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파키스탄 인질극 (2)
"탈레반 측에 납치를 당했었습니다."
"네? 납치요? 허…… 거참! 납치를 해결하겠다고 오신 분들이 납치를 당했다고요?"
걱정하는 듯하지만 묘하게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민병국 영사는 밤늦게 자택으로 찾아온 강준 일행을 마지못해서 안으로 들인 분위기였다.
"운전사가 관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차량 섭외는 대사관 측에서 하신 거 아닌가요?"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전화 연락을 받기론 두 분이 운전사를 두고 어디론가 가 버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납치를 당하게 된 건 온전히 위험지역인 퀘타에서 처신을 잘못한 강준 탓이라는 얘기였다. 미간을 찌푸린 제이콥이 뭐라 항의하려 하자 눈치 빠른 영사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도 낮에 뵙게 되면 보여드리려고 했던 자료가 있었는데 잘됐네요."
민병국 영사는 노트북을 가져와 영상 한편을 틀어 보였다. 영상에 담긴 이는 강준이 군산에서 만났던 지상덕의 모습이었다.
"지상덕 목사가 퀘타에 입국한 건 두 달 전입니다. 그전에는 산둥성의 한 교회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그 교회에서 찍은 영상입니다."
영상 속 지상덕은 열렬히 믿음을 전파 중이었다.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갈 자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 7장의 말씀! 환란에서 구원받을 이는 하나님의 도장을 머리에 찍은 14만 4천 명의 종들이다!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성경의 말씀을 전파하여야 할지니! 할렐루야!]
그는 군산의 장막파 신도 황인규 못지않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준은 전에 자신이 봤던 지상덕이 맞는지 눈을 씻고 다시 확인했다.
핏발선 눈, 신념에 가득 찬 목소리, 그리고 꽉 쥔 두 주먹. 낯설지만 어디선가 봤을 법한 익숙한 광경. 전형적인 사이비 목사의 설교 장면이었다.
"아시다시피 중국 당국에서도 이 교회에 대해서 상당히 주시하고 있었나 보더라고요."
"지상덕이 여기 담임 목사는 아니지 않나요? 입국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잖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2년간 산둥성으로 선교 인력들을 꾸준히 보냈습니다. 대략 한국에서 넘어간 전도 인원이 스무 명이 넘죠? 그리고 그곳에서 또 교세를 넓혔고요. 지상덕이 담임 목사가 맞습니다."
강준이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장막파는 이미 산둥성에서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5개 도시에서 지부가 있었는데…… 다 합치면 2천 명이 넘는답니다."
"……2천 명이 넘는다고요?"
"네. 그러니까 중국 당국에서도 화들짝 놀란 거죠.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집단행동을 하고 그게 정치적인 행동으로 드러날까 봐 무서워하는 겁니다."
"정치적인 행동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를 빙자해 사기를 치는 게 문제죠."
강준의 말에 민병국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중국에서 지상덕 목사와 신도들 몇 명을 추방했습니다.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명목으로요."
"그리고서 지상덕이 이곳 파키스탄으로 온 거군요."
"……근데 이상한 건 핵심 인물들이 추방됐는데 중국의 장막파 교회는 건재하다는 겁니다."
"뭔가 이상하군요……."
강준은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카마르의 기억에서 읽었던 동양인 남자를 떠올렸다.
"린칭이라는 자를 아십니까?"
"……린칭이라면…… 아! 여기 중국대사관에서 운영하는 공자 문화교류원의 원장입니다."
"그 공자 문화교류원이라는 곳이 탈레반과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하하! 그럴 리가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은 공식적인 정부를 이룬 적이 있습니다만…… 이곳 파키스탄에서는 테러단체일 뿐입니다. 물론…… 여기 퀘타의 시민들은 탈레반에 꽤 우호적인 분들이 많습니다만."
옆에 있던 김준혁이 말을 거들었다.
"인질에 지불한 돈을 미리 마련해 뒀다는 얘기가 사실인가요?"
"네, 비공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비공식적으로 누가 또 알고 있나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다는 건 한국 측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고 봐야죠."
외교 라인과는 상관없는 금감원 쪽에서 치고 들어온 게 못마땅한 민병국이었다.
"민 영사님, 인질에 몸값을 지불하는 것 말고 다른 방안 쪽으로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다른 쪽이라면 뭘 말하는 겁니까?"
"인질을 직접 구출하는 방안이 있을 거 아닙니까?"
강준의 말에 민병국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저 여기 영사로 온 지 벌써 7년째입니다. 이라크 내전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중동에서 안 겪어 본 일이 없죠…… 근데 여기 테러단체를 상대로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을 펼친다고요? 미군도 웬만해서는 엄두도 내지 않을 겁니다."
너무 실정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민병국이었다. 초장에 강준이 납치 사안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누르려는 속셈이었다. 외교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의견이 나오는 건 자기네들에게 좋을 게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여기 실정을 너무 몰랐군요."
"네, 이해합니다. 박강준 소장님에 대해서는 저도 조금 들은 바가 있습니다. 보험 사건과 관련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셨다고요?"
보험 분야에만 한정된 사람이니 굳이 다른 곳에서까지 나서지 말라는 얘기였다.
"뭐…… 몇 가지 사건들이 이슈가 되긴 했었습니다. 근데 영사님."
"네, 편하게 말씀하시죠."
