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제이콥의 합류 (185/250)

185화. 제이콥의 합류

군산 로얄팰리스 호텔.

"전 당시에 학생이었습니다. 어린아이에 불과했죠. 그런 저에게 농약을 탄 성수를 먹이려 했습니다…… 부모님은 제 눈앞에서 두 분 다 돌아가셨죠."

눈물을 훔치는 이는 김준혁에게 제보 메일을 보내 왔던 평안교회 집단 자살 사건의 생존자였다.

"김민석 씨는 그럼 어떻게 생존하시게 된 건가요?"

"정미소 주인인 김덕근 씨가 저를 숨겨줬어요…… 그래서 살게 된 거죠."

언론사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송지희와 김준혁은 장종식 회장이 검거된 바로 다음 날 기자회견을 준비한 거였다.

"만약 살아 있었다면…… 김민석 씨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일이 있었을까요?"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휴거가 끝난 후에는 신도들이 장종식 장로를 중심으로 움직였거든요."

"박봉수 목사가 아니었고요?"

"네, 휴거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강경파였던 신도들이 분노했어요. 그래서 박봉수 목사를 끌어내리고 때리려고 했죠.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요."

"당시에 김민석 씨는 13살 아니었나요?"

"네, 하지만 알 건 다 아는 나이였어요. 부모님이 전 재산을 헌납하고 교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까지 가까이서 지켜봤어요……."

김민석이라는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눈에 힘을 주었다. 30대 초반의 남자는 허름한 행색과 나이에 맞지 않은 탁하고 주름진 얼굴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리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 군산교회의 담임 목사인 최재규 목사가 그 이후에 평안교회를 실질적으로 이어 나간 거나 다름없는데요. 그 이후에 혹시 최재규 목사로부터 도움을 요청해 본 일은 없나요?"

"하하! 둘이 한 패인데 도와줄 리가 있나요? 제가 살아 있는 걸 알았다면 어떻게든 해코지나 했겠죠."

"장종식 회장과 최재규 목사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크시군요?"

"네, 부모님을 죽인 원수니까요……!"

장종식 회장은 김덕근의 살인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김준혁의 인터넷 제보접수로 인해 전국적으로 사건이 알려진 덕분이었다.

군산교회 부목사인 최미향의 목 잘린 시신과 20년 전 평안교회 휴거를 둘러싼 집단 자살사건, 그리고 보험금을 노린 숨겨진 의혹들까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었다. 덕분에 군산 경찰서장인 안대성도 더는 힘을 써 줄 수 없었다.

"난리가 났네요."

기자회견장을 지켜보는 김학필 경사가 강준에게 말을 건넸다.

"안대성 서장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일단 위에서는 진상을 파악한 후에 직위 해제로 갈 것 같습니다. 본인은 위법적인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고 하는데……."

"당시 수사에서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걸 빌미로 안대성을 법적 처벌까지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전 놀랐습니다. 국민 여론이 이렇게 군산에 쏠릴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20년 전 사건이었다. 광신도들의 집단 자살인 줄로만 알았던 사건을 재수사하자는 여론에 경찰 수사당국이 어찌 나올지 궁금해지는 강준이었다.

"그건 그렇고…… 최미향의 진범이 정말 지상덕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학필이 아직 자신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강준에게 물었다.

"네, 제게 왔던 정체불명의 문자들…… 외국인 명의의 선불폰이었는데 발신 기지국의 위치가 전북주류의 공장이었습니다."

"전북주류에…… 지상덕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야간 근무자가 채 1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평안교회 사건과 관련된 사람은 지상덕 씨가 유일하더군요. 김 반장님의 친구분이요."

재수사가 시작된다면 나머지는 경찰인 김학필이 밝혀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창인 지상덕이 그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는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는 김학필이었다.

"지금쯤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건지……."

답답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김학필이었다. 부인인 박영란과 딸을 버려두고 사라져 버린 지상덕이었다.

공식적으로 중국으로 출국한 기록이 남아 있었지만, 국제수사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지상덕의 행방은 알 길이 없는 상태였다.

"박영란 씨에게 연락해 오지 않았을까요?"

"하하…… 영란이는 절 믿지 않습니다…… 자기 남편 잡아가려는 사람으로 생각할 뿐이죠. 예전에는 명석했는데…… 왜 그렇게 된 건지."

종교에 빠져 버린 박영란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김학필이었다. 그때 기자회견장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판의 날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저들을 불구덩이에 빠지게 했습니다. 모두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의 빛으로 이끕니다! 이제 사탄의 무리는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받을 것입니다!"

황인규가 무녀도에서 같이 나온 장막파 신도들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들이닥친 거였다. 그리고 기자 한 명이 창밖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저기 군산교회에 불이 났어요!"

"……화재다!"

고층 호텔의 창밖으로는 나운동의 군산교회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기자들의 말처럼 군산교회의 교회당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학필은 황인규에게 뛰어가 물었다.

"야! 황인규! 너희가 군산교회에 불 질렀어?"

"형사님 내가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그랬죠? 믿어서 은혜받아야 한다고요!"

"그래서 너희가 불을 질렀다는 거야! 안 질렀다는 거야!"

"거짓 선지자들이 하늘의 심판을 받은 거라고요! 우리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믿고 순종할 뿐입니다! 아멘!"

장막파 신도들은 기자들을 향해서 심판 날이 왔다며 소리쳐댔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방화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황인규의 말대로 군산교회에서는 최미향의 살해사건이 벌어진 이후 검증된 교인을 제외한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특히 추수꾼으로 위장한 장막파를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장막파들이 군산교회에 방화를 저지르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20년 전 평안교회 자리에 새로 건축된 군산교회는 분명 불타고 있었다.

