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6) (204/250)

204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6)

광역수사대 조사실.

"경감님, 검찰에서 임정근을 넘겨 달라는데요?"

"뭐? 검찰이 언제 냄새를 맡은 거야?"

"아무래도 윗선에서 움직인 모양입니다."

"임 청장이 지시한 거야?"

미간을 좁히며 되묻는 이진철이었다. 임철호는 종로경찰서장을 거쳐 광역수사대를 관할하는 경기 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했다.

그가 그동안 간절하게 원했던 청장의 자리에 오른 거였다. 다만 재수 없게 이진철이 소속된 광역수사대의 관할 청장으로 부임했다는 게 문제였다.

"네, 잔말 말고 넘겨주라는데요?"

"와~ 나 미치겠네!"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이진철이 당장이라도 청장실로 달려가려는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허 경사가 잽싸게 달려가 이진철을 말렸다.

"경감님, 이거 임정근이 보통내기가 아닌 거 같은데요?"

"왜? 뭐 들은 거라도 있어?"

"자기가 지 입으로 임철호 청장이랑 독대하게 해 달라고 했답니다."

"뭐? 미친 새끼가……!"

"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개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경찰청장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게요?"

"혹시 윗선에다가 작업이라도 쳐 놨나?"

"저도 그게 의심스럽습니다. 솔직히 박강준 소장 말대로 홍콩의 범죄조직이랑도 연관된 사람이라면…… 이건 얘기가 좀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이진철이었다. 홍콩에서 함정수사를 하다 손목이 잘렸던 김용식. 그는 아직도 감방에서 수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목을 자른 건 씬왕테크 자문위원이었던 김정근이었다. 그리고 강준은 김정근과 이번 사건의 임정근이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허찬 경사의 말대로 잘하면 임정근을 잡을 수 있는 한 방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허 경사, 김용식 지금 어디 교도소에 있지?"

"청주 교도소요. 한번 면회 가 볼까요?"

"이거 윗선에 보고 안 들어가게 허 경사가 단독으로 은밀하게 움직여 봐."

"네, 알겠습니다!"

복도에 홀로 남은 이진철은 시사뉴스닷컴의 함 기자 번호를 검색하다 이내 마음을 돌리고는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친분이 깊은 함 기자라고 할지라도 섣불리 정보가 새어 나갔다간 중국 국적의 임철호가 유야무야 풀려나서 출국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경감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 어디십니까? 잠시 뵙고 싶은데?"

―전 지금 국회입니다.

"네? 거긴 왜 가신 겁니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 좀 내려고 왔습니다.

"무슨 의견 말입니까?"

―밍싱그룹이 한국 금융권의 개인정보를 팔아넘기고 있는 걸 막아 달라는 의견요.

"아직 증거도 확실하지 않은데 왜 국회에서…… 평소 박 소장님답지 않으신데요?"

―어차피 증거를 갖다 줘도 알아서 다 폐기해 버리는데 우리가 새빠지게 수사해 봐야 소용이 없는 거죠! 가끔은 이렇게 우기는 게 필요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좌우간 그리로 가겠습니다."

―국회 입구입니다. 오실 때 시원한 음료수 좀 사 오시죠. 여기 더워 죽겠습니다.

아직 늦여름으로 해가 길 때였다. 이진철은 땡볕에서 고생하고 있을 강준을 생각하니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 *

SH보험사 사옥 앞.

성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피켓에 ‘개인정보 팔아넘긴 밍싱그룹 물러가라’와 ‘SH보험의 실체를 밝혀라’라는 두 가지 문구를 새겨왔다.

그 피켓을 준비한 건 애초부터 그들 모임에 합류했었던 김준혁이었다.

"SH보험의 고객 개인정보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어갔습니다. 이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직접 잡은 보이스피싱 조직 놈들 지금 어디 있습니까? 경찰은 왜 빨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겁니까?"

미리 연락을 받은 언론사들에서는 사회면 하나를 장식할 기삿거리를 구하러 모여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사건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직 디지털 개인정보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던 시점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보이스피싱이란 그저 재수 없는 일을 당한 남의 일일 뿐인지도 몰랐다.

우르르르.

사옥 앞에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몰려들고 언론사들까지 나서자 SH보험사의 내부직원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깔끔한 양복을 입은 홍보과의 직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자는 얼마 전까지 리치라이프의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노준석 과장이었다. 그는 백상현 신임대표의 추천으로 SH보험사에 입사한 거였다. 그가 백 대표의 새로운 측근이 되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내 비밀이었다.

노준석 과장은 어깨에 잔뜩 힘을 넣은 채 시위대를 향해 외쳤다.

"지금 여러분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저희 SH보험사를 비방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무분별한 비방을 더는 목도할 수 없음으로…… 이제부터는 저희가 입은 유·무형적 손실에 대해서 엄격한 법의 책임을 묻겠습니다!"

단단히 준비하고 나온 듯한 노준석 과장이었다.

하지만 노 과장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잡았던 김 씨가 분노한 듯 따발총 같은 말로 반박했다.

"임정근이라는 작자가 밍싱그룹 소속이라는 거 우리가 모를 줄 알아? 당신네 협력사인 드림씨테크의 실질 소유주 아니야!"

"저희 회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대로 된 근거로 말씀하세요. 아, 그리고 지금부터 촬영하는 건 저희가 명예훼손으로 소송할 때 법적 증거로 활용할 겁니다."

