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제주도 호텔 붕괴사건 (1)
"밍싱그룹을 제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셔서 찾아오신 거군요?"
먼저 밍싱그룹의 얘기를 꺼낸 강준을 보며 김철희는 흠칫 놀란 눈빛이었다.
"혹시 알고 계셨던 겁니까? 밍싱그룹에서 제주도에 호텔을 세운다는 걸 말입니다……."
"SH보험의 경영권을 포기한 이후에 호텔 사업에 손을 댔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 건설사에서 짓는 호텔이 제주도에서 허가가 났나요?"
밍싱그룹과 대한당 박상도 의원과의 유착관계를 밝히는 데 강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김철희가 밍싱그룹과의 문제 때문에 강준을 찾아온 건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는지도 몰랐다.
"몇 년 전부터 밍싱건설이 국내에서 건축업 허가를 받고 크고 작은 공사들을 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300억 정도 해 왔는데 이번에는 18층짜리의 대형 호텔을 짓는 겁니다."
"제주도에서 그런 대형 프로젝트를 중국 건설사에 해 줬나 보군요."
"애초에는 위락시설을 갖춘 30층짜리 호텔이었습니다. 근데 시에서 허가가 안 나니까 계속 축소해서 허가를 내달라고 한 거죠. 결국 18층짜리 일반 호텔에 카지노가 들어온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맡은 겁니다."
"카지노라…… 세수 확보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니 반대하기도 쉽지 않았겠네요……."
강준은 회귀 전 제주도가 중국 자본이 활발하게 진출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밍싱그룹은 이제 제주도를 근거지로 한국 사업을 확장해 나갈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권력층의 자금세탁도 연관되어 있었다. 자산의 국외 유출. 정쟁에서 밀리면 언제든 자산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돈을 해외에 묻어 놓기를 원하는 거였다.
밍싱그룹의 샤오빙(肖斌) 회장이 실종된 지도 2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밍싱그룹의 새로운 회장은 중난하이의 권력자들에게 충성을 재확인받은 리리쥔이었다.
"그럼 김 대표님께서는…… 그 호텔의 설계를 맡아서 해 주셨던 겁니까?"
"네…… 설계와 시공감리를 맡았습니다. 근데 그놈들이 워낙 엉망으로 시공을 한 겁니다. 도면하고도 완전히 다르게 해 놓고요…… 그러니 제가 감리보고서를 써 줄 수가 없었습니다."
김철희 대표의 표정에서 한눈에도 그간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한잔 드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시죠."
강준은 막 내린 커피를 내밀며 김철희를 일단 진정시켰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칼은 강준이 김상훈의 죽음을 조사했을 때보다 더 세어 버린 듯했다. 그런 그가 강준을 다시 찾아왔다는 건 무척 절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사는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겁니까?"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납니다. 지난번엔 거푸집이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부상자로 그쳤지만…… 다음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감리보고서가 없이는 준공 허가가 안 떨어지지 않나요?"
"최근에 감리업체를 바꾸더군요. 건축법에 따르면 설계자가 반드시 감리를 맡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김철희는 강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막아야 합니다.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누군가 나서서 마구잡이식 시공을 막아야 합니다……."
"제주시 건축과 쪽에는 얘기해 보셨습니까?"
"네…… 수십 번 얘기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자기네들은 원칙대로 관리 감독하겠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근데 현장에 와서는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고 건설사 관계자들과 얘기만 하고 갑니다! 그게 제대로 된 관리 감독입니까?"
목소리가 높아지는 김철희였다.
"김 대표님…… 근데 전 보험조사관일 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건설공사보험을 해리츠 보험에서 해 준 걸로 압니다. 그 보험사에 부실시공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그럼 이 공사 중단시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강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철희는 해리츠 보험과 강준간의 적대적인 관계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김 대표님은 설계해 주고 비용은 다 받으셨나요?"
"감리까지 끝나고 잔금을 받기로 해서…… 일부는 아직 못 받은 상태죠.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부실 시공된 건물을 그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제가 설계한 건물에서 사고가 난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네요."
김철희는 끔찍한 상상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죠…… 의뢰 비용은……."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제가 부탁드린 거니까요."
"아닙니다. 아직 정식 조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일단 알아보는 선에서 움직이겠습니다."
강준은 처음부터 의뢰 비용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사망한 김상훈의 시신을 찾아주기는 했지만, 안타까운 사연을 겪은 김철희에게 각박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김철희로서도 자신이 설계한 프로젝트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려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비용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이번 일을 계기로 보험협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한번 헤집어 볼 생각이었다. 개인 보험계약자들에게는 갖가지 명목으로 까다로운 지급 조건을 내세우는 보험사들이 거대 기업인 밍싱건설에게 온갖 편의를 봐준 행태를 말이었다.
"대표님, 혹시 저에게 밍싱건설의 호텔 시공에 대한 자료를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안 그래도 읽어 봐 주셨으면 하고 따로 챙겨왔습니다."
김철희가 내민 건 두꺼운 철로 묶인 제주도 천상호텔의 감리 중간보고서였다.
* * *
SS재보험 대표이사실.
강준의 요청에 오랜만에 김성호 대표와 성원그룹의 최은정 이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니까 박 소장 말은 이번 사안에 내가 좀 나서 달라 이 말이지?"
"아무래도 보험협회에서는 제가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을 테니까요. 지난번에 해리츠 보험에서는 윤태영을 앞세워 저를 음해하려다 실패한 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게 좀 적당히 하지 그랬어?"