그간의 묵혀 왔던 어두운 과거를 털어 내듯 검은 연기를 연신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군산교회의 화재 현장을 마침 기자회견장에 모였던 기자들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 * *

2012년 3월.

특전사 38부대 부대 앞.

"제이콥 너 이제 진짜 한국 사람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했으니!"

"이제 나가서 납세의 의무를 하러 가야죠!"

"돈 벌겠다는 뜻이지?"

"네, 박강준 소장님 사무실에 취업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여기서도 열심히 했으니 보험조사관으로서도 잘할 거다."

"넵! 박 상사님 단결!"

어느새 늠름해진 모습의 제이콥이 유창한 한국어로 박영만 상사에게 경례했다. 만 2년의 복무 기간을 마치고 전역하는 제이콥이었다.

박영만 상사는 슬쩍 아쉬운 듯 제이콥의 어깨에 두드려주며 말을 이었다.

"너같이 외국어에 통달한 놈은 해외파병을 가면 딱 제격인데 말이야…… 쯧쯧!"

"파병도 좋지만 전 이제 보험조사관입니다!"

"알겠다. 이놈아! 박 소장님, 언제 이놈을 이렇게 세뇌한 겁니까?"

제이콥의 전역을 환영하러 온 강준과 송지희, 그리고 김준혁이 박 상사와 제이콥의 작별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 상사님 너무 섭섭해 마십시오. 제이콥의 특기는 제가 잘 살려주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로 갈 일이 생겼거든요."

"네? 해외로 말입니까?"

제이콥이 놀란 눈으로 강준을 돌아봤다.

"고급 인력 영입했는데 우리도 해외 진출 좀 해 보려고. 흐흐!"

"제이콥, 너 파키스탄 가 봤냐?"

"거기 이슬람 국가라서 여자들은 히잡 써야 한다는데 전 그냥 한국 사무실 지키고 있을게요."

금감원 박동식 수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건 제이콥의 전역이 다가오던 며칠 전이었다.

[박 소장님, 금감원으로 한번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의뢰할 사건이 있어서요.]

[무슨 사건인지는 몰라도 일단 가뵙죠.]

[혹시 해외파견도 가능하십니까?]

[물론이죠. 비용처리만 가능하다면요…….]

[아! 물론 비용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근데 문제가 터진 지역이…… 좀 낯선 곳입니다. 파키스탄 퀘타라고…….]

[네? 어디라고요?]

강준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파키스탄에서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실종됐습니다. 테러단체인 탈레반에서 인질값을 요구했고요."

"아……! 우리 특전사도 용병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나갔을 때, 납치 때문에 골치를 썩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곳이 그 지역이거든요."

걱정되는 표정으로 제이콥을 바라보는 박 상사였다.

"선교사들이 실종된 걸 보험조사관들이 나선다는 건가요?"

"그게, 여행자보험이 걸려 있다나…… 그쪽 실종된 선교단체에서 거액의 현지 납치에 대한 특약 여행자보험을 들어 놨더라고. 뭔가 이상하지?"

"마치 자신들이 납치될 거를 알았다는 것처럼요?"

"어. 그리고 말이야…… 결정적으로 납치된 10여 명의 선교사 중에 우리가 아는 인물이 있어."

3달 전, 군산에서 벌어졌던 새천년교회 장막파 사건은 이미 전국에 알려진 일이 되었지만, 군대에 있던 제이콥은 그 자세한 사정을 알 리 만무했다.

그때 다리를 다쳤지만, 이제야 깁스를 푼 김준혁이 제이콥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설명했다.

"장막파라고…… 군산에서 활동하던 사이비종교의 리더가 있는데, 얼마 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중국으로 튀었거든."

"그런 일이 있었나요?"

"이제 제대했으니 인터넷에 찾아봐라. 아마 쭉 나올 거다. 그 사건 우리가 다뤘던 사건이거든."

"오! 저희 팀에서 해결한 사건이라고요?"

"그래, 사건 실체를 거의 다 밝혀 내긴 했지만, 살인범인 장막파 리더 지상덕을 못 잡았지."

갑자기 들어온 많은 정보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상황을 정리해 보는 제이콥이었다.

"근데 그 지상덕이 파키스탄에서 모습을 드러냈어.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채 말이야."

"오우 마이 갓!"

"이번에 우리가 그 인질들을 구하러 가는 거지."

"필리핀 이슬람 무장반군보다 더 무서운 게 탈레반이라던데! 오우…… 전역하자마자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차라리 박 상사님 말대로 파병 갔다가 말뚝 박는 게 나았는데……."

울상이 된 제이콥이었다. 그런 제이콥을 보며 박 상사가 놀리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이콥, 너 아까 네 진로는 보험조사관이라며? 갑자기 적성이 바뀌기라도 한 거냐?"

"그건 아니지만…… 사회에 적응할 시간을 좀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들어보니까 인질을 구출하는 일이라 나라에서 박강준 소장에게 부탁한 일인 거 같은데 특전사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임무 수행을 하길 바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이 제이콥을 위로하듯 말을 보탰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직접 구출하는 건 아니야.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비둘기 부대에서 구출 작전을 맡고 우리는 금감원 현지 조사팀 자격으로 동행하는 형식이다."

"……듣던 중 다행이네요."

"걱정하지 마! 안 죽을 테니!"

강준은 장난스럽게 제이콥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제이콥은 박 상사를 향해 진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박 상사님, 병장 제이콥! 파키스탄에 다녀오겠습니다. 단결!"

"쫄지 마라!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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