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파키스탄 인질극 (1) (186/250)

186화. 파키스탄 인질극 (1)

발루치스탄 주, 퀘타(quetta).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퀘타시. 그곳은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들의 근거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

강준은 제이콥만을 데리고 파키스탄으로 입국했다. 그런 위험지역에 팀원 모두를 데리고 오는 건 무모한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준혁과 송지희는 자신들도 함께 가겠다고 우겼지만, 강준은 을지로 사무실을 비워 놓을 수 없다는 핑계로 둘을 한국에 있게 했다.

"소장님, 벌써 인질들 몸값을 다 준비해 놨다면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이 없는 거 아닌가요?"

"물론 그렇긴 해. 근데 인질들이 왜 여기 파키스탄 퀘타에서 납치가 됐는지 그리고 정말 무사하게 지내고 있는 건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또……."

"거액의 납치 특약 여행자보험을 든 선교사들이 고의로 그랬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거요?"

"인질로 잡힌 사람들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맞아. 바로 그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거야."

덜컹거리는 흙길을 내달린 차량은 사람들이 모인 시장 근처에 가서야 포장된 도로 위로 올라탔다.

빵빵! 빠아아앙! 빵빵!

혼잡한 도로에는 삼륜차인 릭샤와 농산물을 실은 짐차가 얽혀 꽉 막힌 상태였다.

"근데 영사님이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 맞나요?"

"어, 도대체 왜 이런 곳 근처에서 보자고 한 건지……."

강준은 현지 운전사에게 식당 명함을 내밀고는 다시 한번 위치를 확인했다. 운전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노 프라블럼’을 외칠 뿐이었다.

그렇게 30분을 길에서 소모하고 나자 강준은 기운이 쪽 빠져 버리는 것 같았다. 운전사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길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게 자기 책임은 아니라는 듯 현지어로 뭐라 중얼거렸다.

"제이콥, 여기 공용어가 우르두(Urdu)어라는데 뭐 할 줄 아는 단어라도 있냐?"

"제가 영어, 한국어, 중국어, 타갈로그(Tagalog)어…… 그리고 일본어도 조금 하지만, 여기 우르두어는 금시초문입니다."

"오! 너 금시초문이라는 단어도 아냐? 한국어는 많이 늘었네."

"네. 대신 다른 언어능력은 조금씩 후퇴했죠. 군대 있는 동안 한국어만 썼으니까요."

결국 운전사는 길 한쪽에 차를 세워 버리고는 엔진을 껐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강준이 항의하자 운전사는 꽉 막힌 길을 보면서 저길 어떻게 가냐는 식으로 되레 화를 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길가에 있는 카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혼잡한 시장 가게들 사이에서 그나마 앉아서 뭐라도 마실 수 있는 깔끔한 카페였다.

"제이콥, 저기서 목이나 축이고 가자."

"네, 알겠습니다!"

카페에 들어서자 흰색 바지와 셔츠의 전통 복장인 샬와르 카미즈(salwar kameez)를 입은 남자들이 일제히 강준과 제이콥을 쳐다봤다.

마치 둘이 못 올 곳을 왔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지 적의는 없었다. 제이콥은 재빨리 현지 화폐인 루피화로 콜라 두 잔을 주문했다.

"기사 음료는 나갈 때 주문해 주자고…… 근데 아까 딱 30분만 있다가 다시 출발하자고 한 거였지?"

"네, 분명히 손가락 세 개를 내밀었잖아요? 제가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보디랭귀지만 한 만국 공통어가 또 없다니까요."

너스레는 떠는 제이콥은 빨대로 콜라를 쭉 들이마시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더운 태양의 열기에 달아올랐던 몸이 금세라도 식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차량에 있을 줄 알았던 운전사가 겁먹은 얼굴로 카페에 들어왔고, 운전사를 뒤따라 자동소총을 어깨에 멘 남자 둘이 뒤따라왔기 때문이었다.

