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파키스탄 인질극 (5)
드론으로 촬영한 한국 인질의 영상은 여론을 뒤엎었다.
[이게 무슨 정황인가요? 왜 중국 문화교류원에 인질들이 있는 거죠? 혹시 중국 측의 공작?]
[그럼 탈레반이 납치한 게 아니었다는 말인가요?]
[외신에서 이번 납치극이 위구르 테러단체와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
국내 여론은 인질을 곧 구할 수 있을 거라 장담했던 외교부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졌다.
"서 소령님, 이 영상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저희 특전사 비둘기부대에서 찍은 게 아니라 박강준 소장님이 찍은 겁니다. 저희한테 이러실 이유는 없으실 거 같은데요?"
"해외에서 벌어진 납치사태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나라의 부서 간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영상의 존재를 알았다면 우리한테 제일 먼저 알렸어야죠!"
서상혁 소령은 한국 대사관 퀘타사무소로 끌려가 민병국 영사에게 추궁을 당했다.
"협조라고요……? 제가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까? 탈레반보다는 이곳 경찰들이 더 의심스럽다고요? 그래서 몸값 협상을 중단하고 인질 행방부터 찾자고 했죠? 그때 뭐라 그러셨습니까?"
"……그때는 불충분한 증거로 움직일 수 없었던 거 아닙니까!"
끝까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민병국이었다. 어쩌면 나중에 추궁을 당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놓겠다는 심산이었다.
"우리가 인질을 직접 구출하겠습니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만약에 장막파 인질이 공자 문화교류원에 있다면 그건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에요!"
"우리 국민을 구해 오겠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민병국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오히려 서 소령을 타박했다.
"이래서 군인들하고는 얘기가 안 된다는 겁니다…… 쯧! 섣부른 군사작전으로 일을 망칠 생각 마세요! 일단 중국 외교부 측에 이미 사실 확인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니 그걸 확인하고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겁니다!"
민병국은 양팔에 팔짱을 끼면서 서 소령을 노려봤다. 만약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그 책임을 특전사 비둘기부대에 덤터기 씌우겠다는 의미였다.
서상혁 소령은 더 듣고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병국은 그런 서 소령에게 위협하듯 말을 툭 던졌다.
"대사님도 제 생각과 같습니다. 아시죠? 저희 대사님이 참모총장님과도 연이 깊으시다는 거?"
비릿하게 눈웃음을 치는 민병국이었다. 서상혁 소령은 그 모습을 보자 자신이 속으로 했던 결심을 더 굳혔다.
* * *
공자 문화교류원.
한밤중 차량 여러 대가 문화교류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캐리어 짐가방을 끌고 나온 장막파 신도들이 종종걸음으로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차량은 이내 건물 밖을 빠져나갔다.
지상덕은 한국을 빠져나왔을 때보다 훨씬 야윈 모습이었다. 검게 탄 얼굴에 삐죽삐죽 솟은 턱수염, 그리고 처진 눈꺼풀은 그가 얼마나 그간 고생을 해 왔는지를 알게 해 줬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했다.
"형제자매님,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신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종말의 날에 우리를 구원하사! 14만 4천의 구원자들이 악마 들린 이들에게 맞서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이제 우리는 또 미지의 땅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이교도들과 배교자들이 뱀의 혓바닥으로 우리를 유혹할 때……."
끼이이익! 끼이익!
장막파 성도들을 실은 봉고 차량이 급격히 커브를 틀었다. 그리고 낮이었으면 바글바글했을 바자르를 관통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지상덕이 불안한 목소리로 비틀거리는 몸을 붙잡고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운전기사는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을 중국어로 건넸다.
"운전을 좀 조심해 주십시오…… 성도들이 놀랍니다……!"
대꾸하지 않는 운전기사였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차량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또다시 10여 분을 달려 캄캄한 콘크리트 건물 앞에 다다랐다.
"여긴 어딥니까? 우리를 중국 영내인 카스로 데려다준다고 하지 않았소?"
지상덕의 질문을 운전사는 귓등으로 듣고는 자신의 할 일을 이어갔다. 차량 내부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에서 그는 메모리카드를 빼냈다.
덜컹!
뒷문이 열리며 헤드에 랜턴을 단 한국의 특전사 비둘기부대원들이 장막파 신도들을 맞이했다.
"인질 여러분! 안전지대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서 소령님, 임무 완수했습니다!"
중국인으로 보였던 운전사는 특전사 예비역 제이콥이었다. 서상혁 소령이 제이콥에게 메모리를 받아들고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주먹을 들어 올렸다.
"부대원들 모두 수고했다! 인질들을 안쪽으로 안내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다!"
"뭡니까?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요!"
지상덕은 오히려 자신을 구출한 특전사 지휘관 서 소령에게 따져 물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방금 한국군에게 인도되었고, 내일 아침 군 수송기를 통해 한국으로 인도될 겁니다!"
"우…… 우린 펀자브 지역을 거쳐 인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린칭에게 약속을 받아 놨고요!"
"이곳 파키스탄에서 여러분들이 일으킨 사건이 얼마나 물의를 일으켰는지 아십니까? 위험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은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번처럼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는 국익에 엄청난 해가 되기도 하고요!"
단호한 눈빛으로 지상덕 목사를 쏘아보는 서 소령이었다.
* * *
그 무렵 강준은 카마르와 함께 파키스탄을 빠져나와 인도 국경지대에 다다랐다.
그곳은 국경을 마주한 인도, 파키스탄, 중국…… 어느 나라의 실질적인 지배권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카마르는 언덕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이르자 차를 멈춰 세웠다.
"바로 여기다."
