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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화. 선박보험 언더라이팅 (4) (210/250)

210화. 선박보험 언더라이팅 (4)

강준과 김학필 반장은 퇴근한 천광균의 뒤를 쫓았다. 그가 박상훈 목사를 만난다는 건 이미 천광균의 기억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소장님, 그냥 술집으로 가 보자니까요?"

김학필 반장은 그가 잘 안다는 시내 노래주점으로 가보자고 주장했다. 그곳에 장경훈 대표가 자주 출몰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천광균의 차량이 법원 앞 오피스텔 건물에 주차된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사이 밤이 깊었고, 도로 위에 차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천광균이 내려오면 제가 무조건 물어보겠습니다. 저 위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를요……."

"그걸 본인 입으로 밝힐까요? 사생활 운운하면서 그냥 입을 닫겠죠."

사실 강준이 확인하고 싶은 건 오피스텔에서 누구를 만났는지가 아니었다. 진짜 궁금한 건 천광균이 저 위에서 박상훈 목사에게 뭘 보고했는지였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강준의 눈에 새천년교회에 잠입시켰던 송지희가 그 오피스텔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잠깐만요! 저기 송 실장님 아닙니까?"

"……그러네요."

말을 잇지 못하는 강준이었다. 새천년교회에 잠입한 지 며칠 만에 핵심 인물인 박상훈 목사에게 다가선 것이었다.

차 문을 열고 나가려는 김학필 반장이었다. 강준은 급히 그런 그를 말렸다.

"잠시만요! 저기 천광균이 내려왔습니다!"

"네? 천광균이요?"

"뭘 같이 얘기하고 있네요. 송 실장을 데려온 여자하고요……."

송지희를 데려온 이는 새천년교회 개척단의 한영숙이었다. 강준이 가리킨 오피스텔의 입구에서는 한영숙과 천광균이 서 있는 채로 몇십 분간 대화를 나눴다.

참다못한 김학필이 차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김 반장님!"

"우리도 시간 없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으실 겁니까?"

"송 실장이 저한테 문자를 줄 겁니다. 전 오피스텔 위의 박상훈 목사한테 가 볼 테니, 반장님은 천광균을 따라가 주시죠."

김학필 반장은 답답한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시트에 다시 털썩 앉았다.

"분명 박 목사와 얘기를 나눴으니 지시를 받은 게 있을 겁니다."

"새천년교회가 점점 장안해운을 털어먹을 준비를 하려는 거군요."

"장경훈 대표를 밀어내는 과정일 겁니다."

"그게 도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반장은 강준을 돌아보며 심각하게 물었다.

"지금으로서는 제일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죠."

잠시 후, 천광균과 한영숙 일행은 헤어졌고, 송지희는 한영숙을 따라 오피스텔 위로 올라갔다.

"이제 움직이시죠. 전 여기서 헤어지겠습니다!"

강준은 김학필 반장에게 천광균의 차량을 따라가게 하고 자신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맞은편 편의점에서 들어가 송 실장의 문자를 기다렸다.

서늘한 늦가을의 바람이 강준의 몸을 휘감았다.

* * *

송지희는 갑자기 박상훈 목사와 둘만 남겨 놓고 자리를 떠나는 한영숙이 당혹스러웠다.

"자매님, 오늘 저와 영적인 대화를 깊이 나눠 보시죠."

"영적인 대화라면……?"

박상훈 목사는 갑자기 맞은편에서 일어나 송지희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매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그걸 낱낱이 제게 말씀해 주세요. 저에게 제대로 회개해야 진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송지희는 속으로 점점 짜증이 올라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억지로 회개하라니…… 게다가 목사한테 회개하라고? 비신도인 송지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박상훈의 눈은 점점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목사님, 교회가 말하는 세인트 빈센토 섬으로는 언제 갈 수 있는 건가요?"

"왜요? 그곳에서 구원을 얻고 싶습니까? 지금 현실이 불만족이라서요?"

"네,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거든요……."

"구원은 아무나 얻을 수 없습니다. 가장 믿음이 강한 자만이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박상훈은 송지희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송지희는 당장이라도 싸대기를 휘갈기고 싶었지만, 박상훈의 손을 붙잡아 막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목사님, 낙원으로 가는 선박을 구매하셨다고 들었어요. 제 믿음은 그 선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지만 더 공고해질 것 같네요."

음흉스러운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전에 선박의 실체를 알려달라는 얘기였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하셨다……."

움켜잡은 박 목사의 손에서 완력이 느껴지는 송지희였다.

"목사님…… 정말 배가 있기나 한 거예요?"

"왜요? 내가 거짓말이라도 할까 싶어서요?"

"그게 아니라 개척단에 들어오면 장안해운에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한영숙 권사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배는 지금 필리핀에 있어요. 어차피 우리의 낙원에 도달할 배니까 그곳에 있는 게 당연하겠죠."

"승인은 받았나요? 운항은 언제 하고요?"

쏘아붙이는 송지희를 바라보며 박 목사는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건 왜 묻죠? 자매님은 신앙을 찾기 위해 온 거 아니었나요?"

"신앙요? 신앙은 제가 알아서 찾을게요. 일단 박상훈 목사님을 직접 뵙게 되니 영광이네요. 전 SS재보험의 사건의뢰를 맡은 보험조사관 송지희입니다!"

정체를 밝힌 송지희를 보며 박상훈 목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송지희에게 잡혀 있던 손을 홱 뿌리쳤다.

"뭐예요? 여태껏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겁니까?"