"저도 알았나요? 보험협회가 해리츠 보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줄……."
김성호 대표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보험사인 SS재보험으로서는 보험협회에 소속된 보험사들이 모두 고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명분이라면…… 건설사의 관행적인 언더라이팅에 제동을 걸자는 건가?"
"네, 어차피 이건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잖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보험협회가 움직여 줄까? 밍싱건설의 건설공사보험과 배상책임보험을 해리츠에서 이미 맡은 실정인데…… 굳이 그걸 들춰내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게 좀 부담스러운데?"
김성호 대표가 한 발 빼자 옆에서 지켜보던 최은정이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보니까 천상호텔의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국내 시중은행에서 받았더라고요. 실적이 없는 해외 건설사가 국내 은행에 어떻게 돈을 빌렸겠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밍싱그룹의 후원자가 누구겠어요? 민한당 지형준 의원이에요. 얼마 전에 지방 선거 치러서 어디로 갔어요?"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
"네, 맞아요. 밍싱건설이 제주도에서 건축허가를 받아 낸 게 우연이 아니었어요."
듣고 있던 강준이 끼어들었다.
"그럼 도지사가 된 지형준이 시중은행에 대출을 내주라고 종용했다는 겁니까?"
"종용이 아니라 권고였겠죠."
"은행으로서도 불안정한 사업에 대출을 내주는 건 손해 아닌가요?"
"맞아요. 은행에는 분명 손해죠. 하지만 은행 돈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은행 고위급 임원의 입장이라면요?"
그제야 강준은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차이나머니를 먹은 정치인과 고위 은행 간부들이 대규모 건설 사업을 만들어 주고 그 과정에서 대출 특혜를 줬던 것이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최 이사, 이걸 해리츠에서도 알고 있나?"
"밍싱건설에서 올리는 천상호텔에 하자가 없다면 자기네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건물을 설계한 김철희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황이 심각해요. 이건 명백한 부실 공사잖아요?"
"그렇지."
"만약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얼마 전에도 콘크리트를 붓는 과정에서 거푸집 붕괴도 일어났대요. 게다가 건물 하중을 이동시키는 기둥의 위치 변경까지요……."
최은정의 말을 듣고 있던 강준이 직설적으로 말을 보탰다.
"만약 천상호텔이 붕괴라도 하는 날엔…… 그 프로젝트에 연루된 이들의 모가지가 전부 날아가겠죠."
강준의 말에 최은정의 눈빛이 반짝였고, 반대로 김성호 대표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에이, 그럼 더더욱 파면 안 되겠네. 괜히 들쑤셔놨다가 일만 더 커지겠어. 박강준 소장, 그리고 최 이사!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건설 분야까지 신경 쓸 팔자는 아니잖아? 이건 괜한 오지랖이라고!"
"김 대표님, 제가 볼 때는 기회인데요.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혀 왔던 대한뉴스와 지형준 의원…… 아니 이제는 도지사죠. 그리고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던 해리츠 보험까지 한꺼번에 날릴 좋은 기회잖아요."
"게다가 한국에 들어와 마음껏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는 중국 자본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죠. 방치하다간 아마 나중에는 거대 자본을 무기 삼아 횡포를 부릴지도 모릅니다."
이마에 두 손을 짚은 김성호 대표가 강준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박 소장, 너어무~ 소설 쓰는 거 아냐?"
"그간 밍싱그룹이 어떤 일을 저질러 왔는지 잘 알지 않으십니까? 기술 탈취부터 개인정보 유출까지…… 게다가 이제는 한국의 언론과 정치를 장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제가 오버하는 건가요?"
"됐고! 이제 우리 회사까지 합쳤잖아? 그건 잘돼 가고 있는 거고?"
김성호 대표는 강준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자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게 그의 진심인지도 몰랐다.
김준혁이 주도하는 보험사기 정보 시스템 구축, 그는 대규모 자본을 쏟아붓는 사업이 뚜렷한 실체를 보이지 못할까 봐 CEO로서 본능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대표님, 한번 맡겼으면 끝까지 믿고 맡겨야 합니다. 왜 이러십니까? 아마추어같이."
"뭐야? 이제 본인은 더는 회사 대표가 아니라는 거지? 좋겠다~ 박강준! 나도 언제쯤 이 무거운 자리에서 내려오나 모르겠다! 하하!"
자신을 보고 씩 웃는 강준을 향해 김성호 대표는 얄밉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좋아! 여기 두 사람…… 뭐 언제는 내 얘기 잘 들었었나? 자기네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왔잖아."
"김 대표님, 왜 이러세요? 저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대표님인걸요."
최은정이 그의 마음을 풀어주듯 말했다.
"듣기는 좋네~ 좋아! 근데 박강준 너 나랑 약속 하나 하자."
"일단 들어보고 하겠습니다."
"하! 참나! 그냥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되냐?"
"네, 약속드리죠. 뭡니까? 그 약속이라는 게?"
김성호 대표는 미리 준비했다는 듯 몇 번을 ‘큼큼’거리고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번 일 마무리하고 나면 박강준…… 너 영국 가라."
"네? 영국이요?"
"그래, 우리도 명색이 재보험사인데 런던에 지사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로이즈랑 업무협조도 더 원활하게 할 겸?"
옆에 있던 최은정이 그 말을 듣고는 잘됐다는 듯 손뼉을 쳤다.
"강준 씨, 잘됐네요! 런던에서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커리어를 더 탄탄하게 쌓을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런가요?"
강준은 그냥 은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험조사관이 아닌 언더라이터로서 새로운 인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