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위장 사망 (3)
"그쪽은 신성한 불당에서 영업하는 건 괜찮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이 들이닥쳐서 보험사기라니 영업이라니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강준이 읽은 기태현의 기억에 의하면 그는 맹지인 임야를 싸게 매입해 수백 개로 쪼개서 판매하는 기획부동산 꾼이었다.
그가 전국의 절을 영업장소로 공략한 건 불자들이 대부분 산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동월사에 앞장서 기부한 것도 불자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술책이었다.
무엇보다도 강준이 기태현의 기억에서 결정적으로 찾아낸 건 그가 사망했다던 오성희의 애인이라는 것이었다.
‘뭐야……? 박성남과도 연인관계였다면서…… 기태현과도?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박성남은 그냥 이용당했던 건가?’
[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해?]
[자기야, 어차피 성형하기 전까지는 남들 눈에 안 띄는 지방이 낫잖아? 우리 사업도 같이 키우면서 말이야.]
[그야 그렇지…… 근데, 언제 올 거야? 설마 나 여기 처박아 놓고 딴짓하는 거 아니겠지?]
[에이…… 참 또 의심한다. 내가 뭐라 그랬어? 항상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 지금 우리 사업은 서로 의심하기 시작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거라고!]
기태현은 오성희와 전화를 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오미희가 수령한 사망보험금 3억 원 가운데 일부는 다시 기획부동산 사업자금으로 들어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강준은 기태현의 기억만을 가지고 오성희가 어디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기태현이 오성희와 전화 통화만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
"왜요? 혹시 압니까? 좋은 땅이면 제가 살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이 사람이!"
자신을 비꼬는 강준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기태현이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오미희는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듯 기태현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주지 스님,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살펴 가시지요……."
자리를 급하게 피하는 기태현과 오미희를 보며 강준이 송지희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따라가서 차량 번호 좀 확인해 줘."
"네, 금방 다녀올게요."
아직 송지희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르는 그들이었다. 송지희는 쪼르르 달려가 차를 타려는 오미희를 붙잡아 세웠다.
"언제 연락드리면 되죠?"
"내일 어때요? 강남이라면 점심에 제가 계신 곳으로 갈게요."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순간 오미희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대꾸했다.
"저희가 여기저기 미팅이 많아서요."
"네…… 그럼 강남역에 있는 커피숍에서 뵈시죠. 땅에 관심은 많은데 회사 사람들한테 들키는 건 싫네요."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그럼 내일 뵙죠."
오미희를 태운 차량은 유유히 산길 아래로 내려갔다. 뒤늦게 뒤따라온 강준은 그 광경을 지켜봤다.
"차량 번호 확인했지?"
"네, 내일 직접 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아마 온종일 업무가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걸 거야. 땅 사줄 호구들 잡아야 하니까."
"잠복 조사하실 거예요?"
"그래야지. 송 실장 고생 좀 하자!"
"이미 고생하고 있는데요?"
산에 있는 절에까지 오른 송지희가 다시 내려갈 게 암담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꾸했다.
* * *
오성희 사건의 담당 형사는 허찬 경사였다.
―어제 말씀하신 차 번호로 차주를 확인했는데요. 차량은 리스네요. 소장님 예상대로 기태현이라는 사람은 사기 전과가 있었고요.
"부동산 사기인가요?"
―네, 등기문서를 위조해서 없는 아파트를 팔아먹었습니다.
"네? 그게 가능했습니까?"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없이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했나 보더라고요. 거기 사장이 없는 틈에 감쪽같이 일을 진행한 거라 한동안 그쪽에서도 골을 썩인 모양이더라고요.
"그럼 이번 기획부동산에는 위법 사항이 없는 겁니까?"
"아직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피해자가 나서서 고발한다고 해도 기망행위라 할 만한 근거도 부족하고요. 이 기획부동산이라는 게 하여간 교묘합니다……."
기태현은 이미 전과가 있는 인물이었다. 한 번 감방살이를 하고 나온 후부터는 좀 더 정교하게 법망을 피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한 거였다.
"허 경사님, 전 어쨌든 기태현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네, 저희는 보험금을 탄 오미희 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강준은 전화를 끊은 다음 차창 밖의 기태현을 응시했다. 그는 한 시간째 널찍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와 맞은편에 앉은 인물은 땅에 관심 많은 불자로 위장한 송지희였다. 송지희는 오성희가 한다는 기획부동산에 직접 다가갈 거라며 의욕을 불태웠었다.
―좀 있다 출발할 거예요. 목적지는 경기도 광주예요.
송지희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고, 강준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곧이어 주차장에서 기태현의 차량이 빠져나왔다. 보조석엔 바람잡이 오미희가 그리고 차량 뒷좌석엔 호구로 걸려든 송지희가 앉아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는 듯 차량은 꽤 속도를 냈다. 강남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걸렸고, 차량은 임야, 토지, 땅이라고 대문짝만 한 간판이 내걸린 부동산 앞에 도착했다.
주변에 가구공장밖에 없는 허허벌판과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인테리어의 부동산이었다. 간판도 새로 한 것인지 먼지 한 점 없어 보였다.
―오성희는 여기 없어요.
송지희로부터의 보고 문자였다.
강준은 부동산으로부터 수십 미터는 떨어진 지점에 차를 세워 두고 인근의 슈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 할머니가 지키고 있었다.
강준은 담배를 하나 사고는 다시 차로 돌아가 뭔가를 들었다. 그건 오성희에 대한 자료였다. 그리고는 다시 아까의 슈퍼로 되돌아갔다.
"할머니, 혹시 최근에 이사 온 사람 중에 이런 사람 본 적 있으세요?"
할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준이 내민 서류의 사진을 내려다봤다.
