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4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8) (184/250)

184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8)

[1992년 당시 군산 평안교회에서 활동하셨던 신도분들을 찾습니다. 당시 집단 자살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들의 제보 부탁드립니다.]

병실에 누운 김준혁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이 퍼져 나가고 며칠간 제보 메일이 쌓였다. 그리고 그중 한 통의 메일이 결정적이었다.

―저도 그때 죽을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수라면서 최재규 부목사가 뭔가를 나눠 줬는데. 전 마시지 않았어요. 왠지 기분이 조금 싸했었거든요.

―혹시 김덕근 씨에 대해서는 기억하시나요? 당시에 정미소 주인이었다고 하던데.

―김덕근은 장종식 장로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로 쑨다 해도 믿는 사람이었죠. 종속관계?

―혹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못 만날 것도 없죠. 그때 이후로 난 교회라면 근처에도 안 갔으니까…….

김준혁은 목발을 짚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을 무렵, 병실 문이 열리며 송지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어딜 가려고?"

"저번에 제보했던 사람 말이야…… 진짜인 거 같아."

"그래서? 그 몸으로 지금 병원 밖을 나가겠다고?"

"걱정되면…… 송 실장이 운전 좀 해 줄래?"

김준혁은 일부러 씩 웃으면서 송지희의 잔소리를 미리 막았다.

"어휴……! 내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도 아니니…… 차 키 어딨어?"

송지희는 들어왔던 문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한편 김준혁과 송지희가 과거 평안교회 신도의 증언을 확보하고 있을 무렵, 강준은 급하게 군산항 부둣가로 향하고 있었다.

장종식 회장의 여객선이 무녀도로 향한 지 한나절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박 소장님, 지금 해경이 배를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근데 정말 장종식 회장이 김덕근을 죽이려고 할까요?"

"네, 일이 이렇게 커진 마당에 김덕근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겁니다. 무녀도에 묻어버리거나 아니면 바다에 빠뜨려버리려고 하겠죠."

"이번에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겠군요."

"네, 20년 전 사건에서는 빠져나갈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 절대 아닐 겁니다."

김학필 경사는 안대성 경찰서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은 채 자신을 따르는 강력반 형사들을 데리고 나왔다.

"강 형사, 이번에는 윗선이고 뭐고 상관없이 끝장을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장종식 회장이 군산에서만 유지지…… 뭐 별거 있겠습니까? 그래 봤자 살인자 새끼지!"

강 형사는 겁나지 않는다는 듯 김학필의 말에 더 크게 호응했다.

* * *

무녀도.

선착장에 선박을 세운 장 회장은 몇 명의 사내들과 함께 무녀도에 도착했다. 검은 파도가 너울거리는 곳에 완공이 되지 않은 별장이 들어서 있었다. 정식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전기와 수도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는 이웃 주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이웃들은 장종식 회장으로부터 이런저런 돈을 받아먹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개돼지들은 한 번씩 밟아 줘야 한다니까…… 쯧!"

장종식 회장의 지시에 함께 온 사내들은 불이 켜진 2층 숙소로 들어갔다. 손에 각목을 쥔 사내들은 일사불란하게 건물 내부를 수색했다. 그리고는 2층에서 남녀가 뒤섞인 커다란 침실 공간이 발견됐다. 그들은 침대 매트리스 앞에 모여 둥글게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었고, 상급자인 듯 보이는 여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며칠 전 군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박영란이었다.

"일단 조져!"

장종식 회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건장한 사내들의 각목 세례가 펼쳐졌다. 아직은 앳된 얼굴인 청년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중에 한 명은 2층으로 되어 있는 창문 밖으로 도망쳤다. 사내들도 뛰어내린 청년이 발을 절뚝거리며 도망치는 것을 지켜봤지만 장종식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손짓을 보냈다.

어차피 멀리 도망칠 수 없는 섬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내가 그랬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말고 이렇게 섬에만 처박혀 있으라고!"

사내들은 누군가를 잡아끌고 왔다. 그는 폐지 수레를 끌던 옛 정미소 주인 김덕근이었다.

"야, 덕근아…… 너 처음에 나한테 뭐라 그랬어? 돈 좀 주면 콱 찌그러져서 기도원이나 하고 산다며? 더는 세상에 안 나온다며?"

