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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위장 사망 (2) (192/250)

192화. 위장 사망 (2)

SH보험 본사.

"저도 언제까지 버틸는지 모르겠네요. 조직개편이다 뭐다…… 결국 다 사람 자르려고 그러는 건데…… 젠장!"

"지금 대표직에 앉아 있는 사람만 신이 났겠군요."

"백상현 지점장 말입니까? 아……! 이제 대표가 되신 분이시죠. 참 줄 한번 잘 서서 그렇게 승승장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강준은 서동휘 팀장과 오랜만에 해후했다.

밍싱그룹에 대주주 권한이 넘어간 한국보험은 SH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물론 최진태 회장은 표면적으로 물러났지만, 그의 측근인 백상현 지점장이 고속승진하며 대표에 올랐다.

누가 봐도 속이 보이는 인사였다.

"최진태 회장은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나요?"

"밍싱그룹 관계자들과 어울리고 다니는 모양이더라고요. 가끔 모습을 보이긴 하는데…… 소문에 따르면 회사 팔고 나서는 영향력이 미미해졌답니다."

"영향력이 미미해져요?"

되묻는 강준에 서동휘 팀장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최 회장은 밍싱그룹하고 자꾸만 뭘 하려는 입장인데, 밍싱그룹 쪽에서는 한국보험을 꿀꺽하고 나니 최 회장이 필요 없어진 거죠……."

"그럼 백상현 대표도 위태위태하겠군요."

강준의 말에 서 팀장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세상일이 참 요지경인 게…… 백상현 대표가 그걸 감지하고서는 밍싱그룹 쪽에 확 붙어 버렸습니다.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은 인물인 거죠."

최진태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자 백상현은 바로 주인을 배신한 거였다.

"인과응보네요. 사람을 그런 식으로 키웠으니…… 지금 와서 버림받아도 할 말 없죠."

"그래도 한국보험 판 돈으로 호의호식할 텐데 우리가 걱정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죠."

강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강남사거리에는 수많은 차들이 정체에 막혀 오가지도 못하고 도로에 서 있었다.

강준도 그 정체된 차량의 행렬 가운데 자신이 있는 것 같아 더 씁쓸해졌다. 회귀 전보다 이룬 건 많았지만, 뭔가 마음이 허해지는 강준이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전대성과 최진태. 그리고 한승일 시장까지…… 한 명은 죽었고, 나머지 둘은 회귀 전 세계에서 휘두르던 무소불위의 권력과 재력을 꺾어 놓았다.

하지만 그 자리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소장님이 말씀하신 오미희 씨 말입니다. 얼마 전 퇴사했습니다."

슬슬 용건을 꺼내 놓는 서동휘 팀장이었다.

"친동생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할 시기였나 보죠?"

"수령 직전에 퇴사했더라고요. 아무래도 자기가 설계해서 가입시킨 생명보험의 사망보험금을 본인이 받는 게 이상해 보였을 테니까요."

"팀장님이 SH보험에서 보험사기로 오미희 씨를 고발해주실 수 있나요?"

"그야 어렵지는 않죠. 근데 저도 이런 경우는 보험조사관 일을 하면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서요…… 박 소장님은 어떻게 조사를 하실 겁니까?"

서동휘 팀장은 자기도 흥미가 당긴다는 듯 강준에게 물었다.

"경찰에서 정식 수사가 시작되면 주변인들의 통화기록과 금융거래 내역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사망한 오성희가 정말 살아 있다면…… 어디선가 생존 신호가 발견되겠죠."

"박 소장님, 이번에는 합동조사팀으로 가시죠. 이거 우리 SH보험사의 사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좋죠. 저희야 사건의뢰인으로부터 비용도 받았으니 조사 인원이 늘면 땡큐입니다."

흔쾌히 합동 조사를 수락하는 강준이었다.

* * *

경기도 외곽 등산로.

애초에 예상했던 대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주변인들에 대한 통화기록과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했지만, 오성희가 살아 있다고 할 만한 점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강준은 당사자인 오미희를 만나 그녀의 기억을 읽어 봐야 했다.

