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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2) (200/250)

200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2)

여의도 SH보험 본사.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인도와 인접한 도로에서는 차량이 지나다니며 빗물을 튀기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한꺼번에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비슷한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준은 그중에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를 발견했다. 그가 바로 이희성 이사가 알려 준 SH보험의 서버 담당자였다.

"김우현 과장님?"

그에게 다가가 이름을 부르자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꾸벅 인사했다.

"이 이사님께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박강준 소장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

"보는 눈들이 많아서…… 자리를 좀 옮겨서 얘기할까요?"

김우현은 불안한 눈빛으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트럭 한 대가 속도감 있게 다가오더니 강준 일행을 위협하듯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는 큰 길가에서 한 블록 들어간 이면 도로의 한 카페로 강준을 안내했다. 그리고 커피가 나오자마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 회장님께서 어제 다녀가셨습니다."

"SH본사 건물에요?"

"아뇨, 밖에서 만났습니다."

"서버 관리자라면…… 고객들의 DB에 접근이 자유로우시겠네요."

"그렇죠.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근데 얼마 전부터 엉망이 됐습니다. 저도 접근 권한을 차단당했죠."

"접근을 차단당해요?"

"네, 밍싱그룹에서 파견된 양양 이사가 기존의 서버 관리자들을 자기 사람들로 다 대체해 버렸습니다."

"그럼 김우현 과장님은 지금 무슨 업무를 하고 계십니까?"

한숨을 내쉰 김우현은 한탄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은 프런트엔드(front―end) 쪽 담당자로 보직이 바뀌었습니다. 아…… 그러니까 서버 쪽의 DB를 다루는 거 백엔드(back―end)라고 하거든요. 반대로 프런트엔드는 웹에서 보이는 부분을 말하는 겁니다."

강준은 프런트엔드가 무슨 뜻인지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중요한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줄어들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네, 근데 더 심각한 일은 저와 함께 서버를 관리하던 한국인 직원들이 전부 프런트엔드 쪽으로 밀려났다는 겁니다."

"그럼…… 지금 누가 서버 관리를 하나요?"

"밍싱그룹에서 직접 파견한 인력들이 한다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홍콩에 있는 똑같은 IT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더라고요. 이건 결국 국내 보험사의 DB를 해외 외주업체에 맡겨 버린 격입니다."

"외주업체라……."

"말이 되나요?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긴 격입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김우현이었다.

"박 소장님, 현재 SH보험의 고객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한국보험 시절부터 따지면…… 꽤 많지 않을까요?"

"800만 명입니다! 800만 명이오!"

생각보다 많은 방대한 규모의 DB였다.

"밀려난 다른 직원들과는 얘기를 해보셨나요?"

"다들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고 어수선합니다……."

"김우현 씨는 근데 왜 이런 문제를 제기하시려는 겁니까?"

"그야…… 800만 명의 개인정보가 털리는 데 그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명색이 서버 관리자였는데……."

"단지 공명심에서요?"

날카로운 강준의 질문에 미간을 좁히는 김우현이었다.

"저도 뭘 바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최진태 회장이 김 과장님께 뭘 약속했습니까?"

"약속하긴 뭘 약속합니까! 전 제 직장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김우현 과장은 이미 4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였다. 어쩌면 다른 곳의 서버 관리자로 이직하기에는 애매할지도 몰랐다.

"제가 무례했군요……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잠시 어색함이 오갔다.

"함지훈 기자님께서 SH보험의 협력업체도 바뀌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함 기자님은 그 협력업체가 DB유출의 실행자라고 보시는 거 같다며……."

"네, 저희도 경고를 여러 번 했었습니다. 원래 보안 규정상 협력업체가 서버실로 들어올 때는 디지털기기의 반입과 반출이 안 되거든요."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 보셨나요?"

"여러 번 했었죠. 저희 쪽에서 USB를 가지고 들어오는 걸 발견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김우현의 말은 정황증거가 되긴 했지만, 개인정보 유출의 결정적인 증거로는 불충분했다.

"물론 동료분들이 업무에서 배제된 건 알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아뇨!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김우현은 목이 타는지 시켜 놓은 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보통 외주업체에 DB 관리를 맡길 때는 DB를 암호화해서 맡깁니다. 그렇게 가공된 결과물을 본사에서 다시 원본 DB로 변환해서 적용하는 거고요."

"근데 SH보험이 외주업체에 맡길 때는 그렇지 않았군요?"

"저도 이제는 어떤 형태로 SH보험의 DB를 보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대충 소문은 전해 들었습니다."

"김 과장님은 그걸 어떻게 알게 되셨는데요?"

"서버팀의 직원 한 명이 그 외주업체로 이직했거든요."

"아…… 그렇게 이어지는군요."

"이 바닥이 생각보다 좁습니다."

김우현이 이제야 이해하겠냐는 듯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외주업체가 어딥니까?"

"고객의 카드 이용자 현황을 전문적으로 분석해 보안시스템을 개발하는 ‘드림씨테크’라는 곳입니다."

강준은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김우현의 말대로라면 일단 드림씨테크라는 곳을 우선 조사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근데, 박강준 소장님. 더 이상한 건 뭔지 아십니까?"

"그게 뭡니까?"

"회사가 만들어진 지 3개월밖에 안 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회사 법인 대표 이름이 ‘양량’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요?"

"들어봤다면……?"

"SH보험에 파견된 밍싱그룹 양양 이사! 전 분명히 그 사람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시만요. 같은 양 씨의 중국인이라는 거 때문에요?

