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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엔터사 배상책임보험 (4) (239/250)

239화. 엔터사 배상책임보험 (4)

신사동 화영컴퍼니.

박병태는 굳은 얼굴로 서광걸과 독대했다. 원래 같았으면 조민국 대표가 직접 왔어야 하지만 박병태는 필사적으로 그를 따돌리고 홀로 화영컴퍼니로 왔다.

자신의 매제인 조민국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면계약! 박병태와 서광걸, 그 둘 간의 이면계약은 한강 엔터테인먼트의 매각 후 새로운 대표로 박병태가 선임된다는 계획이었다.

"서 대표님, 저와 약속했던 협의 부분은 변하지 않은 거로 알겠습니다."

"당연하죠. 전 항상 조민국 대표보다는 박 이사님을 보고 일을 진행한 거 아니겠습니까?"

"좌우간 면목이 없습니다. 에디 그 녀석이 좀 꼴통이긴 하지만 이런 대형 사고를 칠 줄은 몰랐거든요."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굿보이즈 주가가 확 꺾였을 테니까요……. 원래 같았으면 500억에 인수하겠지만…… 지금은 좀 곤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면전에서 딴소리를 하는 서광걸이었다.

서광걸은 연예계 바닥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박병태를 설득했었다. 얼추 보면 둘의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진 거로 보였다.

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박병태의 착각이었던 건지도 몰랐다. 애초부터 서광걸은 한강 엔터테인먼트를 제 가격에 인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조금씩 무너뜨려 결국 헐값에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간만 보면서 차선책으로 소속 연예인들만 빼 올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런 서광걸의 양아치 같은 큰 그림에는 한강 엔터테인먼트에 심어 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박병태가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해 온 송성재 매니저였다.

이번 에디의 동영상은 서광걸이 강준이 붙은 걸 보고는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다. 에디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퍼트린 건 서광걸의 짓이었다.

덕분에 박병태는 자신의 소속 연예인들을 붙잡아 두려고 썼던 계략에 본인이 걸려든 형국이 되어 버렸다.

[송 매니저님, 언제까지 그런 대우를 받고 계실 겁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화영컴퍼니로 넘어오시죠.]

서광걸은 한강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깊이 알게 되자 자신이 좀 더 만만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송성재를 박병태의 대체자로 삼은 거였다.

‘어차피 비용 줄이면 경영실적도 높아질 테니까. 박 이사 넌 필요 없어진 거지…….’

박병태도 그런 뻔한 속셈을 내보이는 서광걸을 바라보며 아차 싶었다. 보험조사관 박강준이 동영상을 퍼트리고자 했다면 자신을 찾아올 이유도 없었을 터였다.

게다가 그는 1억의 돈을 요구했다. 목적이 있는 그가 거래조건으로 내걸었던 에디의 동영상을 스스로 터트릴 다른 목적은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박병태는 에디의 동영상 사태가 터지고 나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조 대표를 500억 미만으로는 설득하기는 힘들 겁니다…… 솔직히 한강 엔터테인먼트 매각도 제가 겨우 설득했던 거니까요."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약한 소리를 할 수도 없는 박병태 이사였다.

"그러게…… 직원 단속을 잘하셨어야죠."

서광걸은 박병태를 책망하듯 냉정하게 말했다. 마치 박병태가 송 매니저를 통해 소속 연예인들의 불법 동영상을 촬영해 뒀던 걸 알기라도 하는 듯 말하는 그였다.

박병태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애초에 자신들에게 접근했을 때와는 태도가 딴판으로 달라진 서광걸이었다. 하지만 왕총의 돈줄을 쥐고 있는 그였기에 대놓고 기분 나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었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 순간 의아한 말을 툭 전지는 서광걸이었다.

"네? 서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굿보이즈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했는데……."

"어차피 굿보이즈는 중국에서 본격 활동을 하려던 그룹 아닙니까? 저희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크게 개의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 중국 활동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얘기네요."

"골치를 썩이던 에디도 이제는 본인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걸 잘 알겠죠. 그렇게 되면 굿보이즈가 당장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앞으로는 심기일전해서 더 준비된 모습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서광걸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중이었다. 굿보이즈의 악재는 그룹을 더 확실히 통제하려는 수단이 될 수도 있었고, 동시에 한강 엔터테인먼트의 인수 금액을 후려칠 명분이 될 수도 있었다.

반면 박병태의 인상을 구겨졌다.

"그나저나 박강준 보험조사관이 붙었다고요?"

"네, 역선택인지 뭔지…… 굿보이즈 멤버들이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걸 두고 보험사기로 얽으려고 협박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얘기가 오간 겁니까?"

서광걸은 박병태보다는 강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1억 원을 요구했습니다. 근데 이제는 다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에디의 동영상이 터져 버렸으니…… 다 소용없게 된 일이죠."

"박강준이 그렇게 만만한 인간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 그건 함정입니다."

"함정이라고요?"

박병태는 잠시 서광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서 대표님…… 혹시 저 모르게 더 감추고 계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우민석 배우와 박강준이 만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둘이 만났다고요? 그럼…… 매니저인 성재가 알고 있었을 텐데……."

"매니저 없이 만났을 수도 있겠죠."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서광걸에게 딱히 반박하기도 애매했다.

"박 이사님, 이렇게 합시다……."

