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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5) (247/250)

247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5)

―천상호텔 붕괴사고의 책임자인 밍싱건설 박경희 대표가 전날 제주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밍싱건설 관계자는 현재 박경희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라고 알려왔습니다.

여론은 분노했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인 밍싱건설은 묵묵부답이었고, 그 대표자는 중국으로 도주해 버렸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제주에 남은 회사 간부들은 전부 박경희에게 책임을 돌리는데…… 정작 박경희는 사라져 버렸고요!"

"공안에 협조를 요청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래 봤죠. 근데, 영 반응이 미적지근합니다."

중국 측의 반응은 모호했다. 타국에서 자국민들이 희생된 사건이었지만, 웬일인지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을 취재하던 중국 국영TV의 기자들도 슬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국 정부에 불리한 일은 함구할 것!

언론을 장악한 중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실 공사의 책임이 있는 자국 건설사를 가리는 게 콘크리트 더미에 묻힌 자국민을 구하는 일보다 더 먼저였다.

"박 소장님, 아무래도 중국 측에서는 밍싱건설을 지워 버리려는 거 같습니다!"

이진철 경정은 천상호텔의 부실 공사 의혹이 제기될 시점부터 강준과 밍싱건설의 수사를 공조하고 있었다.

이진철의 수사에 따르면 천상호텔 건물 상층부의 5개 층은 애초의 설계도면도 없이 시공된 거였다. 그런데도 제주시 건축과는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준공 허가를 내준 것이었다.

그건 엄연한 관리 감독 위반이자 민관유착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 대해 지적하는 이는 없었고, 준공 이후에 역으로 수정된 도면이 보완자료로 제출됐을 뿐이었다. 결국 준공 허가 시 설계도면이 추후 뒤바뀐 거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밍싱건설에서 새로 지정한 감리업체에서는 이 문제를 철저히 은폐했다.

"이 경정님, 이대로 밍싱건설을 보내 줄 순 없지 않겠습니까?"

"뭐, 생각한 거라고 있으십니까? 박경희를 잡을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박경희는 꼬리에 불과합니다. 그 꼬리를 자른다고 몸통이 없어지진 않죠. 하지만 전 그 몸통을 겨냥하고 싶네요."

"몸통이라면……?"

이진철은 강준이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하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밍싱그룹의 돈 줄이요. 함지훈 의원님이 지금 금융위원회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천상호텔의 부동산 대출을 조사하게 해 달라고요. 만약 부동산 대출이 어떻게 나가게 됐는지를 조사하다 보면 분명 정경유착의 실체가 드러날 겁니다."

"오호…… 그럼 밍싱그룹이 그간 한국에서 해 왔던 못된 짓들이 낱낱이 밝혀지겠네요?"

"그렇게 되면 밍싱그룹이 퇴출당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전 이번 일에 대한 피해보상을 반드시 받아 내야 한다고 봅니다. 그냥 튀어 버리면…."

"국내 유가족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겠군요?"

"중국인 관광객을 제외하더라도 한국 사망자들도 수십 명이니까요…… 게다가 밍싱보험은 천상호텔의 건설공사 재보험을 인수했습니다. 지자체로서도 마땅한 보험금을 받아 내야죠."

이진철의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

"그 보험금 안에 한국 정부가 쏟아부은 구호비용도 포함되겠군요."

"구호비용에 부상자들 치료비용까지 포함해야죠."

"하하! 역시 박 소장님은 다 계산하고 계셨군요. 그 비용에 성원그룹의 중장비 동원 비용까지 들어가는 겁니까?"

"그건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주관하는 부처에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성원그룹은 그저 자원봉사 차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진철 경정은 강준을 실눈으로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지금 전 국민이 성원그룹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리 이런 붕괴사고를 예견이라도 한 듯 부산항에서 선박까지 준비한 박 소장을 칭송하고 있고요. 그런데도 그냥 자원봉사 차원이라고요?"

