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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2) (244/250)

244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2)

여의도 보험협회 이사회장.

"타 보험사의 문제를 가지고 왈가불가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해리츠 보험의 박성태 이사가 김성호 대표의 발언을 막아서고 나섰다. SS재보험 측으로서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김성호 대표의 옆에 앉아 있던 강준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대규모 보상이 전제되는 재해보험이나 건설공사보험과 같은 상품은 재보험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데 천상호텔의 공사보험은 중간에 해리츠 보험이 있긴 하지만, 결국 재보험을 전부 시공사인 밍싱그룹 산하의 밍싱보험에서 맡았습니다."

밍싱보험이라는 말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쑤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중국 국영 보험사인 안생보험을 인수하고 로이즈 재보험시장에 진출한 밍싱보험은 국내에서도 점차 인지도를 쌓아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험을 분산하려고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건데 결국 자기 위험을 자기가 끌어안는 꼴입니다! 일종의 자전거래죠!"

강준은 그간 밍싱건설이 가입한 보험상품의 재보험 이력을 검토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해리츠 보험으로서는 손해날 게 없는 장사를 한 것이었다. 어차피 문제가 생겨도 재보험사인 밍싱보험에서 보상을 해 주는 구조였다.

"이건 엄연한 배임행위입니다!"

"배임행위라고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 해리츠 보험으로서는 충분한 언더라이팅 심사 후에 계약된 상품입니다. 타사에서 그걸 걸고넘어진다는 게 무척 불쾌하네요."

박성태 이사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의 이사진 모두 해리츠 보험에 반기를 들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모두 그의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SS재보험에서는 뭘 어쩌자는 겁니까? 한국 건설사들의 재보험은 전부 본인들한테 가입하라 이겁니까?"

"박 이사님, 설마 그런 의도로 박강준 소장이 얘기한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 순간 중소 보험사인 신명보험의 곽 이사가 조심스럽게 사안에 끼어들었다. 강준의 얘기를 더 들어보겠다는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곽 이사님, 제가 이어서 말씀드리죠. 어쨌든 이런 식의 자전거래로 재보험을 이용한다면 결국 보험업계의 신뢰가 깨지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보험협회가 나서서 회원사들의 이런 자전거래는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성호 대표가 나서서 협회 정관을 손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단박에 먹힐 거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다만 강준과 김성호 대표는 이사회를 통해 해리츠 보험을 한번 흔들어 놓고자 한 것이었다.

"자전거래건 뭐건 합법적인 영업활동을 한 겁니다. 근데 협회가 그런 영업활동을 나서서 방해하시겠다?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협회는 소속 회원사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전 업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겁니다. 자꾸 박성태 이사님께서 이렇게 나오시면 외부에서 공론화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 결국 이거였군요. 또 한바탕 여론전을 치러서 같은 업계 경쟁자를 엿 먹이겠다…… 이런 거 아닙니까?"

서로 격해지는 발언에 협회장이 말리고 나섰다.

"김 대표님! 박 이사님!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우리가 뭐 싸우자고 모인 거 아니지 않습니까? 각자 의견이 있다면 조율해서 합의해나가면 되는 거지. 이렇게 우리끼리 볼썽사납게 싸울 필요가 뭐가 있어요?"

협회장은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그가 곧이어 내뱉을 발언은 다음 이사회 때까지 더 검토해 보자는 말일 게 뻔했다.

하지만 강준은 협회장이 그런 발언을 하기 직전에 재차 끼어들었다.

"협회장님, 이렇게 하시죠! 지금 언급되고 있는 밍싱보험의 관계자를 이 자리에 오게 하는 겁니다. 어차피 한국 시장에서 재보험 영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보험협회 이사회에 출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죠."

빼도 박도 못할 명분을 제시하는 강준이었다. 해리츠 보험의 박성태 이사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 왜 협회 회원사도 아닌 곳을 여기 이사회에 끌어들인단 말입니까?"

"……말이…… 안 될 건 없죠."

신명보험 곽 이사의 말에 이사회장이 일순간 침묵했다. 모두가 생각하고만 있던 걸 입 밖으로 꺼낸 곽 이사였다.

해리츠 보험의 박 이사가 그런 곽 이사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이미 좌중의 여론은 결정된 듯했다.

"박성태 이사, 지금 나온 말이 영 틀린 말도 아니니까…… 밍싱보험 관계자 보고 다음 이사회 때 출석해 줄 수 있는지 한번 물어봐 줘요."

"협회장님!"

"아이…… 여기서 밍싱보험 쪽이랑 제일 친한 분이 박 이사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가 부탁 한번 드리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더 반박하다가는 더 불리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눈치 빠른 박 이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겠다고 답했다.

"박강준 소장, 이제 내 역할은 다한 거다?"

귓속말로 강준에게 속삭이는 김성호 대표였다.

* * *

제주도 천상호텔 공사현장.

밍싱그룹의 새로운 회장 리리쥔이 직접 현장을 찾았다. 천상호텔 건설의 총책임자는 밍싱건설 이종도 대표였다. 그는 리안건설에서 밍싱건설로 영입됐다.

밍싱건설로서는 국내 건설업계의 상황을 잘 아는 인력을 빼 오는 게 한국 시장에서 제일 빠르게 안착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레이더망에 처음 걸린 사람이 바로 최진태 회장의 심복 리안건설 이종도 대표였다.

[밍싱그룹에서는 이 대표님 같은 분이 꼭 필요합니다.]

[종도야…… 어차피 월급쟁이 사장 그거 오래 못 간다.]