얼굴에 피를 흘리는 김덕근은 장종식을 올려다보며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크크…… 장 회장님은 참 잘 사시더라고요. 그 많은 사람 죽이고 어떻게 그렇게 발 뻗고 사신 겁니까? 나는 그렇게는 안 됩디다!"

김덕근의 갑작스러운 폭로에 장 회장의 주변에 있던 사내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퍽! 퍼퍽!

발로 김덕근을 짓이긴 장 회장은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씩씩댔다.

"이 새끼가 옛날 기억을 한번 되살려 줘 봐? 야! 여기 각목 하나 줘 봐라."

장종식 회장은 비서가 들고 있는 각목을 빼앗아 들고는 김덕근의 등을 여러 차례 후려쳤다. 김덕근은 고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다른 신도가 대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으나 그것이 순교의 한 과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움을 공유하며 버텼다.

"군산교회 장로는 지옥으로!"

"장종식 이 사탄의 무리야! 우리를 죽여도 우리 믿음을 못 꺾는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어린 양들을 해치려는 저들을 벌하여 불지옥에 떨어뜨려 주소서!"

장종식 회장은 그런 신도들의 외침을 듣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장종식은 그중에 무릎에 꿇고 기도하는 박영란을 가리켰다.

"저년 끌어내!"

장종식의 차가운 말에 사내들은 박영란을 바닥에 질질 끌고 나왔다.

"야, 영란아. 내가 너희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나 애를 써 줬냐? 근데 겨우 보답이 이거야?"

"우리 아빠 모함해서 죽이고 재산 다 빼돌린 게 누군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거짓 선지자들! 위선자!"

박영란을 보며 한 차례 키득거린 장종식이 입을 열었다.

"진짜 거짓 선지자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네. 크크! 네 아비 박봉수가 무슨 짓거리를 하고 간지 몰라서 그래? 휴거네 뭐네 말도 안 되는 뻥을 쳐서는…… 하여간 그거 수습하느라 내가 얼마나 아등바등했는지 알아?"

"휴거는…… 반드시 온다! 하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장종식은 방언이 터지기 직전인 박영란을 내버려 두고 다시 김덕근에게 향했다.

"어쨌든…… 최미향은 왜 죽였냐? 그렇게 남들 눈에 띄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새천년교회 쪽에서 너희를 보살펴주기라도 한데?"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뭐? 김덕근 네가 죽인 게 아니라고? 그럼 황인규 그 미친놈이 그랬냐?"

"……난 정말 시체를 가져다 두기만 했어……."

"똑바로 말 안 해? 누가 죽였어? 내가 힘 한번 쓰면 넌 그대로 살인자 되는 거야. 그러니까 바른대로 말해!"

장종식은 김덕근의 턱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쏘아보았다. 그 위협에 피를 흘리던 김덕근은 버티기 어려운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야! 녹음기 가져와! 내가 직접 증거를 만들어야지. 경찰들 하는 거 보니까 안 되겠더라."

김덕근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장종식은 그런 김덕근의 머리를 다시 잡아챘다.

"녹음기 누를 테니까 다시 또박또박 말해! 알겠냐! 누가 최미향을 죽인 거야?"

그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영란이 외쳤다.

"내가 죽여 달라고 했어!"

"……뭐? 영란이 네가 미향이를 죽여 달라고 했다고?"

황당하다는 듯 되묻는 장종식이었다. 어린 박영란은 최미향과 친구 관계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받아야 할 것들을 대신 가져간 장본인이기도 했다.

"……미향이는 심판받은 거예요. 그 아비부터 죄를 지었으니 누군가는 죄를 씻어야겠죠……."

"그래서? 내 딸 선미까지 죽이겠다고 협박한 거야?"

"휴거 날! 우리 모두 심판당하리니 믿음이 있는 자는 새하얀 천국으로! 죄지은 자들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미향이가 죽은 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고……."

철썩! 철썩!

장종식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박영란에게 따귀를 갈겼다.

"그래서 누가 죽였어! 누가……!"

"……."

