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선박보험 언더라이팅 (6)
다음 날 오전 군산병원.
강준이 김학필의 연락을 받고 부둣가로 가지 못한 건 정체불명의 트럭이 강준의 차량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코너를 돌자마자 갑자기 나타난 트럭. 강준은 미처 피하지 못했고, 길가의 전봇대를 들이박고 나서야 겨우 멈춰 섰다.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간밤에 병원에 도착해 간단한 검사를 받은 뒤 응급실에서 하루를 지냈고, 다음 날 오전 외래진료를 겸해서 정밀 진단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송 실장, 정말 괜찮냐?"
"엑스레이 찍었는데 문제없대요. 근데 목 뒤가 좀 뻐근한 거 같기도 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은 나중에 나타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단 입원해."
"소장님은요?"
"난, 봐라. 멀쩡하다!"
강준은 두 팔을 휘휘 돌리며 송지희를 안심시켰다. 사실 전봇대를 들이박았을 때, 운전석 쪽에서만 에어백이 터진 게 내심 미안했던 강준이었다.
"일단 여기서 며칠 푹 쉰다고 생각해라."
송지희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충격은 절대 적지 않을 터였다.
"난 내일 다시 오마! 안정…… 절대 안정!"
"소장님, 오버하지 마세요. 저 안 죽습니다."
"그래도 아픈 사람 놔두고 가려니…… 면목이 없다."
"염려 놓으세요. 지금 준혁 씨 달려오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지난번 군산에서의 사건에서는 김준혁이 사고를 당했었다. 이번에는 입장이 뒤바뀌어 병간호할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이었다.
"근데 말이야…… 그 트럭…… 일부러 우리 쪽으로 달려온 거 맞지?"
"네, 분명히 우리를 발견하고 가속 페달을 밟았어요.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요."
"우리 블랙박스에는 안 담겨 있겠지?"
"네, 후방에서 온 거라 아마 확인이 불가능할 거예요. 충돌하고 나서는 우리 차의 방향이 완전히 꺾였고요."
"알겠다…… 일단 송 실장은 치료받는 데만 집중해!"
강준은 송 실장의 간호를 김준혁에게 맡기고 병원 문을 나섰다. 주차장에서는 김학필 반장이 미리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CCTV 확인했는데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미리 피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벽으로 밀어 버렸을 테니까요."
"왠지 느낌이 싸하더라고요. 박상훈 목사가 장막파를 지휘하고 있으니 군산 바닥에선 언제든 그런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겠죠."
운전대를 잡은 김학필은 그날 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날 분명히 도박판이 벌어졌는데! 해경에서 너무 늦게 출동을 했습니다. 이미 선박은 사라져 버린 상황이었고요……."
"천광균 이사가 분명 그 고기잡이 선박에 간 건 사실입니까?"
"제가 직접 눈으로 봤거든요. 해상에 있는 고속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걸요."
"그 안에서 도박판이 벌어지는 건 어떻게 아셨고요?"
"뭍으로 다시 나온 고속보트 선장을 잡아서 캐물었죠. 다시 판이 벌어지는 선박으로 나가자고 하니까 기름이 떨어졌다고 핑계를 대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기름을 가져오라고 했죠. 근데 제가 따라가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저 혼자서 바다 위의 선박을 바라보고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을 텐데!"
기름을 가지러 가겠다고 한 선장은 약속을 어기고 그날 밤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선장의 신원은 확인했습니까?"
"그럼요, 신분증은 현장에서 빼앗아 뒀죠."
김학필은 수첩에서 신분증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김병재. 59년생. 군산시 경암동 거주.
자신의 신분이 그대로 들통났지만, 일단 도주하고 본 선장은 분명 감추고 싶은 것이 있었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감춰줘야 할 사람들이 있었던지.
"어디로 가실 겁니까? 김병재의 자택이요? 아니면 소유 선박이 있는 부둣가로 먼저 가실 겁니까?"
"우선 집부터 가 봐야겠죠."
김학필은 핸들을 급하게 경암동 방향으로 꺾었다.
* * *
다행히도 김병재는 자택에 있었다.
"어제는 내가 너무 겁을 먹어서 그냥 내뺀 것뿐이지……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야."
김학필이 찾아와 추궁하자 김병재는 일단 회피 전략으로 나왔다. 그가 새천년교회의 신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비응해운 시절부터 근무해 온 장안해운의 소속 기관장인 건 분명했다.
"장경훈 대표와 그럼 아는 사이겠네요."
"알지. 사장 셋째 아들인데 모를 리가 없지."
"그럼 그날 장 대표의 부탁으로 고속보트를 운행했던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지……."
애매하게 답하는 김병재였다. 강준은 그의 기억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김병재에게 다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레? 이건 무슨 의미래?"
"전 그날 장 대표를 털어먹으려고 했던 이들이 어떤 농간을 부리고 있는지 알아야겠습니다."
강준의 말에 묘하게 웃는 김병재였다. 강준은 덥석 그의 손을 일방적으로 잡았다. 갑작스러운 악수였지만 김병재는 그 손을 피하지는 않았다.
김병재 기관장의 기억은 장경훈 대표와의 독대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대표님, 그놈들이 완전 물은 거 같은데요?]
[그래요? 완전 멍청한 새끼들이네…… 가격 싸다니까 덥석 물은 거군.]
낄낄거리며 웃는 장경훈이었다. 그의 한 손에는 필리핀의 낙원 세인트 빈센토 섬에 대한 카탈로그가 들려 있었다.
[필리핀 선박회사의 실소유주가 대표님인 줄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흐흐!]