"소장님, 쉬는 날인데 이렇게 산에까지 올라가야 하나요?"

"잠깐 쉬었다 갈까?"

"……네."

송지희 실장이 오미희의 행적을 조사했다. 그러던 와중에 오미희가 주말마다 간다던 절을 알아낸 거였다. 하지만 송지희는 강준이 일요일에 그 절로 따라붙자고 얘기할 줄은 몰랐던 거였다.

"사망보험금 3억 원 중에 절반은 오미희한테 가고 나머지 절반은 어디로 갔다고?"

"나머지는 공사비로 들어갔어요. 빌라 건축을 강행해 보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망보험금을 가지고 건축회사와 딜을 한 거군."

"아마 땅 문제가 걸려 있으니 그것도 문제겠죠. 땅을 상속받으려면 거기에 걸린 은행 대출금 10억 원도 갚아야 하니까요."

강준은 물통을 열어 목을 적신 후 말을 이었다.

"잠깐만…… 이거 이렇게 되면 박성남만 공중에 붕 뜨겠네?"

"맞아요. 박성남과 사망한 오성희와의 채무 관계는 입증할 수가 없는 거고, 은행 빚은 토지를 담보로 잡혔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근데 말이야…… 박성남이 그렇게 의심이 많아서 우리한테서 계약서 공증까지 받아 갔잖아. 그런 사람이 아무리 애인이었다지만 별다른 장치 없이 5억 원을 빌려줬다고?"

강준은 사무실을 찾아왔던 박성남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용증은 있는데 그 차용증의 서명이 오성희의 자필서명이 아니었대요. 처음부터 노리고 작정한 거라고 봐야죠."

"생각보다 악질이네…… 게다가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박성남은 오성희를 자기 애인으로 생각했잖아."

"그래서 더 배신감을 느끼는 거겠죠. 하지만 유부남인 박성남도 썩 잘했다고 할 수는 없는 거고요."

유독 ‘유부남’이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하는 송지희였다. 마치 박성남이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았다는 듯이 말이었다.

"송 실장, 우린 어쨌든 불법을 저지른 보험사기꾼들을 잡는 게 우리 목표니까 거기에만 집중하자고!"

"당연히 그래야죠. 하지만 이렇게 산에까지 오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곳이 산이거든요. 어차피 내려올 거 처음부터 왜 올라가는지 모르겠어요."

"그야 좋은 공기 마시고 자연을 음미하기 위해서지. 자 다시 올라가자고! 씁씁! 후후!"

강준은 등산객처럼 앞뒤로 손뼉을 마주치며 다시 오르막길을 걸었다.

* * *

동월사 대웅전.

강준이 마주한 법회는 다른 종교인 기독교의 예배 풍경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법문을 함께 외우는 시간이 지나자 주지 스님이 불자들을 향해 설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에 저희 동월사에 큰 기부를 해주신 기태현 불자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주지 스님이 지목한 사람이 주변에 앉은 다른 불자들에게 웃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이곳도 돈 많이 낸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건 속세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강준은 옆에 앉은 송지희에게 속삭였다.

"아직 오미희는 안 나타난 거지?"

"그러게요. 아까 들어오면서부터 샅샅이 뒤졌는데 여기에서는 안 보이는데요? 분명히 동월사에 나타난다고 했는데……."

"더 기다려 보자고."

의도하지 않게 법회에 끝까지 자리를 지킨 강준이었다. 그렇게 법회가 끝나자 불자들은 대웅전을 빠져나가 앞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소장님, 저기 오미희네요……!"

한때 오미희가 한국보험을 그만두고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던 시절에 강준은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소장님, 일단 제가 먼저 다가가서 정보를 좀 캐볼게요."

오미희는 예전과는 확 다른 차림이었다. 얼굴의 주름은 더 늘었지만, 옷차림은 더 화려해져 있었다.

