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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항공사고 보험 (3) (231/250)

231화. 항공사고 보험 (3)

"제가 미팅 끝나시면 전화를 드릴게요. 아무래도 구 이사님이 유 차장님을 피하는 거 같거든요……."

우롱차를 마시던 유정국 차장이 의아한 눈으로 송지희를 올려다봤다.

"자네는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다면서 그런 것까지 파악했나……?"

"일주일 내내 유 차장님께서 구 이사님을 찾으셨잖아요? 물론 한 번도 연결은 안 됐지만요."

"갓 들어온 신입사원한테 이런 모습 보이는 게 민망하군."

시선을 돌리며 한마디 하는 유 차장이었다. 그는 공군 장교 출신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구본성 이사처럼 경영진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 아닌 걸 맞다고 할 자신은 없었다.

특히, 항공기와 운항에 관련해서는 말이었다.

"제가 입사해서 요 일주일 동안 항공기에 관해 공부를 좀 했었거든요."

"그래? 무슨 공부를 했었는데?"

유 차장은 호기심이 인다는 듯 한쪽 눈썹을 올리며 되물었다.

"국내 LCC(저비용항공사)계열의 노후 기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죠. 우리 소프트퍼시픽에서 보유 중인 보어사의 B636 기종이 문제를 일으켰었거든요."

"자네 정체가 뭐야?"

"노후화에 따른 전력 시스템에 분명 하자가 있는 게 분명한데 정밀진단을 하지 않더라고요. 유 차장님은 왜 그런지 아세요?"

"……그야 구본성 이사가 중간에 막아서겠죠. 자기는 회사 비용만 줄이면 일 잘한다는 칭찬을 받을 테니까."

유정국 차장은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의심이 싹텄는지 송지희를 빤히 바라봤다.

"근데 자네는 진짜 정체가 뭐야……?"

"저 아직 입사서류도 제출 안 했으니 여기 직원이라고 볼 수는 없겠네요. 유정국 차장님을 만나고 싶은 분이 계세요."

송지희는 명함 한 장을 그에게 건넸다. 그건 강준의 보험조사관 명함이었다.

"이…… 이게 뭐야?"

"우린 소프트퍼시픽의 항공보험을 조사하고 있는 보험조사팀이에요. 소프트퍼시픽 본사에서 자사 항공기에 대한 안정성 문제를 고의로 은폐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요."

명함을 받아든 유정국 차장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프트퍼시픽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외부 조사업체에 그걸 토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자칫 잘못하면 배신자 프레임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알았네. 그럼 자네는 지금 위장 취업을 했다는 말인가?"

"내부 정보를 알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요. 문제가 되는 건 인정하죠. 하지만 유 차장님께서도 이대로 안정성 문제가 있는 항공기를 몰다가 사고가 나는 걸 원치는 않으시죠?"

송지희의 말에 남은 우롱차를 꿀꺽 마셔 버리는 유 차장이었다.

"나한테 한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지…… 근데 어쨌든 자네도 더는 문제가 되지 않도록 회사에 말하고……."

"물론이죠. 다음에 사무실에 오시면 절 볼 수 없을 거예요."

유 차장은 그 말 지키라는 듯 송지희를 한번 쏘아보고는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 * *

일주일 후. 영종도 횟집.

유정국 차장을 따라 입사한 기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소프트퍼시픽이 인천―제주노선에 이어 인천―홍콩노선을 취항하기 직전이었다.

"중령님, 전 진짜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박정수 기장은 작정했다는 듯 유 차장에게 입을 열었다. 함께 공군 부대에서 근무했던 선후배로 엮어진 사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박정수 기장은 일부러 유 차장의 군 계급이었던 중령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나도 자네들 심정 잘 알아…… 구본성 이사도 이번에는 본사하고 협의해서 정비체계 보강을 위한 대책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하니까 기다려 보자고."

"차장님! 이게 기다린다고 될 일입니까? 부실 항공기 타고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항공기 결함은 작은 거라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요!"

다른 후배 기장 한 명이 유 차장에게 격한 말투로 답답함을 토로했다.

"알아!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모여 있는 거 아니야?"

"중령님, 이제는 단체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김 기장…… 여긴 사회야. 군에 있을 때처럼 원칙대로 딱딱 돌아가지 않는다고…… 사회에서는 때로는 나빠 보이는 사람들하고도 타협하고 합의해서 끌고 가야 하는 거야. 유도리 있게."

유 차장이 뭘 걱정하는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소프트퍼시픽 내부에서는 이미 공군 출신 기장들과 민간 항공사 출신 기장들 사이에서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구본성 이사가 본인이 편하기 위해 일부러 사내 정치를 부추긴 결과인지도 몰랐다.

"중령님…… 얼마 전에 제가 항공노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뭐? 노조……?"

박정수가 언급한 항공노조라는 말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박 기장, 지금 자네 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는 알지만, 노조를 끌어들이는 순간…… 회사에 반기를 들고 싸울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목숨 내놓고 운항을 계속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중령님! 이건 안전 문제입니다. 적당히 타협할 문제가 아닙니다."

"구본성 이사가 횡포 부리는 것도 못 참습니다. 그리고 그걸 받아 주는 경영진도 문제고요. 솔직히 말해서…… 여기 아니면 일할 곳이 없답니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 차장이 주먹으로 꽉 쥐었다.

"다들 내 말 잘 들어! 내가 며칠 내로 구 이사 제치고 손 대표한테 직접 제언해 볼 테니까. 경거망동하지 말고 일단 기다리고 있어 봐."

