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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1) (199/250)

199화. 개인정보 유출사건 (1)

강준이 을지로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함지훈 기자로부터 전화 연락이 와 있었다.

―박 소장님, 오늘 점심에 시간 되십니까?

"함 기자님은 뭐 드실 건데요? 전 갑자기 초밥이 땡기네요. 이왕 한 끼 먹는 거 회전 초밥 어떻습니까?"

―회전 초밥은 아니지만, 실은 제가 일식집에 예약을 해뒀습니다.

"좋죠. 좀 있다 뵙겠습니다!"

함 기자가 보자고 한 이유를 강준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오미희, 오성희 자매의 위장 사망 사건이 떠들썩하게 끝나자마자 묵혀 뒀던 SH보험사의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사건의뢰를 하기 위한 것이리라.

……근데 왠지 느낌이 싸했다.

"맨날 포차에서만 만나다가 갑자기 일식집이라니……."

그리고 강준의 그런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예약된 방의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강준에게 전혀 반갑지 않은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리안그룹 최진태 회장의 친모 윤미경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주주총회의 결정적인 순간에 최진태 회장에게 등 돌렸던 이희성 이사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어서 와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강준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고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이희성 이사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는 듯 입 밖으로 짧게 웃음소리를 냈다.

"근데 함 기자님 자리가 좀 갑작스럽네요?"

"죄송합니다. 박 소장님께 미리 말씀드리면 자리에 오시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이건 좀……."

평소 같지 않은 함지훈 기자의 행태에 강준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한 이유에 대해 얘기를 좀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제가 먼저 박강준 소장님을 뵙자고 청한 거였어요. 물론 이희성 이사님께서 함 기자님을 먼저 소개해 주긴 했지만요."

윤미경 감사가 먼저 말을 이어 갔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뭔가 도움이 필요해서 함 기자와 이희성 이사를 만났다는 거였다.

윤미경 감사와 이희성 이사. 이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둘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나마 성원그룹 임원들 가운데 윤 감사와 제일 말이 통하는 사람이 이희성 이사일 터였다.

"한국보험을 밍싱그룹에 넘기셨으니 원하던 바를 이룬 거 아니셨나요?"

"일부 지분을 매각했을 뿐이죠."

이미 회사의 주인이 바뀌어 한국보험이 SH보험으로 간판까지 바꿔 단 상황이었다. 하지만 윤 감사가 말하는 뉘앙스는 마치 회사를 다시 찾아오겠다는 것 같았다.

"SH보험이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국영기업들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다 국내 보험계약자들의 보험금 아닙니까?"

"한국보험을 다시 찾아오려고 해요."

윤미경의 말은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밍싱그룹에 넘어간 한국보험을 되찾아오는 것!

이희성 이사가 끼어들어 설명을 이어 갔다.

"박 소장, 고인이 되신 최창식 회장님께서 가지고 있던 한국보험의 전환사채 물량이 남아 있었어. 이번에 유산상속 절차에 따라 최진호 회장과 최은정 이사, 그리고 최진태 회장이 지분을 나눠 갖게 됐는데……."

"잠시만요. 복잡한 지분 문제는 저는 잘 모릅니다.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준은 이희성 이사의 말을 막았다. 자신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에 대해서만 알고 싶을 뿐이었다.

윤미경 감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린 밍싱그룹에 속았어요. 최 회장을 다시 복귀시켜 주겠다고 해 놓고 인제 와서 말을 바꾼 거죠."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으신 거군요."

"솔직히 다 말씀드리죠. 리안그룹이 연남시 도시개발을 할 때 은행들로부터 엄청난 자금을 차입했어요. 그게 지금은 부담으로 돌아온 거고요."

"한국보험을 되찾아온다고 해도 리안그룹의 재무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텐데요?"

"리안그룹은 이제 리안건설과 리안호텔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될 거예요. 최진호 회장과 최은정 이사가 우리 진태를 도와준다면요……."

다시 이희성 이사가 보충 설명을 이어 갔다.

"최진태 회장님은 본인이 가진 한국보험의 잔여지분과 상속 지분을 다른 두 분께 넘기실 생각이야. 대신 해당 지분에 걸맞은 자금을 성원그룹으로부터 지원받기를 원하시는 거지."

"최 씨 형제들이 이제라도 뭉쳐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선대 회장님의 뜻이기도 하고요."

일전에 성원그룹을 먹겠다며 골육상잔을 뒤에서 부추기던 윤미경 감사였다. 그런 그녀가 뻔뻔하게도 이제는 형제간의 우애를 내세우며 손을 내민 것이었다.

"그래서 제게 밍싱그룹을 공격하는 데 일조해 달라…… 이런 말씀을 하려고 부르신 거겠죠?"

윤미경 감사가 강준을 바라보며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냥개를 보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는 법이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박 소장님, 저도 처음에는 이런 조합이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외국계 자본이 SH보험을 망가뜨려 먹는 걸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강준의 옆자리에 있던 함 기자가 불편한 자리를 만든 것을 해명했다. 어쨌든 명분은 그럴듯했다. 궁색한 동기가 어떻든 간에…….

"함 기자님, 전에 말씀하신 개인정보 유출 건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내부에서 들리는 정보가 있습니다. 홍콩의 IT업체로 국내 보험계약자들의 개인정보가 넘어가고 있다는 정보 말입니다."

"공개적으로 불거진다면 지금의 SH보험사로서는 대규모 손해배상이 불가피하겠군요."

"네, 압박을 받으면 다시 SH보험사를 뱉어 내려고 할 겁니다. 그때를 이용해 성원그룹에서 SH보험사를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최선입니다."

