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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4) (246/250)

246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4)

천상호텔 준공 2개월 후.

호텔 외벽에 금이 간다는 소문과 고층의 객실이 좌우로 흔들린다는 소문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수백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단체로 투숙한 그 날.

호텔 건물이 붕괴했다.

로비가 있던 중앙동이 삽시간에 무너져내렸고, 투숙객 200여 명이 매몰됐다.

―오늘 새벽, 제주시 인근의 천상호텔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이 사고로 지금 수백 명의 투숙객이 매몰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현재 소방당국은 구조에 모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하고 있으며…….

을지로 사무실에서 뉴스를 접한 강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지희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뗐다.

"소장님…… 정말 김철희 대표님 말씀처럼…… 사고가 터졌네요."

옆에 있던 김준혁, 제이콥과 직원들도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강준도 충격을 받았지만, 정신을 차린 후 중간관리자들을 불러 모았다.

"난 지금 SS재보험 쪽에 다녀올 테니까 김준혁 과장은 천상호텔 소식 들어오는 거 전부 정리해 주고, 송 과장은 재난본부에 연락해서 사고 현장에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이나 물품이 뭐가 필요한지 물어봐."

"네, 알겠습니다!"

"전 소식 들어오는 대로 문자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강준은 제이콥과 함께 SS재보험으로 향했다. 김성호 대표와 최은정 이사를 만나 봐야 했다. 이번 일은 강준 혼자만의 힘으로는 수습이 힘들 것 같았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양반은 못 된다고 SS재보험으로 향하는 차량에서 김성호 대표에게 그새 연락이 왔다.

"네, 김 대표님!"

―뉴스 봤지?

"봤습니다. 처참하더군요……."

―정말 자네 생각대로 할 건가?

"밍싱건설이 제 역할을 못 할 겁니다. 이번에만 제 뜻대로 따라주십시오……."

―알겠으니까…… 얼른 와 봐.

통화를 듣고 있던 제이콥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차량의 속도를 높였다.

잠시 후 도착한 SS재보험 본사에는 이미 김성호 대표와 최은정 이사, 그리고 성원그룹의 최진호 회장이 모여 있었다.

"박 소장님, 결국 김철희 대표님이 경고하신 대로 사고가 터졌군요……."

오랜만에 보는 강준과 마주한 최진호는 천상호텔 붕괴 소식에 무척 놀란 모습이었다.

"최 회장님, 제가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천상호텔의 인명 구조를 위해 성원그룹이 나서는 건 직접적인 실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국내의 대형보험사인 성원그룹이 역할을 해 준다면 보험업계에 대한 국민감정이 반전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광고비에 수십억 원을 쏟아붓는 거랑 마찬가지 결과라고 보고요."

"저도 일부 공감하는 바입니다. 근데 저희가 지금 제주도 사고 현장에 간다고 해도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차라리 구호 물품이나 구호 성금을 내놓는 게 현실적일 거 같은데요."

사실 김철희 대표가 이런 사태에 대비해 강준에게 언질을 준 것이 있었다. 그건 제주도 내에 중장비들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건물이 붕괴하게 되면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칠 굴착기와 크레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중장비들이 육지에 있다면 그것들을 옮길 선박도 필요했다.

"제가 오는 길에 대인해운의 구민철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 부산항에 중장비들을 옮길 선박을 대기시켜 둘 겁니다."

"대인해운이요? 벌써 그렇게 진행이 된 겁니까?"

"네, 1차로 중장비를 옮기고 2차로 구호 물품을 실어나르면 될 것 같습니다."

"박 소장님은 어떻게 그걸 미리 준비하신 겁니까?"

"김철희 대표님이 제게 그러더군요. 붕괴가 일어나면 순식간이라고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중장비가 꼭 필요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산항에 중장비를 집결시키고 옮길 수 있는 선박을 구하자는 아이디어를 제게 줬었습니다."

옆에 있던 김성호 대표가 강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준비를 꼼꼼하게 했네…… 그럼 우린 자네 계획에 맞춰서 자금만 지원하면 되는 거야?"

"대놓고 돈 달라는 얘기 하는 게 민망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이번엔 성원그룹의 힘을 빌리겠습니다."

강준의 말에 성원그룹의 임원 셋이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그룹 차원에서 도와야죠. 물론 성원그룹 보험사의 이미지 쇄신이라는 현실적인 목적이 있긴 하지만요."

"저도 동의해요. 하지만 너무 이번 사고를 이용해 그룹사 홍보만 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아야 할 거 같아요. 역풍이 불 수도 있어요."

두 남매가 생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강준의 말에 찬성했다.

"밍싱건설 놈들이 개판 친 거 수습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 남의 나라 관광객들 목숨도 사람 목숨이잖아? 살려야지."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리고 두 분께도……."

"아니야. 오히려 고마운 건 나야.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걸 준비해 준 게 박강준 자네니까. 자금은 그딴 걱정하지 말고 자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어 봐. 우리가 뒤에 있을 테니까."

강준은 자신을 믿어주는 김성호 대표와 최진호 남매의 반응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괜한 오지랖을 부린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이번 일에 확신이 들었다. 이 땅에서 밍싱그룹의 검은 그림자를 확실히 뿌리 뽑을 수 있겠다고 말이었다.

* * *

부산항.

김철희 대표는 새벽부터 나와 중장비들이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대인해운의 구민철 대표는 선박에서 구호 현장에 투입될 중장비 선적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매몰된 지 벌써 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제주 소방서의 인력들이 총동원되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었지만,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군 병력이 동원되고 세계 각국에서는 구호 인력을 파견했고, 대규모의 구호 물품이 항공기에 실렸다.