"박 소장님……."

"어? 뭔데?"

뒤를 돌아본 강준의 얼굴에 시커먼 옷을 걸친 남자가 총부리를 겨눴다.

"오우! 호텔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거…… 일정이 아주 버라이어티해지겠는데……."

강준과 제이콥은 조용히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납치된 인질을 조사하러 온 둘은 현지 조사를 하기도 전에 본인들부터 납치된 거였다.

"겟 아웃!"

"……젠장……! 제이콥 아무래도 우리 좆된 거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대하고 나서 첫 사건인데 시작부터 이렇게 꼬이나요?"

자동소총을 둘러멘 남자가 둘이서 꿍꿍이를 꾸미지 말라는 듯 강준의 어깨를 툭툭 쳐 댔다. 빨리 걸으라는 얘기였다.

* * *

그들은 강준과 제이콥에게 검은 두건을 씌웠고, 한참을 달려 어딘가에 도착했다. 건물 안으로 끌려들어 간 강준은 어둠 속에서 걸으면서 그곳이 시멘트 바닥이고 주변의 소음으로 봐서는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다.

‘빙빙 돌아서 결국 근처로 되돌아온 거군……!’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고, 좁은 공간에 갇힌 강준의 두건이 휙 벗겨졌다. 그곳은 한 사람만 겨우 누울 수 있는 사설 감옥이었다.

"제이콥!"

"소장님, 저 여기 있습니다!"

다행히도 제이콥은 바로 옆 감방에 있었다. 서로 의사소통이 되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이콥, 몸은 무사하냐?"

"네, 소장님은요?"

"난 괜찮다. 근데 저놈들 말이야…… 탈레반이 아닌 거 같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강준은 끌려오는 동안 납치범들의 기억을 읽었다. 저들에게 납치 지시를 내린 이들은 퀘타시의 경찰이었다. 그리고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이들이 강준이 타고 온 차량의 운전기사를 포섭했던 거였다.

"보니까 경찰 같아. 여기 퀘타시 경찰."

"그걸 어떻게 아셨는데요!"

놀라 되묻는 제이콥이었다.

"아까 슬쩍 두건을 열어 봤지. 경찰 제복을 입은 놈들이 여길 안내하더라고."

적당히 둘러댄 강준이었다.

"그럼! 여기가 파키스탄 경찰 감옥이라는 겁니까?"

"……진짜 경찰 감옥이라면 우리를 데리고 온 놈들도 경찰 제복을 입었겠지. 뭔가 뒷구멍으로 일을 하려니까 사복 입은 놈들에게 납치를 맡긴 게 아닐까?"

"다행입니다. 소장님!"

"왜?"

"경찰인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강준은 납치당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제이콥의 발언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제이콥, 우리가 돈만 된다면 경찰이라도 우리를 팔아넘기지 않겠냐?"

"소장님 말씀을 들으니……! 혹시 한국 대사관 측에서 몸값을 준비해 놨다는 정보가 빠져나간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곳이니."

납치된 선교 인력이 10명, 1명당 100만 불의 몸값을 요구한 탈레반이었다. 하지만 납치를 실행한 조직이 탈레반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저 탈레반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었을 뿐이었다.

몇 시간 동안 갇혀 있었을까? 영어를 할 줄 아는 남자가 철창 밖으로 다가왔다.

"당신들 뭐 하러 여기에 온 거요?"

"탈레반 단체에서 나오신 건가요?"

"묻는 말에만 답하시오. 퀘타에 온 이유가 뭡니까?"

"당신네가 한국 선교사와 기독교인들을 납치했다고 들었습니다. 인질을 구하기 위해 저희가 온 거고요."

"소속과 성명을 대시오!"

"대한민국 금융감독원 특별보험조사팀 박강준 소장입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남자는 ‘보험?’이라며 되물었다.

