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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위장 사망 (6) (196/250)

196화. 위장 사망 (6)

공원 화장실의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좁은 공간에는 노숙인들의 말처럼 노영숙의 짐으로 보이는 잡다한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대부분 고물상에 되팔려고 수집한 공병과 별 쓸모없어 보이는 중고집기들이었다. 하지만 가방을 열어 본 강준은 그 안에서 오래된 노영숙의 지갑을 발견했다.

십만 원이 조금 넘는 돈, 은행카드, 그리고 빛바랜 사진.

그 사진 속에서 젊은 노영숙은 어린 아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는 군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찍은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노영숙은 그즈음에 노숙 생활을 하게 된 건지도 몰랐다.

강준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허찬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 경사님, 노영숙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 아들의 거주지를 알 수 있을까요?"

―어? 그렇지 않아도 노영숙 씨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봤는데, 본인 말고는 따로 자녀는 없던데요……?

사진 속의 아들은 진짜 아들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확인해 봐야 했다.

"이혼했을 수도 있습니다. 전 남편이 재혼한 후에 자녀를 입양하게 된다면 이혼한 상대방의 가족관계증명서에서는 자녀 이름이 지워지게 되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음, 알겠습니다."

"남편의 인적 사항을 요청하시면 아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네, 팩스로 바로 달라고 해 보죠. 들어오면 문자로 넣어 놓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허 경사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XX번지….]

* * *

부천시 소재 금형 공장.

노영숙의 친아들은 주거지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금형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아들은 좀 전까지도 기계를 만지다가 왔는지 이중으로 낀 장갑을 벗지도 않은 채였다.

회사는 휴게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영세한 공장이었다. 강준은 노영숙의 부고를 전했지만, 아들은 익히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덤덤했다.

"그럼 어머니와 통화한 건 3년 전이 마지막이라는 겁니까?"

"……네, 아마 그때쯤은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하셨는데, 제가 볼 때는 다단계에 빠지셨던 거 같네요……."

아들은 당시의 일이 떠오르는 듯 고개를 한차례 푹 숙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부모님 이혼하신 후에 저도 많이 방황했죠…… 어머니가 저를 데려가겠다고 항상 말씀하시긴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진 않았거든요."

잠깐 아들의 얼굴에서는 회한의 눈빛이 스쳤다.

"예전에는 원망하기도 했었는데…… 크고 나서 보니 다 이해하게 됐죠. 떳떳한 모습으로 절 데려가고 싶으셨을 거예요."

"아무래도 그런 마음이 크셨겠죠……."

"근데 상황이 꼭 마음먹은 대로만 되나요?"

강준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점점 조바심이 나셨을 거예요. 그러다가…… 다단계에 빠지신 거죠."

"본인의 탓이 아닐 겁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아들은 그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양 괴로워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한 그였다.

"그럼 어머니 시신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그래도 장례는 치러야 하니까요……."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어머니 시신은 이미 강에 뿌려졌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화장했다면서요…… 그럼 납골당에 있어야 하지 않나요?"

"무연고 시신의 경우에는 5년간 화장된 유골을 보관하기도 합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좀 복잡합니다."

강준은 그간 일어났던 보험사기극에 대해 털어놓았다. 오성희의 위장 사망 사건, 그 자작극에 남자의 어머니가 철저하게 이용된 걸 말이었다.

"이건 제가 찾은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아들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남들에게 이용당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준은 노영숙이 간직하고 있던 지갑을 조용히 내밀었다.

그 지갑을 살펴보던 아들은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터무니없이 적은 돈,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담긴 어머니의 사진.

"……흐흐…… 흐흐흑……!"

흐느끼는 아들의 모습은 처량함 그 자체였다.

"제가 노영숙 씨의 시신을 못 찾아드려 유감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에 화장된 시신을 뿌렸는지는 제가 꼭 확인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라도 어머니가 계신 곳을 꼭 알아야겠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아들에게 공장 사장이 다가왔다. 둘은 공장의 한쪽 공터의 흡연 구역에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김 주임 뭐 해? 내일 나갈 물량 많은 거 몰라서 이렇게 농땡이를 부리고 있어!"

강준은 순간 어찌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공장 사장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할지 아니면 아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지 말이었다.

"네, 사장님 금방 가겠습니다……!"

붉게 충혈된 눈을 숨기며 아들은 멀리 있는 사장에게 애써 태연하게 외쳤다.

"5분 내로 무조건 들어와!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 앞에서도 눈앞의 작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강준은 갑자기 서글픔이 몰려왔다.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며칠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뇨. 제가 쉰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그래도 추모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T3T

다시 아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강준은 허리를 굽혀 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노영숙의 죽음에 대한 예를 갖추듯이 말이었다. 아들은 강준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홀로 서 있었다.

다시 공장 사장이 나와 잔소리를 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강준이 사장의 팔목을 잡아끌고는 슬픔을 삼키는 아들을 방해하지 않게 했다.

* * *

서울병원 대기실.

송지희는 사망소견서를 위조한 김신애에 대해 병원의 주변인들을 탐문했다.

