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음해 (6) (228/250)

228화. 음해 (6)

함지훈 기자의 반박 기사는 즉각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한뉴스에서는 김유정 말고 별도의 취재원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고, 해리츠 보험은 의혹 자체를 부정했다.

"박 소장님, 기자회견을 안 하시면 녹취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 유튜브에 올리자."

"유튜브요? 거기에 올려서 사람들이 많이 볼까요?"

"앞으로는 유튜브가 대세가 될 거다. 봐봐 내 말이 맞을지 틀릴지."

김준혁은 강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국내에서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동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것에 사람들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김 실장, 동영상 편집은 좀 할 줄 아냐?"

"글쎄요. 전에 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녹취록이니까…… 화면 검게 하고 자막만 넣으면 될 거다."

강준은 김준혁이 유튜브에 녹취록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자 연락해 오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답하지 않고, 유튜브 링크만 전달했다.

며칠 뒤. 을지로 보험조사사무소.

"소장님! 동영상 접속자가 10만 명입니다!"

"그래? 잘됐네. 그걸로 채널 하나 열어라."

"채널요?"

"그래, 유튜브에서 채널을 만들 수가 있어. 앞으로 우리 보험조사사무소도 그걸로 새로운 수익모델 하나 만들어 보자."

옆에 있던 송지희와 제이콥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냐는 듯 물었다.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어요?"

"소장님, 저희 조사 업무도 하기 바쁜데 무슨 영상 사업을 한다고요?"

강준은 당장 팀원들을 설득시키는 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직접 경험해 봐야 체감할 수 있는 거니까.

"광고 붙여서 돈 벌 수 있는데…… 좌우간! 우리도 이쯤 되면 슬슬 반격해 보는 거 어떠냐?"

"반격이요? 녹취록 나가고 박 소장님에 대한 의혹은 거의 해소됐어요. 여론도 해리츠 보험의 조작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고요."

"그걸로 끝나서 되겠냐?"

강준의 말에 송지희가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그간 의혹만 해소해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근데 괜히 언론과 보험업계의 큰 조직인 대한뉴스와 해리츠 보험을 더 건드렸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해리츠 보험을 뒤에서 그렇게 움직인 세력이 있잖아."

"혹시 소프트퍼시픽 얘기하시는 거예요?"

"어, 그냥 넘어갈 순 없지."

"근데 우리가 수집한 자료가 좀 빈약해서요…… 손미영이 보험협회 송정록 이사장을 만나긴 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해리츠 보험과 보험협회, 그리고 손미영의 연결고리를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그렇지. 근데 말이야. 이에는 이! 매운맛에는 매운맛이라는 얘기가 있지."

옆에서 듣고 있던 제이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닌가요?"

"그래, 말 잘했다! 제이콥. 당한 만큼 돌려주자는 그 말이지."

송지희가 의아한 눈으로 되물었다.

"어떻게요……?"

"우리가 수집한 자료를 일부만 보여 주고, 나머지 소설은 사람들이 쓰게 만드는 거지. 그렇게 되면 그걸 반박하는 것도 우리 몫이 아니라 그놈들의 몫이 될 테니까."

오랜만에 강준은 이를 보이며 씩 웃었다.

* * *

소프트퍼시픽 삼성동 본사.

손미영은 아침에 온 메일로 인해 기분이 매우 불쾌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즉각 임원들을 소집했다.

임원 구성은 손미영이 임명한 사람들과 그녀의 부친인 손주영 회장의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었다. 평소에 손미영의 경영 행보는 항상 손주영 회장 사람들에 의해 태클이 걸리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받은 메일 때문에 손미영은 그런 부친의 가신들을 존중해 줄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메일의 발신자는 홍콩의 투자자 스티브 탕이었다.

―최근에 한국에서 벌어진 보험업계에서의 의혹들로 인해 귀사의 경영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투자를 고려한 입장에서 여러 고심이 있었지만, 저희 드래곤 펀드는 최종적으로 귀사인 소프트퍼시픽에 투자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김 전무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대표님, 이걸 왜 저한테 물으시는 겁니까? 해리츠 보험에서 괜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우리한테까지 똥물이 튄 거 아닌가요?"

김 전무는 흰머리가 성성한 나이대의 임원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별안간 물벼락이 날라 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들 나한테 월급 받아 가면서 하는 일이 뭐야! 이제까지 드래곤 펀드랑 소통해 온 거 김 전무 당신 아니야!"

"하아……."

김 전무는 얼굴에 묻은 물을 털어 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손미영은 드래곤 펀드가 투자를 철회한 이유보다는 드래곤 펀드를 설득하지 못한 김 전무를 탓하는 거였다.

황당했지만, 스티브 탕을 끌어들인 건 김 전무 본인이기에 그는 이게 자신의 업보이거니 하며 입을 다물었다.

"당장 되돌려 놓으세요! 이번 주 안에 예정된 투자금 들어오지 않으면 옷 벗으시고요. 능력도 없는 주제에……."

손미영의 비아냥거림에 김 전무도 애써 참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방금 능력이라고 하셨습니까……?"

김 전무의 받아침에 모여 있던 임원들은 모두 얼음장처럼 굳었다. 손미영의 성격이 어떤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드래곤 펀드에서 투자받는 게 단순히 돈 때문인 줄 아십니까? 홍콩 인천 노선 개통되면…… 홍콩에서는 승객 안 태우고 올 겁니까! 그리고 드래곤 펀드도 손주영 회장님 얼굴 보고 지금까지 온 거지. 우리가 잘나서 그런 줄 아세요? 쯧!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능력 없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그러네……."

