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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위장 사망 (1) (191/250)

191화. 위장 사망 (1)

[돈 떼어먹고 튄 사람 좀 찾아 주십시오. 제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죽었다고 꾸며서 사망보험금은 그 여자 언니가 꿀꺽하고 나한테 빚진 돈을 꿀꺽 한 겁니다. 꼭 좀 찾아 주십시오. 조사관님!]

메일로 제보를 해 온 남자는 빌라 건축업자였다. 다짜고짜 자기 돈 떼먹은 사람을 찾아 달라는 부탁이었지만, 강준은 위장 사망이라는 부분에서 흥미를 느꼈다.

김준혁이 제보 내용의 개요를 브리핑했다.

"오성희 씨가 올리던 빌라 건물이 공사가 중단됐더라고요. 토지 매입부터 들어간 돈이 한 20억 정도 될 것 같은데요……?"

"그중에 제보자로부터 빌린 돈은?"

"5억이네요. 은행에서 건축비 대출을 10억 받고…… 와! 결국 자기 돈은 땅값 중의 절반인 5억만 들어간 격이네요."

제보 메일에서 지목된 오성희는 국내 생명보험사인 SH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SH보험사라면……?"

"네, 한국보험 인수한 중국계 보험사죠."

"결국 밍싱그룹이 원하던 바를 이뤘군……."

"의외로 이런 게 잘 안 알려졌더라고요. 사람들은 최진태 회장이 한국보험에서 물러난 것만 생각한다니까요."

김준혁의 말이 맞았다. 국내 굴지의 보험사가 외국계로 넘어간 사건이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완전히 식어 있었다.

국내 보험계약자들의 돈이 보험사의 자금 운용이라는 명목으로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국영기업들에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SH보험이 부실해지면…… 다시 정부에서 세금 지원을 하려고 하겠지. 총체적 난국이군!"

"혈세가 낭비되는 겁니다."

강준은 한국보험이 어쩌다 그런 신세가 되었는지 안타까웠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런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소장님, 정부에서는 SH보험이 대마불사(大馬不死)라서 쉽게 버리지 못할 겁니다."

"때에 따라서는 손절매하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지. 좌우간 난 이 사건 호기심이 생기는데 다들 어때?"

강준은 함께 듣고만 있던 송지희와 제이콥을 돌아보며 물었다.

"소장님 제보자가 혹시 우리를 떼인 돈 받아 주는 추심업자로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송지희는 역시 제보자의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우리한테 조사비용만 제대로 책정해 준다면 마다할 것도 없지 않아? 제이콥, 넌 어떻게 생각해?"

"전…… 저번처럼 파키스탄 같은 험지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어허! 실크로드로 가는 절경이라는 절경은 혼자서 다 구경해 놓고 무슨 소리야?"

강준의 농담에 제이콥이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절경이라면 전 사양합니다. 어쨌든 이건 한국에서 조사하는 사건이죠?"

"혹시 모르지. 위장 사망의 당사자가 살아서 외국으로 내뺐을지도……."

"휴우…… 그럼 거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아닙니까?"

제이콥의 대답에 송지희와 김준혁이 폭소를 터트렸다.

"제이콥, 너 누구한테 그런 말 배웠냐?"

"박 상사님이 자주 쓰셨던 말입니다……."

"어휘력이 늘었네!"

강준은 김준혁에게도 물었다.

"김 실장은 어떻게 생각해? 이번 제보 기초조사를 직접 한 실무자로서?"

"전…… 한번 해 보고 싶네요. 왜냐면 제 생각에도 오성희가 안 죽었을 거 같거든요. 사망보험금도 그렇지만 빚만 10억 원이었어요. 별다른 수입이 없는 오성희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금액이었겠죠. 아마 새로 태어나고 싶었을 겁니다."

오성희의 위장 사망에는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그럼 일단 제보자부터 만나 보자고. 이번에는 나도 의뢰 비용을 한번 크게 불러 봐야겠다."

