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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7) (205/250)

205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7)

박상도의 기억은 윤미경과의 독대 장면이었다.

[윤 감사님…… 처음부터 이러려고 그랬던 거예요?]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최 씨 형제들 화합을 한번 기대해 봤었죠.]

[후후! 감사님도 속으로는 최진호, 최은정 형제들과 화해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던 거 아닙니까?]

박상도는 윤미경의 술잔을 채워 주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에 호응하듯 윤미경도 싫지 않은 듯 눈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러길래 이런 일을 애초에 만들지 말았어야죠.]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공사다망해서 잘 살피지를 못했습니다. 허허!]

[올해는 박 의원님께도 무척 중요한 해잖아요. 경선에서 승리하셔야죠.]

윤미경은 대선에 나가는 박상도에게 괜한 분란을 만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물론이죠. 밍싱그룹에서도 더는 일이 불거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이제 우리 리안그룹은 SH보험에서 완전히 손을 털게 됐어요. 박 의원님은 이제 어쩌실 거예요? 언론에서는 꽤 시끄럽던데요…….]

[드림씨테크 개발책임자인 이성환의 개인 일탈로 정리가 될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그게 아니잖아요. 대한뉴스와 하려는 그거 말이에요.]

[하하! 그 마케팅 연구소 건 말씀이신가요?]

의뭉스럽게 대꾸하는 박상도였다.

[여론을 움직이는 마케팅 부대…… 뭐 그런 건가요?]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시대 아닙니까? 새로운 변화에는 새롭게 대처해야겠지요.]

[박 위원님도 조심하세요. 밍싱그룹 사람들…… 생각보다 양아치거든요.]

[네, 저도 그 점이 조심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밍싱그룹 뒤에는 태자당 그룹이 있습니다. 지금 중국의 떠오르는 권력이죠. 앞으로는 동북아 시대지 않습니까?]

윤미경은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면서 맞받아쳤다.

[임정근 그 인간이 아주 질 나쁜 인간이에요. 중간에서 장난질도 많이 치고…… 우리 최 회장이 SH보험에 복귀하는 걸 막아선 것도 그 인간이고요!]

[그 점은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까 직접 말씀하셨듯이 리안그룹은 SH보험과는 이제 상관이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안 좋은 건 얼른 잊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박상도는 은근슬쩍 윤미경의 손을 잡았다.

[감사님, 우리 다음 주에 라운딩이나 같이 나가시죠. 자주 봐야 발전적인 얘기도 오가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월요일에 일정 한번 살펴볼게요.]

윤미경은 그런 박상도의 구애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어쨌든 우리 최진태 회장…… 다시 의원님 눈에 드는 거예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최 회장은 저의 진정한 후원자이신데요! 허허!]

강준은 박상도의 기억에서 빠져나오면서 당장 이성환 이사를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더라도 면회는 할 수 있을 터였다.

* * *

성동구치소.

강준은 민훈 변호사와 함께 면회를 신청했다. 드림씨테크의 개발책임자인 이성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면회실에 모습을 드러낸 이성환은 밖에서와는 완전 딴판인 얼굴이었다. 가발을 벗어 적나라한 민머리 두상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색한지 손으로 자신의 빈 윗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엔 앉았다.

"안에서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있나요? 못 죽어서 살죠……."

이미 모든 상황을 포기해 버린 듯한 이성환이었다. 그는 밍싱그룹에서 자신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이사님, 임정근은 못 빠져나갈 겁니다."

"……."

이성환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눈빛의 기류가 변했다. 임정근이 석방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이번 개인정보 유출사건에서 자신이 받게 될 형량이 줄어든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제가 석방될 것도 아니고……."

이성환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찾아온 밍싱그룹의 변호사가 떠올랐다. 변호사는 징역 3년을 선고받을 것이며 1년만 형을 살고 나면 가석방이 될 거라 말했었다.

강준은 그런 이성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설마 지금 밍싱그룹의 말을 믿는 건 아니겠죠? 최진태 회장도 가차 없이 버리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 이사님께는 뭐라 그랬습니까? 드림씨테크를 키워 줄 테니 앞으로 대표 이사를 맡으라고 했었죠?"

이성환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자신이 전에 발설하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강준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밍싱그룹 쪽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는 얘기였다.

‘설마 나 말고도 그런 식으로 흘리고 다녔던 건가……? 하긴 밍싱그룹이 나만 바라보고 있을 리는 없을 테니.’

구치소에 갇혀 있는 이성환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마음이 의심으로 확 번졌다.

"……."

"근데 이 이사님 지금 처지가 어떻습니까? 대표 이사는커녕 온갖 책임을 뒤집어쓰고 구치소에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는 전과자가 될 처지에 놓였고요."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 사람을 흔들어 놓는 이유가 뭐냐는 말입니다!"

이성환이 자신의 마음을 감추듯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임성근에게 모든 걸 지시받았다고 진술하십시오. 그리고 지금까지 SH보험과 다른 금융사에서 빼낸 고객 개인정보의 원본 파일을 어디로 누구에게 보냈는지도 진술해 주십시오."

한참을 강준과 민훈 변호사를 번갈아 쳐다보던 이성환이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함께 온 민훈 변호사가 대신 답했다.