"네, 인질극이 자작극이 아닌지 확인해야 했거든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얼마나 합니까?"

뜬금없이 비행기 삯을 묻는 남자였다.

"글쎄요…… 천오백 불 정도 합니다만……."

"한국으로 돌아가시오."

"네? 그냥은 못 돌아갑니다. 먼저 한국인 인질들을 풀어주십시오."

남자는 그제야 무서운 눈으로 강준을 노려봤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린 당신을 죽일 거요."

단호하게 말하는 남자였다. 강준은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나도 알아야겠습니다! 왜 우리 한국의 국민을 납치했는지…… 그리고 뭘 요구하는지도요!"

"그야 당연하지 않소? 여긴 알라의 땅이요. 우린 이곳에 우리를 모독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을 거요!"

그때 옆방에서 제이콥이 소리쳤다.

"당신들 혹시 여기 경찰 아니야? 경찰이 민간인, 그것도 외국의 관리를 납치하는 건 경우가 아니잖아!"

제이콥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내밀고 있던 강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카마르요. 이곳 퀘타의 탈레반 지부를 이끌고 있소."

강준은 카마르라는 남자와 악수하며, 그의 기억을 읽었다.

카마르는 우르두어로 경찰 제복을 입은 누군가와 언쟁 중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한국인 인질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언쟁하던 그에게 낯익은 동양인 남자가 다가왔다.

[린칭! 인질은 어디 있소?]

[인질은 우리가 잘 데리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편안한 숙소에서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죠.]

[벌써 저쪽에서 인질들 몸값을 준비했답니다! 이제 어떻게 수습할 거요! 우리가 정치적인 부담을 안은 거니 몸값은 반드시 받아야겠소!]

흥분한 카마르가 린칭으로 불리는 동양인 남자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동양인 남자는 침착한 말투로 답했다.

[저들이 준비한 몸값은 고작 천만 불입니다. 그 정도 돈은 저희가 지원해드리죠.]

[……우리 탈레반은 당신들을 믿을 수 없어! 내가 카르카스에 가서 위구르 친구들과 직접 얘기하겠소!]

[그건 안 됩니다.]

단호하게 카마르의 요구를 거절하는 이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었다.

[린칭! 당신의 그 검은 속내를 모를 것 같아? 우리를 팔아서 위구르를 둘로 찢어 놓으려는 거잖아!]

[우리는 신장(新疆)의 평화를 원합니다.]

얄밉도록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린칭으로 불리는 중국인! 그가 누구인지 강준은 더 알고 싶었지만, 카마르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강준은 기억에서 빠져나와 긴 수염을 기르고 있는 카마르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서는 매서운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마르,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난 다시 말하지만, 알라의 땅을 더럽히는 이들을 반드시 응징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인질의 몸값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교도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오. 그러니 당신도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시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카마르의 옆에 있던 부하들이 강준의 머리에 검은 두건을 다시 씌웠다. 철창에서 나온 강준과 제이콥은 다시 어디론가 옮겨졌다.

그리고 캄캄한 밤이 됐을 때, 둘은 두건이 씌워지고 뒤로 손이 묶인 채 어느 아스팔트 바닥에 버려졌다.

"여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누구 없어요!"

"제이콥 더 크게 불러라! 썸바디 헬프!"

그렇게 한참을 외치던 둘에게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귀에 익숙한 언어! 한국인들이었다.

두건을 벗은 강준의 눈에 들어온 건 ‘주 파키스탄 한국대사관 퀘타사무소’라는 간판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저희는…… 민병국 영사님을 찾아야 합니다!"

강준의 첫 말에 대사관 직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강준의 포박을 풀어 냈다.

"민 영사님은 댁에 계실 겁니다. 근데 누구십니까?"

"오늘 영사님과 낮에 만나기로 한 금감원 보험특별수사팀의 박강준입니다!"

민병국 영사를 만나기로 약속한 지 10시간도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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