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6)
김학필 경사는 선박중개소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서 김덕근이 가지고 있었다던 선박에 대해 수소문해 볼 요량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사무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계십니까? 뭐 좀 여쭤 보려고요."
"네. 여쭤보쇼."
"여기 선주를 좀 찾으려고 하는데요, 김덕근 씨라고 아십니까."
"아…… 김 선장은 왜요? 요즘에 출항하고는 통 안 보이시던데…… 한 며칠 있다가 다시 와 보던가요."
김학필은 지갑에서 조용히 경찰신분증을 꺼냈다.
"어르신들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중개사무실에 모인 노인들은 모두 놀란 표정들이었다.
"그 양반은 험한 짓 할 사람이 아니여."
"뭔가 오해를 단단히 혔는지 모르것는디, 당최 이게 뭔 일이데?"
김학필은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최근에 김덕근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그게…… 그러니께…… 원래 가지고 있던 배는 어선급인디 여러 사람 타게끔 좀 더 큰 걸로 다 빌려 갔지."
"어디로 간다고 했습니까?"
옆에 있던 노인이 김학필의 질문에 대신 답했다.
"아따! 어디긴 어디여! 김 선장이 갈 때가 어디 있다고 무녀도 갔겄지."
"무녀도요?"
"거기서 무슨 별장을 짓는다고 그러더라고. 여러 명이 살 거라고 그러더구만……."
"김덕근 씨가 거기서 별장을 짓는다고요?"
"어, 자기 입으로 그랬어. 자기 마지막 여생을 거기서 보낸다고……."
김학필 경사는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 안에서 뭔가 삐걱대는 게 있었다.
"김덕근 씨가 평소에는 폐지수집 수레를 끌고 다녔다고 하던데… …별장을 지을 만한 돈이 있었을까요?"
"집 짓는 건 장 회장이 해 줬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장종식 회장이 후원을 해 줬다고 했어. 무슨 교인들이랑 살라면서 말이야……."
"장 회장, 그 사람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참 좋은 일을 많이 하지."
김학필은 장 회장이 김덕근을 뒤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김덕근이 짓는다는 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어르신들 무녀도는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합니까?"
"어떻게 가긴! 거긴 정기적으로 오가는 배도 없어. 배 빌려서 가야지 뭐. 왜? 알아봐 줘?"
"아뇨. 다시 오겠습니다."
김학필 경사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당장이라도 형사들을 데리고 가 김덕근을 체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장종식 회장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더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군산병원.
강준은 입원한 김준혁의 병실을 다시 찾았다.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소장님. 깁스했으니 이제 낫겠죠. 근데 이거 산재 처리는 되는 거죠?"
강준은 미안한 마음에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인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이 기회에 너도 좀 쉬어라."
"소장님, 안 그래도 간밤에 준혁 씨가 침대에 누워서 뭘 찾아낸 거 같더라고요."
송지희가 뭔가를 말하려는 거 같았다.
"그래? 그게 뭔데?"
한쪽 다리에 깁스한 김준혁이 씩 웃으면서 노트북 화면을 내밀었다. 그 화면에는 1992년 당시 대형보험사인 한국보험의 보험설계사 교육 자료였다.
그 교육 자료의 발표자는 한국보험 군산영업소의 장종식이었다. 현재 전북주류의 회장인 장종식! 그가 바로 평안교회 집단자살자들의 생명보험을 가입시켰던 장본인이었던 것이었다.
"장종식 회장이 평안교회 집단 자살 사건의 배후였군!"
"광신도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자살을 부추긴 겁니다. 더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또 뭐가 남았나?"
"그때 평안교회 집단 자살 사건을 수사했던 사람이 안대성 경찰서장입니다."
김준혁의 표정이 의기양양해져 있었다. 그가 뭔가를 건졌을 때 나타나던 의례 나타나는 표정이었다.
"안대성 경감. 당시 수사팀장이었고요. 지금 군산경찰서 서장이죠. 최재규 목사가 있는 군산교회의 장로이기도 하고요."
"아…… 그래서 그때 공로로 서장까지 올라간 거군."
"장종식이 지역유지가 된 후로 안대성을 전폭적으로 밀어 줬으니까요."
