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선박보험 언더라이팅 (2)
대한선급 군산지부.
강준이 만나야 할 사람은 대한선급의 검사지원팀장인 고민재 과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업무를 핑계로 며칠째 자리를 계속 비웠다.
어쩌면 일부러 강준을 피하는 건지도 몰랐다. 이미 장안해운의 건으로 왔다는 정보가 대한선급으로 들어갔을 테니깐.
국내 유일의 선박검사 인증기관, 대한선급을 조사하기 위해선 감사원이 움직여야 한다. 강준은 바로 그 감사원을 움직일 근거를 찾는 게 당면한 과제였다.
"박 소장님, 제가 아는 후배를 불렀으니 금방 나올 겁니다."
"그 후배가 일하는 부서가 품질감사팀이라고요?"
"네, 검사지원팀에서 작성한 현장보고서가 결국 올라가는 곳이 품질감사팀이거든요. 거기서 최종적으로 선박 인증을 해 주는 거고요. 저기 오네요!"
군산에서 강준을 도와주러 합류한 사람은 지난 새천년교회 사건 때 공조했던 김학필 형사 반장이었다. 그는 강준의 사건 내용을 듣고는 대한선급에 근무하는 자신의 후배에게 다짜고짜 연락을 취한 거였다.
"학필 형!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반갑게 인사하는 김학필 반장의 후배는 강준을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눈인사를 했다.
"SS재보험 건으로 나온 박강준 소장입니다."
"홍현수 대리입니다. 혹시 보험조사관 아니십니까?"
"절 알아보시네요?"
"TV에서 봤습니다. 지난번에 새천년교회 사건은…… 저도 관심 있게 지켜봤었으니까요."
다행히 역으로 강준은 먼저 알아보는 홍현수였다.
"근데…… 무슨 일로 여기 오신 건가요?"
보험조사관이 찾아왔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챈 그였다. 옆에 있던 김학필 반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선박보험 때문에 오신 거 같은데? 그게 아니면 여기 방문할 일이 없잖아?"
"그건 그렇죠. 근데 저희 쪽에는 선주분들이 오시기도 하지만 가끔은 해운업체 관계자분들이 오시기도 하거든요."
"해운업체에서 직접?"
"네, 인증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선박 안전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해운업체가 자신들이 조선소에 발주한 선박의 안전 인증이 제대로 됐는지를 직접 살핀다는 뜻이었다. 해외의 선급 회사가 몇백 년간 쌓아온 신뢰도를 국내 선급사는 단기간에 따라잡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대한선급의 인증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덜 까다롭다는 평이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선박을 발주하는 해운업체의 입장에서는 해외 선급사의 인증과 비교해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바로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SS재보험에서는 얼마 전에 신명보험에서 인수한 장안해운의 선박보험 요율을 재평가하러 온 겁니다."
"장안해운이라면……."
뭔가를 생각하다 입을 다무는 홍현수였다. 그는 알고 있는 바가 있었지만, 처음 보는 보험조사관에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장안해운 인증검사를 맡았던 고민재 과장을 만나려고 온 겁니다. 근데 절 도통 만나 주지 않네요."
"아…… 고 과장님이라면 지금 선박수리소에 외근을 나가 계실 텐데요……."
곤란하다는 표정을 한껏 드러낸 홍현수가 강준에게 슬쩍 힌트를 줬다.
"그 선박수리소가 어디에 있나요?"
"군산항 제8부두에 있을 겁니다. 서해안 선박수리소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그리로 가 봐야겠네요."
"네…… 그…… 그러시죠."
김학필 반장은 머뭇거리며 답하는 홍현수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현수야, 나중에 술 한잔 먹자."
"네, 좋죠. 근데 학필 형. 정말 오늘 이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너 새천년교회 알지?"
"그럼요. 한동안 떠들썩했잖아요?"
"장안해운이 거기 교회에서 운영하는 거라고 하더라."
"네? 그럴 리가요? 장안해운이라면 20년은 족히 넘은 회사인데요?"