"그렇게 보이셨다면 어쩔 수 없죠. 사실 그런 것도 좀 노린 겁니다. 저라고 그냥 퍼주기만 해서 되겠습니까? 저도 뭔가 얻어가는 게 있어야죠."

이진철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충분히 자격 있으십니다. 이번 기회에 밍싱그룹까지 확실히 잡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이번 천상호텔 붕괴사고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이가 강준이었다면, 밍싱그룹을 잡는 주인공은 강준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민한당의 입당 제안을 뿌리쳤던 함지훈 기자! 그는 얼마 전 의석수가 하나도 없는 정당인 미래당을 창당했다.

그리고는 새로운 실용주의 정치를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그건 거대 양당 정치지형에서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왠지 그를 한번은 도와주고 싶었다. 굳이 사적인 친분 때문이 아니더라도 말이었다.

* * *

대한뉴스 광화문 본사.

지형준 지사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조용호 회장을 찾았다. 밍싱그룹의 리리쥔과는 이미 연락도 되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박경희를 도피시킨 건 그녀가 구속되면 자신에게도 불리한 정황들이 밝혀질 터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녀를 도피시킨 후, 천상호텔의 붕괴 책임에 관해서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시간을 끌 계획이었다.

근데 상황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됐다.

베이징에서 리리쥔 회장에 대한 비리 수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명목은 한국으로의 외화반출과 사익 추구였다.

이번 제주도 천상호텔 붕괴의 책임을 밍싱그룹의 일탈과 한국 관료들의 담합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였다. 중국의 관영매체에서는 연일 한국 재벌들의 민관유착 비리가 오르내렸다.

자기네들은 이번 비리 수사를 통해 그런 한국의 부조리한 모습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반면 천상호텔에서 200여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자국 건설사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적반하장도 그런 뻔뻔한 적반하장이 없었다.

지형준도 상황이 그렇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리리쥔 회장은 중난하이의 권력자들과 끈끈한 꽌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왔었고, 지형준은 그걸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구석에 몰린 것이었다.

지형준은 한 시간째 조 회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전과 같으면 미리 차량을 보내 줬을 조 회장이었지만, 이제는 본인을 기다리게 하는 모습을 보며 지형준은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고생이 많으시죠? 금융위원회에 좀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예의 그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조용호 회장이었다. 지형준은 심기가 무척 불편했지만, 금융위원회라는 말에 놀라 되물었다.

"금융위원회요? 갑자기 왜요?"

"글쎄…… 함지훈 그 인간이 금융위원회를 찾아가 은행권의 불법 대출을 조사해 달라고 그랬답니다."

"불법 대출요……?"

"흠흠…… 밍싱건설이 천상호텔을 지을 때 자금 대출을 받은 걸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려나 봅니다. 미래당인지 뭔지를 만들어서 설치고 다니는 꼴이…… 참 보기 그렇습니다."

조용호 회장은 함지훈에 대한 비방으로 시선을 끌려고 했지만, 지형준은 순간 자신을 덮칠 위기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금융위원회에 압력을 넣어 시중은행들이 밍싱건설에 PF대출을 할 수 있게 만든 게 바로 지형준 본인이었다.

"하아…… 진짜 미치겠군요……."

"지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론은 시간 지나면 금방 사그라들 겁니다. 주말 동안 톱스타인 김혜윤의 스캔들 보도가 나갈 겁니다. 그래도 안 먹히면 와이 엔터사 대표 가수인 케이의 마약 복용 보도가 나갈 거고요."

대한뉴스가 급할 때 쓰려고 아껴두었던 카드를 모두 쓰겠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용호는 밍싱건설의 스캔들이 자신에게까지 오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유도 있었다.

"조 회장님…… 저 혼자서는 절대 안 죽습니다. 아시죠? 민한당 중진들하고 대한당 중진들 여럿도 밍싱그룹의 돈을 먹었다는 거요?"

