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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4) (202/250)

202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4)

대한은행 창구.

―분명히 여기 은행 직원이라고 했다니까요! 대출을 내려면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해서 누른 것뿐인데…… 갑자기 계좌에 있던 돈이 빠져나가더라고!

―우리 어머니가 보이스피싱을 당했어요! 당장 이체 취소해 주세요! 외국은행도 아니고 같은 국내 은행인데 그게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평생 모은 재산이야…… 우리 아들 결혼할 때 주려고 모아 놓은 돈인데…… 흑흑! 이제 난 어떻게 사나……! ……엉엉…….

갑자기 들이닥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SH보험의 신규 보험계약자들이라는 점이었다.

경찰은 사이버 수사대를 통해 신고를 받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송금계좌의 주인을 찾는 것뿐이었고, 보이스피싱의 피해 금액을 되돌릴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반면, 은행은 송금된 계좌주의 동의를 얻어 이체된 금액을 되돌릴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계좌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이 그런 거에 동의해 줄 리 만무했다.

결국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중간에서 발을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그러지 말고 국회로 갑시다!

―맞아요. 이대로 죽느니 꿈틀거리기라도 해보자고요!

―1인 시위라도 합시다. 내 피 같은 돈 빼 간 놈들…… 지옥 끝까지 따라갈 겁니다!

피해자들은 온라인에서 뭉쳤다. 공통의 적이 생기면 구심점이 생기는 법이었다. 온라인 카페 회원 9천 명. 별로 안 되어 보이는 회원 수지만, 실제 피해를 본 사람과 간접 피해를 본 사람까지 죄다 모여든 거였다.

물론 그 배후에는 김준혁과 제이콥이 있었다. 둘은 SH보험 개인정보 유출로 의심되는 보이스피싱 범죄들의 사건들을 취합했고, 그들을 하나둘씩 끌어 모았던 것이었다.

국회는 머릿수가 힘인 곳이었다. 피해자 몇 명만 단출하게 찾아가면 아무 관심도 가져 주지 않는 국회였지만, 100명이 넘는 인원에 각자 큼지막하게 인쇄된 플래카드와 일사불란한 구호를 외치는 피해자들의 행렬이 등장하자 관심이 집중됐다. 국회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관심을 두는 이들은 국민의 관심사를 끌 이슈를 선점하려는 국회의원 보좌진들이었다.

민생현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잡아야 하는 이슈였다. 특히 보이스피싱 같은 현안은 반대 목소리가 없는 민생현안이었다. 일단 발 하나 걸치고 강경 목소리를 내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건 자동이었다.

며칠 뒤, 여당인 대한당과 야당인 민한당에서 거의 동시에 간담회가 개최됐다.

그리고 그 간담회에 김준혁이 초대됐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의 운영자로 말이었다.

"문제는 개인정보가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정부에서는 왜 막지 못하고 내버려 두냐는 거죠!"

"그럼 김준혁 씨는 무슨 대책이라도 생각해 두신 게 있으세요?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면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처벌이 너무 약했습니다. 외부의 해커에 의해 벌어진 개인정보 유출 건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부관리 문제로 대부분 불거졌죠. 벌금 몇천만 원만 내면 끝나는 문제니까 보안에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겁니다. 그 분야에 투자도 안 하고요."

옆에 있던 피해자 모임 회원 중 한 명도 나섰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걸 알게 되면 바로 은행에서 조치를 할 수 있게 해 주셔야 합니다. 범인이 돈을 출금해 가기 전에 보이스피싱 계좌를 정지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고요!"

"좋은 지적이네요. 제가 시중 은행장들에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대한당의 초선 국회의원은 부드러운 태도로 피해자 모임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간담회는 언론 기사로 재생산됐고, 양당의 국회의원은 관련 인터뷰까지 하면서 법안 상정을 했지만, 달라지는 건 보이스피싱에 대한 처벌 수위뿐이었다.

김준혁이 제기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집단소송 문제는 몇 건의 과거 유출 사례가 있는 카드사들의 국회 로비에 막혔다.

현실적으로 제일 절실했던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의 신속한 동결 이슈도 금융거래의 혼선을 빚게 된다는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으로 단번에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 * *

박상도 국회의원실.

조민구 보좌관은 초조하게 스마트폰을 매만졌다. 밍싱그룹 임정근과 연락할 수 있는 대포폰이었다. 여차하면 한강 물에 던져 버리고 깔끔히 통화증거 따위를 없앨 수 있는 폰이었다.

띠링!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 충분히 보안에 신경 써서 진행했기 때문에 만약 문제가 된다고 해도 드림씨테크 선에서만 정리하면 됩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조민구였다. 갑자기 불거진 SH보험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에 대해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덕분에 화들짝 놀란 박상도 의원이 닦달한 사람은 자신의 수석보좌관인 조민구였다.

벌컥!

당 최고의원 회의가 끝난 박상도 의원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조 수석, 나 좀 보자."

"네, 알겠습니다."

조민구는 긴장한 기색으로 박상도 의원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문을 굳게 닫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거야!"

"송구합니다. 이게 누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 뒤에서 조종하는 것 같습니다……."

"조종? 그게 누군데?"

"리안그룹의 윤미경 감사가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뭐……? 윤미경?"

윤미경이라는 말을 듣자 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박상도였다. 왠지 자신이라면 그녀를 직접 설득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직접 한번 만나 보지."