작정하고 달려드는 김 전무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이 손미영의 화를 더 돋웠다.

"나가!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또다시 물컵을 김 전무를 향해 내던지는 손미영이었다. 이번에는 정확히 물컵이 김 전무의 이마에 명중했다.

임원들은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손으로 입을 감싸 쥐었다. 김 전무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송정록 이사장은 병원협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엉뚱하게도 여론은 해리츠 보험과 모의한 병원협회로 분노의 불길이 옮겨붙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애초에 강준에 대한 음해공작을 시작했던 YD산부인과 이혜숙 원장의 말실수 때문이었다.

[내가 보험사 지시를 받아 움직인 거라고요? 우리 같은 의사들이 보험사에 눈치 볼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뭐요…… 의사면허 정지요? 그거 몇 년 지나면 금방 풀려요. 병원협회가 왜 있는데요? 그런 거 하라고 만든 데잖아요.]

기자 한 명이 끈질기게 취재한 끝에 이혜숙 원장과의 대화가 방송을 타고 나갔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권의식 쩌네. 의사면 범죄 저질러도 상관없는 거야?

―병원협회 진짜 이기주의 집단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개나 줘버려!

―저 병원장 의사면허 박탈해라. 안 그러면 형이 당장 내일 청와대 쳐들어간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저마다의 분노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런 분노를 잠재우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송정록 이사장은 본인이 그토록 바랬던 정계 입문은커녕 쥐고 있던 병원협회 이사장도 내놔야 했다.

해리츠 보험 본사.

"박 이사님, 정말 이러면 서운합니다. 솔직히 저야 협회 꼭두각시일 뿐이지 않습니까? 제가 총대를 메고 가는데 예우는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강준을 음해한 실질적인 기획자인 해리츠 보험 박성태 이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무슨 생각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솔직히 이번 일의 시작이 누굽니까?"

"그야…… 소프트퍼시픽의 손 대표죠. 성질머리만 더러워서는 한번 찍은 인간은 끝까지 찍어 내려는 강박증이 지금 이 사태까지 오게 만든 거고요……."

송정록 이사장은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손미영에게 달라붙어 한자리 얻으려고 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금 박강준이 유튜브인지 어디에서인지…… 이번 사건의 배후에 소프트퍼시픽이 있다고 난리를 쳐대고 있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그걸 가만히 놔둬서 되겠습니까? 그런 불순한 인간을!"

송정록 이사장은 불룩 튀어나온 배를 흔들어대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뭔가 자기 얘기가 통하는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사장님…… 때로는 뭘 포기할 때는 확실하게 포기하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네? 그건 저보고 지금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라는 겁니까?"

"아뇨. 이사장님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병원협회 이사장 자리는 활용해야죠."

박성태 이사는 송정록이 뭘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계 진출!

"지금쯤 손미영 대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겁니다."

"그 사람이야 어떻게든 무사하겠죠. 대한뉴스도 막아 줄 테고, 양당에서도 손미영이 쏟아부은 정치자금과 무관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송 이사장님은 원래 하시던 대로 잡고 있는 끈만 계속 잡고 가면 되는 겁니다. 대신 병원협회는 버려야겠죠."

송정록은 자신이 지난 10년간 지켜왔던 병원협회 이사장 자리를 버리라는 말에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버린다는 게 뭘 의미하시는 건지……."

"이혜숙 원장 버리시죠. 불길 셀 때 굳이 옆에 있어 봤자 불똥밖에 더 튀겠습니까?"

"하긴 그 불똥에 제가 먼저 죽을지도……."

"협회에서 제명시키고 이번 박강준에 대한 폭로 사건은 이혜숙 원장의 단독 행동으로 몰고 가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병원협회 회원사들의 역풍을 맞고 영원히 그들에게 배제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해리츠 보험에서는 그럼 저와 아무 연관도 없다고 공식 발표해 주셔야 합니다?"

"네, 장담하죠. 어려울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저도 윤태영 실장 녹취록 파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까요."

송정록은 뭔가를 깨달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기를 손에 쥐고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송정록이 나가자마자 박성태 이사는 곧바로 대한뉴스 장선우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해리츠 보험 박 이사입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그렇게 해 준답니까?

"송 이사장이 이혜숙 원장에게 독박을 잘 씌워줄 거 같습니다. 손미영 대표한테 잘 좀 설득해 주십시오. 당장에는 송 이사장을 달래고 어르고 가야죠."

―네, 다행이네요.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뭐, 새로운 소식 없습니까? 꼬리는 다 자른 거 같은데 아무래도 찜찜해서요."

박성태 이사는 강준이 계속해서 유튜브를 통해 폭로를 이어 가는 걸 막아 달라는 얘기였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해리츠 보험의 이미지는 한국에서 끝장이 날 위기였다.

―우리도 걸 수 있는 소송을 죄다 걸었으니 한번 지켜봐야죠. 아마 소송 대응하다가 세월 다 보낼 겁니다.

장선우 국장이나 박성태 이사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강준이 금융위기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두 번의 기회에서 선물옵션으로 벌어들인 돈은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강준은 이미 민훈 변호사를 고용해 민사소송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시작한 상태였다. 이제 점차 깎여 나가는 건 그들의 공고한 금권(金權)의 카르텔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