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위장 사망 (5)
서울병원 내과.
오성희의 거주지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동네병원이었다.
건물 4개 층을 한꺼번에 쓰는 전형적인 동네병원으로 2층에는 내과와 이비인후과, 3층은 정형외과, 4층은 안과가 있었다.
"송 실장, 검안하게 되면 병원에서 보통 얼마나 받아?"
"다들 금액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 병원은 25만 원이었어요."
"그리 큰 금액은 아니네?"
"그렇죠. 근데 소장님, 한 해 변사(變死)사건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얼마나 되는데?"
회귀 전 경찰이었던 강준은 송지희가 대견하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 해 3만 5천 건 정도 돼요. 바빠 죽겠다는 종합병원에서 그걸 전부 감당할 수가 없겠죠? 그러니까 동네 의원들의 검안 업무를 하는 거예요. 근데 솔직히 부검해야만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사인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렇지."
"검안이라는 게 눈으로만 봐서 판별하는 건데 한계가 있죠. 게다가 의사들은 법의학적 지식은 부족하고요."
"송 실장 말은 검안의들이 많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거네?"
"아무래도요……."
광역수사대 측에서 서울병원에 미리 연락을 해 뒀기에 검안의 면담에 큰 반발은 없을 터였다.
"일단 김호영 원장을 만나러 가 보자고."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을 거예요. 자기가 검안한 사망소견서가 되돌아온 격이니까요."
"부딪혀봐야지, 뭐……."
하지만 걱정하던 송지희의 예상은 빗나갔다. 김호영 원장은 보험조사관들의 모습을 보자 인상을 구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비협조적이지는 않았다.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대기하던 환자 몇 명의 진료를 다 마친 후, 강준 일행을 진료실로 들어오게 했다.
"이게 두 달 전 일이네……. 그때가 언제야? ……한번 보자……."
안경을 고쳐 쓴 김호영 원장이 미간을 좁히며 자신이 썼던 사망소견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점점 심각해지는 얼굴로 몇 차례 사망소견서를 다시 훑었다.
"잠깐만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네? 어떤 점이 말입니까?"
"난 분명히 사인 미상이라고 썼던 거 같은데…… 지금 여기는 지주막하 출혈 의증으로 쓰여 있잖아요?"
"그럼, 선생님이 기록하신 게 아니란 말입니까?"
다시 한번 안경테를 매만진 김호영 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 서류는 또 우리 병원에서 발급한 게 맞아요. 여기 직인도 찍혀 있고……."
출력된 사망소견서는 컴퓨터로 출력된 것이었다. 직인도 자동으로 찍혀 나오는 직인이었다.
"사인이 조작됐다는 말씀이군요?"
"아무래도요…… 누군가 사인을 바꿔치기한 겁니다."
"혹시 이 사망소견서를 조작할 만한 사람이 주변이 있나요?"
"글쎄요…… 제 컴퓨터의 비밀번호야 간호사들도 그렇고 원무팀에서도 그렇고 다 공유하는 건데……."
난감하다는 듯 말을 흐리는 김호영 원장이었다. 잘못했다간 애꿎은 병원 직원을 사인 조작범으로 지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송지희가 원장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화제를 돌렸다.
"이 검안은 누가 부탁했던 건가요?"
"사망자 친언니 되시는 분이 그날 직접 연락을 해 오셨더라고요."
"사망한 오성희 씨는 평소에 여기 병원에 온 적이 없었나요?"
"전에 이력은 모르지만, 난 본 적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대충 얼굴이 기억나시나요?"
"글쎄요…… 얼굴까지는 아니지만 대략 퉁퉁한 얼굴이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건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손발이 굉장히 투박했다는 거죠. 마치 육체노동자들처럼요."
강준이 이진철에게 장담했던 대로 손발이 거칠었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원장님, 혹시 이 얼굴 봐주시겠습니까? 혹시 시신이 이 사람이었나요?"