뺨을 움켜잡은 박영란은 장종식을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아무리 폭력으로 자신을 눌러도 굽히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아따 눈알 부러지겠네……! 근데…… 잠깐만…… 혹…… 혹시!"

장종식은 뭔가 떠오른다는 듯이 쓰러진 박영란에게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지상덕이……? 상덕이가 그런 거냐?"

"우린 휴거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야 한다! 내 남편 지상덕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움직인 거고!"

박영란의 발언은 애초에 사건 의뢰를 했던 지상덕이 최미향을 살해했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음이 들렸다. 별장으로 해경을 비롯한 김학필과 강력계 형사들이 침투하는 소음이었다.

"야! 다들 내려가서 막아!"

장종식은 자신이 폭행하던 장막파 신도들과 피죽이 된 김덕근을 내버려 두고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미 빠져나갈 만한 구멍은 김학필의 부하들이 모두 막고 있는 상태였다.

진압에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장종식 회장에게 고용된 사내들은 돈을 받고 움직이는 지역 건달들일 뿐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불법과 무자비함을 넘나들고 있다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경찰 앞에서 어떻게 해야 덜 불리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각목을 든 사내들은 결국 별다른 저항 없이 체포에 응했다. 그들은 장종식 회장에게 죄를 전가할 생각들이었다.

"김 반장님! 김덕근…… 김덕근이 숨을 쉬지 않습니다!"

강준은 제일 먼저 김덕근을 부축하고는 그의 기억을 읽어 내려 했었다. 하지만 이미 목숨을 거둔 김덕근에게서는 아무런 기억도 읽히지 않았다.

"강 형사! 당장 본부에 연락해서 응급구조대 대기시켜! 이 사람 반드시 살려야 해!"

외진 섬에서 뭍으로 나가는 건 시초를 다투는 응급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강준은 이미 김덕근이 숨을 거뒀다는 걸 알아차렸다.

강력계 형사들은 장막파의 청년들을 차에 태웠다. 심하게 폭행을 당한 남자들은 간이침대를 만들어 옮겼고, 나머지 장종식의 부하들은 그들이 타고 온 선박에 다시 태웠다.

"장종식 회장님, 김덕근 씨 폭행치사에는 꼭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했다.

"안대성 서장이 이렇게 김 반장이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거 알아?"

"살인자 잡는 데 독단적이고 독단적이지 않은 게 어딨습니까? 보이면 잡는 거지."

김학필은 장종식의 손을 뒤로한 채 수갑을 채웠다.

* * *

군산 국제여객터미널.

지상덕은 간단한 짐을 챙긴 채 중국 산둥반도인 스다오(石岛)로 출항하는 여객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객터미널의 1층은 한산했다. 출입국을 관리하는 공무원들만 입항객들을 위한 통관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지상덕을 마중 나온 이가 멀리서 다가왔다. 큰 키에 날렵한 인상의 40대 중년 남자. 그는 새천년교회 익산지부를 이끄는 박상훈 목사였다.

"전도사님, 이제 뭘 하실 겁니까?"

"신앙이 이끄는 대로 가야겠죠.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인간이 알 수 없으니까요."

"원하셨던 대로 군산의 신앙적 정화라는 과업을 잘 수행하셨군요……."

"신앙이 있었으니까요. 박 목사님도 진짜 신앙을 가지십시오. 그럼,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보시게 될 겁니다."

"……제 신앙이 최재규 목사처럼 가짜라는 겁니까?"

박 목사의 되물음에 지상덕은 미소를 지었다.

"세속에서 말하는 우리는 모두 공범자들입니다. 잊으셨습니까? 우리는 그저 믿음 안에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뿐이지요.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는 건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입니다."

박상훈 목사는 지상덕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신앙적 언어는 그 자체로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도사님,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를 반드시 다시 만나게 할 겁니다. 그때까지 우리 장막파의 부흥을 부탁드립니다."

"새천년교회의 추수 작업은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장막파는 여전히 비밀 신앙조직으로 남겠지만, 새천년교회는 이제 당당히 세상에 나가 보려 합니다."

여객터미널에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상덕은 박상훈 목사에게 조용히 목례한 후, 탑승구를 향해 걸어갔다.

최미향의 진짜 살해범인 지상덕이 유유히 한국 땅을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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