아직 김호영 원장에게는 CCTV에서 김신애를 특정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김신애는 어찌 된 일인지 병원에 결근했다.

오성희 일당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갑자기 결근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막 강준이 허겁지겁 도착했다.

"소장님, 도대체 어딜 다녀오시는 거예요?"

"미안, 노영숙 씨 아들을 좀 만나고 왔어."

"진짜요? 어떻게 찾았어요?"

"요즘 동사무소에도 전산시스템이 잘되어 있더라고. 통신사에서도 허 경사 통해서 협조받았고."

송지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되물었다.

"아들은 어떤 사람이에요?"

"음…… 뭐랄까 평범한 사람. 엄마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들……?"

강준은 부천에서 만났던 노영숙의 아들에 대해 더는 뭐라 설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좌우간 얼른 가요. 김신애 잡으러요."

"엥? 김신애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짐작이 가는 데가 있어요."

"거기가 어딘데?"

"기태현의 오피스텔이요."

"오!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여자의 촉이라는 게 있거든요. 김신애 사진을 보는 순간 감이 오더라고요. 오성희랑 엄청 비슷하게 생겼어요. 이걸 뭘 의미하겠어요?"

강준은 매번 감이라고 둘러대긴 했었지만, 그건 엄연히 누군가의 기억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온전한 감만으로 그런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그걸 송지희에게 발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좌우간 그래서? 기태현이 김신애도 동시에 사귀었다는 거야?"

"네, 완전 쓰레기 같은 놈이죠."

"저기…… 송 실장, 이건 좀 넘겨짚은 거 아니야? 그리고 기태현은 지금 경찰서 구치소에 있을 텐데?"

"제가 허 경사님께 얘기해서 기태현이 잠깐 전화를 할 수 있게끔 해 줬거든요. 근데 여지없이 김신애한테 전화를 걸었더라고요."

강준이 송지희를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진짜 감으로 기태현은 함정에 빠져들었고, 그가 사망소견서의 조작과 관련됐다는 정황 증거를 잡아낸 거였다.

"얼른 가자! 그 오피스텔이 어디 있다는 거냐?"

"여기서 안 멀어요."

"잠깐 근데 김신애는 그 오피스텔에는 왜 가는 거냐?"

"그거야 뭔가를 숨기러 가는 거겠죠. 그게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됐든 아니면 숨겨둔 돈이 됐든요."

"그래 어쩌면 자기 흔적을 지우려고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그곳을 조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송지희가 강준에게 물었다.

"근데 소장님, 아무리 금감원 소속으로 현장 조사를 갈 때도 목적하고 기간, 방법이 명시된 ‘조사 공문’이 필요하지 않아요?"

"에이, 우리가 그걸 다 지키면서 어떻게 활동하냐?"

"우리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보험조사관이 지켜야 할 절차가 너무 어렵네요……."

"알지, 송 실장이 힘든 거! 그래도 힘내서 가 보자고. 나도 김신애 얼굴이 갑자기 궁금해지네."

기태현의 취향 때문에 김신애가 그와 사귀었을 거라고 추론한 송지희였다. 그리고 그런 추론은 곧바로 사실로 밝혀졌다.

기태현의 오피스텔에 김신애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량의 대시보드에는 떡하니 기태현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와, 이거 보게. 정말이네!"

"제가 뭐라 그랬어요. 저도 이제 6년 차 보험조사관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장하다!"

강준의 말에 송지희가 피식 웃고는 차량 내부를 좀 더 세심하게 관찰했다.

"저기 블랙박스의 메모리 꽂혀 있는 거 보이시죠?"

"오! 그러네. 기태현과 같이 움직인 동선을 확인해 볼 수 있겠다."

"소장님이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무조건 블랙박스부터 확인하라고요."

"청출어람이군. 근데 이거 증거품으로 압수하려면 경찰 협력받아야 한다는 거 알지?"

"네, 그래서 허찬 경사가 이리로 오고 있을 거예요."

송지희는 묘하게 경찰보다 한 발자국씩 앞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사건에 다가가기 힘든 게 보험조사관의 처지였다.

기태현의 오피스텔 문 앞에서 벨을 눌렀다.

띠리리링! 띠리링!

띠리리링! 띠리링!

벨이 울렸지만,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겠다는 거였다. 강준은 태연히 핸드폰을 꺼내 김신애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고 한참 뒤에 김신애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신애 씨! 기태현 씨 오피스텔에 있다는 거 알고 왔습니다. 지금 문을 여시면 공문서 위조죄만 처벌받으시면 끝나지만, 안에서 증거 인멸하시면 살인사건의 공범이 되시는 겁니다."

"……."

통화가 끊어지지 않고 침묵만이 흘렀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삐리릭!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는 정말 오성희와 분위기가 비슷한 여자가 불안한 눈초리로 강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이세요?"

"아니요.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오성희 씨 위장 사망 사건을 의뢰받아 조사 중이었습니다."

김신애는 머뭇거리며 강준에게 되물었다.

"……오성희요? 오성희가 누구죠?"

김신애와 오성희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지희가 한마디 거들었다.

"진짜 그 인간! 쓰레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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