"법인설립은 2년밖에 안 됐던데……?"
김학필은 강준을 돌아보며 뭔가 새로운 정보가 있다는 걸 눈빛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게 원래 비응해운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가 소유주만 바뀐 거예요. 일하는 사람들은 예전 다 그대로일 텐데……."
"비응해운이라고?"
"네. 비응도 가는 길에 있는 곳인데 오래됐어요. 아마 실질적인 운영은 아직도 거기서 하고 있을걸요."
해운회사의 운영에는 선박의 운영과 관리가 뒤따르기 때문에 단박에 인원을 물갈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혹시 현수 네가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김 선장님이라고 그분을 알긴 하는데…… 워낙 능구렁이 같은 분이라 찾아가서 소득이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야! 내가 직업이 형사반장이다. 얘기가 안 통해도 통하게 하는 게 내 역할이야."
"하긴 형님이 집요한 구석은 또 있으시니…… 어쩌면 김 선장님이랑 통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흐흐!"
김학필 반장과의 대화를 통해 슬슬 경계심이 풀리는 홍현수였다. 하지만 그가 왜 김 선장을 능구렁이라고 표현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맙다. 짜샤!"
"학필 형, 근데…… 고민재 과장이 그래도 여기 지부에서 15년째 근무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도 많고…… 특히, 선박 쪽에서는 고 과장하고 맞서려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왜냐면 굳이 자기네들 선박 검사하는 사람이랑 각을 세워서 좋을 게 없거든요."
"그래! 참고하마. 다음에 보자!"
강준은 홍현수에게 더 캐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김학필 반장은 그냥 돌아섰다. 후배에게 그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차량에 올라탄 김학필은 홍현수가 말했던 비응해운을 수첩에 적어 넣었다.
"박 소장님, 뭔가 냄새가 나는데요?"
"고민재 과장 말입니까?"
"아니요. 이 비응해운이요. 제가 몇 년 전에 여기를 간 적이 있었거든요."
"무슨 일로 가셨는데요?"
"교통사고 건으로 갔었습니다. 그 회사가 가족회사인데 아들 3형제 중에 막내가 교통사고를 일으켜서 사람이 죽었었습니다……."
"사망 사고면 형사처벌을 받았겠네요?"
"그게…… 상대와 합의가 돼서인지 구속까지는 안 됐었습니다. 근데 제가 볼 때는 분명히 음주운전이었거든요."
"……네? 음주운전이요?"
김학필 반장은 차에 시동을 켜고는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박 소장님, 왠지 이번에 그때 응징 못 했던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형사님들 예감은 별로 틀리는 적이 없죠. 하하!"
강준은 씩 웃으며 수첩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김학필 반장이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면 낯선 항구도시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 * *
제8부두 서해안 선박수리소.
나무 간판으로 투박하게 사명이 쓰인 선박수리소의 앞마당에는 부두로부터 도크까지 배를 끌어들일 수 있는 레일이 쭉 이어져 있었다.
"계십니까~!"
강준은 일하는 공인들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대한선급 고민재 과장님 뵈러 왔습니다. 여기 오셨다길래요."
"저기 위로 올라가 보쇼."
공인 한 명이 망설임 없이 위를 가리켰다. 고 과장이 이곳을 자주 드나든 모양이었다. 철제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수리소 내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사무실이 나타났다.
똑! 똑! 벌컥!
"안녕하십니까? SS재보험에서 나온 박강준 보험조사관입니다."
강준은 안에서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어! 제가 연락드렸던 고 과장님 여기 계셨네요?"
그들은 한창 자기들끼리 포커판을 벌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담요로 판을 덮는 중이었다.
"누…… 누구시라고요?"
"SS재보험의 업무 의뢰를 받고 나온 보험조사관입니다. 미리 연락을 드렸었습니다만…… 장안해운 관련해서 보험계약을 재검토하러 나왔다고요."