"중령님, 항공노조하고도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봐…… 자네 정말 회사 그만 다니고 싶나? 노조를 만들더라도 내부에서 만들어야지. 단체 노조 끌고 왔다 간 진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될 수도 있어."

"……네, 알겠습니다."

유 차장의 평소 성품을 아는 기장들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을 위해 유 차장이 바른말을 해 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 * *

여의도 소프트퍼시픽 본사.

손미영은 자신을 찾아온 유정국 차장을 대표이사실로 들어오게 했다.

"대표님, 저희는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계세요. 실무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사님들도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아…… 그…그렇죠."

손미영은 자신을 입속에 혀처럼 따르는 임원들을 그대로 자리에 있게 했다. 그녀도 유정국 기장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공군 영관급 장교 출신의 자존심 센 기장. 본사 지침에 매번 반대만 하며 조직 문화를 해치고 있는 인간. 온갖 부정적인 얘기를 운항 부서 책임자인 구본성 이사로부터 전해 들은 후였다.

그런 그가 구 이사를 건너뛰고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거 보면 대충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부친의 가신들처럼 어쭙잖게 쓴소리를 하러 온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이사들을 자리에 있게 한 거였다.

똑! 똑!

"들어와요."

대표이사실 문을 연 유 차장은 그곳에 다른 임원들도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큼성큼 손미영을 향해 걸어왔다.

"무슨 일이시죠? 운항 책임자인 구본성 이사님도 언질이 전혀 없으셨는데?"

"SP1830편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습니다."

"결함요……? 무슨 결함요?"

"전력공급 장치가 불안합니다."

"지금까지 운항을 잘 해왔잖아요?"

"몇 번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내가 정전된 적도 두 번 있었고, 출입문 잠금장치에 문제가 생겨 운항 중에 출입문이 열릴 뻔한 적도 있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유 차장이었다.

"아! 저도 들었어요. 구 이사님이 보고를 하셨고, 저희도 익히 알고 있는 문제예요. 그래서 정비 부문 강화를 대대적으로 할 계획을 세운 거 아니에요? 근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당장 다음 달에 취항할 홍콩노선을 보류해 주십시오."

회사로서는 핵심 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노선을 중단해달라는 말에 손미영과 모인 임원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겨우 그런 문제 때문에 회사 발목을 잡으시려고요?"

손미영의 말투가 비꼬는 말투로 변했다.

"땜질식 정비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이대로 취항을 강행하다가는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하…… 그럼 본질적인 해결책은 뭔데요? 해결책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하러 오신 건가요? 게다가 공식적인 보고 절차도 없이 무작정 대표이사실로 쳐들어온 게 무슨 경우죠?"

날카로운 손미영의 목소리가 대표이사실을 가득 메웠다. 그 말을 들은 유 차장의 머릿속은 순간 멍해졌다. 항공기 기체 안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얘기가 먹힐 줄 알았다.

하지만 손미영으로부터 보고 체계니, 해결책을 가져오라느니 하는 말을 들은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일…… 일단 취항을 중단하고 항공기를 전부 일본 정비창으로 보내야 합니다."

"지금 일본으로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회사 망하게 하시려고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아니시죠?"

"국내 정비창에서 제대로 된 정비를 해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통보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담 항공기를 렌트해 준 JIL본사에 요청할 수밖에요."

본인은 옳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 차장이었지만, 이미 자신을 비웃고 있는 임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군 후배인 박정수 기장의 말이 옳았던 건지도 몰랐다. 소프트퍼시픽의 경영진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얘기 따위를 들을 생각은 없었었다.

"일단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저희가 지금 회의 중이었거든요."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다음부터는 조직 체계를 좀 지켜 주세요. 엄연히 운항 부서 책임자는 구 이사예요. 대표인 제가 괜히 임원들을 세워 둔 게 아니잖아요?"

유정국 차장은 답을 하는 대신 손미영에게 허리를 굽히고는 대표이사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경영진으로부터 매몰차게 거절당한 것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의 위치는 부실한 노후 기종을 버텨내며 운항해 줄 소모성 인력이었는지도 몰랐다. 경영진들로서는 대체할 조종사 인력은 다른 곳에서 끌어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유 차장과 같은 공군 출신의 베테랑 기장에는 못 미치더라도 말이었다.

유 차장은 본사 건물에서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여의도 공원 쪽으로 걸었다. 허탈하기 그지없는 심정이었다. 조종사로서 자신이 지켜온 신념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데려온 군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다들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들의 삶은 책임져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그의 발걸음을 더 무겁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던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주머니 지갑 속에서 송지희가 건넨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

어쩌면 그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유 차장은 본인이 회사를 떠날 결심을 굳혔다. 그런 마당에 자신이 해볼 수 있는 패는 모두 활용해 봐야 했다.

―네,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저……."

―말씀하시죠.

"소프트퍼시픽의 유정국입니다."

―용기 내서 전화를 주셨군요. 지금 어디십니까?

"여의도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가죠. 명함의 주소를 보니 을지로군요."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만나 뵙고 자세한 얘기 듣겠습니다.

유정국 차장은 탕비실에서 봤던 송지희의 얼굴을 떠올렸다.

[차장님, 어물쩍 넘어가는 항공보험은 비용적으로도 큰 손해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 귀결되기도 해요.]

유 차장은 불명예스럽게 살고 싶지 않았다. 민간 항공 조종사로서 그가 명예를 지키는 건 승객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유 차장은 힘차게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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