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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7) (183/250)

183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7)

김학필 경사가 건넨 자료는 20년 전의 평안교회의 신도 집단 자살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이었다. 7명이 집단으로 자살했으며 그 시체들은 다음 날 시 외곽의 정미소 건물에서 발견되었다는 기록이었다.

당시 피살자들과 평안교회를 연관 짓는 물증은 나오지 않았지만, 익명의 제보가 있었다. 제보 내용은 평안교회의 장로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집단 자살로 위장했다는 것이었다.

그 제보자의 이름은 김덕근. 최미향을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인 바로 그 김덕근이었다.

"최근 벌어졌던 사건들이 20년 전 사건과 분명히 연관이 있을 겁니다. 조사대상인 부담임 목사와 장로들의 이름을 보세요."

"최재규…… 장종식…… 그리고 황인규!"

"황인규는 당시에 학생회장이었습니다. 최근 살해된 최미향은 바로 당시 용의선상에 올랐던 최재규의 딸이고요."

"반장님이 보시기에 20년 전 사건에 대한 황인규의 복수극이라는 겁니까?"

"조사대상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당시 수사 담당자인 안대성 서장도 평안교회의 장로였죠.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자기네들 사건을 자기들이 수사한 겁니다. 셀프수사요!"

"장종식 회장이 안대성의 뒤를 봐준 이유가 바로 이런 거였군요."

강준이 턱을 괴고 당시의 조사 기록을 살폈다.

"김덕근은 이후에 어떻게 됐나요?"

"군산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었답니다. 원래 하고 있던 정미소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채 소식이 끊겼었고요……."

"인근 섬에 숨어들어 어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던 거군요."

"섬을 오가며 생활했으니 지역유지인 장 회장의 눈도 피할 수 있었죠. 그러다 다시 세상에 나온 게 폐지 줍는 노인네의 모습이었으니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겁니다."

강준은 조사실에 앉아 있는 황인규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물끄러미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김 반장님, 황인규와 김덕근…… 둘이 공모한 걸까요?"

김학필은 팔짱을 낀 채 즉답하지 못했다.

"뭔가 때를 기다린 거 같습니다. 장종식 회장은 전면 부인하지만, 단순히 선의로 장막파 사람들을 도왔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장막파는 새천년교회와도 연관이 되지 않습니까? 군산교회 장로인 장 회장으로서는 명분이 없는 거죠…."

"뭔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김덕근과 거래가 있었다는 얘기겠군요."

"그 거래가 협박이었는지 아니면 서로 공모한 무언가였는지는 저놈을 털어봐야 할 거 같네요."

김학필은 조사실 안에 있는 황인규를 가리켰다.

* * *

조사가 시작됐지만, 황인규는 자신이 최미향을 살해했다는 걸 부인했다.

"난 적어도 내 손에 피를 묻히진 않았어. 결국 지네들이 스스로 자멸한 거야. 흐흐."

조사실을 바깥에서 지켜보던 강준은 황인규의 기억에서 읽었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우린 새천년교회를 세우고 지하조직인 장막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낙원이 무녀도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거짓된 믿음을 전파했던 군산교회는 이제 심판받고 있습니다.]

[믿습니다!]

[최재규 목사는 지옥으로!]

[배교자들은 지옥으로!]

귀뚜라미 농장의 교회당에 모인 장막파 신도들은 이삼십 명 정도의 인원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박영란과 그녀의 딸 윤재도 있었다.

[우리는 이제 평안교회를 재건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박봉수 목사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다시 모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 배교자들에 의해 희생되신 박봉수 목사님의 따님이 와 있습니다!]

황인규는 얼굴에 완연한 미소를 띠면서 박영란을 가리켰다. 박영란은 그에 화답하듯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 얼마 전 계시를 받았습니다! 저 사탄의 하수인인 뱀의 무리! 군산교회의 악마들! 그 배교자들을 지옥으로 쫓아내야 우리가 지상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배교자는 지옥으로!]

[장종식을 지옥으로!]

장막파에게 장종식 회장은 사탄이었다. 그들이 무찔러야 하는 적의의 대상. 그런 장종식이 장막파를 선의로 후원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조사실 안에서 황인규는 횡설수설했다. 최미향과 그날 밤 왜 전화 통화를 했는지에 대해 그는 설명하지 못했다.

