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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화. 엔터사 배상책임보험 (3) (238/250)

238화. 엔터사 배상책임보험 (3)

"얼마 전에 시중의 보험사 5곳에서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셨더군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이 업계를 잘 모르시나 본데…… 연예인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팬들이 괜한 헛소문을 퍼트려도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는 게 엔터테인먼트 업계입니다. 더군다나 아이돌이라면…… 아휴 말도 마시죠."

박병태 이사는 손을 내저으면서 장황하게 말을 이어 나가려 했다. 하지만 강준의 시선은 대표인 조민국에게 꽂혀 있었다.

그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듯 눈가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사실 조민국은 그간 박병태가 어떤 짓거리를 해 왔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었기 때문에 적당히 그의 만행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얼마 전에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에디 말입니다."

"에디요……? 에디가 왜요? 굿보이즈가 요즘 중국 활동한다고 한창 바빠서…… 정신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직접 보험 가입을 신청하지 않으셨다는 겁니까?"

"그런 일들은 실무진에서 하는 거지 경영진이 어떻게 일일이 다 신경을 쓰나요? 참나……!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한강 엔터테인먼트는 이렇게 한가하게 보험사기 조사나 받고 있을 그럴 상황이 못 됩니다!"

"들으신 바와 같이…… 한류다 뭐다 저희를 둘러싼 외부환경이 무척 급박하게 바뀌어서요…… 우리도 따라가기 버거운 상황이고요."

듣고만 있던 조민국 대표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죠! 아이돌 그룹이라는 게 워낙 극성팬에 시달리다 보니까 우리도 최소한의 안전책으로 보험 가입을 해 두는 것뿐입니다."

강준은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조근조근 질문을 이어갔다.

"근데 조 대표님, 에디가 마약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에디는 제가 직접 사생활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는데, 아무 문제도 없이 깨끗한 아이입니다! 그런 에디를 누가 모함합니까!"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박병태였다. 강준은 태연하게 태블릿 PC를 꺼내 그들 앞에 동영상을 하나 재생했다. 그 동영상은 에디가 클럽의 한 룸에서 뒹구는 장면이었다.

에디는 마약에 취한 듯 드러누워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마약으로 보이는 주사기와 약물이 놓여 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뭡니까?"

"아시다시피 한강 굿보이즈의 리더 에디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 구한 거냐고요!"

"제가 이걸 어떻게 구했겠습니까?"

강준의 말에 박병태 이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에디의 동영상은 우민석의 매니저인 송성재가 찍은 것이었다.

"송성재 씨 휴대폰에 이 동영상이 있더군요. 근데 촬영 날짜가 에디 씨가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날짜보다 앞이더라고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송성재는 박병태 이사가 연예계 밑바닥에서 이런저런 반사기 행각을 벌이고 다닐 때부터 데리고 다니던 인물이었다. 박병태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송성재가 자신을 배신한다면 파장이 클 터였기 때문이었다.

"성재가 이걸 당신한테 넘긴 거예요……?"

강준은 송성재와 동영상 하나당 천만 원에 거래하기로 했다. 그래야 송성재가 감춘 동영상들을 모두 끄집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거래를 박병태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제가 일방적으로 확인한 겁니다. 송성재 씨는 박 이사님을 보호하려고 하더군요."

"……그 자식이 정말 그랬습니까……?"

박병태의 눈빛에서는 일말의 희망이 되살아났다.

"네, 송성재 씨는 분명 제게 비협조적이었습니다."

강준은 굳이 박병태 같은 양아치에게 모든 걸 정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양아치들에게는 그들과 똑같은 수법으로 갚아준다!’

"그…… 그럼, 저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일단 이 건은 역선택 보험사기에 해당합니다. 엄연히 보험계약자의 정보를 숨기고 보험상품에 가입한 거니까요."

"소…… 소송하실 겁니까?"

"소송이 아니라 이 사안은 형사고발 건입니다."

단호한 강준의 말에 표정이 얼어붙는 조민국 대표였다. 그는 옆의 박병태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위기의 순간에 항상 책임을 회피하는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근데 조사관님…… 그건 엄연히 매니저가 촬영한 거고…… 우리 경영진으로서는 그걸 일일이 확인할 길은 없는 거죠……."

"그건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죠. 하지만 말입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말끝을 흐리는 강준을 보며 침을 꿀꺽 넘기는 둘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박병태 이사님은 저와 얘기가 좀 통할 거 같은데요."

강준을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판단한 박병태가 느물거리는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냉정하게 말해 봅시다. 에디의 일탈을 까발려서 남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 한강 엔터테인먼트로서도 엄청난 손해지요. 그리고 더 나가면 한류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겁니다. 그건 국익을 해치는 행위지요!"

국익을 운운하면서까지 강준을 회유하려는 박병태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장! 그 정도면 합리적인 선이겠지요?"

"……1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왜요?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죠?"

"하…… 하하…… 물론입니다. 근데 저희도 법인이라 개인회사가 아닙니다. 이사진들과 충분한 논의를……."

"그럼, 이사진들도 에디의 마약 복용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알아챈 박병태가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아뇨! 절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저도 모르고 있었다니까요."

"그럼 돈은…… 어떻게 전달해드리면 되나요……?"

옆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조민국이 체념한 듯 먼저 돈을 주겠다며 물었다. 그 말에 박병태가 낭패라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건 차차 협의해 나가시죠. 저도 금감원에서 의뢰받은 사건입니다. 보고서 쓸 정도의 조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러셔야죠. 박 이사님, 협조해 드리세요."

