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음해 (3)
대한뉴스 광화문 본사.
조용호 회장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양쪽에 앉은 사람을 번갈아 봤다. 한 명은 민한당의 중진의원으로 떠오른 지형준, 그리고 반대편에는 줄곧 정치권에 날을 세워왔던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였다.
"서로 인사들 해요. 잘 알고 있죠?"
"함 기자님도 이제 슬슬 정치권으로 넘어오셔야죠."
지형준은 능글맞게 웃으며 먼저 함지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실 함지훈은 그 자리가 꽤 불편했다. 조용호 회장이 민한당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 의원님이 대한뉴스 조 회장님과도 연결고리가 있으셨다니 의외네요."
"정치인이 적을 둬서야 쓰나요? 한승일 의원처럼 전 그렇게 일차원적이지 않습니다. 하하!"
지형준은 태연하게 예전 자신과 연남 시장 자리를 두고 맞붙었던 한승일을 언급했다.
"아직 그때 선거에서 지셨던 걸 마음에 두고 계시나 봅니다."
"억울해서요.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에게 지다니…… 그렇다고 유권자들을 원망할 수도 없고. 하하! 뭐 어쩌겠어요? 이렇게 씹고 다니는 수밖에."
솔직한 건지 아니면 남을 떠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지형준이었다. 조 회장이 내심 당황하는 함지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함지훈 기자, 내가 뭐라 그랬어요? 기다리고 있으면 분명히 기회가 온다고 했죠? 이제 지 의원님이 함 기자를 당 대변인 자리에 무사히 안착시켜 줄 겁니다."
"조 회장님께 제 입으로 요청한 적은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직 날이 선 함지훈 기자였다. 그가 대한뉴스의 조 회장과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여권인 민한당으로 가길 원했던 함 기자였지만, 정작 민한당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이미 정치권으로 입문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함지훈은 내심 초조했다. 어차피 정계 입문을 하려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야당 성향의 언론사주였던 조용호 회장이 자신에게 연락해 온 거였다.
[함 기자님의 정치 비전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그 말은 자신들이 정치권에 한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대한당 쪽으로 생각이 없어 거절했지만, 재차 계속되는 요청에 조 회장을 만나 볼 수밖에 없었었다.
하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의뭉스럽게 자신을 떠 보려는 조용호 회장의 태도에 함지훈은 점점 지쳐 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마련된 자리였다.
"제가 알기로는 박강준 보험조사관과 친분이 있는 걸로 압니다만…… 맞나요?"
"네, 한승일 시장과 그의 사위 리안그룹 최진태 회장의 정경유착 사건 때도 함께했었습니다."
"사실 우리 민한당 쪽에서도 박강준 씨에게 공천을 약속했던 적이 있습니다."
"네? 공천을 말입니까?"
지형준 의원은 은근슬쩍 함지훈을 자극했다. 아직 그에게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일개 보험조사관인 강준에게는 입당을 전제로 시작부터 국회의원 공천을 약속했다고 말이었다.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구를 말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더군요."
"그랬군요……."
넌지시 함지훈을 바라보며 지 의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솔직히 좀 불쾌했습니다. 너무 자기 잘난 맛에 설쳐댄다고 해야 할까요? 금감원에서부터 병원협회와 타 보험사, 그리고 정치권에까지 박강준 그 사람과 척진 사람이 꽤 되더라고요."
"그건 오해입니다. 아무래도 직업적으로 민감한 구석을 건드리다 보니 박 소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로 적을 만들거나 할 사람은 아니죠."
함지훈은 지금 이 자리에서 왜 강준에 관한 얘기가 튀어나오는 건지 의아했다.
"전 함 기자님이 정치에 입문하신다면 박강준 씨와는 거리를 두기를 원합니다. 그건 여기 계신 조 회장님도 같은 생각이시고요."
조용호 회장은 지형준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 난 듯 호응했다.
"그리고 제가 제보를 하나 받은 게 있는데, 박강준이 뇌물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이죠? 마치 본인이 정의 구현이라도 할 것처럼 설치고 다니는 사람이 뒷구멍으로 그랬다는 게요……."
"조 회장님, 그런 걸 내로남불이라고 하나요? 쯧쯧!"
지 의원이 내뱉은 내로남불이라는 말에 함지훈은 혼란을 느꼈다. 그가 아는 박강준은 절대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박강준은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돈도 남들에게 아쉽지 않을 만큼 많은 걸로 압니다."
"글쎄요……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를 일이죠. 솔직히 직원들까지 먹여 살릴 만큼 민간 보험조사가 돈 되는 일은 아니잖습니까?"
조용호 회장은 함지훈을 바라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박강준의 비리 건을 함 기자님이 한번 취재해보는 건 어떤가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우리 민한당으로서도 나름의 검증과정이 필요하던 참이었고요."
둘이 이미 말을 맞춘 듯이 함 기자를 압박했다. 기자로서의 책무. 함지훈은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하죠. 제가 박 소장을 취재해 보겠습니다."
* * *
일주일 후. 청주
김유정을 인터뷰한 함지훈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다른 언니들은 돈을 안 줬으니까 벌금형을 받았죠. 전 당시에 돈을 건넸었고요."
"그러니까 지금 김유정 씨는 박강준 보험조사관에게 분명 돈 봉투를 건넸다는 겁니까?"
"……네."
망설이는 표정이긴 했지만, 김유정은 분명 강준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말했다. 함지훈은 그 말을 코앞에서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돈 봉투에는 얼마나 넣으셨습니까?"