"의원님, 윤미경 감사가 이번에는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모양새입니다. 괜히 섣부르게 만나셨다가 빌미만 주시는 거 아닌지……."

"이봐, 조 수석.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이 많아졌어?"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버를 좀 했습니다."

박 의원의 말 한마디에 고개를 수그리는 조민구였다. 어쩌면 그런 태도가 조민구를 10년이 넘게 보좌관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한 건지도 몰랐다.

"대한뉴스 쪽은 어때?"

"아직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뭐……? 이런 시발 새끼들이!"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투로 변하는 박상도였다. 대한당 대표였던 박상도 측에서 드림씨테크의 DB를 구매하려고 한 건 대한뉴스와 함께 사이버 댓글부대를 창설하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우리만 독박 쓰게 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나만 죽을 거 같아? 대한뉴스 조용호 회장이랑 약속 잡아. 내가 만만한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끝까지 물고 뜯는 늑대 새끼라는 걸 보여 주지!"

"그리고 의원님……."

"또 뭐야?"

"이번 일에 박강준이 또 붙었습니다."

"그 자식은 왜 또 걸리적거리는 거야?"

"윤미경이 박강준에게 이번 일 처리를 맡긴 모양입니다. 이미 SH보험 김우현의 사망 사건에서도 냄새를 맡은 것 같고요."

곤혹스러운 표정의 박상도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라이터를 다시 내려놨다.

"조 수석, 임정근 그 사람 말이야. 어떨 거 같아?"

"최대한 연관성을 지워야 합니다. 나중에 발목 잡힐 수 있으니까요."

"그게 아니라 밍싱그룹에서 입지가 어떠냐는 거야? 이런 식으로 계속 사고만 쳐대면 우리가 그쪽이랑 일을 할 수 있겠냐는 거지."

"샤오빙 회장과 직접 선을 대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항상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장난질을 쳐대거든……!"

"임정근 주변을 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래, 근데 조 수석. 당장 뭘 어떻게 하지는 말라고,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게 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니까."

"네. 의원님!"

박상도는 자신의 은밀한 후원자가 된 밍싱그룹에 불만이 컸다. 하지만 막대한 정치 자금을 생각하면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조 수석, 내가 사람을 쓸 때 원칙이 뭔지 알아?"

"아뇨……."

조민구는 전에도 들은 얘기이긴 하지만,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모른 척했다.

"자고로 사람은 말이야…… 길을 들여야 하거든. 그래서 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써."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밍싱그룹도 마찬가지야. 제 놈들이 얼마나 잘나고 돈이 많은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안 쓰면 그만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박상도는 자신이 자금지원을 받는 처지였지만,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조민구는 그런 박상도의 벼랑 끝 전술이 그를 대선까지 이끌어 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제가 임정근은 잘 길들여 보겠습니다."

"그래, 양아치 같은 놈들이니까 너무 신사적으로 대해 주지 말라고……."

"네, 의원님!"

조민구는 의자를 뒤로 한껏 젖힌 박상도 의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 * *

을지로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실.

"소장님, 오토바이 매물 등록자 찾았답니다."

"그래? 체포했대?"

"아뇨. 버려진 오토바이를 훔쳐서 올린 거랍니다."

김우현의 살인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근데 말입니다. 그 오토바이가 발견된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어딘데? 영호대교 아래랍니다. 인근에 조선족 거주지가 있는 곳이요."

"흐음…… 임정근이 지시한 게 분명한데 말이야."

기억을 읽는 능력을 가진 강준이었지만, 기억의 당사자를 찾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진철 경감은 뭐라 그래?"

"계속 인근의 CCTV를 찾아보겠답니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김준혁은 현장 조사를 나가자는 얘기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에이, 설마 또 밑바닥부터 샅샅이 뒤지자는 말씀은 아니시죠? 무슨 비빌 만한 언덕이 있으신 거죠……?"

"아니, 없어."

"……에이 소장님, 전 저번에 보이스피싱 집단소송 관련해서 정리할 자료들도 산적합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제이콥!"

갑자기 화살이 김준혁의 옆에 있던 제이콥에게로 향했다. 긴장한 제이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요?"

"그래 거기 김준혁 말고 너밖에 없잖아?"

"차라리 잘됐네요. 아무래도 전 전산 업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

"좀이 쑤셔서요. 종일 모니터 보고 있으려니 눈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네요."

그 말을 들은 김준혁이 제이콥을 보고는 억울한 듯 말했다.

"우와! 얘 봐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는데? 시간마다 먹을 거 챙겨 줘. 힘들면 바로바로 퇴근시키고 톡도 한번 안 보냈는데…… 너 이러면 정말 섭섭하다!"

"알죠. 그간 업무 가르쳐 주신 건 분명 살이 되고 피가 됐을 겁니다. 근데 전 외근이 체질인 걸 어떻게 합니까?"

제이콥은 김준혁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사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잘됐다. 실은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찾았어. 허 경사가 잠복 끝에 잡은 말단 꼬리의 윗선이야. 근데 그 윗선이 출몰하는 곳이 아까 김준혁 실장이 얘기했던 영호대교 근방이고."

제이콥은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각오하자. 그놈들은 좀 거칠지도 몰라."

"파키스탄 탈레반들과도 맞서 싸웠던 접니다."

"제이콥 그건…… 싸운 게 아니라 협조를 했던 거 아닌가……? 좌우간 가자!"

"그럼, 김 실장님! 전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제이콥은 김준혁에게 수고하라는 듯 거수경례를 하고는 강준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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