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위장 사망 (4)
보험사기의 당사자인 오성희는 구속됐지만, 진짜 사건은 이제부터였다.
"그러니까 오성희 씨! 그날 화장터에서 죽은 사람이 누구냐니까요?"
"……난 모른다고요…… 그냥 쭉 여기 광주에 있었어요."
"기태현 씨랑 기획부동산 같이하려고 했던 거죠?"
"뭐, 와 보니까 그 사람이 여기 실장인가 그렇더라고요. 누가 사장인지는 나도 모르고요……."
애매하게 잡아떼는 오성희였다. 시신을 화장한 사람은 오성희의 친언니인 오미희였다.
"본인이 입을 떼기만 하면 공모자들이 다치게 되는 형국이군요."
조사실 밖에서 지켜보던 강준은 옆자리에 있던 이진철 경감에게 물었다. 강준은 어제 이진철과 함지훈 기자와 함께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하고는 바로 광역수사대로 출근한 거였다.
어제, 함 기자는 이번 사건보다는 SH보험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국내 보험계약자들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다는 거였다.
강준은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중차대한 문제로 불거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중국으로 유출된 개인정보 문제는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소지도 있었다.
[박 소장님! SH보험 문제는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국익을 위해서도요!]
술자리에서였지만, 함지훈 기자는 강준에게 SH보험의 문제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 거나 다름없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언젠가는 부딪힐 일이라고 생각됐다. 회귀 전 강준이 봐왔던 기업사냥꾼들과 그에 따른 장난질은 고스란히 보험가입자들의 피해로 되돌아왔었다.
강준은 타인의 기억을 읽는 능력을 얻은 자신이 뭔가를 되돌려 줘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보험조사관으로서 원래 본분에 충실하게 일하는 거였다.
―보험사기로부터 보험계약자들의 권리를 지켜 내는 것!
강준은 조사실 안의 오성희를 지켜보며 그런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소장님, 아무래도 대면조사를 해야 할 듯합니다."
"기태현이랑 말입니까?"
"네, 서로 모순되는 점들이 많으니 붙여 놓으면 스스로 불게 될 겁니다."
이진철 경감은 그렇게 장담하면서 조사실로 끌려가는 기태현을 바라봤다. 그는 경찰에 체포당했지만, 전혀 주눅 들어 보이지 않았다.
"경감님,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역시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린 인간은 뭔가 다르네요."
"기태현 입장에서야 변호사 올 때까지는 입도 뻥끗하지 않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강준이 기억을 읽어 내는 능력을 사용해야 할 때였다.
"경감님, 기태현은 제가 맡겠습니다."
"기태현이 시신을 구해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진철은 이미 강준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네, 자매 둘이 공모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시신을 구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거든요."
강준은 분명 남자의 힘이 필요했으리라고 짐작했다. 게다가 기태현은 두 자매와 이해관계도 얽혀 있었다.
박성남에게 떼먹은 5억 원, 빌라 건축. 그리고 시신을 동원한 보험사기까지…… 대담한 계획의 실행자는 기태현일지도 몰랐다.
조사실에 들어선 기태현을 보자 오성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 오성희의 심리를 읽은 기태현이 먼저 선공을 날렸다.
"경사님, 저 변호사 선임하게 전화 좀 부탁드립니다."
오성희에게 입을 열지 말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허 경사는 그런 기태현의 잔꾀를 단방에 잘랐다.
"아까 전화할 수 있게 해 줬잖아요?"
"변호사님이 밖에 계셔서 통화가 안 됐습니다! 핸드폰을 뺏어가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허 경사의 말에 헛웃음을 치는 기태현이었다.
쾅!
"조용히 안 합니까? 기태현 당신은 사기 전과까지 있는 양반이 이번 일에도 단단히 엮였어요…… 보험사기에다 시신 훼손죄까지. 이거 엄연한 공범입니다!"
"무슨 증거로? 증거 있습니까?"
허 경사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신분증 사본이 복사된 종이였다.
"노영숙 씨 명의로 된 신분증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사진은 오성희 씨네요?"
그걸 본 기태현의 반대편에 있던 오성희가 움찔 놀랐다. 눈에서는 이미 절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게 뭔데요……?"
"에이 잡아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여기 A4지 끝에 복사기 명이 나와 있죠? 사용자가 설정한 건데 ‘KI7980’으로 되어 있네요? 기태현 씨 사무실 복사기 명칭이랑 딱 일치하더라고요."
노영숙의 신분증과 오성희의 사진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본을 만들고, 그걸로 핸드폰 개통을 한 거였다.
기태현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제야 자신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죠. 이 여자가 신용불량자라고 해서…… 제가 이런 방식을 쓴 겁니다."
"노영숙 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데요?"
본격적으로 허찬 경사의 심문이 시작됐다.
"지하철역에서 주웠습니다……."
"뭐요? 주웠다고요?"
"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우연히 지하철 타고 가다가 주운 거라니까요."
"좀 전에는 지하철 역사에서 주웠다면서요?"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해대니 금세 자신의 말에 오류가 드러나는 기태현이었다. 강준은 그 타이밍에 조사실로 들어갔다.
허찬 경사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준을 본 기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에 보험조사관도 함께 들어옵니까?"
"네, 보험사기로 고소가 들어온 거니까요."
"젠장……! 별 인간들이 다 괴롭히려 드네…… 형사님, 전 보험사기랑은 전혀 연관이 없어요!"
흥분한 기태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기야! 자기가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그럼 보험사기는 나만 독박 쓰고 가라는 거야?"