개발자 출신의 명석한 두뇌를 가진 김우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심정적인 의심이 논리를 뛰어넘었다.

"네, 분명합니다! 박강준 소장님께서 그걸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최진태 회장님께서도 일을 맡기신 걸로 알고 있고요."

갑자기 할 말을 잃은 강준이었다. 하지만 김우현의 말대로 드림씨테크라는 개발사를 조사해 볼 필요는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김우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지하철을 타고 5호선 여의도역에서 내려 빌딩 숲을 향해 걷는 길이었다.

어제의 비가 다음 날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승강장에서부터 지상까지 올라와 봐도 비는 여지없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펄럭!

김우현은 커다란 장우산을 펼쳐 들었다. 비가 ‘후두두둑’ 우산 위로 쏟아져 내렸다. 지하철역에서 SH보험사 본사까지는 약 300미터. 김우현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철퍽! 철퍽!

바람에 휘날리는 비를 피하려 김우현은 우산으로 앞을 막으며 걸어 나갔다. 자연스레 시야가 가려졌지만, 익숙한 길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철퍽! 철퍽! 철퍽!

그렇게 김우현이 절반을 더 걸었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펼쳐진 우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갑자기 앞쪽에 검은 물체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퍼억!

그 순간, 그 검은 물체가 김우현의 우산 안으로 들어와 몸을 부딪쳤다. 검은 물체라고 생각했던 건 헬멧을 쓴 검은 옷의 남자였다.

푹! 푸욱! 푸욱! 푸우욱!

휘청거리는 김우현의 복부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박혔다. 손잡이가 천으로 둘둘 묶인 길 회칼이었다. 그 회칼은 이내 김우현의 가슴으로 이동해 살점을 관통시켰다.

푸슉! 푸슉! 푸슈슉!

심장으로 들어가는 대동맥이 파열되자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바닥의 빗줄기와 뒤섞여 선명하게 붉은 피는 이내 흐려졌다.

"……왜…… 왜 이러는 거야……."

김우현의 질문에 헬멧을 쓴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일에만 충실하겠다는 듯. 남자는 김우현이 고꾸라질 때까지 칼질을 계속했다.

철푸덕!

맥없이 쓰러진 김우현을 확인하자 남자는 도로를 향해 뛰었고, 그가 손을 들자마자 오토바이 한 대가 이내 인도 옆으로 멈춰 섰다.

헬멧의 남자는 그 오토바이를 타고는 유유히 여의도에서 사라졌다.

경찰의 CCTV에 그 모든 게 찍히긴 했지만, 헬멧을 쓴 남자의 신원도, 오토바이의 번호판도 확인할 수 없었다. 철저히 계획된 암살이었다.

* * *

국과수 부검실.

강준이 허겁지겁 도착하자 이미 이진철 경감과 성원화재 이희성 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SH보험 김우현 과장이 갑자기 피살됐습니다."

"피살요……?"

"네, 칼에 찔린 자상만 서른 군데입니다."

옆에 있던 이희성 이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강준에게 물었다.

"어제 박 소장과 만났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드림씨테크라는 외주 개발업체를 얘기하더군요. 그 업체 사장의 이름이 양량인데…… SH보험 양양 이사와 연관이 있는 거로 생각하더라고요."

"역시 그랬군."

"이 이사님은 뭐 알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며칠 전에 박상도 의원에게 연락이 왔어. 한번 만나자고 해서 나가 봤더니 결국 예상했던 대로 최진태 회장을 견제하는 얘기였지……."

"우리 쪽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네요."

이희성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이 바닥에 비밀이란 건 없어. 서로 패를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뿐이지."

예상했지만 본인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내부에서 정보가 새고 있군요."

"그게 아니라면 직접 정보를 기가 막히게 수집하고 있던지……."

누군가가 이쪽 진영을 사찰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긴 하지만 강준은 여전히 최진태를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인격이라면 내부고발자가 될 수도 있었던 김우현의 신변을 필사적으로 지켜 주진 않았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이진철은 둘에게 방호복을 입혔다. 직접 사체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두꺼운 철문을 열자 사진기를 들고 사체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 부검의의 모습이 보였다.

"경감님 오셨습니까?"

"김 박사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분들이시군요."

"네, 간단한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해서요…… 저희도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이라서요."

부검의는 이미 해부 과정을 마쳤고, 적출했던 장기를 다시 몸속에 넣고 봉합한 상태였다. 가슴으로부터 배 한가운데까지 난 검은색 실밥 자국이 부검의 과정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여기 복부에 열여섯 번, 그리고 가슴에 일곱 번, 마지막으로 방어흔이 있는 팔에 여덟 번입니다. 치명상은 바로 여기! 왼쪽 가슴 바로 아래 부위 보이시죠?"

"심장을 건드렸나요?"

"심장 바로 아래에 연결되는 대동맥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출혈이 낭자했을 거고…… 고통도 상당했겠네요. 이 정도면 현장에서 몇 분 만에 바로 사망했을 겁니다."

"흉기는 어떤 걸로 예상하십니까?"

"바로 그 점이 특이해요. 보통의 회칼처럼 길쭉한데 폭이 상당히 좁아요. 이런 칼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거든요."

부검의가 이진철 경감을 부른 이유는 이것이었다.

"범인이 직접 제작했다는 거군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강준은 처참한 김우현의 시신을 바라봤다. 평범했던 직장인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남자의 억울한 죽음.

강준은 반드시 범인을 잡아 주기로 했다. 마치 사망한 김우현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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