노준석 과장의 말에 홍보과 직원들은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임정근의 사무실에서 SH보험사의 회원 개인정보 원본 파일이 나왔는데도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요?"

목소리를 낸 사람은 언론사들 사이에 끼어 있던 함지훈 기자였다.

"어디 소속 기자시죠?"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입니다. 당시에 출동했던 형사들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압수했고, 그 하드 안에 원본 파일을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우리도 피해자라는 얘기 아닙니까? 개인정보가 유출된 건 저희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유출된 경위에 대해서 자체적인 조사 중이고, 그에 대한 책임도 질 생각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주장하듯이 저희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방어적인 답변으로 맞받아치는 노준석 과장이었다.

"그건 더 수사를 해봐야 할 일이죠. 이 사안이 지금 검찰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피해자분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시겠다고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고 있는 겁니까?"

함지훈 기자의 발언은 곧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기사 작성의 방향을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저희는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것에 강경 대응을 할 뿐입니다……."

"임정근 씨에 대한 소문도 이미 여러 곳에서 제보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SH보험사에 출몰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결정적으로 드림씨테크에 실질적인 경영자였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이게 다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임정근을 조사하고 있는 검찰이 조사 결과를 밝혀 줄 겁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고요."

홍보과에서 근무해 보지 않은 노준석 과장은 밀려드는 파도 앞에서 수그려야 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홍보 업무를 하는 그가 사안을 부정할수록 해당 사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더 크게 퍼져 나가는 법이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언론사 기자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SH보험사에 대한 항의가 단순히 약자들의 투쟁에 그치는 일이 아님을 눈치챘다.

이건 국내 금융사의 개인정보 유출 게이트였다.

* * *

여의도 박상도 국회의원 사무실.

"밍싱그룹 샤오빙 대표와는 몇 번 만난 적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이번 개인정보 유출 건이랑 엮는다는 건 좀 무리수가 있지 않나요?"

강준은 박상도를 직접 찾아왔다. 이진철에게 얘기한 대로 이제는 당사자와 담판을 지어야 할 때였다.

"윤미경 감사한테 들었습니다. 그간 밍싱그룹과 최진태 회장이 척져버렸더라고요…."

"흐음…… 그런 얘기는 또 처음 듣는군요."

능구렁이처럼 모른 체하는 박상도였다.

"근데 갑자기 밍싱그룹이 대주주인 SH보험과 최진태 회장의 주식교환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뭔가 다시 얘기가 오간 게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주식교환이라고요? 그거야 기업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아닙니까?"

"네, 흔히 일어나는 일이죠. 하지만 타이밍이 좀 묘하더군요. 그 얘기가 나온 직후에 검찰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광역수사대에서 조사받고 있던 임정근을 데려갔죠."

"……임정근이 누군가요?"

여전히 시치미를 떼는 박상도 의원이었다. 강준은 옆에 함께 동석한 조민구를 돌아봤다.

"여기 의원님 수석보좌관님께서 친분이 좀 있으시던데요?"

"네? 제가요?"

"꼭 제가 이런 것까지 보여드려야 하나요?"

강준이 내민 건 시사뉴스닷컴의 함 기자가 탐사 보도하려고 준비해 뒀던 자료였다. 그 자료의 사진에는 조민구 보좌관과 임정근이 만나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뭐야? 이게!"

날카롭게 추궁하는 박상도였다. 마치 철저하게 비밀로 하지 못했다는 걸 질책하듯이 말이었다.

"……아…… 이건 지역구 의원들 만나는 자리 같긴 한데…."

"그럼 지역구 의원들까지 밍싱그룹에 홀딱 넘어간 겁니까?"

강준이 되물음에 화들짝 놀란 조민구가 손사래를 치며 반박했다.

"지역구 관리를 하다 보면 어떤 똥파리들이 달라붙는지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온갖 이권에 얽힌 이들이 여의도에 한 다리를 걸쳐 놓으려는 곳입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다 관리를 하겠습니까?"

"박 소장, 우리 조 보좌관이 처신을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이걸 마치 무슨 대단한 유착인 양 얘기하는 건 침소봉대하는 꼴 아니겠어요?"

임정근과의 관계까지도 부정해 버리는 박상도였다. 그가 밍싱그룹에 받아온 은밀한 후원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노회한 정치인인 박상도는 일단 거짓말이 완벽히 드러날 때까지는 부정하고 보는 전략을 택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대중들의 관심은 줄어드니까.

"네 그러시겠죠. 하지만 이걸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지실 겁니다."

강준은 스마트폰을 꺼내 온라인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클릭했다. 동영상에서는 금감원장이 나와 이번 SH보험을 비롯한 금융사들의 고객정보 유출 건을 직접 조사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었다.

적당히 검찰 조사로 덮으려고 했던 박상도 의원으로서는 화들짝 놀랄 만한 뉴스였다. 검찰을 움직일 수는 있어도 금융감독원까지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사해야죠. 철저하게……."

말끝을 흐리는 박상도 의원에게 강준은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박 소장. 혹시 정치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정치요……?"

"그래요. 보니까 이번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도 박강준 소장이 주도했다고 하더군요."

"그건 제가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지…… 제 일신상의 뭔가를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뭐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하하!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적이 될 것 같으면 차라리 내 편을 만들어라. 박상도는 위기의 순간에 강준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강준이 내민 손을 맞잡은 박상도는 이미 그의 시커먼 속내를 들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