"뭐야…… 등산로로 온 게 아니라 차를 타고 왔네……."

동월사로 들어오는 도로는 주지스님을 비롯한 동월사의 관계자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런 걸로 미루어보면 오미희는 동월사에게 꽤 영향력이 있어 보였다.

"분명 뭔가 건질 만한 게 있을 거예요. 소장님은 좀 멀리 떨어져 계시죠."

"그래, 알았다. 송 실장 부탁한다. 화이팅!"

강준이 송지희에게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송지희는 태연하게 오미희가 대화하는 무리에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네, 제가 여기 절은 처음이라서요. 아까 여기 절에 기부를 해 주셨다고 들었는데……."

오미희는 법회 시간에 언급됐던 기태현과 함께 있었다. 기태현은 다행히 처음 보는 송지희에게 우호적인 눈인사를 건넸다.

"워낙 기 사장이 땅에 관해서는 전문가니까…… 암자를 지을 땅을 동월사에 기부한 거예요. 근데 그쪽은 무슨 일을 해요?"

"저요?"

"네, 설마 놀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전 회사원이에요. 원래는 봉은사에 다녔었고요."

송지희는 강남 한복판에 있는 절을 언급했다. 오미희는 그 말을 듣고는 화색이 되어 대화를 이어갔다.

"잘됐네. 나도 그쪽에서 회사생활을 했거든요.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아! 우리 같은 불자끼리 친목도 도모할 겸 연락하고 지내자고요. 여기 동월사가 강남의 봉은사보다는 못하겠지만 마음의 평온을 찾는 데 이만한 데가 또 없죠."

오미희는 송지희의 질문에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는 핸드백을 열어 불쑥 명함을 건넸다.

―청명 부동산개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지 스님이 다른 불자들을 내버려 두고 송지희 쪽으로 다가왔다.

"처음 뵙는 불자시로군요."

"네, 근방에 왔다가 우연히 들러봤어요."

"아…… 그래요. 부처님 말씀이야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거죠."

주지 스님은 고개를 돌려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오미희에게 말을 걸었다.

"불자님…… 다른 불자님들께서 그러시는데, 자꾸만 땅을 사라고 하신다고……."

"호호! 스님 무슨 얘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전 다른 뜻은 없이 그냥 좋은 땅이 있어서 알려준 것뿐이에요."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자중해 주십시오……."

정중하게 요청하는 주지 스님이었다. 오미희는 맞은편의 기태현이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길 원하며 바라봤지만, 기태현은 그저 주지 스님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때, 언제 다가온 건지 모를 강준이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어! 혹시 한국보험 다니시던 오미희 설계사님 아니십니까?"

보험설계사라는 말이 나오자 주지 스님은 더욱 미간을 좁혔다. 불자들 사이에서 간혹 자기 영업을 위해 법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지 스님은 그런 면에서 이미 오미희를 요주의 인물에 올려놓고 있었다.

"전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왜요? 정승태 본부장한테 스카웃돼서 성원화재로 오시려다가 다시 번복하셨잖아요, 그렇죠?"

"아…… 그때 기억이 나긴 하네요…… 거기 성원화재 보험조사관이셨죠?"

"네, 맞습니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곤란한 얼굴로 되묻는 오미희였다. 그녀는 갑자기 등장한 강준에게 놀라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동생분이 사망하셨더라고요. 사망보험금은 오미희 씨가 수령하셨고요. 근데 말이죠. 일각에서 동생분이 살아 있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온 겁니다. 제 일이 보험사기 잡는 일이니까요."

본론부터 치고 들어가는 강준이었다. 오미희는 사색이 된 채 입술을 꾹 깨물고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였다. 오미희의 옆에 서 있던 기태현이 강준의 가슴팍을 밀쳐냈다.

"이거 보세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다짜고짜 사람을 보험사기꾼으로 몰아요? 신성한 불당에서 지금 뭐 하자는 거냐고요!"

강준은 다시 한번 자신을 밀치려는 기태현의 팔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가 떠올린 기억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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