"천만 원이요……."
"겨우 천만 원이요?"
함지훈은 설마 그 정도 돈에 강준이 흔들렸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받았겠죠. 솔직히 서민들이 그렇잖아요…… 소송 비용 몇백만 원 깨지면서 어떻게 될지 몰라 조마조마하느니 그냥 천만 원 내고 애초부터 소송을 안 당하는 게 낫죠."
김유정은 말할수록 자신의 거짓말이 더 탄탄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진짜 자신이 강준에게 돈을 건넸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었다.
"혹시 그때 돈을 건넸다는 걸 증명할 만한 게 있나요? 오간 문자 내용이라든지 아니면 돈을 건넨 장소라든지 그런 것들이요."
"……문자는 없고…… 장소는……."
옛날 일을 떠올리려 애쓰는 김유정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함지훈은 그녀의 말에 의심이 들었다. 천만 원의 돈을 건넸다면 그 장소를 바로 떠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남역이요…… 대형 서점 근처 카페였으니까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
"몇 번 만났죠?"
"글쎄요. 한 세 번 만났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나십니까?"
"네, 꽤 오래전 일이니까요."
김유정은 팔짱을 낀 채 방어적으로 답했다. 함지훈은 기사를 쓰기 전에 쌍방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도무지 김유정의 일방적인 말만 가지고 기사를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보험사기로 고소를 당했었던 콜센터의 다른 직원분들도 돈을 건넨 건가요?"
"저도 몰라요. 그건 기자님이 직접 확인해 보셔야겠죠?"
김유정은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한발을 뺐다.
"기사는 언제쯤 나가는 건가요?"
"아무래도 반대편 입장도 들어봐야 하니까요. 아직 언제라고 콕 짚어서 확답을 드릴 순 없습니다."
"……말이 다르네요…… 윤 실장님은 기자님이 알아서 내주신다고 했는데…."
함 기자는 해리츠 보험의 윤태영 실장을 떠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함 기자님, 이번 기회에 물 흐리는 인간들은 싹 다 퇴출해야 합니다. 수사해야 할 범죄자에게 뇌물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나요? 괜히 그런 민간 보험조사관들 때문에 보험업계 전체가 더러워지는 겁니다.]
그때, 함 기자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강준을 대놓고 모욕하는 윤태영 실장의 말에 부글부글 끓었다.
함 기자는 적어도 김유정을 직접 만나 보고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기사는 기자인 제 이름 걸고 나가는 문제라서요. 저희 시사뉴스닷컴 데스크의 컨펌도 필요한 일이고요."
"네…… 절차가 있으시겠죠."
김유정은 자신에게 크게 호응하지 않는 함 기자에게 실망한 눈초리를 보였다. 그건 어쩌면 불안과 초조함이 뒤섞인 눈빛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럼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인터뷰한 카페를 나온 함 기자는 곧바로 걸려온 대한뉴스 보도국장 장선우의 전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함지훈입니다."
―인터뷰 잘하셨습니까?
"김유정 씨에 대해서 의문점이 좀 있습니다. 돈을 건넨 정황이 불명확하고…… 본인의 기억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얘기하지 못하네요."
―그런 게 무슨 상관입니까? 김유정이 자기 입으로 박강준에게 돈을 건넸다는 게 중요한 거죠. 설마 함 기자님 지금 박강준과의 친분 때문에 망설이시는 겁니까?
"친분 때문이 아니라 정확하지 않은 팩트라서 망설이는 겁니다!"
통화음 너머로 장선우의 조소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조 회장님께서 함 기자님께 이번 일을 맡긴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조 회장님은 공정성에 방점을 두신 겁니다. 진영에 따라 편이 나뉘는 사람을 어찌 믿고 정치권에 보내겠습니까?
장선우의 말에 함지훈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개새끼들! 내 손에 더러운 흙탕물을 묻혀서 증명해 보이라는 거 아니야!"
조용호 회장은 꽃놀이패를 들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함지훈이 무리하게 강준을 친다면 공범이 된 거니 자기편을 하나 늘리는 거였고, 그걸 거부한다면 사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로 함지훈과 박강준 둘 다를 한꺼번에 매도하면 그만이었다.
함지훈은 김유정을 인터뷰한 후에야 그런 조 회장의 의도를 파악했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문 함지훈은 다시 스마트폰을 켜고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박 소장님, 저 함지훈입니다."
―네, 김유정 씨 잘 만나 보셨습니까?
함 기자는 강준이 자신의 행적을 알고 있다는 데 사뭇 놀랐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함 기자님이 얼마나 부담을 느끼고 계시는지 압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뇌물을 받으셨습니까?"
―저 돈 많은 거 아시잖습니까? 그런 푼 돈 걷어서 제가 뭐 하려고요.
"제가 만약 기사를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언론사에서 김유정 씨 인터뷰를 낼 겁니다. 대비는 하는 중입니까?"
―그럼요, 그래서 지금 태국까지 나와서 이 난리인걸요.
"네? 태국이라고요? 거긴…… 왜?"
본인에 대한 비난 기사가 쏟아지는 와중에 해외에 가 있는 강준이 이해되지 않는 함지훈이었다.
"김유정 남편이 여기 와 있습니다. 해리츠 보험에서 받은 돈을 들고 여기로 와 있네요. 정작 김유정은 내버려두고요……."
모든 일에는 구멍이 있는 법이었다. 강준의 보험조사팀이 발견한 이번 음해 사건의 구멍은 김유정의 남편 박준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