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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엔터사 배상책임보험 (6) (241/250)

241화. 엔터사 배상책임보험 (6)

에디의 마약 동영상에 이어 박병태 이사가 저지른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끔찍한 행위는 단 몇 시간 만에 언론 지면을 가득 채우게 했다.

―어제 경찰은 한강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불법 촬영물이 발견되었고, 조민국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습니다.

한강 엔터테인먼트에서 압수된 컴퓨터에서 실제 발견된 불법 촬영물은 없었다. 경찰이 입수한 동영상들은 모두 강준이 송성재를 통해 확보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수사를 지휘한 이진철이 한 가지 곤란해하는 점이 있었다. 박병태가 시간을 끌며 강준을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박 소장님 ……제가 입장이 좀 곤란하네요. 정말 한강 엔터테인먼트를 협박하신 겁니까?"

이진철 경감은 난감한 표정으로 강준에게 물었다.

"일종의 전략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송성재에게 남은 동영상을 끌어낼 순 없었겠죠. 그렇게 됐다면 영원히 약점을 붙잡힌 채 소속 연예인들은 계속 박병태에게 끌려다녔을 거고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지금 소장님은 위법행위를 하신 겁니다."

"일종의 조사 전략이라고 봐야겠죠."

머리를 긁적인 이진철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금전이 오간 건 없으시죠?"

"네, 준 것도 없고 받은 것도 없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돈이 오갔다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을 테니까요."

광역수사대 건물 앞으로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진철 경감이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을 맡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연예인이 개입된 이번 사건은 그도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경감님, 한강 엔터테인먼트는 역선택 보험사기로 금융감독원에서 고발이 들어갈 겁니다."

"네. 그 부분은 충분히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동영상 제작 시기를 살피면 되는 문제니까요. 근데 불법 촬영물 이거는 정말 심각한데요?"

"평판에 취약한 업계 상황을 박병태가 교묘하게 이용한 거죠. 뿌리 뽑아야 할 연예계 악습이기도 하고요."

이진철은 자신으로서는 감당이 안 된다는 듯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영상 촬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데 꽤 어려움이 있을 거 같네요…."

"박병태가 송성재 매니저에게 덮어씌우는 중이군요?"

"네, 게다가 핸드폰 제출은 거부하고 있고, 진술은 변호사를 통해서만 하겠다고 하니까…… 저희가 뭘 더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청부폭력 부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날 송성재에 대한 폭행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습니다. 근데 청부폭력은 부인하더군요. 본인이 전부 직접 때렸다면서요……."

"하긴 그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박병태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강준의 말에 이진철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날 송성재를 린치하는 자리에 있었던 남자들은 누구랍니까?"

"그걸 확인하는 중입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라고는 하는데…… 어느 아르바이트생이 그런 자리에 곧바로 투입됩니까? 경영진들이 직원을 폭행하는 자리예요……."

"분명 청부폭력의 흔적이 있을 겁니다."

"네, 밝혀내야죠."

이진철은 담배를 비벼끄고는 다시 조사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경감님, 제가 조 대표를 한번 면회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아…… 가능합니다. 지금 조 대표는 조사가 끝난 상태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박 소장님이 이 수사를 거의 만들어놓은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배려해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근데 조 대표와는 무슨 말씀을 나누시려고요?"

"이번 사건 조사가 실은 JIN필름 남궁진 대표의 부탁으로 시작된 거거든요. 제가 남궁진 대표에게 약속한 부분도 있고요……."

"그 약속이라는 게 뭡니까?"

"무리한 영화 제작을 중단하는 거죠. 근데 그 부분에는 조민국 대표도 얽혀 있으니까요."

"하하! 그 부분은 제가 건드릴 수사 대상은 아니군요."

이진철은 경정 계급 진급과 함께 광역수사대의 수사과장 임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해결해야 할 눈앞의 수사 건이 산적한 그였다. 강준의 보험조사 업무까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자! 소장님, 들어가시죠!"

회귀 전 자신처럼 한직으로 밀려 지방경찰서를 전전하다 퇴직한 이진철이었다. 강준은 광역수사대에서 승승장구하는 이진철의 모습을 보며 내심 만족스러웠다.

잘하는 사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 강준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두 번째 삶이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느꼈다.

* * *

광역수사대 면회실

강준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조민국 대표와 마주했다.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 대표가 강준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한 번도 살면서 경찰서 근처에 와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조 대표는 회사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더 걱정되는 듯했다.

"우선 하자가 있는 연예인들을 알면서도 배상책임보험에 가입시켰습니다. 그건 엄연한 역선택 보험사기죠."

"압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처벌을 받는 건가요?"

"작년에 국회에서 통과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의 적용을 받으실 겁니다.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으시겠죠."

강준의 말에 조민국은 표정이 살짝 풀렸다. 변호사를 써서 대항한다면 구속형은 충분히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터였다.

"……그리고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부당행위와 협박…… 불법 동영상 촬영에 대한 형사처벌이 있을 겁니다."

