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3)
천상호텔의 공사는 한 달째 중지됐다.
김철희 설계사무소 대표가 제기한 중간 감리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보강공사를 하겠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 건 말 그대로의 공사 중지였을 뿐이었다.
설계와 다르게 시공된 부분을 고치거나 보강공사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었다.
"이 대표님이 책임을 지셔야겠습니다."
"네? 이 사태에 이른 게 온전히 제 책임이라는 말씀입니까?"
리리쥔 회장은 이종도의 요청에도 만남에 응해 주지 않았고, 대신 SH보험의 파견 이사였던 양양 이사를 밍싱건설로 내려 보냈다.
까칠한 성격의 양양 이사는 이종도 대표의 속을 여러 번 뒤집어 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공사재개를 앞두고 하청 업체들이 움직이질 않는 걸 책임지라는 얘기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부실시공에 대한 부분도 이 대표한테 있는 거 아닙니까? 설계대로 시공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걸 안 지켜서 이 사달을 내요?"
"하아……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겠네…… 양양 이사님! 시공이 왜 엉망이 됐는지 아십니까? 중간에 입구 넓혀야 한다고 난리를 치던 게 리리쥔 회장입니다! 근데 인제 와서 제 탓을 해요? 전 충분히 경고를 드렸다고요!"
둘 간의 첨예한 입장 차는 서로를 비방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박경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양양 이사님, 지금 와서 서로 책임 공방을 해봤자 뭐 하겠어요? 이 대표님도 최선을 다해서 천상호텔 건설을 위해 애써 주셨잖아요."
"그야 그렇지……."
"이 대표님도 흥분 가라앉히세요. 우리가 싸우려고 모인 건 아니잖아요. 베이징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으니 양양 이사님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거 이해하시죠?"
이종도는 자신의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박경희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종도는 그때 그렇게 하나씩 양보하게 된 것이 대표직 사임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다시 한 달 후.
―최근 부실시공으로 문제가 되어 공사가 중단됐던 천상호텔의 이종도 대표가 사임했습니다. 신임대표로 내정된 박경희 대표는 새로운 감리업체를 선정해 부실 징후가 있는 부분을 허물고 전면 보강하여 재공사를 추진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이종도는 완전히 버림당했다. 그것도 자신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준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말이었다.
* * *
한남동 이종도의 자택.
강준은 그를 만나기 위해 아파트로 올라가는 입구까지 올라왔다. 그러자 언덕 위에 카페가 보였다. 이종도를 설득해 겨우 만나기로 한 카페였다.
띠링~! 띠링!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종도가 강준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평생 회사 일만 해 오던 그가 평범한 일상복을 입은 채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영 어색해 보였다.
"절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이런 모습 보시니 만족스러우신가요? 최진태 회장한테 붙었다 밍싱건설에 붙었다…… 결국 이런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직장인들의 운명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월급쟁이 출신으로 대표 자리에까지 올라가셨으면 대단하신 거죠."
"……천상호텔 건으로 만나자고 하신 거죠?"
"아니라고는 말씀 못 드리겠네요. 정말 밍싱건설의 발표대로 전면 보강공사가 진행되는 겁니까?"
"글쎄요…… 그러지 않고서야…… 건축물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니 자기네들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강준은 그가 정말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걸 한번 보십시오."
"이게 뭡니까……?"
"공사를 재개한 로비 부분의 사진입니다. 이게 제대로 보강공사가 들어간 건가요?"
제이콥이 현장 인부로 잠입해 구한 현장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이종도가 헛웃음을 쳤다.
"……하하…… 겨우 이러려고 나를 내보낸 건지…… 기둥 위치를 지금 와서 변화시킬 수 없더라도 강판을 이용해서 보강재를 추가해야 하는데…… 그대로네요. 새로운 감리업체가 어딥니까?"
"호성 설계사무소입니다."
"감리업체로서도 이런 식은 부담일 텐데…… 말이 안 되는데……."
미간을 찌푸리는 이종도였다.
"호성 설계사무소 대표가 이번 공사에 참여한 하청 업체인 장강 건설의 대표 친동생입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군요."
"그리고 하청 업체들이 왜 그간 이 대표님 말씀을 안 들었는지 아십니까?"
하청 업체의 공사 일정이 어그러져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이종도였다. 하지만 어찌어찌 공사가 이어져가긴 했었다. 애매하게 하청을 바꿔 버릴 수도 없는 딱 그 정도로만 애를 먹인 거였다.
"제가 조사해 보니까 하청업체들은 실질적으로는 박경희 이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상한 건 그 하청업체 대부분이 중국인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요?"
충격받은 얼굴로 멍하니 강준을 바라보는 이종도였다.
"저희도 의심쩍은 구석이 있어서 박경희를 더 조사해 봤습니다. 한국으로 오기 전의 행적에 대해서요."
"……행적이 어땠습니까?"
"상하이에서 큰 인력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한국으로 보내는 인력을 관리하는 사업이었죠."
"……제가 듣기로는 백화점하고 쇼핑몰을 짓는 부동산개발회사에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거짓말입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그였다.
"그래서 자꾸만 하청업체 관리는 자기가 하겠다고 했었나……."
"아마 그 문제는 밍싱그룹 윗선에서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지금 박경희 대표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잠시 말이 없던 이종도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밍싱건설의 문제점을 세상에 밝혀 주시죠."