"장안해운이 최근에 신규로 등록한 선박 4척의 안전 인증검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어서요. 실제로 선박은 필리핀에 있다는 건데…… 그럼, 대한선급의 직원이 현지까지 실사를 갔다는 건가요?"

"자매님…… 당장 여기에서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근데 참 이상한 거는요…… 장안해운과 새천년교회 간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개척단에서는 교회 선박이라고 하던데."

"제 말 안 들리십니까? 당장 나가시라고요!"

목소리를 높이는 박상훈 목사였다.

띵동띵동.

벨이 울렸다. 송지희의 문자를 받은 강준이 올라온 것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문을 연 박상훈 목사는 얼마 전 장막파들의 보험사기 사건을 맡았던 강준의 얼굴을 알아봤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송지희가 벌컥 문을 열었다.

"뭡니까? 두 사람 다 여태껏 저를 미행하고 계셨던 겁니까?"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목사님께서는 천광균 이사와 업무협의를 하시면서 실질적으로 장안해운을 운영해 오고 계셨던 겁니까?"

강준은 만약 장안해운 쪽의 문제가 생길 경우, 박상훈 목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러려면 박 목사가 장안해운의 실소유주라는 걸 밝혀야 했다.

"그걸 제가 밝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예상대로 입을 닫으려는 박상훈 목사였다. 그런 그에게 강준은 코앞까지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때문에 수많은 신도가 가정도 내팽개친 채 자기 재산까지 헌납했어! 그 돈으로 선박을 산 거야?"

"자기네들이 알아서 그런 걸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멱살이 잡힌 박 목사의 말투는 평범한 일반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준은 멱살 잡은 손을 뿌리치려는 박 목사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기억은 대한선급 고민재 과장과의 독대 자리였다.

[그러니까…… 고 과장님 말씀은 노후 선박이라도 개조를 해 놓으면 충분히 운항할 수 있다는 말씀인 거죠?]

[그럼요. 우리나라 선박들이 30년 넘은 것들이 즐비합니다. 오래됐다고 폐선하라는 말은 아무도 안 하죠. 선령이 20년 지난 노후 어선이 전체 어선의 25% 이상입니다.]

생각보다 고민재 과장은 장안해운의 경영에 깊게 관여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는 낙하산 임원인 천광균의 자리를 노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정기적인 검사는 문제없이 통과될 수 있겠죠?]

[하하! 제가 왜 목사님께 이런 얘기를 드리겠습니까? 제 선에서 해결될 수 있으니 그런 거죠. 선급 회사에 다닌 지만 15년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피해갈 수 있는지를 다 알고 있죠. 하하!]

잠시 망설이던 박상훈 목사는 예의 그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훌륭하신 고 과장님을 회사가 아니라 교회로 모시고 싶은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목사의 말에 고 과장이 어림도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비즈니스 할 때는 비즈니스 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꾸만 신앙이나 믿음이니 그런 얘기들을 하면 제가 헷갈리지 않겠습니까?]

허튼 소리하지 말라는 고 과장이었다. 그는 박 목사에게 신앙을 빌미로 쉽게 탈탈 털어가는 호구가 되지 않겠다고 얘기한 거나 진배없었다.

[하하…… 정 뜻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얼른 자금 마련에만 힘을 써 주십시오. 비응해운…… 아, 이제 장안해운이 된 장경훈 대표가 얼마나 회삿돈을 해 먹었는지 아십니까? 그것만 잘 간수해도 사려는 선박을 10척도 살 겁니다.]

과장된 말이었지만, 박 목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구상하는 낙원을 만드는 과업에 선박 사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참, 김갑수 선장하고 박형식 사장과 하기로 계획했던 일은 잘돼 가십니까?]

[그럼요. 장 대표가 가진 비자금을 싹 다 털고 남은 선박 지분까지 탈탈 털게 할 겁니다.]

[전 고 과장님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김 선장이 좀 말을 안 듣는 거 같긴 하네요. 워낙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라…….]

눈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고 과장이었다. 박 목사는 눈꼬리를 올리며 되물었다.

[끝나고 큰 거 한 장씩 나눠 갖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오가는 돈을 보고는 눈이 돌아갔는지…… 김 선장, 그 노인네가 자꾸만 떼를 쓰네요.]

[고 과장님, 떼를 쓰는 아이에게는 가끔 따끔한 벌이 필요하기도 한 법입니다.]

적당히 돈을 더 쥐여 주자는 말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온 격이었다.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 목사를 바라보는 고 과장이었다.

박 목사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목사님이 제대로 말씀을 안 하시면 저는 장경훈 대표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시던지요!"

"천광균 이사가 목사님의 지시를 받는다는 걸 장 대표도 알까요?"

"하하! 전 그냥 교회 일로 만난 것뿐입니다! 천 이사님은 우리 새천년교회의 장로님이시기도 하니까요."

강준은 뻔뻔하게 나오는 박 목사를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고민재 과장하고 김 선장, 박 사장! 셋이서 짜고서 장 대표를 도박판에서 털어먹으려는 걸 얘기해도 상관없겠어요?"

"당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흠칫 놀란 박상훈 목사는 강준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강경했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당신 손버릇 좀 고쳐야겠어!"

어느새 박 목사에게 다가온 송지희가 그의 팔목을 뒤로 꺾었다.

"아아아아! 으아악!"

"다음에 나한테 걸리면 그때는 제대로 엿 먹을 줄 알아!"

송지희는 비명을 지르는 박 목사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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