"부당행위와 협박이라니요……?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알고 계셨잖습니까? 박병태 이사가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 알면서도…… 눈 감으셨던 거 아닌가요? 본인 마음만 편해지려고요?"

반박하지 못하는 조민국이었다. 그는 타인에게 의존적으로 살아온 지난날들이 후회됐다. 애초부터 손위처남인 박병태에게 의존해 왔던 엔터 사업이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취해 안으로 곪아 가는 걸 외면했던 그였다. 하지만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한강 엔터테인먼트의 법인 대표는 엄연히 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박 이사가 저한테 그랬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높은 가격에 회사를 팔 수 있다고요. 그때까지만 버티자고 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버틴다니요? 회사가 어려웠습니까?"

"실은 매월 적자 폭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상장하기 힘들겠더라고요. 결국 매각 쪽으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병태가 횡령한 금액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요?"

"그…… 그건 누구한테 들으신 겁니까?"

"박병태가 상하이 지사를 운영했던 시절에 현지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깁니다."

한숨을 푹 내쉰 조민국은 한동안 뜸을 들였다 다시 말을 이었다.

"저도 대충 짐작은 했었습니다. 하지만 처가 식구였으니까요…… 그래도 믿어 보려고 했던 겁니다. 게다가 한동안 못 뜨던 굿보이즈도 중국 현지에서 반응을 얻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저도 생각을 달리 한 겁니다. 희망이 있구나……."

"그래서 굿보이즈에 중국인 멤버를 합류시킨 겁니까? 원래 멤버가 다섯 명이지 않았습니까?"

"그건 현지화전략의 일환으로 박 이사가 추진했던 거였습니다."

마약반에서는 에디가 사용한 마약의 출처에 대해서 중국인 멤버 루경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중국으로 출국한 상태였다.

"그 중국인 멤버 루경이 팀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탈퇴요……?"

"제가 볼 때는 굿보이즈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본인이라도 탈출하려고 하는 거겠죠. 어차피 루경은 서광걸 대표가 꽂아 넣은 멤버였을 테니까요."

"……."

말을 잇지 못하는 조민국이었다. 그도 굿보이즈가 끝장나면 회사를 매각하려고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표님 처음부터 서광걸은 회사를 인수할 계획이 없었던 겁니다……."

"그럴 리가요? 굿보이즈가 중국에서 활동한 데는 서 대표의 공이 컸습니다."

"그걸 지금 회수해 가고 있지 않습니까! 루경이 새로 계약하려는 곳이 바로 화영컴퍼니입니다! 화영컴퍼니로서는 어려워진 굿보이즈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나머지 멤버들도 흡수할 거고요."

강준은 송성재의 기억을 통해 서광걸이 굿보이즈를 헐값에 데려간다는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타겟은 서광걸이 꽂아 넣은 중국인 멤버 루경이었다.

"지금 박 이사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경찰에서 분리해서 조사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두 분이 말을 맞출 수 있으니까요."

"전 진짜 누구를 협박하거나 그런 적은 절대 없다는 것만 알아 주십시오……."

강준은 고개를 떨군 조민국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에게 나지막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말했다.

"송성재 매니저가 가지고 있었던 불법 촬영물…… 박병태 이사가 지시한 거죠? 조민구 대표님…… 이미 한강 엔터테인먼트는 끝장났습니다. 이제 남은 건 누가 그 책임을 지느냐죠."

"……."

시선을 돌리는 조민국이었다. 강준은 그에게 결정타를 날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걸 보시죠."

강준이 내민 건 송성재에게서 입수한 불륜 동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동영상 속에 나오는 인물은 배우 우민석이 아니라 한강 엔터의 대표 조민국이었다.

"박 이사는 회사가 매각되고 나면 조 대표님을 떨굴 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동영상을 공개해 물의를 일으킨 조 대표님을 사임시키려고 했던 거죠."

조민국의 두 눈에서는 핏발을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분노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본인은 박병태 이사에게 돈 나오는 전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겁니다!"

"……처음부터 안 믿었어…… 개새끼……."

자신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결정을 부정하는 조민국이었다. 그의 얄팍한 마음은 큰 파도가 덮쳐오자 그만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불법 촬영물 지시…… 전부 박병태의 짓이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조민국이었다.

"전 처음부터 하지 말자고 했어요. 근데 박 이사가 자기가 알아서 한다면서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나서는 소속 배우들과 재계약을 연장해 오곤 했어요."

"조 대표님도 부당행위와 공갈 협박 혐의에 있어서는 방조 혐의를 벗지는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주동자보다는 훨씬 덜한 처벌을 받으시겠죠."

박병태가 해왔던 악행들이 이제 조민국의 입을 통해서 드러날 터였다. 강준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조 대표님, 그리고 그간에 박병태 이사가 횡령한 것들 전부 사기죄로 고소하시죠. 가족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면 대표님은 영원히 호구로 남으시는 겁니다."

"그…… 그렇죠……."

강준은 광역수사대를 빠져나와 차량에 올라탔다. 우민석 배우가 JIN필름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강준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정면 돌파를 선택한 듯했다.

이제는 서광걸의 화영컴퍼니를 잡아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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