"네. 적어도 추심업체보다는 많이 받아야겠죠."

송지희가 야무지게 주먹을 쥐면서 호응했다. 강준도 제보자가 날로 먹으려고 한다면 굳이 사건을 맡을 이유는 없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그동안 보험조사관인 내가 너무 오지랖을 떨고 다녔는지도…….’

파키스탄 인질 구출의 배후에 강준이 있었다는 얘기가 언론에서 다뤄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강준은 당분간은 잠잠하게 지낼 계획이었다.

* * *

다음 날 을지로 사무실.

제보자인 박성남은 답신 메일을 보내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내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아주 죽여 놓을 겁니다!"

"잠시만요. 일단 앉으셔서 말씀하시죠."

흥분한 박성남은 당장이라도 무슨 짓을 벌일 듯 험한 말을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나랑 같이 땅을 사서 신축 빌라를 올리자고 하더라고요. 땅값 5억 원만 빌려주면 나머지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나중에 등기할 때 건축비 제하고 딱 절반씩 하기로 한 겁니다."

"이자나 그런 건 전혀 없었고요?"

"투자위험도 있고 하니까 그런 건 건축비에 녹였다고 생각한 거죠……."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한풀 꺾인 그였다. 박성남은 50대의 전형적인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그가 사기를 맞았다는 듯 펄펄 뛰는 게 강준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알기론 빌라 건축은 뻔히 눈에 보이는 건데…… 왜 중간에 엎어진 건가요? 그게 계획대로만 됐다면 오성희 씨가 돈을 못 갚았을 리도 없지 않나요?"

"솔직히 나는 그 여자가 여윳돈이 좀 있는 줄 알았죠. 건축비를 전부 다 은행 돈으로 하려고 한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혹시 분양이 생각보다 잘 안 돼서 문제가 터진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보통 완공 무렵에는 그래도 몇 개 정도는 팔아서 투자금을 뽑아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으니까요."

강준은 다 털어놓지 않는 박성남의 기억을 바로 읽어 봐야 했다.

"사장님, 손 한번 줘 보시죠."

"네……?"

"제가 손금을 볼 줄 알거든요. 사장님이 떼인 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제가 사건을 의뢰하든지 결정할 수 있죠."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박성남은 그래봤자 본전이라는 듯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강준은 그 손을 아래위로 뒤집어보며 박성남의 기억을 읽었다.

[성희 지금 어디 있어?]

[이 인간이 초상집 와서 무슨 짓이야!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봤나!]

[내가 모를 줄 알아? 이거 봐라, 장례식장 사람 없는 거…… 일부러 아무도 안 부른 거지!]

박성남이 남의 초상집에서 따지고 있는 이는 강준이 전에 알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한국보험 보험설계사였던 오미희였다. 정승태 본부장의 꾐에 빠져 자신의 회사를 폭로했던 여자였다.

[당장 안 나가! 누구 여기 와서 이 사람 좀 내보내요!]

오미희는 도와줄 사람을 다급하게 찾으면서 장례식장의 직원들을 불렀다.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이거 경찰에 고발할 거야! 고발!]

[사람이 죽어서 화장까지 했는데 무슨 고발을 하겠다는 거야? 이 미친 인간아!]

화장했다는 말에 박성남이 움찔했다. 부검도 할 수 없는 마당에 오성희가 죽은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밝혀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거였다.

[성희 그년이 처음부터 나한테 일부로 접근했던 거야. 계획적으로 내 돈 뜯으려고!]

[뭐야? 어디 가서 내 동생에 대해 그딴 소리 지껄이기만 해봐!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줄 알아!]

박성남이 오성희가 계획적이었다는 걸 언급하자 두 눈을 치켜뜨고 달려드는 오미희였다. 오미희는 오성희의 친언니였다.

[시발…… 오성희 그년은 분명히 살아 있다고……!]