"……그래서 내가 얻는 게 뭐가 있는데요?"
"저도 얻을 건 없습니다. 다만, 천상호텔의 무리한 건설과 준공을 막을 수는 있겠죠."
"……난 원래 성원건설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최창식 회장 때부터 있었으니 꽤 오래 일했었죠."
이종도의 심경에 변화라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은 강준의 예상과는 다른 말이었다.
"더는 배신자 소리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이종도의 반응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최진태라는 잘못된 경영자를 따른 게 죄라면 죄인 사람이었다.
최선을 다했던 직장인의 삶.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허무하게 내려온 이종도였다. 강준은 그런 그에게 억지로 세상에 맞서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 * *
보험협회 사무실.
협회장 김승구는 제주 도지사인 지형준과 독대하는 중이었다. 도지사이자 민한당의 중진인 지형준 의원. 그가 보험협회 사무실까지 온 이유는 밍싱건설을 대신해서였다.
"김 회장님, 아직도 자전거래다 뭐다 떠드는 놈들이 있는 겁니까?"
"……하하…… 아무래도 지난번에 말이 나온 게 있다 보니까요."
강준이 제기했던 밍싱건설의 재보험을 밍싱보험에서 인수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언론에서 다뤄 주지 않았다. 이종도 대표의 사임으로 밍싱건설은 쇄신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대한뉴스를 필두로 천상호텔의 건설을 제주도 지방정부의 성공적인 외자 유치라는 관점에서만 다뤄졌다.
그리고 그런 프레임은 꽤 성공적이었다.
그 와중에 지형준 지사가 보험협회의 협회장에게 연락을 해 온 거였다. 여론은 잠재웠지만, 협회 차원에서 제기된 문제는 결말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밍싱보험 문제는 제가 잘 모릅니다. 밍싱건설 문제를 해리츠 보험하고 밍싱보험이 책임지겠다는 건데 그게 왜 잘못된 건지도 잘 모르겠고요."
강준의 주장을 비꼬는 지형준 지사였다.
"누구 하나가 잘나가면 항상 옆에서 질투하는 사람이 생기는 법이죠."
이상한 프레임으로 지형준의 말에 호응하는 김승구 협회장이었다. 그만큼 그는 어떻게 해서든 지형준과 척을 지지 않으려 했다.
"협회가 잘 굴러가려면 협회장님께서 회원사들에 떡고물이라도 하나 갖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어차피 협회라는 게 회원사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니까요."
"회장님이 일전에 말씀하신 실손보험료 말입니다……."
"네, 보험사들의 적자가 말이 아닙니다. 실손보험을 팔면 팔수록 손해니 진짜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손보험 상품은 의료계의 과잉진료와 일부 보험계약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맞물려 적자 폭이 커진 상태였다.
민간보험사들의 보험료 인상은 원칙적으로는 보험사들의 권한이었지만, 실제로는 금융위원회의 권고안을 따르게 되는 게 관례였다.
지형준 같은 집권당의 중진 정치인이 금융위원회에 힘을 써 줄 수 있음을 김승구 협회장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밍싱건설의 재보험 자전거래의 문제를 덮자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였다.
어차피 회원사들이야 실손보험료 인상의 공을 더 쳐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본인의 협회장 임기를 더 늘일 수 있었다.
"내가 금융위원장하고 잘 얘기해 보죠. 보험협회에서는 몇 퍼센트 인상안을 얘기했나요?"
"최소한 20%는 돼야 기존의 실손보험을 계속 판매할 수 있습니다. 지금 더는 실손보험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보험사들도 있으니까요……."
지형준은 발을 한번 꼬고는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김 회장님 뭐든 단박에 되는 건 없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달해 있죠."
"……네……그렇죠."
"한 번에 20% 보험료가 인상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물가 오른다고 난리를 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무척 곤란해지겠죠? 그럼 우리만 곤란해지고 끝나겠습니까?"
주는 대로 받으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럼…… 지사님, 인상분은 얼마나 생각하시는 겁니까?"
"10% 선으로 갑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지 않겠어요?"
지형준은 딱 10%가 아니라 10% 선이라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10%가 넘더라도 앞자리 수만큼은 지키라는 말이었다.
계산해 보면 보험업계로서는 꽤 환영할 만한 수치였다.
"네, 전 지사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완곡한 표현으로 호응하는 김승구였다. 그 모습을 보며 지형준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지사님…… 시사뉴스닷컴인지 뭔지 거기는 어떻게 합니까?"
"하하! 지독하게 달려붙죠? 거기 출신 기자인 함지훈이 천상호텔 건설 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겁니다.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협회 차원에서 대응은 일절 안 해도 될까요?"
"그럼요, 군소정당에서 뺑뺑이 돌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시간 지나면 다 잠잠해집니다. 하하!"
지형준의 입당 제안을 거부한 함지훈은 직접 미래당을 창당해 활동하고 있었다. 의원 배지도 없는 험난한 길이었지만, 엄연한 독자 행보였다.
지형준은 그런 함지훈이 지독히도 거슬렸다. 천상호텔 건을 걸고넘어지는 함지훈이 결국 자신이 추진하는 제주도 카지노 사업에까지 다다를 테니 말이었다.
《참고자료》
대형보험사 올해 실손보험료 8∼20% 인상 확정, 연합뉴스,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