요?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하시나요?"

"그게 아니라 저와 박 소장님의 고향인 연남시로 가게 됐습니다."

"네? 그럼 연남 경찰서장의 자리로 가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연남시가 작은 도시다 보니 그쪽으로 보내는 모양입니다. 아직 제 연차가 한참 모자라니까요."

강준은 이진철의 등을 두드리며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임철호 서장이 회귀 전 자신을 얼마나 방해했는지 떠올렸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인물이 연남 경찰서장에 앉게 된 것이었다.

뚜르르르!

도지사 비서의 전화였다.

"네, 도착하셨다고요? 얼른 들어오라고 하세요."

"누굽니까? 우리 셋이서 조촐한 축하 파티를 한다면서요?"

강준의 물음에 함지훈은 씩 웃으며 답했다.

"김철희 설계사무소 대표님을 초대했습니다."

"아! 김철희 대표님이 오셨다고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김철희 대표였다. 그는 붕괴사고 현장이 얼추 수습될 무렵부터 모습을 감췄었다. 그 이후에 줄곧 밍싱건설과 밍싱그룹에 대한 조사에 바빴던 셋이었기에 그간 그를 챙기지 못했던 터였다.

"이제는 정치인이 다 되셨네요. 챙길 사람을 딱딱 챙기는 거 보니까요."

"도와준 사람은 잊어선 안 되겠죠. 구호 작업에 큰 힘을 실어 주신 분이시니까요."

그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반백의 김철희 대표가 들어왔다.

"여기 다 모여 계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도지사님."

김철희는 셋 모두를 돌아보며 한 명씩 악수했다. 그리고 강준은 버릇처럼 그가 뭘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읽어 냈다.

"천상호텔을 재건할 계획을 하고 계시는군요."

"어……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도지사님이 말씀해 주셨나요?"

함지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뇨.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일을 누설할 순 없죠. 근데 원래 박강준 소장은 남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입니다. 제가 김철희 대표님께 천상호텔 재건축에 대해 부탁드렸다는 걸 눈치챘나 봅니다. 하하!"

강준의 발언 때문에 얘기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자 다들 앉아서 얘기 나누시죠. 폐허처럼 남은 천상호텔을 어떻게 다시 만들지를 생각해 보자고요."

쇼파에 앉은 김철희는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지금 부지가 도청에 귀속될 거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중앙정부에서 압류해 뒀는데 조만간 제주시로 소유로 변경될 겁니다. 유족들 보상을 제주시 예산으로 선지급해 줬으니까요. 도청은 토지를 구상권 청구로 받는 셈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제주도청 소유의 토지에 호텔을 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음…… 계속 말씀해 보시죠."

도정과 관련된 말이 나오자 팔짱을 낀 함지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하자면 제주도에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비즈니스 센터를 짓는 겁니다. 당장 임대 수익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제주도로 기업을 유치한다는 건 장기적으로 봐선 세수를 확보하는 거니까요."

옆에 있던 강준이 말을 보탰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완전한 재정 자립도 가능하겠군요."

강준은 도정을 시작하는 함지훈 도지사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었다. 김철희 대표의 아이디어는 재정 자립도가 취약한 제주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도 있었다.

"괜찮은 아이디어인 거 같습니다. 근데 들어올 기업이 있을까요?"

함지훈과 이진철, 그리고 김철희 대표는 동시에 강준의 얼굴을 돌아봤다.

"왜요? 성원그룹이요? 난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강준은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김성호 대표와 최진호 회장에게 뭐라 제안할지 구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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