박성남이 중얼거리며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을 노려봤다. 뒤늦게 도착한 장례식장의 관리자들이 박성남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박성남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어떻습니까? 제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장님, 제가 보니까 사장님은 여자를 조심해야 하는 운명이네요."

"……네? 여자요……?"

강준은 박성남이 오성희에게 괜히 5억 원의 돈을 빌려줬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성희와 애인 관계였죠?"

"지금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애인 관계였으니…… 그렇게 큰돈 5억 원을 선뜻 빌려준 거 아닙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네. 험험!"

유부남이었던 박성남에게도 오성희와의 관계는 남사스러운 일이었다. 대놓고 꽃뱀 짓을 당했다고 여기저기 말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이번 사건 해결해 줄 수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저희가 조사비용이 꽤 센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 그러니까 얼마를 달라는 건데요?"

강준은 손바닥을 활짝 펴 보였다.

"뭐요? 오백?"

"아뇨. 오천만 원요."

"이런 사기꾼 같으니라고! 사람들이 박강준 당신을 좀 떠받들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보지? 오천이 누구 집 개 이름이야?"

씩씩거리는 박성남은 높은 금액을 부른 강준에게 오히려 화를 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강준은 조건을 덧붙였다.

"살아 있는 오성희 씨를 찾지 못하면 사건의뢰비는 전액 환불해드리죠."

"그걸 어떻게 믿어? 착수금이다 뭐다 이런저런 명분으로 입 닦으면 그만 아니야?"

"계약서를 써드리죠. 민사법정에서 충분히 효력을 발휘할 겁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인터넷으로 제보를 받아도 될까요?"

"인…… 인터넷으로?"

"네, 만약 오성희 씨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제보를 받는 게 더 빠른 방법일 테니까요."

박성남은 눈동자를 위로 뜨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오성희가 살아 있다면 사기로 민사소송을 벌여 중단된 빌라 사업을 빼앗아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땅값만 현재 10억 원이 넘게 형성된 곳이었다. 자신이 아는 물주를 끌어들이면 빌려준 오성희에게 빌려준 5억 원에다 빌라 분양으로 인한 수익까지도 기대할 수 있었다.

"분명히 환불해 주기로 한 겁니다."

"네 공증이라도 받으시겠습니까? 근처에 법무사 사무실이 있거든요."

"일단 계약서부터 봅시다."

의심이 많은 박성남이었지만, 그가 믿는 건 계약서보다는 강준에 대한 평판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 평판을 빌미로 돈을 돌려 달라고 할 참이었다.

김준혁이 작성한 계약서에는 사건 해결의 기한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박성남이 강준에게 준 기한은 딱 3개월이었다.

박성남이 나가고 난 사무실에서 송지희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을 꺼냈다.

"소장님, 저 사람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

"5천만 원을 사건의뢰 비용으로 내겠다는 건 분명 의지가 있다는 거겠지. 우린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고!"

별일 아니라는 듯 씩 웃는 강준이었다.

"근데 아까 인터넷으로 제보를 받자고 하셨잖아요? 그거 우리가 맘대로 제보받고 그래도 되는 걸까요?"

"일단 경찰에서도 정식으로 수사가 들어가야 할 거 같아. 그래서 말인데, 이진철 경감님한테 송 실장이 한번 다녀오는 거 어때?"

"경찰이 보험사기로 수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요?"

"그렇지."

"근데 그럼 고발인이 있어야 할 텐데…… 우리는 당사자는 아니잖아요."

"맞아. 그래서 내가 서동휘 팀장을 만나 보려고. 그 양반 아직도 SH보험사에 근무하려나…… 혹시 밍싱그룹으로 회사 넘어가면서 잘린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

송지희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답했다.

"너무 잘 지내고 있으셔서 탈이죠. 며칠 전에도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우리 사무소에 어찌나 관심이 많으신지. 거의 한 시간이나 통화했다니까요."

"어? 그래? 내가 안 보던 사이에 투머치토커가 되셨나 보군."

강준은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서 서동휘 팀장의 연락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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