"뭘 말입니까?"

"이래저래 멤버들한테서 잡음이 많이 들려오는데 차라리 이 기회에 굿보이즈를 저희 화영컴퍼니에서 데려가는 게 어떨까 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날강도 같은 말이었다. 지난 5년간 박병태가 애를 써가며 키워 왔던 한강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그룹이었다. 그런 대표 그룹을 위기를 틈타 홀랑 먹으려는 서광걸이었다.

박병태는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서 대표님……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는 알겠는데…… 저희 소속 멤버들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아무리 많은 차이나머니를 쏟아붓는다고 해도요."

"하하! 박 이사님이 뭔가 오해를 하시는 거 같네요……."

서광걸은 인상을 구긴 박병태와는 대조적으로 여유 있게 웃었다.

"지금까지 저와 해 왔던 약속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느낌인데…… 지금 제 느낌이 틀린 건가요?"

"그럼요, 오해십니다. 전 박 이사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소속 연예인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저도 많이 배우고 있으니까요."

은연중에 박병태 이사가 소속 연예인들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방식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서광걸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500억 이하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인수를 미루신다면 저희로서도 다른 곳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박병태는 원하는 걸 얻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구석에 몰리게 된 박병태였다.

그는 사무실을 빠져나가면서 송성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송성재였다.

그제야 박병태는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 *

그날 저녁 화영컴퍼니 앞.

차량에 강준과 나란히 앉은 이는 한강 엔터테인먼트의 우민석 배우였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매니저의 배신을 확인하고자 했다.

"제 동영상을 촬영한 범인이 정말 성재라는 겁니까?"

"네, 제가 그 동영상을 송성재 씨 스마트폰에서 확보했으니까요."

"진짜…… 이 바닥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더니……,"

사람에게 실망한 우민석이 고개를 떨궜다. 형님과 동생 사이로 매니저와 꽤 친근해졌다고 생각했던 우민석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협박한 서광걸과 모종의 관계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불륜 동영상을 찍은 게 매니저였다니……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 한 것이었다.

"저희는 이번 조사를 시작하고부터 줄곧 서광걸을 주목해 왔습니다. 근데 최근에 한 가지 재밌는 게 있더군요."

"재미있는 거라면……?"

"송성재가 이곳에 주구장창 오가는 걸 한강 엔터테인먼트 박병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성재가 박병태 이사까지 엿 먹이고 있다는 건가요…?"

"아마도 그런 거 같습니다. 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송성재 씨가 오네요."

"와…… 저런 뻔뻔한 새끼……!"

순간 말을 잇지 못하는 우민석이었다. 그는 당장 차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배우님! 저와 처음부터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제 조사업무를 방해하지 않으신다고요. 지금 송성재에게 따지시게 되면 서광걸을 잡으려는 제 계획이 물거품이 될 겁니다."

"아오…… 진짜…… 어이가 없네요.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허망해하는 우민석이었다.

강준은 노트북을 열고 을지로 사무실의 김준혁이 전송해 주는 화면을 우민석에게 보여 줬다. 화영컴퍼니의 내부 CCTV 화면을 실시간으로 해킹한 영상이었다.

송성재는 서광걸과 화기애애하게 면담 중이었다.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둘이 작당 모의를 하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는 화면이었다.

"조사관님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정말 서광걸을 건드릴 생각이십니까?"

"저들은 일종의 문화침략을 하는 겁니다. 서서히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침투해 자기 입맛대로 콘텐츠를 제작하려고 하겠죠. 전 초장에 서광걸 같은 앞잡이들을 제거할 겁니다."

"조사관님 생각대로 됐으면 좋겠네요……."

우민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회의적인 답을 했다. 그로서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이긴 했지만 화영컴퍼니의 영화에 출연하는 개런티가 그리 작지는 않았다.

서광걸이 자신의 매니저를 시켜 불륜 동영상으로 협박하지만 않았어도 우민석은 화영컴퍼니의 영화에 자진해서 출연하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배우님, 이걸 한번 보시죠."

강준이 건넨 건 ‘언더커버 인 상하이’의 수정 시나리오 대본이었다. 그 대본은 시나리오에 참여한 작가가 공동제작사 대표인 JIN필름 남궁진에게 건넨 것이었다.

"거기서 306페이지를 넘기시면 우민석 배우님이 하려고 했던 배역이 나올 겁니다."

"끝나갈 때쯤이니까 둘이 악당들 물리치고 개선할 때인데…… 어디 보자……."

대본을 보던 우민석은 점점 얼굴이 굳어 갔다.

"이건 원래 대본과는 완전히 틀린 건데……."

"오성홍기를 왜 배우님이 들고 있어야 하는 거죠? 한국의 전직 첩보요원인데 중국의 국기를 휘둘러야 할 이유는 없는 거 아닙니까?"

"……."

"물론 개연성은 있습니다. 중국의 정보부가 막판에 주인공 둘에게 힘을 실어 줬거든요. 그래서 감명한 거겠죠. 아메리카를 물리친 중국의 위대함에 말입니다!"

"……젠장……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군……."

쓴웃음을 짓는 우민석이었다. 그는 이내 강준의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서광걸과 붙어먹은 송성재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이고…… 성재야…… 너 줄 잘못 섰다…… 이제 너 망했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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