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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항공사고 보험 (6) (234/250)

234화. 항공사고 보험 (6)

며칠 후 국토교통부.

장관급 회의에 참석한 손미영은 반대편의 보어사 한국지사장을 흘깃 노려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호적인 관계의 둘이었다.

하지만 대형 사고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보어 지사장님 말씀하세요."

"네, 이번 사고가 자동비행제어 시스템의 오류라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죠?"

국토교통부 장관은 긴장한 기색으로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장관은 이번 비행사고를 어떻게 수습할지 이미 다 정해 놓은 상태였다. 다만, 항공사인 소프트퍼시픽이 얼마나 양보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우리 보어에서는 각 항공사의 조종사들에 대해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왔습니다. 하지만 소프트퍼시픽에서는 그 훈련 프로그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됐다는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하면서는 분명 비상 상황 발생 시 대처요령을 비행교범에 기재해 뒀는데…… 조종사들이 그걸 본지는 모르겠군요……."

노골적인 책임 떠넘기기였다. 이미 인도네시아 상공에서 발생한 비상착륙 사태가 동일 문제로 인해 발생했음에도 보어사는 자사 기체에 대한 결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전무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다 듣고 그다음에 반박하시죠. 이 회의는 그냥 요식행위라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소송까지 가야 합니다."

김영진 전무와 귓속말을 나누는 손미영은 이제 전과는 딴판으로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럼 보어 측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겁니까?"

"기체 결함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사고로 인해 사망한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고객사인 소프트퍼시픽과 함께 보상 절차를 논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상 절차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

장관이 제일 궁금해하는 사안이었다.

"그 부분에 대한 논의를 소프트퍼시픽 측에서 거부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저희 보어는 지속적으로……."

"잠깐만요!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게 있네요."

"네, 소프트퍼시픽 측 발언하세요."

회의장의 시선이 일제히 대화에 끼어든 손미영에게 집중됐다.

"이번 사고가 단순히 피해보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항공사 측으로서도 금액적인 보상은 1인당 10억 원을 책정하기는 했습니다만……."

"1인당 10억 원이요?"

"네, 일단 잠정적으로 그렇게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피해보상과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건 완전 다른 문제거든요. 보어사 측에서 발뺌하는 걸 우리 소프트퍼시픽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고요."

손미영의 말에 맞은편의 보어사 지사장은 발끈하며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저희도 사고 원인 규명에 대해서는 충분히 협조할 것입니다. 하지만 억측으로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지금 이 자리는 사고를 수습하러 모인 자리이지 싸우러 나온 자리가 아닙니다!"

장관은 책상을 탁탁 치며 좌중의 소란을 중재하려 했다. 그리고 그때 국회 대표로 나온 민한당 지형준 의원이 손미영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슬쩍 발언권을 가져갔다.

"입법부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국민은 이번 사안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명쾌하게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파장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은근슬쩍 소프트퍼시픽의 편을 드는 지형준이었다. 손미영은 그를 바라보고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먹은 게 있으면 먹은 값은 해야지!’

그간 소프트퍼시픽으로부터 상당한 자금 지원을 받아 왔던 지형준이었다. 그는 다국적기업인 보어와 맞서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미영을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지 의원께서도 말씀을 한 부분이지만, 이번 사고는 아시아 최대의 첨단공항인 인천공항에서 일어난 사고예요. 관계부처로서 국토교통부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고요…… 그래서 말인데 국회를 포함한 합동 조사단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김성환 지사장님 협조해 주실 거죠?"

장관이 하고자 하는 오늘의 용건이었다. 소프트퍼시픽으로부터는 만족할 만한 보상금을 얻어 냈으니 이제는 의혹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핑곗거리를 만들 차례였다.

"흐…… 흠흠…… 관계부처에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여우 같은 장관의 합동 조사단 제안에 김성환 지사장도 대놓고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

"그리고 장관님, 저희 쪽에서 제안할 이슈가 하나 있습니다!"

손미영이 자신만만하게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손 대표님, 말씀하시죠."

"이번 합동 조사단에 애초에 B636 기종의 기체결함을 주장했던 박강준 보험조사관을 참가시켰으면 합니다."

좌중이 싸늘해졌다. 특히 민한당의 지형준은 대놓고 인상을 구겼다.

"아…… 이번 합동 조사단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히고자 함입니다. 근데 괜한 음모론이나 퍼트리는 사람을 조사단에 포함하자고요? 정신 나간 소리 아닙니까?"

지형준은 눈빛으로 왜 사전에 합의가 안 된 말을 하냐는 듯 손미영을 바라봤다.

"유튜브라는 걸로 떠들어대서 그렇지 박강준 소장이 제대로 된 사람은 맞죠. 여기 이게 뭔지 아세요?"

손미영은 손에 쥔 서류뭉치를 팔락팔락 흔들었다. 영문으로 된 보고서였다.

"그……그게 뭔데요?"

"영국 로이즈 재보험에서 작성한 보어 B636 기종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박강준 보험조사관이 수집한 정보도 이 보고서에 들어 있고요. 어때요? 이래도 단순 음모론인가요?"