장안해운이 신규로 인수계약을 맺은 4척의 중고 선박은 실은 장경훈 대표의 선박이었다. 장안해운을 집어삼키려는 박상훈 목사는 자신들이 장경훈을 털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장경훈은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오히려 장안해운의 자산을 자신이 차명으로 세운 해외법인으로 빼내고 있었다. 적당히 그들의 낙원이라는 세인트 빈센토 섬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말이었다.
[근데 교회 놈들도 다 생각이 있더라고요.]
[무슨 생각요?]
[화물칸을 늘려서 운항 수입을 늘릴 생각을 하던데요?]
[그 선박들을 가지고요? 화물 적재를 하려면 지금 상태로는 안 될 텐데…….]
[그러니까요. 그래서 여객용으로 나온 선박을 화물용으로 개조한다고 하더라고요. 박형식 사장네 선박수리소에 맡겨서요….]
[좌우간 박 사장 그 인간은 안 되는 걸 쥐어짜는 데는 선수라니까! 하하!]
장경훈은 박형식 사장의 얘기가 나오자 뭐가 그토록 좋은지 낄낄거렸다.
[근데 정말 괜찮을까요? 괜히 문제 생겨서 덤터기 쓰시는 거 아닙니까?]
[기관장님, 제가 왜 덤터기를 씁니까? 책임은 장안해운에서 지겠죠. 조만간 절 대표 이사 자리에서 쫓아낼 테니 저야! 할렐루야고요! 흐흐!]
[듣고 보니 그러네요. 선박 개조부터 검사 인증받는 것까지 자기네들이 다 쿵짝 맞춰서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살살 긁어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기관장님.]
김병재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강준은 호구처럼 보였던 장경훈의 반전에 놀랐다.
"장 대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나야 모르죠……."
"필리핀에 가 있습니까?"
"……네?"
김병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필리핀에 장 대표가 차명으로 법인을 세워 두지 않았습니까?"
"……장 대표가 얘기했습니까?"
"아뇨, 전 때려 맞춘 건데 지금 기관장님 대답을 듣고는 확신했습니다. 장 대표가 필리핀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는 걸요."
강준의 말을 들은 김병재의 얼굴이 굳었다.
"난 아무것도 얘기 안 했습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뭘 하자는 건지…… 젠장!"
김병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대문을 닫고 들어가려 했다. 그 모습에 함께 온 김학필이 대문을 한 손으로 잡으며 물었다.
"어제 그 판이 벌어진 해상에 고속보트들 몇 대가 움직이더라고요. 그건 누구 배였는지 알아요?"
"아…… 그거는…… 내가 알기로는 김갑수 선장이 조종면허 따게 해준 직원들인 거 같던데……."
"그럼 그 고속보트를 몰았던 사람이 전부 장안해운의 직원들이었단 말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아직 직원은 아닌데……."
"말을 똑바로 해 봐요! 김병재 씨!"
김학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병재를 압박했다. 얘기를 제대로 안 했다간 도박 사건으로 제대로 엮어 버리겠다는 메시지였다.
"박상훈 목사가 자기네 사람들 데려와서 앞으로 써먹으려고 교육시키고 그랬어요. 근데 뭐 그게! 단숨에 되나? 그러니까 그냥 작은 고속보트나 몰고 그러는 거죠."
"그럼 어젯밤에 도박판에 동원됐던 사람이 새천년교회의 신도들이라는 거죠?"
"글쎄…… 내가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때 김병재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하지만 발신인을 확인한 김병재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으려고 했다.
눈치가 빠른 김학필이 그런 김병재의 스마트폰을 대신 낚아챘다. 그리고는 발신인인 장경훈의 전화를 받았다.
"군산경찰서 강력팀 김학필 반장입니다. 어젯밤 해상에서 도박판을 벌이신 것과 관련해서 조사에 응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디라고요?
"군산경찰서 강력팀이라고요!"
통화음 너머로 되물었던 장경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다시 꺼냈다.
―형사님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강력팀의 형사반장이죠."
―그럼, 잠깐 만나 뵐까요? 형사님도 절 조사하시려는 용건이 있으신 거 같은데.
전화를 끊은 김학필은 강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 대표랑 만나기로 했습니다. 뭔가 우리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네요."
* * *
영동 골목 카페.
김학필 반장에게 듣던 것과는 달리 장경훈 대표는 무척 무거운 태도였다. 비응해운의 3남으로 망나니 같다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런 장경훈에 놀랐던 건 되려 김학필 반장이었다.
"솔직히 지금 좀 겁이 납니다."
장안해운의 자산을 빼돌리며 자신만만했던 장 대표의 모습은 두려움에 떠는 소심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군요. 박 목사 일당에게 손모가지라도 잘린 겁니까?"
"……휴…… 그게 아니라…… 김갑수 선장이 죽었습니다…."
"네? 김 선장이요?"
도박 사건이 살인사건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누가 죽였습니까? 어떻게요?"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김학필이었다. 강준은 고개를 숙인 장 대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어젯밤 그가 목격했던 살인의 생생한 순간을 읽었다.
"저도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원래 광신도들이 무서운 법이죠. 세상 무엇보다 자기네들의 신념이 최고인 사람들이니까요."
강준의 추임새에 놀라 장경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새천년교회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제가 지난번에 맡았던 사건이 새천년교회의 비밀조직 장막파에 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십시오. 그놈들이 절 죽이려고 합니다!"
장경훈 대표의 눈에서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원래 이유가 있어서 죽이는 놈들보다는 맹목적으로 죽이는 놈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새천년교회의 장막파는 박상훈 목사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하는 조직이었다. 마치 박 목사를 따르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는 양.
그들에게 장경훈의 목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