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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화. 기술 유출 피해보험 (6) (220/250)

220화. 기술 유출 피해보험 (6)

제주도 공항 인근.

이은진 검사는 검찰 조사관들과 함께 홍문호텔을 급습했다. 정은규 연구원이 지목한 그곳은 중국 자본이 한국의 제주도 해변의 땅을 사들여 지은 호텔이었다.

한 시간에 걸친 객실 조사. 하지만 정은규가 말했던 스위트 룸을 비롯한 어떤 객실에도 경기반도체의 연구원들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여기 CCTV 기록 확인해 봐요!"

검찰의 요구에 프론트에 있던 직원들은 CCTV가 없다고 딱 잡아뗐다.

"이봐요! 요즘 시대에 CCTV가 없다는 게 말이 돼요?"

"그게 저희 홍문호텔에서는 고객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있어서 CCTV는 별도로 설치하지 않았거든요."

"젠장! 그걸 말이라고 해!"

흥분한 이은진이 호텔 매니저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없다고 잡아떼면 그만인 줄 알죠? 여기 수색영장 보이시죠? 숙박객 명단 보여 주시죠! 일주일 전까지 전부 다요!"

수색영장을 본 호텔 매니저가 인상을 팍 쓰며 다른 직원들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한참을 뜸을 들이다 가져온 호텔 숙박객 명단에는 스위트 룸의 투숙객이 없었다.

"조사관님, 호텔 지하에 주차된 블랙박스 확보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은진 검사는 한숨을 돌린 후, 호텔 로비에서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소장님, 우리가 한발 늦은 거 같은데요? 여기 홍문호텔 털었는데…… 미리 우리가 올 줄 알았는지 흔적도 없이 다 날랐어요."

―필립 황이 말해 준 거라 정보는 확실했을 겁니다. 혹시 출입국 기록은 확인해 보셨나요?

"지금 오혁진을 비롯한 연구원들 모두 출국금지 상태예요."

―그렇군요…… 전 지금 필립 황을 만나러 출국하는 중입니다. 정은규 연구원은 송지희 실장이 계속 소통하고 있으니 계속 검사님께 협조하도록 해놓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준은 샌프란시스코행 항공편이 막 출발한다는 방송을 들었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13시간. 그 안에 필립 황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 * *

샌프란시스코 중심가.

필립 황은 경계하는 눈초리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누가 언제 튀어나와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필립, 큰일 났다! 오 실장이 제주도에서 빠져나오다가 공항에서 걸린 모양이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냐…… 지금이라도 회사 매각해야 하는 거 아니야?]

D램 나노 칩의 회로설계 도면을 촬영한 사진 파일은 필립 황이 가지고 있었다. 만약 제주도에서 전산화된 도면이 넘어오면 그 사진 파일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회사에 팔아넘길 생각이었다.

회사를 부풀리는 건 그의 전공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은 미국 정보국인 FBI가 김종문의 회사인 TM하이텍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시점이 교묘했다. 필립 황이 김종문과 함께 한국을 빠져나온 후 곧바로 CIA의 조사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필립 황의 핸드폰에는 김종문의 번호가 떴다. 하지만 필립 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뎀잇! 형님은 무슨! 그냥 멍청한 새끼지……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낯선 땅으로 자신만 보고 리리쥔을 배신하고 온 김종문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먼저 죽게 된 상황에서 필립 황은 김종문의 안위 따위는 관심 없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계속 벨이 울리자 필립 황은 김종문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FBI가 냄새를 맡았다면 일단 튀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어차피 지금 조사를 받게 되면 불리한 증거만 속출할 뿐이었다.

상해기술진출 총공사의 리리쥔과 주고받은 메일이 공개되면 필립 황은 산업스파이 죄로 10년 이상의 금고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TM하이텍의 김종문도 마찬가지였지만, 필립 황은 같은 배를 타기로 한 김종문을 챙길 여력 따위는 없었다.

필립 황은 TM하이텍이 있는 빌딩에서 한참 떨어진 곳의 구도심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자신이 원래 쓰던 비밀 사무실이 있었다.

현금화할 수 있는 조세피난처인 케이맨제도 은행의 예금증서와 인출 카드. 그리고 당분간 멕시코에서 지낼 달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비밀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은 임대료가 높은 곳이었지만, 실제로는 100년이 다 되어 가는 낡은 빌딩이었다. 그런 빌딩의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작다는 거였다.

필립 황은 경비원에게 익숙한 듯 눈인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동양계 남자 둘이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수상한 남자들이었다. 필립 황은 경비원을 돌아봤지만, 경비원은 오히려 그에게 입꼬리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돈 터치 미! 콜 더 폴리스!"

필립 황이 소리를 쳐 봤지만, 낡은 빌딩엔 인적이 드물었다. 동양계 남자 둘은 버둥거리는 필립 황을 끌고는 좁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금속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필립 황의 비밀 사무실이 있는 13층에서 멈춰 섰다.

* * *

산호세 FBI 조사실.

수염이 잔뜩 난 김종문은 초췌한 모습으로 강준을 맞았다. 그는 산업스파이 혐의로 미 현지에서 기소된다는 말에 무척 불안해하고 있었다.

"김종문 사장님을 여기서 또 뵙네요."

"박강준 당신…… 약속대로 와 줬군……."

"평택항에서 서해안 시대가 열린다고 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하필이면 이런 데서 뵙게 되네요. 필립 황은 어디 있습니까?"

"나도 몰라. FBI가 냄새 맡았다니까 혼자 겁먹고 튀어 버린 건지……!"

FBI 요원과 얘기를 나누던 제이콥이 강준에게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필립 황이 피살됐다는 소식이었다.