참다못한 오성희가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의 존재가 드러난 것 자체가 보험사기가 입증된 거였다. 그런 상황에서 애인 관계인 기태현이 자신만 쏙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난 거였다.
"자, 두 분 다 진정하시고요."
강준은 태연히 다독거리는 말을 던진 후, 흥분해 맞받아치려는 기태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기억을 읽어 냈다.
기억의 장소는 영등포역이었다. 막차가 끊기고 출입문이 닫히자 텅 빈 지하보도에는 노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간혹 큰 소리로 영역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차분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야! 김 씨! 너 죽을래! 내 소주병들 네가 가져갔냐?]
[난 아니라고!]
큰 목소리로 노숙인 남자를 다그치는 여자는 오성희가 신분을 도용한 노영숙이었다. 그녀는 50대 후반의 중년이었지만, 오랜 노숙 생활로 인해 외향은 백발의 할머니와 다름없었다.
오래 안 감은 머리가 헝클어져 마치 폭탄 맞은 파마머리 같았고, 피부는 자글자글하면서도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당장 내 소주병 갖고 와! 이 새끼야! 그게 다 돈인데 어디서 빼돌려!]
[이 여자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시발!]
늙은 노숙인 남자는 팔을 휘둘러 노영숙을 때리려 했다. 하지만 그때, 남자의 팔을 붙잡는 이가 있었다.
[에이, 숙녀분께 이러시면 안 되죠.]
입꼬리를 올리며 야비하게 웃는 이는 기획부동산 업자 기태현이었다.
강준은 기태현의 기억에서 빠져나와 허찬 경사를 돌아봤다.
"경사님, 오성희 씨가 사망했다고 한 날 시신을 화장했죠?"
"네, 검안의가 사망소견서를 썼었습니다."
"사인은 뭐였나요?"
"지주막하 출혈 의증이네요. 한마디로 뇌출혈이라는 얘기죠."
"뇌출혈이라…… 외상에 의한 뇌출혈일 수도 있겠군요?"
"글쎄요. 당시에 시신을 부검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의심해 볼 수는 있겠죠?"
허찬 경사는 강준이 뭘 의도하는지를 알아챘다는 듯 광대를 씰룩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기태현이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당장 변호사 불러 줘요! 안 그러면 경찰이 수사를 조작한다고 세상에 알릴 겁니다!"
"기태현! 당신 혹시 노영숙 씨를 죽인 거 아니야?"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간 강준이었다. 그 순간 기태현과 오성희는 둘 다 얼어 버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노영숙의 죽음에 둘이 함께 관여한 거군……!’
"우린 노영숙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아까 형사분께 벌써 말씀드렸는데…… 난 그 여자 신분증을 우연히 주운 것뿐이라니까요."
끝까지 우기고 보겠다는 전략이었다.
"우연히 어디서? 영등포역에서?"
영등포역이라는 걸 말하지 않았던 기태현이었다. 하지만 기태현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노영숙이 노숙하던 장소를 특정하는 강준을 보자 기태현은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변호사……! 변호사 불러 달라니까요……."
강준은 허찬 경사와 바깥에 있는 이진철 경감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 사건은 보험사기를 넘어서 살인사건이네요. 허 경사님, 지금부터 이 둘을 살인 용의자로 취급해야 할 거 같은데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판사님께서도 충분히 구속영장에 동의해 주실 것 같고요."
허찬 경사가 손짓하자 바깥의 형사들이 우르르 들어와 둘을 다시 철창으로 데려갔다. 굳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거면 조사에서부터 힘을 뺄 이유는 없었다.
차라리 사건 용의자들을 잠시 내버려 둠으로써 그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기태현과 오성희가 나가고 나자 바깥에 있던 이진철 경감이 안으로 들어왔다.
"박 소장님, 그새 영등포역까지 조사를 하시고 온 겁니까?"
"아뇨, 그냥 넘겨짚은 겁니다."
"아, 그럼 노영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는 거고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노숙인일 겁니다."
"그건 어떻게 확신하시는 거죠?"
강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적당히 둘러대는 걸 몇 번 하다 보면 나름의 요령도 생기는 법이었다.
"오성희 장례식에서 누군가 화장된 건 사실입니다. 그 시신이 노영숙일 확률이 높고요. 하지만 우리는 그 시신을 확인할 길이 없죠."
"태워 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시신을 목격한 사람은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요?"
"검안의요. 오성희가 사망했다고 신고됐던 날 검안의가 분명 시신을 보고 사망소견을 적었습니다."
팔짱을 낀 이진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잡아 가야 하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검안의에게 물어보면 시신이 어떤 상태였는지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노숙인들은 아무리 씻겨 놓아도 숨길 수 없는 부위가 있거든요."
"손하고 발을 보면 알 수 있겠군요."
"네, 맞습니다. 제대로 씻지 않았으니 손과 발이 일반인들보다 거칠어져 있었을 겁니다. 특히 차가운 바닥에서 자기 때문에 발바닥이 딱딱하게 갈라져 있었을 겁니다."
이진철은 허찬 경사가 조사한 자료를 다시 뒤적였다. 오성희로 신고된 시신의 사망소견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여기 있네요…… 서울병원 내과 김호영. 이 사람이 검안의입니다!"
"제가 허찬 경사님과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네, 만약 오성희가 처음부터 위장 사망을 계획한 거라면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는 건 정말 이상한 거네요."
옆에 있던 허찬 경사가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그 인간들이 사기 치는 거에 딱 맞춰서 뇌출혈을 일으킬 수는 없는 거니까요."
"이건 분명 살인입니다."
강준은 둘을 돌아보며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