"허…… 허허…… 참! 얼마 전까지는 본인이 음모론이라고 몰아세우시지 않았나……."

지형준은 할 말이 없게 되자 본인이 빠져나가려는 듯 손미영에게 화살을 돌리는 말을 던지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진짜 얼굴이 굳은 건 보어사 김성환 지사장이었다. 한국 정부의 합동 조사단이라고 해봐야 별로 무서울 게 없었다. 이미 적당히 하기로 관계부처의 실무자들과 물밑에서 공감대를 형성해 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공신력을 가진 로이즈 재보험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분명 보상 규모와 범위에 따라 첨예한 공방이 벌어질 터였다.

더군다나 보어사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B636 기종의 결함 문제가 공론화된다면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작년에 문제가 됐던 인도네시아 항공사와의 분쟁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본인의 지사장 자리도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장관님, 합동 조사단에 보험사 측이 합류한다는 건 재고해 주십시오. 사익에 따라 진실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소프트퍼시픽 김영진 전무가 나섰다.

"장관님, 보험사야말로 이번 일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박강준 보험조사관은 로이즈로부터 소프트퍼시픽의 재보험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추락사고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래도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혹시나 모를 문제로부터 면피하려는 장관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때 회의실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예요? 무슨 일입니까?"

장관은 비서들에게 물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누군가가 회의장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는 사고기를 조종했던 박정수 기장과 그의 군 선배 유정국 차장이었다.

"사고기를 조종했던 조종사입니다!"

"……흠…… 괜찮으시겠습니까?"

장관은 소프트퍼시픽의 손미영을 향해 정중히 물었다. 손미영은 옆자리에 있던 김영진 전무와 속삭이며 심각하게 대화했다. 하지만 이내 입구의 문이 벌컥 열리며 유정국 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프트퍼시픽 유정국 차장입니다!"

"유 차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여기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알고요!"

손미영이 신경질적인 말투로 외쳤다. 하지만 이미 소프트퍼시픽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유정국 차장은 거리낄 게 없었다.

"네, 잘 알고 왔습니다! 사고 당사자만 쏙 빼고 높으신 분들끼리 모인 자리가 아닙니까?"

"당장 나가지 못해요!"

"아뇨.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먼저 보어 측에 묻겠습니다. 저희가 정해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보어에서는 단지 권고사항으로만 놔둔 사항이었죠? 어차피 각 항공사에서 지키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면피용으로 놔둔 거겠죠."

말을 마친 유 차장은 사고 비행기를 조종했던 박정수 기장을 돌아봤다. 그리고 박 기장이 말을 이어받았다.

"비상 교범에는 소프트웨어 오류에 대한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았더군요. 자동비행제어 시스템을 수동으로 바꾼 이후에도 조종간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기장님이 제대로 시스템 전환을 하지 못했기 때문 아닙니까?"

"아뇨. 분명 수동 상태에서도 항공기 기수가 계속 아래를 향했습니다. 혹시 새로 장착된 엔진 때문입니까?"

사선을 넘어온 박 기장의 말에는 울림이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박 기장의 입에 주목했다.

"엔진이 문제였다고요?"

한쪽 눈썹을 끌어올린 장관이 물었다.

"네, B636기종은 기존의 기체를 개조하면서 기존보다 더 큰 엔진이 달았습니다. 근데 문제는 공간 부족으로 날개 위쪽을 침범하면서 장착했다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이륙 시에 기수가 들려서 양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죠."

"일부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보어사 김성환 지사장이 발끈하며 말을 끊었다. 하지만 독기가 오른 박정수 기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제 생각엔 새로 업그레이드가 됐다던 자동비행제어 시스템이 바로 이 기수가 들리는 문제를 강제로 조절하려다 문제가 생긴 거 같습니다."

"기장님 의견 존중합니다…… 존중하고요…… 하지만 장관님! 지금 박정수 기장은 사고로 인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단지 기장의 추측으로 사고 원인을 특정 지을 수는 없는 겁니다!"

어물쩍 상황을 넘기려는 보어사 지사장이었다. 하지만 핵심 관계자들이 모인 장관급 회의였다. 국토교통부에서도 제조사인 보어처럼 어물쩍 넘어갔다간 면피는커녕 큰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사고 기체를 직접 몰았던 기장의 의견입니다. 살펴볼 필요가 있죠. 박정수 기장님?"

"네…… 장관님."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다치셨다고 들었는데요."

"사망자가 나왔는데 이 정도 부상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장관님!"

"네, 듣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는 분명 B636 기종의 문제입니다. 저희 조종사들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 조종 미숙이나 교범 미숙지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요."

장관과 국토교통부의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 기장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 순간 기회를 포착한 민한당 지형준 의원이 숟가락을 얹었다.

"우리 민한당에서도 이번 합동 조사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국익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국익이요!"

정치 문제로 비화시키려는 지형준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소프트퍼시픽의 손미영 대표와 김 전무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소프트퍼시픽에 유리한 분위기를 깨는 유 차장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가득 채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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