"어…… 이 아가씨…… 내가 보니까 얼마 전부터 저기 저 부동산 들락거리는 거 같던데? 근데 댁은 경찰이슈?"
"전 보험조사관입니다."
"……보험? 왜 저 부동산이 또 무슨 문제를 일으켰어?"
"그게 아니라 지금 보여드린 이 여자가 보험사기를 친 거 같아서요."
"무슨 보험사기? 하여간 이 동네는 뜨내기들이 몰려와서 문제를 일으킨다니까."
혀를 끌끌 차며 말하는 할머니였다. 생각보다 정신이 또렷하고 무엇보다도 이 동네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저런 땅 부동산이 여기 처음 생긴 게 아니군요?"
"매번 저런다니까……. 이 동네 산이 무슨 돈이 된다고…쯧… 그린벨트로 묶인 곳이 어떻게 개발이 된다는 건지 원……."
기태현 일당이 작업하는 땅은 그린벨트로 묶인 임야였다.
"……할머니, 근데 여기 이 여자 다시 나타나면 연락 한번 주실 수 있으세요?"
"연락이야 해 줄 수 있지……."
슈퍼 주인인 할머니는 강준을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흐렸다.
"조사관 양반…… 근데 그 여자 불륜이지?"
"네? 불륜이요……?"
강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엄밀히 따지면 미혼인 오성희가 불륜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할머니, 제가 불륜인지 바람인지 한번 확인해 볼까요?"
강준의 말에 호기심의 눈빛을 번뜩이는 할머니였다.
"아이고! 정말 불륜이 맞나 보네!"
"……엄밀히 따지면 불륜은 아닐 겁니다."
"그럼 뭐야?"
"사생활이 좀 복잡한 사람 같긴 하더라고요. 할머니, 아르바이트 안 해 보시렵니까?"
"뭐? 무슨 아르바이트?"
강준은 지갑에서 5만 원권 지폐 몇 장을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아까 서류에서 본 여자가 부동산에 모습을 드러내면 연락을 주십시오. 그럼 오늘 드린 만큼 더 드리겠습니다."
"뭐야? 이거 불법적인 거는 아니지?"
"할머니는 본인 눈에 보이는 걸 제게 전달만 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불법이 되나요?"
할머니는 불법이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돈을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 사람이 효율적으로 일을 해야지. 조사비용도 받았으니 쓸 때는 쓰자고!’
강준은 오늘은 잠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눈빛이 탐정이라도 된 듯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며칠 뒤 경기도 광주 기획부동산.
박성남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오성희를 보자 눈이 뒤집혔다.
"야! 오성희……!"
기획부동산에서 들이닥친 박성남을 발견한 오성희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사무실에 함께 있던 기태현이 나서려고 했지만, 박성남을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은 보며 되레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입구에 들이닥친 강준과 눈이 딱 맞닥뜨렸다.
"기태현 씨, 지금 오성희 씨를 놔두고 어디를 가시려고요?"
"……월동사에서 봤던 그 보험조사관?"
"네, 그때 제가 그랬죠? 보험사기 잡으러 왔다고요. 저기 오성희 씨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망보험금을 받았네요. 근데 기태현 씨는 그런 오성희 씨와 함께 일하고 있고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강준의 옆에 있던 형사들이 기태현의 양팔을 붙잡았다.
"기태현 씨는 오성희 씨 위장 사망 사건의 참고인으로 진술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내…… 내가 왜요?"
그렇게 기태현이 발뺌하고 있는 순간 붙들려 나오는 오성희가 그를 원망의 눈으로 째려봤다.
"자기야! 뭐라 말 좀 해 줘……!"
기태현은 고개를 슬쩍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박성남의 죽일듯한 눈빛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 새끼야! 너희 연놈들 둘이 다 짠 거지? 짜고서는 내 돈 5억 꿀꺽한 거 아니냐고! 내 돈 내놔 이 새끼야!"
박성남은 기태현의 멱살을 붙잡았고, 형사들은 그걸 말리느라 사무실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박 소장님, 인근 편의점 ATM기에서 언니인 오미희 씨 명의의 통장 카드로 현금이 인출된 게 확인됐습니다. 근데…… 오성희 씨 본인이 쓰던 핸드폰은 명의가 엉뚱한 사람인데요?"
"누구 명의인가요? 혹시 대포폰인가요?"
"아뇨…… 그게 노영숙이라는 이름으로 개통이 되어 있더라고요. 혹시 아는 거 있으세요?"
강준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만약 오성희가 자신이 사망한 채로 살아갈 거라고 계획했다면 가짜 신분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있었다.
"허 경사님, 오성희 씨를 저도 한번 조사해도 될까요?"
"금감원 특별보험수사팀 아니십니까? 안 될 것도 없죠."
강준과 여러 차례 협력해 왔던 허찬 경사였다. 서로 간의 끈끈한 신뢰가 이제는 꽤 단단해져 있었다.
"솔직히 저희는 이런 기획부동산에 오성희가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경찰은 여러 사건을 수사하지만, 저희는 죽어라 한 놈만 패니까요."
농담처럼 받아치는 강준의 답변에 허 경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광역수사대 경제수사과의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만성적인 업무 부하.
이진철 경감을 본 지도 몇 개월 전이었다. 생각난 김에 강준은 스마트폰을 꺼내 이 경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박 소장님, 웬일이십니까? 오성희 사건 얘기는 들었습니다. 죽었다는 사람을 찾았다면서요?
"네, 제가 의뢰받은 사건은 끝났지만 여러 가지 의문점이 남는 게 있네요. 화장한 시신은 누구인지…… 하여간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저녁 좀 늦게는 됩니다.
"오랜만에 을지로에서 모이시죠.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강준은 모이는 김에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