"적대적 M&A군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요."

그때, 음식이 나왔고, 강준은 아침에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초밥을 한 개 입에 욱여넣고는 우물거리며 되물었다.

"아시다시피 전 이제 자영업자입니다. 사건에 관해서만 얘기하시죠. 제가 해야 할 일이 뭔가요?"

이희성 이사가 말하려는 걸 윤미경 감사가 막고는 직접 입을 열었다.

"SH보험사에서 고의로 보험계약자들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증거를 잡아주세요. SH보험사의 하청 개발업체를 전부 조사해서요!"

"밍싱그룹을 틀어쥘 만한 뭔가를 가져오라는 거군요."

"어쩌면 이번 기회가 박강준 소장의 보험조사관으로서의 명성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될지도 몰라요."

강준은 고추냉이를 한껏 찍은 회 한 점을 입에 넣고는 우물거렸다. 고추냉이의 맛이 올라오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서 얼마를 주신다는 겁니까? 이번 사건에?"

돈 얘기가 나오자 윤미경의 옆에 있던 이희성 이사가 대신 나섰다.

"박 소장은 얼마를 원하나? 먼저 말해 보게."

"제가 이제 입이 여러 개라서요. 직원만 세 명입니다."

"그러니까 원하는 금액이 있을 거 아닌가?"

"정말 그래도 됩니까?"

"한 입 가지고 두말하겠나? SH보험으로 바뀐 한국보험을 되찾아오는 일이네. 돈 몇 푼에 왈가불가할 일은 아니지."

"10장 주십시오. 10억!"

강준은 고개를 들고 둘의 표정을 살폈다. 순간 당혹스러운 눈치였지만 애써 티 내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옆자리에 있던 함지훈 기자는 ‘헉’하는 외마디 감탄사를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왜요? 그 금액이 너무 많습니까?"

윤미경 감사는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녀가 강준을 찾아온 이유는 밍싱그룹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강준의 명성을 앞장세워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SH보험사를 벼랑 끝까지 몰 생각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사냥개인 나를 버리겠지…….’

"아뇨, 그 정도는 부를 줄 알았어요. 박강준 씨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었으니까요."

"역시 듣던 대로 통이 크십니다! 흐흐!"

강준은 홀로 회를 한 점 붉은 초장에 찍어 태연히 입에 넣었다.

"자자! 다들 이렇게 의기투합했으니 술도 같이 한잔하자고."

이희성 이사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는 듯 정종을 강준의 술잔에 직접 따라줬다.

* * *

을지로 포차 골목.

함지훈 기자와 강준은 그날 저녁 다시 만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사전에 말도 없이!"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니요?"

"고객 DB를 빼돌린 정황을 잡으려면 내부에서 협조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 내부자가 최진태 회장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취재하는 도중에 알게 된 거고요."

함지훈 기자는 이해해 달라는 표정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회색과 좀 더 가깝다고 그랬나?

"함 기자님은 이번 일을 통해서 특종을 노리시는 겁니까?"

"기자의 사명이 뭐겠습니까? 진실을 밝히는 거죠."

"SH보험을 밍싱그룹으로부터 찾아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네, 해외에서는 이미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거액의 집단소송이 진행된 사례가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회사가 파산에 이르기도 하죠."

"국내는 아직 징벌적 손해배상의 사례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우리가 만들어 봐야죠."

함지훈 기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끝판왕을 잡겠다는 각오 같았다. 하지만 강준은 SH보험을 다시 찾아오는 일에 자신을 얽으려는 윤미경 감사의 의도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SH보험에서 DB가 샌다는 얘기는 어디서 처음 접하신 겁니까?"

"밍싱그룹에 인수될 무렵에 제가 취재를 많이 했었지 않습니까? 그때 퇴직한 직원에게 들은 게 있었습니다."

"들은 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인수되고 나서 이상한 일이 새로운 협력업체들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보험사면 콜센터 인원이 상당하거든요. 그 콜센터 협력업체도 바뀌었고, 보안 개발업체도 바뀌었답니다."

어쩌면 밍싱그룹이 보험사 인수에 열을 올린 건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근데 그 사람 말이 그 협력업체들을 통해 SH보험의 고객 데이터베이스가 빠져나간다는 겁니다. 현재의 보험계약자뿐만 아니라 보험설계사가 수집한 영업대상 인원들의 모든 정보까지 말입니다."

"아…… 우리가 흔히 온라인에서 무슨 이벤트라고 하면서 적어 넣게 만드는 신상정보들까지 말입니까?"

"네, 그게 다 보험사에서 영업을 위해 걸어두는 이벤트들이거든요. 그렇게 수집된 개인정보의 양이 상당할 거라는 소문입니다."

강준이 생각하는 것보다 개인정보 유출의 파장은 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유출된 DB가 협력업체들의 또 주요한 수입원이 된답니다."

강준은 노가리를 입에 넣고는 한참을 우물거렸다.

"경찰에서는 수사에 착수할 거랍니까?"

"당연히 이진철 경감을 통해서도 협조를 요청해 놨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들을 넘겨주기로 했고요."

"하지만 미온적이군요."

"전문적인 인력도 아직 부족하고요."

"이진철 경감이 이제 몸을 사리기 시작했나 보네요. 그러면 안 되는데……."

"어이쿠! 경감님이 양반은 아니군요. 자기 얘기를 한다고 바로 나타나는 걸로 봐서는요."

너털웃음을 터트린 함 기자는 강준의 등 뒤를 가리켰다. 좁은 포차 계단을 올라오는 이진철이 손을 번쩍 들며 강준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어이쿠! 오늘도 일찍 들어가긴 글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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