송지희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원장에게 내보였다. 경찰로부터 받은 노영숙의 진짜 신분증 사진이었다.
"어…… 글쎄…… 사망하고 나서는 얼굴이 확 달라지니까 지금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사실 검안이라는 게 얼굴만 보는 건 아니니까요. 혹시 화장했습니까?"
"네. 안타깝게도요."
"치아 기록이 남아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치아에 특이점이 있었습니까?"
"아랫니가 많이 빠져 있더군요. 틀니를 해야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김호영 원장의 말은 아쉬웠지만, 한 가지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혹시 검안하신 내용을 법정에서 나중에 증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 가능하죠. 근데…… 사망소견서가 달라진 부분은 병원의 자체적인 조사에 맡겨 주십시오."
강준은 조직의 사적인 일 처리를 신뢰하지 않았다. 게다가 중요한 사망소견서의 단서가 될 CCTV를 훼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장님…… 검안하신 사망자께서는 타살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시선을 떨구며 안색이 굳어지는 김 원장이었다.
"사망소견서를 조작한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소견서에 사인 미상으로 결과가 나오면 절대 화장해 주지 않거든요."
"그럼 제게 시신 검안을 의뢰한 사람도……."
"네, 맞습니다. 전 오성희 씨의 친언니를 강력한 살인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의 주인은 오성희 씨가 아니라 노숙자였던 노영숙 씨로 알고 있습니다."
"아……."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김호영 원장이었다.
"저희가 병원 CCTV를 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거절할 명분이 없는 원장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의사를 나타냈다. 강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그럼 다음번에도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만약 타살된 거라면 살해된 시각은 그날 새벽이었을 겁니다. 시신이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았었거든요."
강준과 송지희는 김호영 원장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더 숙이고는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 * *
다음 날 을지로 사무소.
밤새 서울병원의 CCTV를 확인한 김준혁과 제이콥은 둘 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복구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네요."
병원의 CCTV 보관 기간은 30일이었다. 노영숙의 시신 검안이 있던 날은 두 달 전이기 때문에 이미 영상은 최근 영상으로 덮여 있었다.
복구가 아니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해커 출신의 김준혁이 하드디스크를 복구해 냈다.
"둘이서 진짜 고생했다! 오늘 저녁엔 고기 먹자고."
"고기고 뭐고 일단은 집에 가서 잠부터 자렵니다. 그건 그렇고 소장님, 여기 좀 보세요."
김준혁이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영상 속에서는 한 여자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원장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얼굴을 가렸다고 가렸는데, 다른 영상들 비교해 보니까 걸음걸이가 딱 원무과의 김신애 간호사더라고요."
"바로 걸릴 텐데…… 얼굴은 괜히 가렸네."
"맞아요. 서류 조작범은 김신애가 100% 확실합니다."
어느새 옆에 와있던 송지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망소견서를 조작할 정도면 무조건 내부자인 거죠. 소장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건 송 실장이 좀 조사해 주면 안 될까?"
"당연히 제가 해야죠. 김호영 원장한테 가서 구슬려 보기도 해야 할 거 같고요…… 근데, 소장님은 뭐 하시려고요?"
"나? 난 영등포역에 좀 가 봐야 할 거 같아서."
"노영숙 씨는 신원 확인되면 허 경사님이 정보 준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요?"
강준은 영등포역에는 혼자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노숙인들과 부딪히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냐? 어차피 노숙인이었어. 자택 주소도 없을 테고…… 그럼, 여기 둘은 퇴근해서 얼른 쉬고, 송 실장은 병원 쪽에 조사 부탁해!"
"소장님, 그럼 저희 진짜 퇴근할게요?"
머리 뒤로 깍지를 낀 김준혁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참! 근데 허찬 경사한테도 그 영상 보내 줘라. 메일로."
"에이 그럼, 영상포맷 변환도 해야 하고 또 한두 시간 ‘후딱’이네요!"
