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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파키스탄 인질극 (3) (188/250)

188화. 파키스탄 인질극 (3)

공자 문화교류원.

며칠간 린칭(林淸)을 추적한 비둘기 부대원들은 퀘타시의 한복판에 있는 공자 문화교류원에 주목했다. 민간 문화기관의 책임자가 매번 퀘타 경찰들을 동원하고 다닌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매일 드나드는 물류 차량을 확인해 보니 대략 삼십 명 정도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자재가 반입됐습니다."

"서 소령님, 언제 그것까지 조사하셨습니까?"

"적의 동향을 관찰하는 데 기본이죠. 아울러 반출되는 쓰레기도 자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혹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마 라면 봉지가 나올 겁니다. 한국인들이라면…… 지금쯤 라면이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강준은 서 소령과 함께 차량에 타고는 공자 문화교류원의 입구를 응시했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이 강준의 등을 땀으로 적셨다.

"……라면을 언급하시니 저도 라면을 먹고 싶네요……."

"서 소령님은 몇 년째 근무 중이신 겁니까?"

"2년을 다 채워 갑니다. 파병은 순환근무라 2년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쉬우신가요? 아니면 한국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전, 아쉬운 쪽입니다. 그간 대테러작전에 노하우도 생겨가던 찰나인데…… 귀국해야 하니까요."

"천생 군인이시군요."

"그래서 전역 후에 국제 용병부대에 들어갈까 생각 중입니다."

"용병부대요?"

"네. 이곳의 경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강준이 서 소령의 뚝심에 감탄할 무렵, 경찰 호위를 받는 누군가가 린칭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어! 바로 저 사람이 퀘타 시장 말릭입니다!"

"장막파 신도들이 저곳에 머물고 있다면 파키스탄 정부도 가짜 인질극을 방조하고 있다는 거네요."

"저도 왜 정부 쪽에서 눈을 감아 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곳이 탈레반과 관계가 있는 건지……."

린칭이 한국인 선교 인질을 공자 문화교류원에서 지내게 한 건 무척 탁월한 결정이었다. 왜냐면 파키스탄의 다른 곳이었으면 한국인의 얼굴이 금세 눈에 띄었겠지만, 중국인들이 드나드는 공자 문화교류원은 그런 면에서 남들의 시선에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저곳을 급습할 작전을 짜야겠습니다."

"현지 경찰에 퀘타 시장까지…… 그곳에 군인들이 들이닥친다고요?"

강준은 상상만 해도 골치 아파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한국 대사관에는 여기를 말해 줘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고 빨리 인질들 몸값이나 치르겠다는 입장이 아닙니까?"

서 소령은 답답한 듯 주먹을 불끈 쥔 채 핸들에 손으로 한번 쳤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드론이요. 드론에 카메라를 달아서 공자 문화교류원의 내부를 찍는 겁니다."

강준은 공자 문화교류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곳이 ㄷ자 모양의 건물이라는 걸 지목했다.

"며칠 뒤에 이곳 퀘타 대학과 공자 문화교류원 간의 행사가 열립니다. 수백 명이 모일 텐데 그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이 내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박 소장님 말씀은 그러니까…… 저 건물 안쪽의 운동장에서 행사가 열릴 거라는 말씀인 거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저 안에 인질들이 있다면 혹시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겠죠."

"어떻게 장담하시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강제로 억류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강준은 콜라를 따서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잠시 갈증을 식히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인질이 저들이 선전도구로 이용된다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선전도구라니요?"

"기독교 선교를 하러 온 장막파가 중국 측으로서는 나름의 이용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서상혁 소령은 강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파키스탄의 영토는 중국 내에서 가장 민감한 지역인 신장과 연결된 곳입니다. 게다가 인도와의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파키스탄과의 군사적 협력도 필요하고요."

아직 중국의 일대일로(一?一路) 전략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강준은 자신이 짐작하는 린칭의 의도를 서 소령에게 이해시키기 쉽지 않았다.

"박 소장님 말씀을 다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저들이 뭔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는 거군요."

"신장은 위구르인들의 땅입니다. 카슈가르 지구에 위구르 인들의 세력을 분열시켜 놓고 싶은 거죠."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군요."

"아마 그 수법에 장막파 신도들을 이용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슬람의 땅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이들을 자신들이 처리했다고 선전한다면…… 그리고 탈레반이 억류하던 인질을 처리하는 갈등 중재자로 나설 수 있다면?"

그제야 서상혁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준을 돌아봤다.

"파키스탄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심산이군요."

"바로 그겁니다. 만약 며칠 뒤의 행사에 장막파 인질들을 내세운다면…… 그건 중국 측이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는 거라고 봐야겠죠."

서 소령은 주먹 쥔 손으로 다시금 운전석의 핸들을 내리쳤다.

"근데도…… 우리 대사관에서는 탈레반 측과 몸값 협상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러지 말고 탈레반 측 지도자와 접촉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박 소장님, 혹시 카마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서 소령은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네, 얼마 전 절 납치한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카마르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저희 대원들과 교전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 소령으로서도 대안이 없었다. 그저 공자 문화교류원에 인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신장 카스지구 외곽.

제이콥이 만난 사람의 이름은 무자히드. 동투르키스탄 해방전선의 지도자였다.