"……조 대표, 이게 단순 협조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잖아요."

둘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듯 박병태가 조 대표의 말을 막아섰다. 박병태는 계속 시간을 끌며 잔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는데 그걸 조 대표가 딱 끊어 버린 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분 생각 정리되면 다시 연락해 주시죠. 아! 그리고 우민석 배우님이 출연하는 상하이 첩보영화는 보류해 주시고요."

"네? 여기서 갑자기 우민석 배우 얘기는 왜 나오는 겁니까? 그리고 ‘언더커버 인 상하이’는 이미 캐스팅이 완료된 상태예요!"

"그냥 제가 볼 때는 그 영화에 우민석 배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서요."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어쨌든 전 그 영화에 우민석 배우님이 출연하는 건 반대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아시겠죠? 전 이만 바빠서 일어나보겠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보여 주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런 강준의 일방적인 태도에도 박병태는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항상 해왔던 방식대로 당하고 있었다.

남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비열한 방식으로 말이었다.

* * *

에디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될 때까지 숙소인 펜트하우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신 덕택에 아직 숙취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몇 번의 전화벨이 울려도 에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매니저거나 아니면 박병태 이사일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펜트하우스에 머물고는 있지만, 그곳은 그의 소유가 아니었다.

지난 5년간 허울 좋게 굴렀지만, 수중에 남은 돈은 하나도 없었다. 수익 정산은 선투자를 깐다는 빌미로 단 한 번도 정산되지 않았다. 당연히 입금통장의 잔액은 제로였다.

마약에 빠져든 건 전속계약이 연장된다는 통보를 받은 후부터였다. 일방적인 전속계약!

전보다는 계약 조건이 나아졌지만, 이전의 5년간을 보상받을 만큼은 아니었다.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굿보이즈의 멤버인 택환이었다.

"형!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지금 이사님이 형 찾고 난리 났어요. 연락 안 된다고 저한테 가 보라고 해서 온 거예요!"

"박병태 그 새끼가 너한테 또 지랄하디?"

"형…… 인터넷 못 봤어요? 지금 큰일 났어요!"

"또 왜? 뭐가 큰일 났다는 거야?"

"우리 그날…… 헤라 간 날요…… 그날 동영상이 돌고 있어요!"

"뭐? 무슨 동영상?"

에디는 급하게 스마트폰을 찾아 뉴스 기사를 검색했다. 이미 인터넷상에는 에디의 이름이 실시간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순간 남아있던 술기운이 확 달아난 그였다.

"이거 박 이사 짓이지……?"

"몰라요 나도…… 시발! 어떤 새끼인지 지금 그게 중요해요? 형, 우린 지금 좆됐다고요!"

에디는 스마트폰의 기사를 손으로 넘겼다.

[굿보이즈의 리더 에디, 마약 파티 적나라한 현장이 공개됐다!]

[경찰, 에디의 마약 수사 건을 본격 조사할 예정.]

[한류 바람, 굿보이즈의 일탈로 한풀 꺾이나?]

하나같이 아찔한 기사들이었다. 지난 5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형, 그러지 말고 우리 경찰에다가 먼저 자수하는 거 어때요?"

"뭐? 자수?"

"네…… 실은 광역수사대 경찰이 아침에 연락이 왔더라고요. 마약 입수 경위를 불면 구속은 면할 수 있다고……."

"언제 연락을 받았는데?"

"……아침에…… 기사 터지기 몇 시간 전에……."

여리여리하게 생긴 택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해!"

"형이 전화를 안 받았잖아요……? 술 취해서 그대로 뻗은 거 아니에요?"

"전화번호 줘봐."

"무슨 전화번호요?"

"아침에 연락을 받았다며? 그 경찰!"

택환은 손에 쥔 스마트폰을 만지며 망설였다.

"에디 형, 그래도 박병태 이사한테 먼저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뭔가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넌 그 새끼 아직도 모르겠냐? 그 동영상 누가 찍었을 거 같아?"

"누가 찍었는데요……?"

"송성재 매니저! 박병태가 시킨 거고…… 우릴 재계약으로 묶어두려고 수를 쓴 거야. 넌 아직 재계약 기간이 남아서 내가 아직 말을 안 해 준 거고……."

"네? 그게 정말이에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변한 택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5년간의 노력이 수포가 된 허무함과 믿었던 소속사에 철저하게 당했다는 배신감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그때, 에디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형, 누구야……?"

낯선 번호였다. 경찰일 지도 몰랐다.

"모르겠어……."

하지만 에디는 체념한 듯 수신 버튼을 눌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약 범죄로 처벌을 받더라도 차라리 모든 걸 말해 버리고 싶었다. 5년간 자신이 당했던 고통과 분노, 억울함을 말이었다.

"……누구세요?"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지금 상당히 당황스러우시죠?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금까지 에디 씨가 당해 왔던 걸 그대로 털어놓으시면 됩니다. 회초리는 맞겠지만, 세상에 털어놓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겁니다.

에디의 옆에 있던 택환이 문자로 온 웹 문서를 그에게 보여줬다. 시사뉴스닷컴에서 낸 한강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기사였다.

―한류를 견인하던 굿보이즈의 실상, 소속사로부터 수년간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 드러나…….

에디는 이 모든 것들이 하루 동안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진실을 말하는 것 외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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