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5)
며칠 뒤 영호대교 인근 대로변.
인력사무소라고 써 붙인 간판이 시퍼렇게 붙은 곳이었다. 차량이 계속 지나다니는 곳이었기에 역설적으로 유동 인구가 적은 곳이기도 했다.
이진철 경감이 그곳에 매복 형사들을 두고 대기하고 있었다. 강준을 멀리서 알아본 이진철이 팔을 번쩍 들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 인력사무소가 임정근하고 연결이 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근데 임정근은 어떻게 꼬리를 잡으신 겁니까?"
며칠간 강준은 드림씨테크의 사무실 앞을 지켰다. 그리고 임정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려 그를 행적을 따라왔던 것이었다.
"임정근이 SH보험사 협력업체인 드림씨테크 이성환 이사와 접촉한 걸 확인했습니다. 이성환을 만났고 나서는 항상 허 경사님이 지목한 영호대교 근방으로 택시를 타고 오더라고요."
"드림씨테크라면…… SH보험사의 협력사가 아닙니까?"
"그렇죠. 개인정보가 드림씨테크를 통해서 흘러 들어갔을 겁니다."
"그…… 그건 엄청나게 큰일인데요?"
"일단 들어가시면 컴퓨터부터 압수하십시오. 그 컴퓨터 하드에 SH보험사의 개인정보의 원본 파일이 있다면 그것부터 차단해야 하니까요. 800만 명의 개인정보입니다."
그때 이진철의 무전기가 울렸다.
치이이익!
―경감님, 주차장에 임정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이 들어옵니다.
"다들 준비해! 용의자가 흉기를 쥐고 있을 수 있으니까 단독행동하지 말고 위급 시에는 총기 발포하도록!"
이진철 경감과 강준, 그리고 제이콥은 인력사무소 건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동시에 이미 잠복하고 있던 형사들이 차량에 나온 남자를 덮쳤다. 남자는 거친 소리를 내뱉긴 했지만,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소장님, 임정근이 맞죠?"
"네. 임정근 맞네요. 근데 의외로 순순히……."
그때였다. 건물 계단에서 인력사무소에 있던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하나둘 내려왔다. 하나, 둘, 셋, 넷…… 끝이 보이지 않았다. 좁은 계단을 통해 우르르 밀고 내려오는 조직원들이었다.
말로만 듣던 인해전술.
"야! 뭐 해? 발포해!"
탕! 타탕!
공중으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당탕탕! 우당탕탕!
"여기 영호대교 출동지역입니다! 긴급하게 지원 요청합니다! 몇 명이냐고요? 수십 명으로 보입니다! 당장 있는 인원들 부탁드립니다!"
반면 강준은 함지훈 기자에게 연락을 넣었다.
―소장님! 임정근 잡았습니까?
"잡는 중입니다. 근데 우리가 밀리고 있네요. 이쪽으로 빨리 오실 수 있나요? 오시면 재밌는 장면을 담으실 수 있을 거 같네요."
―혹시 지금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실 수 있으십니까?
"제 스마트폰이요?"
―네, 일단 그거로라도 찍으십시오!
강준은 스마트폰 세상이 왔다는 걸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함께 온 제이콥은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오! 제이콥 언제부터 찍고 있었냐?"
"저놈들 내려올 때부터요. 뭐 하십니까? 경찰들 안 도우십니까?"
"나이 많은 내가 엉켜야겠냐?"
"그럼 이거 촬영 그만할까요?"
"아니! 계속 촬영해. 저놈들 얼굴 한 명도 놓치지 말고!"
강준은 셔츠를 걷어 올리고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경찰이 뒤엉킨 곳을 향해 뛰어갔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 한번 해볼까?"
강준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뛰어올라 임정근의 등을 가격했다.
"아이 시발! 넌 뭐야!"
"우리 초면이지? 난 보험조사관 박강준이다."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강준의 주먹이 임정근의 턱을 가격했다. 두꺼운 목덜미의 임정근이었지만, 체중을 실어서 날리는 주먹에는 견디지 못하고 휙 돌아갔다.
"이진철 경감님! 두목이 여깄습니다. 얼른 수갑 채우시죠?"
"……가…… 갑니다……!"
이진철은 강준 쪽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달려드는 다른 놈들과 엉켜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퍽!
강준도 뒤에서 누군가가 날린 각목에 뒤통수를 맞았다. 하지만 강준이 쓰러지지 않고 뒤를 돌아보자 각목을 든 조직원은 오히려 겁에 질렸는지 뒷걸음질 쳤다.
강준은 뚜벅뚜벅 그에게 다가갔다.
"이 새끼가! 어디서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설쳐!"
강준은 박치기로 남자의 안면을 강타했다.
퍽! 퍼퍽!
강준이 머리로 몇 번 들이박고 나자 남자는 아예 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못 차렸다.
부아아앙! 부아아앙!
그때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고, 이내 수십 대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탄 사람들이 도로 위를 가득 메웠다. 그 오토바이는 퀵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들이었다.
"소장님,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그러게…… 근데 혹시 저 사람들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 소속 아닌가?"
"어! 그러네요! 지난번에 국회에서 모였던 사람들이에요!"
제이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두 눈은 모두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출동한 경찰보다, 임정근을 잡으러 온 보험조사관 강준보다 그들의 의지는 더 굳건했다. 수십 명에 달하던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여럿의 피해자들에 둘러싸인 채 몰매를 얻어맞고 있었다.
