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파키스탄 인질극 (4) (189/250)

189화. 파키스탄 인질극 (4)

대한민국 비둘기부대 파병 주둔지.

"박 소장님, 정말 자신 있는 겁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특전사 대원들이 있는데 죽기야 하겠습니까?"

"저놈들은 사람 목숨을 별거 아니게 생각하는 놈들입니다. 만약 작전이 틀어진다면 저희도 소장님 목숨을 담보해드릴 수 없습니다."

강준은 냉철하게 말하는 서 소령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탈레반은 파키스탄 내부에서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나름의 알력 싸움을 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중국 측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가짜 인질극에 장단을 맞춰 온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근데 만약 그게 세상에 밝혀진다면……? 탈레반은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할 겁니다."

"명분이라면……?"

"탈레반이 위구르 형제들을 배신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대로 한번 해 보죠. 대신…… 한국 측 영사를 데리고 같이 가십시오. 그렇게 되면 탈레반에서도 정치적인 부담을 느껴 함부로 살상하지 못할 겁니다."

서 소령은 민병국 영사를 끌어들이라는 말이었다. 강준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현지 대테러임무의 베테랑인 서 소령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좋습니다. 인질 몸값을 받아 내는 순간 탈레반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현장을 완전히 통제하셔야 합니다."

"그건 염려 마십시오!"

강준은 서 소령의 말을 듣고는 그가 내민 작은 위치추적기를 목구멍으로 삼켰다.

* * *

다음 날. 퀘타 시내 시아파 모스크.

콰쾅! 콰르르르!

이슬람 사원 앞에 있던 강준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납작 몸을 웅크렸다.

탈레반 지도자 카마르와 만나기로 했던 강준이었다. 카마르가 제안한 장소가 바로 모스크 앞이었고, 강준은 탈레반에게 인질과 관련한 새로운 제안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카마르가 강준에게 보인 건 오히려 일종의 경고였다. 자신들의 요구에 협조적이지 않다면 저렇게 다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였다.

강준은 얼른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테러를 일으키고 그걸 지켜보는 탈레반 대원이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복장의 사람 중에 누가 탈레반 대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타타다탕! 타다다탕!

뒤이어 총소리가 이어졌고, 정부군으로 보이는 이들이 지프차를 타고 거리를 점령했다. 강준은 2G 핸드폰을 꺼내 서상혁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 소령님, 여기 모스크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카마르가 주도한 거 같습니다.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박 소장님은 괜찮으십니까?

"괜찮긴요. 죽다 살아남았습니다!"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민 영사를 데려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민병국 영사는 서 소령과 강준이 계획한 작전뿐만 아니라 퀘타에서의 활동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서 소령은 민 영사를 더 설득해 보라고 했지만, 강준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우겼던 것이었다.

―예정됐던 작전은 취소하겠습니다! 일단 숙소로 복귀하시죠!

"네, 면목 없습니다. 다시 연락드리죠!"

강준이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시야에 낯익은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퀘타에서 납치당했던 날 차량을 운전했던 운전사였다.

"뭐야? 당신이 여기에 왜……?"

강준은 운전사를 뒤쫓아 발걸음을 옮겼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셔츠를 입은 운전사는 골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강준이 그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머리에 검은 두건이 씌워졌다.

"이런 젠장!"

두 번째 납치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탈레반들은 두 번째 납치에서는 그리 사람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납치된 골목에서 차량으로 10분 정도 달렸을까?

첫 번째 납치 때 끌려온 곳에 도착했다. 계단의 개수와 바닥의 질감, 그리고 그곳에서 풍기는 지하실의 축축한 냄새!

계단으로 끌려간 강준은 예의 그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혀졌다. 이제 정말로 탈레반의 지도자 카마르를 만날 모양이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무거운 음성과 함께 두건이 벗겨졌다. 강준의 눈앞에는 예상대로 카마르가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강준은 오금이 저리긴 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당신들 생각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인질이 탈레반 측에 없다는 게 곧 밝혀지게 될 테니까요."

"그걸 얘기하려고 만나자고 한 건가?"

"네. 중국 측에서 제안한 가짜 인질극에 휘말리지 말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걸 어쩌나 우린 이미 한국 측과는 얘기가 끝난 상태인데? 인질 몸값을 요구한 대로 주겠다더군."

"과연 당신이 의도한 대로 될까요?"

눈알에 힘을 준 카마르가 무섭게 강준을 노려봤다.

"하산!"

카마르의 외침에 하산은 초승달처럼 휘어진 곡도(曲刀)를 가지고 나왔다. 눈앞에 무시무시한 칼이 보이니 강준도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회귀 전 숱한 범죄자들과 싸워 왔던 강준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겁먹은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겁먹는다고 살려줄 것도 아니잖아!’

"제 노트북에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이 인질을 데리고 있지 않다는 증거죠!"

"뭐……? 인질 영상?"

카마르는 처음 듣는 얘기인 듯 눈을 크게 떴다. 탈레반 측은 본인들도 인질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던 거였다.

"당신도 모르고 있었다는 거군요. 역시 당신네 탈레반은 중국 측에 이용당하고 있는 겁니다! 위구르 위장단체를 만들라고 했죠? 그래서 그대로 따르기로 한 겁니까? 당신네 이슬람 형제들을 배신하면서요?"

