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음해 (1)
을지로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
회의실에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준혁이 노트북으로 영상 하나를 틀었다. 대한뉴스의 취재 영상이었다. 강남의 산부인과들을 비추는 화면을 배경으로 낭랑한 기자의 음성이 이어졌다.
―보험조사관이 보험조사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몇 년 전 국내 의료계를 뒤흔들었던 요실금 보험사기 사건, 기억하시는지요?
―당시에 양천구의 모 산부인과 병원이 큰 곤욕을 치렀는데요. 해당 병원장이었던 의사가 사건을 조사했던 박강준 보험조사관이 조사를 무마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홍콩에서 돌아온 강준을 겨냥한 폭로였다. 폭로자의 이름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SD산부인과의 이혜숙 원장이라는 사실은 강준의 보험조사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소장님, 이거 완전 악의적인 폭로 아닙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써서 소장님을 완전히 묻어 버리려는 속셈입니다!"
"이혜숙 원장이 병원협회에서 영향력이 좀 있잖아요? 이번에 병원협회랑 보험협회가 얘기가 된 거 같더라고요. 보험협회에서도 우리를 불편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를 저격하는데 다들 대동단결했다는 거군……!"
팀원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보험조사관으로서의 이력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폭로였기 때문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폭로였다. 이혜숙 원장의 폭로에는 강준에게 돈을 건넸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즉,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오히려 폭로가 거짓이라는 걸 증명하는 건 강준의 몫이 돼 버린 상황이었다.
"반박 기사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송지희 실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강준은 회귀 전 각종 폭로성 기사들이 터져 나오고 그로 인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경험했었다.
여론이 안 좋을 때는 무슨 말로 변명을 하건 먹히지 않는다.
"반박 기사보다는 내가 직접 입장 표명을 해야겠어."
"직접요?"
"그래, 기자들 불러서 일단은 아니라고 해야겠지."
"그렇게 되면 소장님을 엄청나게 물어뜯으려고 할 텐데요."
"그래도 일단 입장 표명은 해야겠지. 근데 그 이후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듣고만 있던 김준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소장님, 잘못하신 게 없는데 가만히 계실 이유가 없죠!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야 합니다."
"아니, 지금은 무대응이 최선이야. 저들이 원하는 건 언론이 달려들어 나를 물어뜯게 만드는 거야. 굳이 그런 떡밥을 줄 필요는 없지."
"그럼…… 억울함은 어떻게 푸시려고요?"
"법적으로 대응한다. 이혜숙 원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그렇게 되면 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관심은 꺼질 거고, 그사이에 우린 이혜숙 원장이 모함한 증거를 찾으면 되는 거야."
"만약 못 찾게 되면요?"
"그렇게 되면 우리도 소송에서 이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뒤에 숨어있던 이혜숙과 병원협회도 실체가 드러날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로서는 손해 볼 건 없을 거고."
강준의 말을 듣던 송지희가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저들의 더러운 커넥션을 들춰낼 수 있겠네요. 병원협회의 제 식구 감싸기도 수면 위로 올라올 거고요?"
"그렇게 되면 금상첨화고. 근데 그 전에 우리도 매운맛 좀 봐야겠지. 젠장!"
강준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사뉴스닷컴 함지훈 기자의 번호를 찾았다.
기자회견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서였다.
* * *
강준의 입장 표명 기자회견은 무척 담담하게 진행됐다. 언론사 기자들에게 미리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입구에서는 기자들이 마실 음료와 떡을 제공했다.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기자들의 질문에 강준은 재판과정을 지켜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하지만 강준도 예상치 못한 인물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녀는 요실금 보험사기 사건 때 강준의 도움을 받았던 김유정이었다.
강준은 옆자리의 송지희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혹시 송 실장이 오라고 한 거야?"
"아뇨…… 저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요."
김유정은 또각또각 기자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번 폭로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요!"
평범할 것 같았던 기자회견이 술렁이는 순간이었다.
"누구시죠?"
"박강준 보험조사관과는 어떤 사이인가요?"
"새롭게 폭로하실 사실이 있으신가요?"
일제히 기자들의 시선은 김유정에게 집중됐다.
"제가 당시에 제가 이번 폭로의 당사자에게 요실금 수술을 받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이유가 뭡니까?"
기자 한 명이 나서서 질문했다. 김유정은 잠깐 강준과 눈을 마주치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당시에 병원과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근데, 그걸 부추겨서 보험사기로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죠."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분위기가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박강준 소장님, 이 말에 대해서 해명해 보시죠."
"사실과 다릅니다. 당시에 요실금 수술을 하고 보험금을 청구했던 모든 보험계약자분에게 연락을 드렸었습니다. 그때 저희의 연락에 응해 준 분이 김유정 씨였고요."
김유정이 목소리를 높이고 강준의 말에 다시 반박했다.
"제가 연락한 건 맞아요! 하지만 전 재수술하기를 원했고,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 나간 것뿐이었다고요. 근데 저와 같이 그 병원에서 수술했던 사람들을 모두 보험사기 공범으로 몰아갔어요!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안 주려는 수법이라고요!"