카마르는 동투르키스탄 해방전선의 무자히드를 내리게 했다. 강준은 그들을 따라 내렸다. 유목 생활을 하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마을을 비춘 불빛이 그곳이 작은 도시임을 알게 해 주었다.
"형제여. 여기서 당신의 과업을 이루라! 이곳이라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당신 가족과 형제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오."
"고맙습니다. 카마르…… 당신들과 가는 길이 다를지라도 우린 우리의 투쟁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무자히드! 피 흘리지 않고 그냥 얻는 건 아무것도 없소."
카마르는 무장투쟁 노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우린 아직 중국 정부와 총부리를 겨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위구르인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갔으니까요…… 우선은 국제사회에 위구르의 상황을 알리고, 독립을 위한 여론을 만들어 볼 겁니다."
"이제 우리 탈레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더는 당신네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 중국 정부에 휘둘려 위장 위구르 단체를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다……."
무자히드는 헤어지기 전 강준에게로 다가왔다.
"당신들 한국도 역사적인 아픔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암흑 속에 있었지만, 결국 독립을 일궈 냈죠. 닭의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전직 대통령이 했던 얘기인데…… 어쨌든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 우리 위구르인은 희망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인샬라!"
무자히드는 탈레반 대원이 준비한 차를 갈아타고 언덕 아래의 도시로 내달렸다.
강준은 몇 년 후 그들이 대규모의 집단수용소에 갇히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마르가 안내해 준 국경지대가 그들의 피신처가 되기를 원했던 거였다.
"박강준, 여기까지가 내가 한 약속이요. 이제는 당신이 나와 한 약속을 지킬 차례요."
"물론입니다. 이미 얘기가 된 일이니까."
강준은 서류 가방 두 개를 열어 보였다. 골드바로 꽉 채워진 가방이었다.
"총 500만 달러입니다. 애초의 인질 몸값보다야 적은 금액이지만 체면도 세우고 이슬람 형제도 돕고 일거양득이 아닙니까?"
"한국에서 온 친구여…… 우리 진짜 형제의 정을 나누지 않겠는가?"
카마르는 이슬람식 무늬가 새겨진 단도를 꺼내 진짜 피를 나누려고 했다. 강준은 그 단도의 날카로운 칼날을 바라보며 손사래를 쳤다.
"어어……! 일단 넣어 두십시오. 당신들의 무장투쟁이 끝나는 날…… 그때 형제의 정을 나누겠습니다."
이번 일로 탈레반과의 공조 작전을 하긴 했지만, 엄연히 국제사회에서 테러단체인 탈레반과 형제의 정을 나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카마르는 강준의 에두른 거절이 못내 아쉬운지 단도를 집어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자기네들의 체면도 세우고 실리도 챙기게 한 강준의 제안이 꽤 맘에 든 모양이었다.
"친구여 퀘타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닙니다. 우린 인도를 통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럼, 신의 가호가 있기를!"
카마르는 부하에게 눈짓으로 차량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굳이 폭탄 테러가 빈발하는 파키스탄의 위험지역으로 다시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강준은 차에 올라탄 후 제이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이콥, 제대 후 너의 첫 임무 완수를 축하한다!"
―정말 버라이어티한 임무였네요…… 파키스탄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카라코람(Karakoram) 도로는 정말 평생 못 잊을 겁니다.
"짜식! 고산병으로 고생했구나!"
―전 이제 높은 지역은 사양하겠습니다. 소장님, 지금 서 소령님과 함께 한국으로 출국합니다.
"그래, 고생 많았다. 한국에서 보자!"
강준은 달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높은 언덕 사이로 불그스레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 * *
한국 인천공항.
지상덕 목사를 비롯한 9명의 장막파 신도들은 얼굴을 가린 채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기자들이 들러붙었다.
강준이 제공한 공자 문화교류원에서의 영상은 장막파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이 정말 납치된 건지 아니면 중국 측의 공작에 이용된 건지 언론에서는 연일 격론 중이었다.
"한국 기독교 사회에 크나큰 물의를 일으킨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에서의 선교활동 과정에서 중국 당국에 포섭된 건 아니라는 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럼 누가 장막파 신도들을 납치한 겁니까?"
"퀘타 지역은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 근방에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정치적, 종교적 세력이 얽혀 있는데요…… 우리 장막파를 납치한 건 강경 이슬람 세력인 걸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중국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공자 문화교류원에 체류하고 있었던 건가요?"
"……그건 중국 측에서 일종의 몸값을 지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저희가 직접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왜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나요?"
"그…… 그건……."
지 목사가 우물쭈물하자 옆에 있던 국정원 직원이 대신 답했다.
"지상덕 목사는 한국 경찰에 수배가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기자님들, 일단은 납치 경위에서부터 구출까지의 얘기는 국정원 조사 후에 공식적으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 목사와 장막파 신도들은 경찰이 아니라 국정원에서부터 조사받게 된 처지가 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준에게 서 소령이 말을 건넸다.
"박 소장님, 중국 측이 퀘타 시장 말릭에게 뇌물을 건넬 거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인도와의 국경 분쟁 때문에 지금 중국 측은 파키스탄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가려 합니다. 각종 인프라 사업을 파키스탄에서 일으키려면 고위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러니까 그 뇌물을 그 타이밍에 딱 건네는 걸 어떻게 아셨냐는 거죠?"
"하하! 저도 나름의 정보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테러단체가 벌였다던 인질극에 그냥 아무것도 없이 왔겠습니까?"
퀘타 시장 말릭을 만났을 때, 그의 기억을 읽었노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핑계 대는 강준의 답에 서상혁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듣던 대로 귀신도 못 따라간다는 보험조사관이시군요."
강준은 그저 뻔뻔하게 칭찬을 넙죽 받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