"알죠…… 압니다.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다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흙탕물 한번 튀겼다고 제가 안면을 바꾸겠습니까?"

"금융위원회는 제가 잘 해결할 겁니다. 그러니 언론 쪽에서 쓸데없는 소리 나가지만 않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암요…… 암요!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허허……."

조 회장은 지형준 제주지사를 면전에서 달래 돌려보냈다. 하지만, 조 회장이 연예인 스캔들로 뒤덮겠다던 주말에 반전이 일어났다.

대한뉴스를 통해 보도된 건 톱스타 김혜윤의 스캔들이 아니라 지형준과 밍싱건설의 유착 의혹이었다.

이미 조용호 회장은 민한당의 다른 중진들과 합의가 끝난 상태였다. 이 사태를 빌미로 지형준을 낙마시키고 불똥이 민한당과 대한뉴스에까지 튀는 걸 막자는 거였다.

하지만 혼자 죽지 않겠다는 지형준의 말은 진짜였다.

* * *

을지로 SS재보험 데이터분석사무실.

강준의 사무실로 제주지사 지형준이 직접 찾아왔다. 취재진의 끈질긴 추적을 따돌리고 온 방문이었다. 그는 한참을 대한뉴스 조용호에 대한 험담을 쏟아냈다.

"지사님…… 이런다고 달라질 게 있겠습니까?"

"네? 이게 가만히 있을 일입니까? 언론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니까요? 밍싱그룹의 조종을 받는 대한뉴스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지사님이 사퇴 안 하고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강준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지형준이었다.

"내가 왜요? 밍싱건설 대출 건은 나와 관계가 없고 부실시공은 중국으로 도피한 박경희 대표와 밍싱그룹 리리쥔 회장의 책임이잖습니까? 이건 우리한테 책임을 미루려는 중국 측의 농간입니다."

"이제 와서요? 뭐 좋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해 두죠. 저한테까지 찾아오신 걸 보면 조용호 회장을 잡을 수 있는 뭔가를 가져오신 거겠죠?"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는 지형준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놓았다.

"이게 뭡니까……?"

"보시면 다 알게 될 겁니다. 난 분명히 말했습니다. 난 밍싱그룹이 한국의 정관계 로비를 펼치는 과정에서 단순하게 휘말린 피해자입니다!"

"네…… 피해자…… 좋습니다. 근데 천상호텔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아십니까? 호텔 직원과 투숙객을 다 포함해서요……."

"몇십 명 단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른두 명입니다. 부상자는 그보다 배는 많은 일흔다섯 명이고요…… 게다가 구호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지출한 인력과 예산은요? 그거 밍싱그룹에 청구할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사태수습에 신경 쓰기보다는 줄곧 자신의 안위에만 신경 써 온 지형준을 질책하는 말이었다.

"그야…… 제가 붕괴사고 이후에 줄곧 언론에 시달려 왔으니까요! 지사직을 수행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데…… 참나……."

끝까지 자기 책임을 언론의 책임으로 돌리는 지형준이었다.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터트려야죠! 뭘 고민하겠다는 겁니까?"

"그럼 다시 가져가십시오. 저 말고도 폭로해 줄 사람은 많지 않겠습니까?"

강준은 지형준이 내민 USB를 다시 내밀었다. 천상호텔 붕괴사고 이후에 국민적 칭송을 받아온 강준의 입으로 대한뉴스를 공격한다면 자신에게 쏠린 비난을 물타기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얕은수에 넘어갈 강준이 아니었다.

"흠흠…… 전 박강준 소장의 그간의 행적을 보고 찾아온 거였습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생각이 바뀌면 다시 연락을 주시죠……."

지형준은 불쾌하다는 듯 USB를 집어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강준은 이미 그의 기억을 통해 그 USB 안에 뭐가 담겼는지를 파악했다.

그건 대한뉴스 조용호 회장과 밍싱건설 박경희 대표의 독대 장면을 몰래 찍은 동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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