"우린 한국에 인질 몸값만 받아 내면 그만이야!"

강준은 카마르를 자극하는 말들을 내뱉었다. 그럴수록 카마르의 얼굴이 벌게지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도 인질의 영상을 보냈습니다. 한국 외교부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영상을 보게 되면 당신네 탈레반에게 몸값을 지불하지 않겠죠."

카마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지시에 하산이 강준의 짐꾸러미에 있던 노트북을 가져왔다.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건지 말해 봐! 별거 아니면 당장 이 칼에 목이 떨어질 줄 알아!"

"아마 이걸 보시면 흥미를 느끼실 겁니다. 이 영상이 국제사회에 유포되면 탈레반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지게 될 테니까요……."

무섭게 노려보는 카마르의 눈빛을 피한 채, 강준은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 영상은 드론이 촬영한 영상이었다.

건물의 상층부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간 카메라의 시점은 곧 줌으로 당겨지며 건물 중앙 운동장을 비췄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점점 아래로 향했고, 사람들이 드론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드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카메라 줌을 당겼다.

그 줌 영상에는 한국 대사관에서 발표했던 장막파 선교 인력들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 보시죠. 카마르! 당신 말처럼 탈레반이 납치했다는 한국인 선교사와 기독교인들이 왜 중국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공자 문화교류원에 있을까요?"

"……이걸 언제 촬영한 거지?"

"며칠 전 촬영한 겁니다. 당신들이 이 인질들을 구출해주지 않는다면…… 전 이 영상을 외신에 풀라고 할 거고 그렇게 되면 탈레반이 세계를 대상으로 허풍을 친 게 들통나는 겁니다!"

그 순간 화를 참지 못한 카마르는 주먹으로 강준의 턱을 가격했다. 둔탁하게 돌아간 강준의 얼굴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그때 강준의 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하산이 핸드폰을 빼앗아 카마르에게 전했다.

―박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어디십니까?

"나 퀘타지부를 책임지는 카마르요. 한국 측이 준비한 몸값을 가져오지 않으면 이 사람을 당장 죽여 버리겠소!"

―잠깐만! 우리 만나서 얘기합시다!

"만나자고? 아니……! 허튼수작 부리면 전부 다 날려 버리는 수가 있어!"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동투르키스탄 해방전선의 무자히드가 당신을 만나기를 간절히 청하고 있습니다!

"……."

카마르는 즉답하지 못했다.

* * *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강준이 납치된 건물은 한국의 특전사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였고, 지하실로부터 지상으로 나가는 모든 출입문이 봉쇄됐다.

―카마르 우리는 대화를 원한다! 나는 동투르키스탄의 무자히드다.

한참을 대치하던 탈레반은 수류탄을 강준의 눈앞에 갖다 대며 협박하기도 했지만, 자신들 이슬람 형제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강준은 탈레반이 처한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카마르는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인질값을 중국 측에 받아 내고 입을 닦자는 건가?"

"어차피 가짜 인질극에 동조하게 되면 그거대로 비판받을 일이 아닌가요? 중국 측으로서는 언젠가는 당신들의 뒤통수를 칠 겁니다."

"무슨 근거로?"

"앞으로 중국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와 일대일로 사업이라는 걸 할 겁니다. 도로를 연결하고 항만을 건설해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거겠죠. 그런 상황에서 당신네와 협력관계가 들통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결국 우리는 위구르 탄압에 이용만 될 거라는 거군."

"네, 실리적으로 생각하십시오."

"그래도 우린 한국에도 몸값을 받아야겠어."

"드리죠.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공자 문화교류원에 있는 한국인 인질 구출에 협조해 주십시오. 그 정도는 할 수 있으시죠?"

카마르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신을 풀어주겠다. 그러니 밖의 포위도 풀어라."

"3일 내로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알겠다. 우리 무슬림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무자히드가 들어오기 전에 카마르는 강준을 내보냈다. 입구에서는 서상혁 소령이 강준을 보고 사격하지 말라는 신호를 대원들에게 보냈다.

"박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인 인질을 구출하는 데 협조해 주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카마르를 잡겠습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저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니까요!"

"서 소령님, 탈레반 세력은 이곳 퀘타 여기저기에 널려 있습니다. 저들과의 약속을 굳이 깨야 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때 카마르와 탈레반 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자히드가 누구요?"

각 포인트의 대원들이 일제히 카마르에 저격 총을 겨눴지만, 서 소령은 발포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대화를 원했던 무자히드가 앞으로 나섰다.

"동투르키스탄 해방전선의 무자히드입니다. 이슬람 형제로서 터놓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얼마든지……."

카마르는 길가에 주차된 지프차를 가리켰다. 자기네 영역에서 얘기하자는 거였다. 어쩌면 탈레반 측에 납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서 소령은 발걸음을 떼려는 무자히드의 손목을 붙잡았다.

"괜찮습니다. 소령님.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인생입니다. 동투르키스탄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 할 일이 없죠."

무자히드는 한국의 특전사 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탈레반의 지프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의 카마르는 강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3일……! 다시 연락하겠다!"

지프차는 흙먼지를 날리면서 복잡한 퀘타시의 도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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