하지만 언론은 이내 콘크리트 더미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는 건 중장비라는 걸 파악해냈다. 그리고 강준이 주도하는 부산항 중장비 지원에 기자들을 파견하고 실시간 뉴스를 틀어댔다.

그 와중에 이 상황을 무척 불편해할 사람이 부산항 선적 작업장에 도착했다. 그는 밍싱건설의 전 대표였던 이종도였다.

"이종도 대표님, 이 사태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죠! 천상호텔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한 이유가 뭡니까?"

"유족들에게 하실 말씀 없으세요?"

"사임했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기자들은 이종도의 얼굴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달려들었다. 어둡다 못해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이종도가 기자들을 피하지도 않고 입을 뗐다.

"먼저 침통한 마음으로 유족들에게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부실 공사의 과정에 대해서는 저도 밝혀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요?"

"본인이 책임을 안고 가시겠다는 건가요?"

이종도는 고개를 한 번 떨구고는 충혈된 눈으로 기자들을 바라보며 답했다.

"법적인 책임이 있다면 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제가 밝힐 부분은 제가 대표직에서 사임한 이후에도 보강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럼 밍싱건설에서 발표했던 보강공사는 어떻게 된 겁니까? 발표대로 시공이 안 됐다는 건가요?"

"네…… 밍싱건설의 가장 큰 문제가 현장에서의 빈번한 설계 변경이었습니다. 대표였던 제 지시조차 먹히지 않았으니까요. 보강공사도 계획만 그럴듯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관심이 벌써 이종도 전 대표에서 현재 밍싱건설의 경영진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왜 나타나신 겁니까?"

"너무 뻔뻔한 거 아닙니까?"

원색적인 비난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각오했다는 듯 이종도는 피하지 않고 답했다.

"저도 압니다. 여기 있을 자격이 안 된다는 거요…… 제가 동정표를 얻으려거나 혹은 책임회피를 하려고 나온 게 아닙니다. 다만, 천상호텔의 시공을 한때나마 책임졌던 사람으로서 작은 보탬이나마 되려고 나왔습니다."

그때 강준을 비롯한 성원그룹 사람들이 기자들이 모인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이종도를 둘러싸고는 그를 성원그룹 구조지원단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박강준 소장님! 이번 사태 예견하신 겁니까?"

"밍싱그룹의 실체에 대해 밝혀 주실 수 있나요!"

기자들은 강준을 보고도 질문을 외쳤지만, 강준은 답하지 않고 이종도를 그 자리에서 얼른 빼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휘 본부에 온 강준은 이종도의 손을 잡았다.

"대표님, 잘 오셨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둘이 손을 맞잡는 광경을 김철희 대표가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감리 결과를 한때나마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종도였다. 하지만 그 둘은 이제 붕괴한 천상호텔의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데 뜻을 모아야 했다.

* * *

24시간 후, 제주시 천상호텔 붕괴 현장.

해군 장병들이 동원되어 제주항에 도착한 중장비 선박의 하선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됐고, 덕분에 부산항에서 출발한 지 만 하루가 되기 전에 현장에는 굴착기와 크레인이 동원될 수 있었다.

이제는 얼마나 생존자들을 구출할 수 있을지는 하늘에 맡겨야만 하는 일이었다.

우우우웅! 와르르르!

치이이익!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굴착기를 지휘하던 구조대원 한 명이 무전기로 생존자의 존재를 알렸다. 그 무전을 받음과 동시에 의료인력이 해당 지점으로 뛰어갔다.

제주시의 모든 구급차가 현장에 모여 있었고, 의료본부와 성원그룹 구조지원단의 소통은 송지희 과장이 맡고 있었다.

성원그룹 구조지원단의 천막에는 이제 국내 언론사들뿐만이 아니라 외신기자들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그중 가장 활발한 외신은 중국 국영TV였다. 그들은 생존자가 나올 때마다 막 사지에서 빠져나온 이들을 인터뷰하려고 했다.

강준이 있는 구조지원단 천막에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여기 지휘자가 누굽니까?"

"저희는 민간 구조지원단이고 중앙재난대책본부의 지휘를 받습니다. 근데 어떻게 오신 거죠?"

이미 지휘통제권을 정부에 넘긴 성원그룹이었다.

"혹시 박강준 소장이 여기 있습니까?"

"네, 제가 박강준입니다."

강준을 확인한 남자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전 부총리 이영식입니다. 박 소장님께서 구조작업의 최전선에서 활약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정부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성원그룹 차원에서 움직인 것뿐이니까요."

부총리는 절제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강준과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그의 뒤로는 수행비서들이 뒤따랐고, 기자들의 카메라가 켜진 상태였다.

그때, 뒤늦게 구조지원단 천막에 도착한 이가 있었다. 그는 제주 도지사 지형준이었다. 천막에 들어온 그는 허겁지겁 부총리의 곁에 와서는 강준의 손을 붙잡으며 수고한다는 말을 전하려 했다.

"지사님, 지금 여기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요?"

"네?"

"박경희 이사가 좀 전에 제주공항을 통해 출국한 거 아닙니까? 중국인 국적의 밍싱건설 대표가 쏙 빠져나가 버리면 이 붕괴사태의 책임은 누구한테 물으실 겁니까?"

강준은 막 박경희와 작당 모의를 하고 온 지형준의 기억을 읽어 낸 거였다. 주변의 카메라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당황하는 지형준의 표정을 담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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