"뭐야? 둘이 무슨 얘기 하는 거야?"

"필립 황이 죽었어."

"……뭐?"

김종문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려 온몸을 벌벌 떨었다. 강준은 그의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의 기억을 읽어 내기 시작했다.

김종문의 기억은 손에 쥔 USB를 바라보며 낄낄거리는 장면이었다.

[필립 이 자식…… 이게 나한테 있는 줄은 모르겠지. 여기 네가 해킹한 기록들이 전부 다 있다! 이 새끼야! 흐흐!]

그가 미국으로 오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필립 황만 믿고 온 건 아니었다. 그가 손에 쥔 USB에는 리리쥔이 건네준 해킹 프로그램이 들어있었다.

그 해킹 프로그램에는 사용자의 사용기록도 함께 남겨져 있었다. 바로 필립 황의 사용기록 말이었다.

리리쥔의 해킹 프로그램은 철저히 공범들을 엮어 두는 장치를 해 둔 거였다. 필립 황은 그런 것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리리쥔은 김종문에게 필립 황을 견제하도록 설계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만약 필립 황이 상해기술진출 총공사를 배신하게 됐을 때, 그의 약점을 잡아 협박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리 처장도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예상 못 했겠지. 나를 그냥 호구 병신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개자식들! 이번에는 절대 안 당해! 시발…….]

김종문은 애초부터 아무도 믿지 않았었다. 그는 USB를 자신의 의자 밑판을 풀러 그 틈새에 숨겼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의자, FBI가 들이닥쳐도 압수해 가지 않을 만한 물건이었다.

"김종문 사장님, 이제는 FBI에 협조해야 할 거 같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마당에 협조하지 않을 게 뭐가 있겠어?"

"리 처장으로부터 받은 해킹 프로그램. 그거 갖고 계시잖아요?"

"……."

김종문은 강준의 시선을 외면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해킹 프로그램이 든 USB 파일 이제 내놓으시죠?"

"뭐야……? 당신……! 내 뒷조사했어?"

김종문이 눈을 치켜뜨고 강준을 노려봤다.

"제 실력 잘 알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벌써 파악했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말입니까? 편하게 말씀하시죠."

"한국에서 조사받게 해 줘."

"제가 FBI와 잘 협상해 보죠. 단, 리리쥔 처장이 제공한 해킹 프로그램을 제게 먼저 제공해 준다는 조건으로요."

김종문은 한 발로 땅을 차며 답답한 듯 토로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으라고! 여기 미국 교도소에서 감방살이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나보고 박강준 당신을 믿으라고?"

"한국 검찰도 김종문 사장님께 궁금한 게 많을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승호 연구소장의 억울함을 밝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내가 기획한 게 아니야. 나도 왜 유승호가 구속됐는지 모르겠더라니까……."

강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뜨려는 강준을 보고 놀란 건 오히려 김종문이었다.

"왜? 어디 가려고?"

"협조하실 겁니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버티실 겁니까?"

"알았어! 협조한다니까…… 근데 내 얘기 좀 들어봐. 난 진짜 리 처장한테 이용당한 거라고!"

"에이, 그건 아니죠. 여기 실리콘밸리에 TM하이텍을 차려서 필립 황이랑 같이 되팔려고 한 거 아니었나요?"

"아냐! 아냐! 내가 뭘 안다고 그랬겠어? 그건 필립 황이 괜히 연구원들한테 바람 넣는다고 그런 거지……."

강준은 씩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이제부터 김종문 사장님은 리리쥔의 기술 유출 음모를 밝히는 데 앞장서시는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휘말려 들어간 사업가로 말이죠."

"그럼……! 난 진짜 호구처럼 이용만 당한 거라니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호구가 안 되려고 기를 썼던 김종문이었지만, 결국엔 스스로 호구가 되었다고 항변하는 그였다.

"알겠습니다. 전 이제 사장님이 숨겨 둔 USB 수거하러 갑니다."

"어! 그…… 그건 내가 따로 한국에……."

"TM하이텍 사무실에 있겠죠. 한국 떠나오실 때 검찰 수사 피하려고 오신 거잖아요? 근데 설마 핵심 증거를 한국에다 놔두고 오셨겠어요?"

"……."

"설마 절 그렇게 바보로 보시는 건 아니시겠죠? 우리가 한두 해 봐온 사이도 아닌데?"

민망한지 김종문은 강준의 말에 시선을 피해 버렸다. 이제 FBI와의 협상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 * *

"이번 일과 관련해서 보험조사관인 당신이 조사해 온 내용을 참고할 수 있을까요?"

FBI 산업스파이 담당 수사관 조나단은 강준에게 그간의 조사 내역을 원했다. 하지만 김종문을 그곳에 버려두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종문이 귀국하는 동시에 이은진 검사가 그를 체포해 유승호에 대한 그간의 검찰 조사를 뒤엎을 생각이었다.

"사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중국 산업스파이들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조나단은 강준을 회유하듯 말을 이었다.

"TM하이텍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우리 FBI는 한국의 정보기관과도 공조합니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혹시 그럼 필립 황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물론 입수한 정보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강준 보험조사관께서도 상당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 상해기술진출 총공사의 리리쥔을 의심합니다."

리리쥔의 이름이 나오자 조나단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박강준 보험조사관님, 이번 일에 연루된 리리쥔은 어떤 인물인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조나단이었다. 숨을 한 차례 내쉰 강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혹시 중국의 천인계획(千人計劃)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강준이 회귀 전 들었던 중국의 기술 첩보전에 대한 정보와 김준혁이 리리쥔을 추적하며 입수한 정보들을 미국 측에 넘겨줘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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