"전 무자히드입니다."

"한국에서 온 제이콥이라고 합니다."

무자히드는 이슬람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인 타끼야(Taqiyah)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는 위가 평평하고 둥글고 챙이 없는 흰색 천 모자였다.

그는 혼혈인 제이콥의 외모가 한국인 같지 않았기에 경계하는 눈초리로 질문했다.

"근데…… 정말 한국인이신가요?"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는 필리핀인이시죠. 하지만 한국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했고, 지금도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 한국인이라고 봐야겠죠? 하하!"

"실례했습니다…… 들어오시죠."

무자히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오는 걸 허락했다. 그들은 전통가옥인 파오 안에 모여 있었다. 실내는 생각보다 넓었고, 중앙에는 화덕이 놓여 있었다.

제이콥이 들어가자 파오 안에 모인 위구르인의 눈빛이 집중되었다. 낯선 이의 방문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촌장님이 당신에 대해서 궁금해합니다. 우리도 한국인을 본 건 처음이거든요."

촌장이라는 자는 60대의 노인이었다. 햇볕에 탄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제이콥을 맞이했다.

그들은 화덕에 구운 넓적한 빵과 요거트 같은 음료, 그리고 양고기를 내왔다.

"여긴 원래 신장이 아니라 동투르키스탄의 땅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땅이 황폐하지 않았거든요."

과거에 철저히 유목 생활에 의존했던 위구르인은 이제는 도시에 산양 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또한 녹록해 보이지 않았다.

"산양이 먹을 풀들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저희도 그게 걱정입니다. 점점 가축들 먹일 땅이 사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가축을 줄일 수도 없죠. 그게 저희의 주요 수입원이니까요."

무자히드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이자 농민공 출신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대도시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에 휘말려 공안에 붙잡혀 간 일이 있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위구르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었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에 뛰어든 거였다.

"한족들이 좋은 일자리를 다 차지했어요. 우리는 예전처럼 가축을 기르는 것 말고는 먹고살 게 없죠."

동투르키스탄은 신장(新疆)자치구의 옛 지명이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당신들은 중국인들과 문화적으로 아주 다르군요."

"……이곳은 중앙아시아에 더 가까우니까요."

"그래도 중국 정부에서 공장을 세우고 일자리를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글쎄요…… 전 믿지 않습니다. 집단수용소나 다름없는 곳을 만들어 우리를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제이콥은 강준이 카스에 오기 전에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언론에서 발표되는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를 거야. 그들을 단순히 반사회적 테러 집단으로 보기는 힘들어.]

"우루무치가 이곳보다 더 큰 도시 아닌가요?"

"우루무치에만 300만 명이 삽니다."

"……중국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군요."

"하지만 거기서는 돈 벌 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들 큰 도시로 나오는 거죠. 하지만 이제는 어딜 가나 우리를 통제하려고 합니다."

무자히드는 항저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원단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자전거 기사로 농민공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가족들과 함께 도시 생활을 꿈꿨지만, 결국 한족들처럼 정착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였다.

"제가 여기 온 건 파키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작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칭한 위구르 단체가 만들어진다는 거죠?"

"네, 탈레반과 중국 측이 뭔가 일을 꾸미려고 합니다. 위장 위구르 단체를 만들어 그들이 테러를 저지르게 하고 국제여론이 위구르에 등을 돌리게 하려는 겁니다."

"우리를 무자비한 테러주의자들로 만들겠다는 거군요."

무자히드의 표정에서는 무기력함과 처참함이 뒤섞여 있었다.

"공작이 벌어지는 파키스탄 퀘타에 저희와 함께 가 주십시오. 그래서 탈레반 지도자 카마르를 직접 설득해 주십시오!"

무자히드는 촌장과 위구르어로 대화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하던 무자히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이슬람 형제들과 대화하는 건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요."

"네, 분명 꼬인 실타래를 잘 풀 수 있을 겁니다."

"근데…… 당신들 목적은 뭔가요?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 이곳 카스 지구에까지 온 게 아닙니까?"

제이콥이 기다렸던 말이었다.

"지금 한국인 인질들이 공자 문화교류원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만약 탈레반 지도자 카마르와 얘기가 잘되신다면…… 저희 인질의 석방을 위해서도 힘을 써 주십시오."

"이번 일은 저희 위구르인에게는 무척 큰 위기였습니다. 그런 위기에서 도움을 주셨으니 당연히 저희도 도움을 드려야겠죠."

무자히드는 제이콥에게 거친 손을 내밀었다. 농민공으로 살아왔던 그의 흔적이 묻은 손이었다.

제이콥이 파오 밖으로 나가자 가죽이 벗겨진 양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날카로운 칼을 쥔 위구르 남자는 배를 가르고는 염통과 내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간으로 보이는 내장을 그 자리에서 잘랐다.

그들은 이내 쇠꼬챙이에 큼지막한 양고기를 끼워 넣고는 화덕의 불에 구웠다. 노릇노릇한 양고기 냄새가 제이콥의 식욕을 자극했다.

"오! 생각지도 못한 만찬이군!"

광대한 초원 위에서 만찬을 즐기게 된 제이콥의 광대가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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