[어차피 최진태 그 인간 양아치야. 너도 알잖아? 안 그래?]

수개월의 장고 끝에 이종도는 결국 밍싱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가 실망한 건 옮기고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주먹구구식의 의사결정 시스템, 그리고 누군지 모를 윗선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지시사항, 마지막으로 명성정공의 윤재구 사장보다 더 거지 같은 꽌시로 엮인 하청업체들.

"공기(工期)를 더 단축하세요."

"그건 좀 무리가 있습니다. 현장 작업반장들도 굉장히 미숙하고요."

"잘 다독여 가야죠. 그리고 현장 감독은 아랫사람한테 맡기세요. 언제까지 이 대표가 직접 챙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밍싱건설의 첫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이종도 대표의 말에 리리쥔은 신경질적인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는 통역이자 밍싱건설의 신임이사인 박경희를 바라봤다.

"저번 거푸집 붕괴 사고는 잘 마무리가 된 상태가 아닙니까? 굳이 이렇게 시간을 끄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이종도 대표도 공기 단축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하청 업체들 사장도 이 대표를 잘 따르고 있고요."

이종도 대표는 리안건설에 있을 때보다 자신의 말이 회사 간부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박경희 이사가 중간에서 잘 조율해 주는 것 같아 위안이 됐다. 하지만 그런 이종도 대표의 생각과는 다르게 박경희 이사는 리리쥔과 중국어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천상호텔 준공될 때까지 하청업체들 확실하게 장악해 놔요! 누가 와도 밍싱건설에서 하는 공사가 잘 돌아갈 수 있게 말이죠……."

"아직은 이종도 대표가 필요해요. 한국 공무원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원자재 업체들과의 관계도 그렇고요."

"언제쯤 가능하겠어요?"

"다음번 프로젝트의 허가 나올 때까지는 살려 두시는 게 어때요?"

"……알겠습니다. 난 박 이사만 믿고 맡겨 두죠. 이번 천상호텔 프로젝트를 베이징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죠? 한국은 우리 일대일로의 과업을 완수하는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겁니다."

리리쥔은 그제야 아까의 딱딱한 표정을 풀고는 미소 지었다.

"박 이사님, 리 회장님이 뭐라고 그러시나요?"

"이 대표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고 하세요. 다만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하시네요. 베이징의 고위급 인사들도 지켜보고 있다고요."

박경희의 능력은 상대의 마음을 잘 파고들어 그를 움직일 줄 안다는 거였다. 리리쥔처럼 단지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가 먼저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조종 능력! 그게 박경희 이사가 밍싱그룹에서 한자리해 먹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참! 이 대표님, 오늘 저녁에 해리츠 보험 박성태 이사가 온다고 해서 같이 자리 마련했어요."

"해리츠 보험이요?"

"네, 리 회장님도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이종도는 자신도 보고받지 못한 일을 막 제주도에 도착한 리 회장이 먼저 알고 있다는 게 이상했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다. 골치 아픈 일들이 산적했기 때문이었다.

* * *

제주 리안리조트.

이종도는 약속장소가 리안리조트로 잡혔다는 걸 알고는 뭔가 느낌이 싸했다. 자신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리안리조트는 이종도가 리안건설 대표였던 시절에 지은 건물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그였다. 옛 부하직원들이 분명 자신을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 대표님……."

예상대로 프론트에 있던 직원이 이종도를 알아보고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했다. 이종도는 손짓으로 어색하게 인사를 받으며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지형준 지사가 만든 자리는 리조트 꼭대기의 파티 홀이었다. 수백 명이 모여 행사를 할 수 있는 곳. 하지만 오늘은 단 몇 명의 손님을 위해 홀을 텅텅 비워 둔 상태였다.

그만큼 밍싱그룹의 리리쥔 회장이 이 자리를 신경 쓴다는 방증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이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지형준 제주지사가 넉살 좋게 웃으며 이종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종도는 최대한 정중하게 그 손을 맞잡으며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셨습니까? 지사님."

회장인 리리쥔이 자리에 앉는 걸 보고야 이종도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이미 좌석에는 해리츠 보험의 박성태 이사가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는 이종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리리쥔 회장이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듯 박경희를 통해 농담을 던졌다.

"어려울 때 웃는 게 일류라는 한국 농담이 있더군요. 지금 어려운 일이 많은 거로 압니다. 하지만 오늘 자리는 앞으로 카지노 사업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박성태 이사가 발끈하며 뭔가를 이종도 대표 앞에 던졌다. 그건 김철희 설계사무소에서 쓴 감리 중간보고서였다.

"이게 어떻게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겁니까? 제가 이거 때문에 얼마나 곤란해졌는지 아십니까? 보험협회에서 지금 저희 해리츠를 공격하느라 난리입니다!"

리리쥔도 그건 처음 접하는 정보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기름을 붓듯 지형준 지사가 거드는 말을 보탰다.

"이거 참 큰일이네요. 중간에 파리가 꼬이면 안 되는데…… 리 회장님, 이래서 카지노 사업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13억 중국인 중에 10%만 제주도를 방문한다고 해도 1억 3천만 명입니다.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죠. 겨우 파리 한 마리 꼬였다고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리리쥔의 답변에 지형준 지사와 박성태 이사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실무적인 문제입니다. 실무적인 문제는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 문제죠. 안 그렇습니까? 이 대표님?"

리리쥔은 자신의 발언 끝에 이종도를 끌어들였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테이블의 시선은 일제히 이종도에게 집중됐다.

결국 일이 잘못되면 이종도가 싹 다 뒤집어쓰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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