"미안하다. 고급 인력을 혹사하게 해서! 근데 어쩌냐? 우리 사무실에 김 실장 너밖에 없는걸!"
제이콥은 옆에 있던 김준혁을 엄지로 치켜세웠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강준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이콥은 해외전담반이긴 한데 김 실장이 사수니 이번 기회에 전산 쪽도 잘 가르쳐 봐. 혹시 아냐? 청출어람이 될지?"
"어? 소장님 청출어람이 뭡니까?"
제이콥이 처음 듣는 단어라는 듯 되물었다.
"그런 게 있어. 자세한 건 사수님께 물어봐라!"
강준은 투덜대는 김준혁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노영숙이 지냈던 영등포역으로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 * *
영등포역 대합실.
강준은 기태현의 기억에서 봤던 노숙인 남자를 찾았다. 낮에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일반인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근방을 한참 돌아다닌 끝에 강준은 노숙인들 서너 명이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걸 찾아냈다. 대합실의 커다란 기둥 뒤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그들이었다.
"실례합니다."
"……."
대꾸도 하지 않는 그들은 경계의 눈초리만 보냈다.
"이것 좀 함께 드십시오. 너무 소주만 마시면 속 버립니다!"
강준은 가방 속에서 미리 사 놨던 빵 봉지들을 꺼내 놓았다. 그걸 본 노숙인들은 서로 차지하려고 재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자자! 똑같이 나눠드릴 테니까 싸우지들 마시고요."
"어디서 나왔수?"
"어디서 나왔냐고요?"
"봉사단체나 자선단체 뭐 그런 데서 나온 거 아니냐는 얘기지."
그제야 경계를 조금 푸는 노숙인들이었다.
"에이 저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닙니다. 실은 어떤 사람을 좀 찾으러 나왔거든요."
"누구? 여기 사연 없는 사람이 없지. 근데 이런 데서는 또 자기 얘기를 잘 안 해……."
"그래도 사진 보시면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강준은 스마트폰 화면에 노영숙의 신분증 사진을 띄워 보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노 씨 아줌마 아니야?"
"맞네, 맞아! 어디 갔는지 안 그래도 궁금했었는데!"
"와! 이 아줌마 성질 장난 아니잖아, 지난번에 아주 맞아 뒈지는 줄 알았다고."
"성질머리 하나는 알아주지. 그러니까 여기 영등포에서도 버텨 낸 거지."
다들 한마디씩 거드는 노숙인들이었다.
"이분…… 사망하셨습니다."
강준의 말에 놀라 눈이 튀어나오려는 그들이었다.
"뭐야? 진짜?"
"그게 무슨 소리여?"
"정말이야? 근데…… 당신은 경찰이고?"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덩치도 있어서 누구한테 맞아 죽지는 않았을 텐데……."
노숙인들의 반응이 끝나기를 기다린 뒤 강준은 질문을 이어 갔다.
"이분 혹시 가족이 있었습니까?"
"그건 잘 모르지…… 아들이 하나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고…… 또 몇 년 전에 전 남편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아! 저기 공원 화장실이 노 씨 아줌마 아지트잖아. 거기 가면 아직 노 씨 짐들이 있겠네."
"그렇지! 우리야 못 들어가 봐서 확인을 못 한 거지만…."
"여자 노숙자들도 노 씨는 못 건드리니까 훔쳐 가진 않았을 거라고."
역시 현장에 답이 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고맙습니다. 그 공원이 어디 있는 겁니까?"
"저기 계단 보이지? 거기로 내려가서 쭉 직진하다 보면 동네에 공원이 하나 나와. 그럼 거기에 여자 화장실이 있을 테니까 가서 확인해 보라고."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여기 남은 거 더 드릴게요. 체하니까 천천히들 드시고요."
강준은 가방에 남았던 빵들을 전부 쏟아내고 노숙인들이 알려준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