"그래야 자력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지시를 받아 범행에 가담한 것과 본인의 금전적 이득을 위해 범행을 주도적으로 저지른 건 천지 차이죠."

"……3년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국내에 개인정보 유출 사례가 많지 않았고, 세간의 관심도 크게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법원에서도 보수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강준은 민훈 변호사에 이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거 보이십니까? 시사뉴스닷컴의 탐사보도 기사입니다."

강준은 면회실의 유리 칸막이 너머로 기사를 인쇄한 종이를 내보였다. 그 기사를 곰곰이 살피던 이성환의 눈에서는 희망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예상보다 훨씬 큰 세상의 반응에 당혹스러웠다.

"이 이사님, 이번 사건 쉽게 넘어가지 못할 겁니다. 괜히 독박 쓰지 마시고 저희랑 손잡으시죠?"

"박강준 소장과 손잡으면…… 나…… 난 어떻게 됩니까?"

"이 이사님이 지은 죗값만큼만 치르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남의 죄까지 뒤집어쓰시지 마시고요."

강준의 말에 고개를 떨구는 이성환이었다. 그의 약한 마음은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린 상태였다.

* * *

국내 굴지의 보험사가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후 벌어진 대형 게이트였다.

시사뉴스닷컴의 탐사보도는 임정근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뤘고, 그가 밍싱그룹의 핵심 관계자이자 홍콩의 흑룡회에 연루된 정황들을 보도했다. 그 탐사보도의 배경에는 홍콩 핑과일보 지미 리의 도움이 있었다.

의혹은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난리가 난 건 SH보험사의 수뇌부였다. 대표 이사를 맡은 백상현은 좌불안석이었다. 밍싱그룹의 파견 이사인 양양이 단단히 화가 난 채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상현은 분위기를 풀어보겠다는 듯 양양 이사에게 의례적인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컵라면 먹었습니다……."

통역을 통해 돌아온 답변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양양 이사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는 듯 양양 이사는 특유의 강한 원저우 악센트로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냈다. 백상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통역이 통역해 주기도 전에 대충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에서 SH보험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백상현 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노준석 과장을 노려봤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확대된 데는 홍보팀의 활동이 역효과를 낸 게 컸다.

"……그러게 적당히 달래라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드디어 양양 이사의 발언이 끝났고, 통역이 말을 전했다.

"모 회사인 밍싱그룹에서 이번 사태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답니다. 특히 구속된 임정근과 관련해서는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할 것을 백상현 대표님께 요구했습니다."

통역은 자신이 밍싱그룹의 임원이라도 된 듯 오만한 눈빛으로 백상현에게 양양 이사의 말을 전했다.

안경을 쓴 양양 이사는 연신 통역에게 뭔가를 더 덧붙이는 모습이었다. 그의 친척이라는 양량을 드림씨테크의 대표로 만드는 작업을 해 준 장본인이 바로 백상현이었다.

백상현은 일이 잘못되자 자신에게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양양 이사가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었다가는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운 그였다.

"임정근 건에 대해서는 제가 대한뉴스 쪽과 얘기해서 여론을 잠재울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SH보험을 정리해 버릴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저…… 정리라면…… 사업 철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매각을……."

"그건 아직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우선하여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을 겁니다. 희망 없는 사업에 돈을 계속 쏟아부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통역은 양양 이사의 말을 제대로 통역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백상현은 그런 통역의 태도는 점점 화가 났다.

마치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것처럼 말이었다. 그 미운 시누이는 일전에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간보고 다녔던 왕총의 통역사 출신 서광걸이었다.

"이봐요! 서광걸 비서! 밍싱그룹이 한국에서 사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정리해고를 운운합니까?"

"네? 백 대표님…… 지금 그 말 그대로 양양 이사님께 통역해도 되겠습니까?"

마치 협박하듯 되묻는 서광걸이었다.

"아니 그렇잖아요, 솔직히 드림씨테크 만들어서 개인정보 빼낸 게 제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정신이 어떻게 좀 된 거 같으신데……."

둘 간의 실랑이가 이어지자 양양 이사가 끼어들어 서광걸에게 물었다. 그리고 말을 전해 들은 양양 이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만 하자고 하십니다. 더 대화를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고 하시네요."

양양은 가져온 서류철을 책상 위에 탁탁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백상현이 손을 내저으며 애걸하듯 말했다.

"제가 대표로서 최대한 수습하겠다는 말씀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드림씨테크 건도 잘 정리하는 방향으로 손을 쓰겠다고요."

"백 대표님…… 제가 볼 때는 양양 이사님께서는 이제 대표님을 직접 처리하실 거 같은데요?"

"네? 이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직접 하신 겁니까?"

양양 이사가 쏟아놓은 말에 비해 훨씬 짧게 통역했던 서광걸이었다.

"아니요. 원래 중국말은 함축적으로 말하는 걸 선호합니다. 하지만 양양 이사님의 의중은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마치 자신을 통해 양양 이사와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서광걸이었다.

백상현은 지금 SH보험의 대표 직위에 앉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실력보다는 운이 크게 작용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서 비서님, 아까 제가 좀 흥분했는데 이해하시죠?"

"그럼요. 서로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제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서광걸은 자신이 기 싸움에서 이겼다는 듯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고개를 까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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