"박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뒤통수가 얼얼한데 아직 살 만합니다. 오! 저기! 임정근이 도망칩니다. 저 새끼가 무식하게 차로 밀어 버릴 생각인가 본데요?"
"다들 저 차 막아!"
임정근은 타고 온 차량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고, 재빨리 차를 출발시키려 했다. 주차장에 엉킨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릴 생각인 그였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렸고, 운전석에 있던 임정근은 가슴을 움켜쥔 채 핸들에 고개를 처박았다. 이진철 경감이 두 손으로 권총을 쥔 채, 운전석의 임정근을 분노 섞인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 * *
구로디지털단지 드림씨테크.
이성환 이사는 서류 가방을 한 손에 든 채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이제 당분간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주차장에는 이미 도주할 채비를 차량을 세워 놓고 있었다. 이성환의 서류 가방에는 사무실에서 챙겨 갖춰 나온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그 하드디스크 안에는 SH보험과 다른 카드사의 회원 개인정보 원본 파일이 들어 있었다. 이제 하드디스크만 파쇄해 버리면 증거는 영원히 남지 않을 터였다.
검찰수사.
박상도 의원실의 조민구 보좌관은 직접 이성환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었다. 경찰이 움직이기 전에 검찰이 먼저 움직일 거라고 말이었다.
[아마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수사를 질질 끌다가 기소유예로 끝낼 거니까…… 그때까지만 어디 좀 피해 있어요.]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하고요?]
[왜요? 이 이사님 없다고 회사가 어떻게 될까 봐서요? 걱정하지 마시고, 원본 파일이나 제대로 파기하세요.]
이성환은 조민구 보좌관의 말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회사를 장악하겠다는 야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곰곰이 돌이켜보니 처음부터 자신이 회사를 먹을 만한 그런 깜냥은 안 됐다고 생각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지…."
자신이 지금 떠난다고 해도 나머지 일은 실질적인 회사 대표인 임정근이 알아서 처리해 주리라 믿었다.
그가 이미 체포된 건 꿈에도 모른 채 말이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아내의 전화였다. 집에서는 이성환이 이직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자기야, 오늘 몇 시에 들어와?
"갑자기 며칠 출장을 갈 일이 생겼어."
―뭐? 왜 미리 얘기를 안 했어?
"일이 좀 그렇게 됐어……."
―자기는 항상 그러더라. 뭐든지 나하고 먼저 상의를 해야지…… 진짜 무슨 일인데?
통화음 너머의 아내는 이성환이 뭔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눈치챘는지 재차 물었다. 이성환은 그런 아내의 반응에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별일 아니야…… 지방에 클라이언트가 있어서…… 좌우간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이성환은 운전석에 앉아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일이 왜,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복기했다. 만약 자신이 SH보험사에 남아 있었다고 해도 좋은 꼴을 볼 순 없었을 것이다.
경영진으로 들어온 밍싱그룹 사람들과 맞섰다간 김우현 과장 대신 자신이 골로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불온한 목적을 가진 회사라는 걸 알면서도 옮긴 거나 나쁜 데 사용될 걸 알면서도 협력사의 고객 개인정보 파일을 빼돌린 것!
절대 거절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한 번 발을 담근 이상 뒷걸음질 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낙장불입이지 뭐…… 당분간 쉬고 온다고 생각하고 가자고…… 근데 어디로 가지? 젠장."
이성환은 일단 한적한 지방 도시에 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이성환은 시동 버튼을 눌렀다.
부르르릉! 부르르르!
시동을 걸자 헤드라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급하게 차 한 대가 주차장의 바닥을 긁으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이성환의 눈앞에 밴 하나가 급하게 달려와 멈춰 섰다.
거의 이성환의 차량에 부딪힐 뻔한 밴의 문이 열리자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운전석의 이성환을 둘러쌌다.
"……시발…… 이거 뭐야……!"
급박한 상황에 턱이 덜덜 떨리는 이성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의 정체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길거리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김우현 과장처럼 이번에는 자신이 린치를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검찰입니다. 이성환 씨 잠깐 문 여시죠."
다행히도 그들은 건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중 한 명이 운전석 유리창에 검찰 배지를 들이밀었다.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이성환은 머릿속에 스치는 게 있었다. 그건 자기가 들고 탄 서류 가방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개의 하드디스크!
천만 명이 넘어가는 개인정보 자료가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가 검찰에 넘어가면 이성환은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
"얼른 문 여세요! 당장요! 이성환 씨 당신을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현장에서 체포합니다!"
이성환은 문을 열지 않은 채, 대포폰으로 조민구 보좌관의 번호를 찾았다. 하지만 신호음이 여러 차례 울려도,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삐 소리가 나면 음성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상대방이 통화를 거절할 때 나는 메시지였다. 이성환은 그제야 뭔가 일이 대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자신의 옆에 놓인 하드디스크 증거, 그리고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대포폰. 뭐 하나 불법 아닌 게 없을 정도였다.
"시발…… 좆됐네……."
이성환은 자신을 안심시키던 대한당 당 대표 박상도 의원과 그의 보좌관 조민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아니라고 생각해도 기댈 곳은 거기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벌컥!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시죠?"
믿는 구석이 생기자 갑자기 뻔뻔해진 이성환이었다.
"증거물로 차량 내부 수색부터 하겠습니다."
"여기 하드디스크가 들어 있습니다!"
서류 가방부터 뒤지던 검찰 조사관이 소리쳤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이성환이 스스로 추려서 가져나온 격이었다.
"이제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요? 조사부터 받으셔야지."
검찰 조사관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성환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