판을 벌인 이들은 셋이었다. 대한선급 고민재 과장과 선박수리소의 박 사장, 그리고 또 한 명은 아직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에서 정체가 밝혀졌다.
"아! 현무호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고 과장 왜? 우리 배가 뭐가 어떻다고?"
나머지 한 명은 장안해운의 군산과 스다오행 노선을 맡은 현무호의 선장 김갑수였다. 강준이 따로 찾아 나서려고 했던 이가 알아서 나타난 것이었다.
"잘됐네요. 김 선장님께도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배에 대해서?"
"네, 증축 과정에 대해서 의문점이 들어서요."
"내가 그 배만 20년째 몰고 있는데 문제는 무슨 문제?"
옆에서 듣고 있던 고민재 과장이 끼어들었다.
"화물 적재량 확보를 위해서 평형수를 더 늘이는 조치를 해 둔 상태입니다. 화물 고정장치도 마련하라고 해 둔 상태고요."
"그럼 현무호의 안전 검사 인증은 아직 안 난 상태인가요?"
"아뇨. 조건부로 인증을 내주긴 했습니다. 보완사항들을 이행하는 조건으로요."
고 과장은 자기 일 처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김 선장은 미묘한 표정으로 강준의 시선을 외면했다.
"SS재보험에서는 직접 그 보완사항의 이행 내역을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그 확인을 하기 위해 대리인으로 나온 거고요."
"하하! 제가 15년을 근무했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참나……."
슬슬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고 과장이었다.
"물론 보험계약은 신명보험과 SS재보험 간의 계약입니다. 하지만 재보험계약이 되지 않는다면 장안해운에 대한 원래의 보험계약은 요율이 올라갈 겁니다."
"뭘 확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보완사항을 이행을 위해 이렇게 선박수리소에서 선박을 고치고 있지 않습니까?"
강준은 테이블 위에 엎어 놓은 담요를 들치며 고 과장을 자극했다.
"근데 제가 보기엔 이해관계자 세 분이 모여 이렇게 오순도순 판을 벌이시는 걸 보면…… 영 불안해서 말이죠."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선박수리소 사장이 고 과장의 뒤적거리는 손을 제지했다.
"이봐요! 이거 뭐 하는 겁니까? 참나! 막무가내로 이러면 안 되지……."
판에서 따고 있었던 사람이 선박수리소 사장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만 원짜리 지폐를 급하게 챙겨 바지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어! 이거 판돈이 너무 큰 거 아닙니까? 불법 도박판으로 여기 있는 것들 전부 압수하겠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김학필 반장이 끼어들었다. 그들을 흔들어놓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들이닥쳐서 이거 뭐 하자는 겁니까!"
"이러면 안 되지…… 정식으로 영장을 가져오던가……."
말을 흘리는 김 선장에게 김학필이 수갑을 내보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현장에서 긴급체포 되고 싶으세요?"
그런 실랑이가 오갈 때쯤 강준은 선박수리소 박 사장의 기억을 읽었다.
그의 기억은 여전히 본인 사무실의 도박판 위에서였다. 하지만 강준이 모르는 또 한 명의 인물이 더 있었다.
[장 이사, 요즘 쏠쏠하다며?]
[뭐가요?]
[회사에서 챙기는 돈이 꽤 된다며?]
[아이…… 시발! 도대체 어떤 쥐새끼들이 회사에 있는 건지…… 제가 혼자 먹습니까? 이번에 현무호 건으로 박 사장님 돈 좀 챙겨드렸잖아요.]
선박수리소의 박형식 사장은 포커 카드를 돌리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알지, 알아! 내가 여기까지 온 게 다 장 씨 집안 때문인 거. 흐흐!]
박 사장은 옆에 앉은 김갑수 선장, 그리고 반대편의 고민재 과장을 돌아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자고로 도박판에서는 호구만 빼고는 모두 한패다.
카드를 받아든 비응해운 셋째 아들 장경훈의 미간을 일그러졌다. 벌써 수천만 원을 잃은 상황이었지만, 이번 판도 나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