갑자기 궁지에 몰린 강준이었지만, 김유정에게 맞서서 목소리를 높이기만 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기자님들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당시 요실금 보험사기와 관련된 법정 기록을 보면 김유정 씨가 증인으로 나와 증언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먼저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강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였다. 기자회견장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강준이 자리를 뜨고 나자 기자들이 김유정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 * *
강남 YD산부인과.
이혜숙 병원장은 몇 년 전 보험사기로 재판을 받은 후, 강남에 병원을 새로 개업했다. 보험사기에 휘말린 재판이 결정적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병원은 한번 옮길 생각이었다.
기존에 요실금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슬슬 재수술을 요구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보험조사관 박강준을 볼 때마다 이 원장은 속에서 열불이 났다. 아무것도 아닌 놈이 감히 자신을 보험사기범으로 몰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병원협회 송 이사장에게 연락이 왔고 오랜만에 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어때? 이 원장, 언론이 죄다 우리 편이라니까. 하하!"
"웬일이세요? 이번에는 제대로 일 좀 하시네요."
"에헤!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시나? 내가 우리 회원사들을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는데?"
"아…… 그러셔서 맨날 골프연습장에 가 계신 거예요? 골프 치면서 고민하시려고요?"
"헤헤…… 우리 이 원장님이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 혹시 나 쫓아다니고 있는 거 아닌가? 허허!"
송 이사장의 썩은 농담에 이혜숙 병원장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자꾸 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을 거면 저 그냥 갈 거예요?"
"아…… 알았어요……. 좌우간 지금 오시고 있다니까 잠깐만 기다립시다. 허허!"
송정록 이사장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해리츠 보험의 박성태 이사였다. 그는 얼마 전 해리츠 보험의 SIU팀과 손해사정팀을 아우르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박성태 이사는 우춘배의 뇌출혈 보상사건 때부터 강준과 종종 부딪쳐왔었다. 특히 특전사 집단 보험사기 사건 때는 해리츠 보험이 무리한 조사를 했다는 여론의 역풍에 시달렸었고 말이었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해리츠 보험의 박성태 이사에게 강준은 눈엣가시였다. 이혜숙 원장이 평소 앙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었다.
"아! 오셨네요. 제가 나갔다 오겠습니다!"
옆으로 불은 몸매를 흔들며 송 이사장이 박성태 이사를 배웅하러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이내 입이 귀에 걸린 채 박성태 이사와 함께 돌아왔다.
"두 분 서로 아시죠? 이쪽은 YD산부인과 이혜숙 원장님, 그리고 이쪽은……."
"알고 있어요. 해리츠 보험 박 이사님! 승진 축하드려요."
이혜숙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병원협회에서 꽤 영향력이 큰 해리츠 보험이었다. 협회에서 운영하는 협회지의 광고는 모두 해리츠 보험이 실어 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병원은 잘되시죠?"
"덕분에요."
"예전처럼 쓸데없는 오해를 받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박 이사님처럼 다른 보험사들도 상식적으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팩트에 입각해서 조사해야지…… 무슨 헛소문이나 듣고 와서 소송부터 거는 건 좀 그렇죠?"
"물론입니다. 무분별한 소송전은 지양해야죠."
박성태 이사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절제된 미소를 보였다.
"그나저나 이번 기자회견 보셨습니까?"
"봤어요. 우리 병원에서 재수술까지 받은 환자가 등장했더라고요. 혹시 박 이사님 작품이세요?"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박 이사의 대답을 들은 송 이사장이 껄껄대며 웃었다.
"역시! 우리 박 이사가 일 처리 하나는 똑똑하게 한다니까! 내가 뭐라 그랬어요? 우리 병원협회는 해리츠 보험이랑 같이 가야 한다고 그랬죠?"
"저 질문 있어요."
"이 원장, 무슨 질문?"
이혜숙이 무슨 돌발발언을 할지 몰라 불안한 송정록 이사장이었다. 그는 이미 해리츠 보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활동비까지 받아먹은 상황이었다.
최대한 해리츠 보험의 편의를 봐주고 싶은 송정록이었다.
"이번에 박강준 그 사람 완전히 묻어 버릴 수 있어요?"
"도덕성 문제가 불거졌으니 앞으로는 예전처럼 들쑤시고 다니지는 못할 겁니다."
"차라리 이번에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 어때요?"
"혹시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뇌물 같은 걸로 감방에 집어넣어 버리자고요. 보험금 못 받아서 안달인 사람들 많잖아요. 그 사람들 살살 긁으면 뭐라도 나올 거 같은데?"
이혜숙 원장 본인은 강준에 대한 폭로에서 몸을 사렸으면서 나중에 큰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일을 대신 벌여달라고 뻔뻔히 요구하는 거였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솔직히 저희도 보험업계의 룰을 어기는 박강준이 불편하기는 했었습니다."
점잖게 말하는 박성태 이사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박강준의 손발을 묶기를 원했었다.
그는 바로 막 저가 항공사를 시작하는 소프트퍼시픽의 손미영이었다. 해리츠 보험에 자사 항공기의 보험상품 일체를 맡기는 조건으로 강준을 처리해 달라는 얘기였다.
이혜숙 원장과 박성태 이사, 그리고 손미영은 서로 이해관계는 각자 다 달랐지만, 강준을 음해하는 데는 한마음 한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