"거봐!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들이야. 내가 그랬잖아. 그게 다 최 목사가 시켜서 한 짓이었다고! 내가 모를 것 같지? 나는 다 알아. 왜냐면 내가 무서운 거야, 그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야, 황인규…… 그러니까 네가 뭘 알고 있는지 차근차근 말해 봐. 최재규 목사가 뭘 시켰는데? 혹시 그게 평안교회 집단 자살 사건하고 연관이 있는 거 아니야?"

김학필 경사는 구체적인 진술을 얻으려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황인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형사님! 형사님도 하나님 믿으세요. 그래야 저처럼 은혜로워집니다. 마음속에 미워했던 사람들 다 용서했어요. 보세요? 제가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글쎄…… 나는 네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마음의 평화가 전혀 없어 보여."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이 불쌍해요. 나는 이렇게 행복한데!"

김학필은 가만히 황인규를 지켜보다가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야…… 황인규! 우리 솔직해지자. 이거 그냥 우리 둘이 얘기니까 편하게 말하자고…… 너 최미향 죽인 사람들 알지?"

"……내가 안다고 했잖아! 최 목사가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걸 부정하니까 벌 받는 거라고! 잘 봐봐. 여기 군산에도 진실을 믿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 걔들이 진짜야."

"누구? 그중에 누가 최미향을 죽였어? 김덕근…… 김덕근이지?"

김덕근의 이름이 나오자 허리를 앞으로 접고는 낄낄거리기 시작하는 황인규였다. 그는 소문대로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 인간은 배교자들과 한패야! 지옥 구덩이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거라고!"

그 말을 하는 황인규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는 한참을 배교자들을 저주하는 말을 퍼붓다 갑자기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20년 전 평안교회의 학생회 시절처럼 구원의 그 날을 믿고 있었다. 그의 믿음은 진짜였다.

장막파들은 예수님이 태어나고 다시 오신다는 장막절을 그들의 구원의 날로 믿었다. 장막절이 끝나면 찾아온다는 휴거가 그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다.

박봉수 목사가 20년 전에 투박하게 주장했던 물리적인 휴거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휴거는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는 세상이었다.

어쩌면 배교자인 최미향에 대한 진짜 살인은 애초에 장막파의 믿음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 * *

[우리 얼굴 한번 봅시다.]

장종식 회장은 기도원에서의 폭력 사태에 대한 어떤 경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 안대성 서장이 어떻게 무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경찰 조사대상에 오른 건 최미향의 살인에 연루된 장막파 일원이었다.

그런 와중에 강준에게 장 회장이 연락해온 거였다. 군산 지역사회는 자신이 커버할 수 있었지만, 금감원 보험조사관으로 나온 강준은 그에게 무척 껄끄러웠을 터였다.

장종식 회장은 직접 강준의 숙소 앞으로 차량을 보내 왔다. 그리고 강준을 한적한 시 외곽의 한정식집으로 데려갔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처럼 언제 신변의 위협이 가해질지 모를 장소였다.

남도한정식.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음식 접시가 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밀실 같은 방과 점원들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강준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딸내미를 잃은 아비의 마음을 아시오? 지금 최 목사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야! 장막파인지 뭔지 그 사이비 놈들은 이번 기회에 싹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래서 직접 각목을 들고 매타작을 하신 겁니까?"

"허허! 내 딸자식을 빌미로 협박을 했어요…… 어느 부모가 그러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보다 더 한 일도 하면 했지!"

"경찰에 일 처리를 맡기면 될 일을 왜 직접 처리하려고 하셨나요? 뭔가 켕기는 일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장종식은 답답하다는 듯 상 위에 정종 잔을 비우고는 강준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어떤 오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군산에서 힘 좀 쓴다고 알려졌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나도 기업 하나 건사하느라 힘든 중소기업 사장입니다."

"평안교회 집단 자살 사건! 그때 보험설계자셨더라고요. 한국보험 군산영업소 소속이셨고요."

강준이 자신의 과거를 들추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장종식이었다.