"제가 듣기론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던 특전사 비둘기부대가 이곳에 급파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부대는 전투병과도 아닌 지원병과라고 들었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 민병국 영사였다. 이미 비둘기부대가 며칠 전 퀘타로 들어와 납치사건에 관여하고 있었다.
"서 소령이라고…… 지휘관이 좀 그렇습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원래 군인 출신들이 좀 과격하지 않습니까?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데…… 외교적인 사안은 상대국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무척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아닙니까?"
강준은 민 영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루한 설교 따위를 들으려고 밤중에 찾아온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왜요? 벌써 일어나시려고요?"
뒤따라 일어나는 민 영사의 어깨를 잡고 강준은 다시 자리에 앉혔다.
"밤도 늦었는데 제가 너무 실례했네요!"
"아니……그래도 여기까지……."
"낼 뵙겠습니다. 쉬십시오!"
강준은 민 영사를 말리는 시늉을 하며 그의 기억을 읽었다. 비둘기부대의 서상혁 소령. 그는 대사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었다.
* * *
퀘타 유엔군 주둔지.
"박강준 소장님?"
비둘기부대를 이끄는 서상혁 소령은 사막 위장무늬로 된 군복을 입고 강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 소령님. 유엔군과 긴밀한 협력을 하시나 봅니다."
"네, 일전에 아프간에서 함께 유엔군 구출 작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이번에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서 소령은 단단한 체격에 시원한 눈매를 가진 30대 중반의 젊은 장교였다.
"민병국 영사님과 공조는 삐걱대는 거 같습니다만?"
"아……."
치부를 들킨 서 소령은 얼굴을 잠시 붉히고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삐걱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정보에 접근이 쉽지 않고요……."
"지상덕 목사를 비롯한 인질들에 대한 정보 말이군요."
"탈레반들이 인질을 억류하고 있다는데…… 제가 입수한 다른 경로의 정보에 따르면 이번 납치사건에 탈레반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탈레반이 아니라면 어딜 의심하고 계신 겁니까?"
서상혁 소령이 미간을 좁히며 말문을 닫았다. 강준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퀘타시의 경찰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어……! 혹시 무슨 정보라도 갖고 계신 겁니까?"
놀란 눈으로 되묻는 서상혁 소령이었다.
"저도 이곳에 도착해서 곧바로 납치를 당했었습니다. 멀쩡한 대낮에 카페에서 기관총을 든 괴한들한테 말이죠……."
"그래서? 무사하셨습니까?"
"무사하니 제가 이곳에 소령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강준의 말에 옆에 있던 제이콥이 맞장구를 쳤다.
"저희 아주 죽을 뻔했습니다! 한 사람만 겨우 들어가는 감옥이었는데…… 평생 만두만 먹는 줄 알았다니까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마 두 분을 풀어준 걸 보니 경고성 납치였나 보군요."
"그러니까요…… 선교사들 납치사건에서 한국 정부는 손 떼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거 아닐까요?"
서 소령은 제이콥의 질문에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몇 년 전에도 선교사들의 납치 건이 있었습니다. 몸값 협상이 오가던 중에 결국 피살당했죠……."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무조건 유화적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인질 협상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하게 압박해야 합니다. 한국인 인질을 건드리면 호되게 당한다는 걸 보여 줘야죠."
강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유화적으로 나간다고 저들이 우리를 잘 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벌집처럼 잘못 건드리면 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우리를 만만하게 보지 않을 겁니다!"
서 소령의 말은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적극성이 있는 이가 퀘타에 있다는 게 강준으로서는 무척 다행이었다.
"린칭이라는 인물이 한국인 인질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린칭이요? 어느 나라 소속입니까?"
"중국이죠. 인질들의 리더인 지상덕 목사가 거쳐 온 곳이 바로 중국입니다."
"아……!"
"다들 사복으로 갈아입으십시오. 린칭을 밀착 마크해야 할 거 같네요."
군복을 갈아입으라는 강준의 말에 서 소령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퀘타시의 경찰 건물을 중심으로 린칭의 행적을 추적하겠습니다. 제이콥 린칭에 대한 자료 좀 줘 봐."
"네, 알겠습니다!"
제이콥은 프린트된 자료를 서 소령에게 건넸다. 자료를 넘기자 린칭에 대한 인적 사항과 이곳저곳에서 확보한 일상 사진들이 나왔다.
"이건 언제 다 만드신 겁니까?"
"저희가 한국에 유능한 팀원이 있거든요."
자료는 김준혁이 공자 문화교류원에 대한 공식 사이트와 중국 내 SNS를 통해 린칭에 대한 모든 흔적을 긁어 모은 것이었다.
"박 소장님, 그럼 이 일은 우리 비둘기부대에 맡겨 주십시오."
"민 영사는 비둘기부대가 지원병과라고 하던데요?"
"하하! 겉보기에는 지원병과지만 구성원들은 모두 전투병과를 거친 베테랑들입니다. 국제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팀으로도 손색이 없죠."
"서 소령님을 보니 든든하네요. 근데 저도 보험조사관으로서 인질 구출 작전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잠시 머뭇거린 서 소령은 강준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물론입니다! 민간인 신분이시지만 특별히 작전 합류를 허락합니다!"
서 소령은 강준을 향해 거수경례했고, 강준 역시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그나저나 회귀 전 군대 다녀왔던 게 기억도 안 나는 군…… 내가 경찰이 안 됐다면 아마 군인이 되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