"아…… 이제 보니까 보험조사관이라는 분들이 남의 과거나 들추고 다니는 사람인가 봅니다?"

"보험사기가 있다면 밝혀야 하니까요. 물론 법적인 공소시효가 지나긴 했지만요…… 아! 물론 20년 전이라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도 지났겠죠."

살인을 언급하는 강준에게 장종식은 어이가 없다는 듯 비릿한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전북주류 토지 매입을 1993년에 하셨더군요. 그때는 겨우 보험설계사셨을 텐데…… 어디서 그런 많은 돈이 나셨나요?"

"난 또 무슨 얘기를 한다고…… 그 땅이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어요! 그때는 헐값이었어. 헐값! 내 뒷조사를 하려는 거면 좀 철저하게 하시던지. 인제 보니 업계에서 유명하시다는 박강준 소장도 헛똑똑이구먼, 헛똑똑이! 하하!"

대놓고 강준을 모욕하는 장종식이었다.

"김덕근 씨는 그렇게 얘기 안 하던데요?"

"……뭐? 누구?"

강준은 평안교회 집단 자살이 벌어졌던 정미소 주인인 김덕근을 언급하며 장 회장을 자극했다. 장종식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무섭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살인자 우두머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난 관심이 없어요!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도대체가! 보험조사관이라는 양반이 이렇게 불쾌한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구먼. 나는 박강준 소장 당신이 여기 군산에서 근거도 없는 음모론을 퍼트려서 지역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걸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군산교회를 지키고 싶으신 거군요."

"그야, 장로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에 앞서서 지역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이번 일에 과도한 루머는 옳지 못하다는 겁니다!"

장 회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고 했다. 강준은 그 순간 장 회장의 팔목을 덥석 쥐었다.

"뭐야? 이런 무례한 태도는!"

강준은 장종식 회장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은 역시 20년 전 정미소에서였다.

[장로님, 이제 우리 어떻게 합니까?]

[일단은 그냥 놔둬.]

[네? 놔두라고요?]

[그래, 여기서 네가 뭘 어떻게 할 건데?]

두려움에 빠진 김덕근의 표정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장로님, 농약병이라도 치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거 우리가 술에 타 먹인 걸 알기라도 하면…….]

[그냥 놔두라니까! 자기네들이 스스로 마신 거야! 자살한 거라고!]

[……장로님!]

[덕근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저 사람들 자기네들이 원해서 하나님의 곁으로 간 거야. 저게 저 사람들에게는 진짜 휴거였다고!]

장종식이 김덕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김덕근은 진정되지 않았다.

[……박 목사님께 말씀드리렵니다……. 솔직하게 죄를 말씀드리면 뭐든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철썩! 철썩!

젊은 장종식의 눈에서 핏기가 서렸다. 그는 김덕근에게 따귀를 날린 후 무서운 얼굴로 윽박질렀다.

[덕근이 네가 다 뒤집어쓸래? 저 농약 사 온 거 누구야? 내가 그랬어? 덕근이 네가 그런 거 아니야?]

[…장… 장로님!]

[고기잡이배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이번 일만 잘 넘기면 내가 덕근이 너 하고 싶은 거 해 줄 테니까. 잔말 말고 입 다물어. 제발 의심하지 말고!]

자기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김덕근이 고개를 떨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김덕근은 그 순간 장종식과 공범이 된 거였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이제야 모든 걸 알았다는 듯 장종식 회장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덕근 씨가 그러더군요. 장종식 회장, 당신이 신도들에게 농약을 먹인 거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 명의로 되어 있는 보험금을 타 먹은 거라고요!"

장 회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음침한 눈빛으로 변했다.

"이래서 헛똑똑이들이 무서운 거야. 쯧쯧! 자기 딴에는 뭐 좀 알고 있다고 이렇게 무서운 소설을 쓰거든!"

"퍼즐들을 조합해 보면 다 알 수 있겠죠. 언제나 진실은 단순하거든요."

장종식은 강준에게 경멸의 눈빛을 던지고는 밀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강준에게 남은 건 김덕근을 찾아 20년 전 평안교회 사건의 진실을 말하게 하는 거였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장 회장이 알아서 김덕근을 잡아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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