그때 강준의 핸드폰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애 많이 쓰셨어요. 이제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정체불명의 메시지였다. 오늘 강준의 행적을 다 알고 있다는 투였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박영란이 말했던 군산에서 활동한다는 장막파일지도 몰랐다.
[20년 전 평안교회 집단 자살 사건의 피해자 가족인가요?]
[거의 다 왔다고 했잖아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한 가지 정보를 드리죠. 이제 장종식 회장이 움직일 겁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원래대로 돌려 놓기를 원해요. 내가 원하는 건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니까요.]
모호한 답변이었다. 강준은 원래 이곳의 사건을 의뢰했던 김학필 경사를 다시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소장님, 누구 문자인데 그러십니까?"
"우리를 주시하는 인간들."
"그게 누군데요?"
강준은 정체불명의 문자를 보여 주며 말을 이었다.
"글쎄…… 김 실장과 함께 횟집에서 마주쳤던 장막파 황인규? 그게 아니면 딸의 행방을 찾아 달라고 했던 지상덕?"
"네? 지상덕이요"
강준은 박영란의 기억에서 읽었던 지상덕의 반전을 말해 줬다. 그 얘기를 들은 김준혁은 미간을 좁혔다.
"박영란이 말하길 남편이 새천년교회 박상훈 목사를 소개했다고 했어. 김 실장은 지금처럼 인근 교회 커뮤니티에서 지상덕이 활동한 사항들 한번 조사해 줘."
"네,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송지희가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소장님, 아까는 김 실장한테 푹 쉬라면서요?"
"아! 내가 그랬었나? 그럼 일단 좀 쉰 다음에 조사하라고."
"알겠어요. 준혁 씨는 제가 여기서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 소장님은 이번 사건 조사에만 집중하세요."
김준혁의 부상으로 신경을 쓰던 강준의 마음을 캐치한 송지희였다.
"그래, 고맙다! 너희 둘 다!"
강준은 군산병원을 빠져나와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심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라……."
강준은 자신에게 온 정체불명의 문자를 곱씹었다. 경찰서 주차장에는 먼저 도착한 김학필 경사가 강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인규 행방이 확인됐답니다."
"네? 김덕근이 있다는 무녀도인가요?"
"아뇨. 익산 근처의 기도원입니다. 아마 지윤재 양도 거기에 있을 거 같네요."
강준은 자신에게 온 문자를 보여줬다.
"장막파 짓이로군요. 제가 문자 발신인을 추적해 보겠습니다."
"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거 같네요. 아마, 제가 여기에 내려온 걸 무척 불편해하는 사람이겠죠."
"애초에 보험사기를 조사 해달라고 박 소장님께 요청을 드린 건데…… 졸지에 살인사건을 조사하시게 됐네요."
"괜찮습니다. 보험사기에도 종종 살인사건은 있었으니까요."
수사의 방향은 세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최미향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덕근과 최미향의 마지막 통화자인 장막파 황인규, 그리고 김덕근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장종식 회장.
하지만 강준은 처음부터 자신을 속여 왔던 지상덕에 대해서는 김학필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아직 확신도 서지 않았는데 수사에 혼선만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 회장 얘기는 어떻게 된 건가요?"
"김덕근이 짓는다는 무녀도의 집을 후원했다고 하네요. 단순 자선 행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연이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겠네요."
김학필은 후배인 강 형사가 나오자 강준을 경찰 봉고로 안내했다.
"이 차를 타고 함께 가시죠. 아무래도 오늘 밤 황인규의 기도원에서 몇몇을 체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꽤 구르는 사람입니다. 힘을 보태죠."
강준은 지금 상황이 무척 익숙하다는 듯 봉고에 올랐다. 그리고 강 형사는 익산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새천년교회의 익산지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봉고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기도원이 있던 야산에 도착했다. 벌써 앞이 캄캄해져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거였다.
외진 도로에는 조명이 아무것도 없었다. 봉고는 더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멈췄다. 어두움 속에 가려져 있는 철제대문만이 앞을 굳게 막고 있었다.
대문 옆에는 장막기도원이라는 명패가 세로로 크게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대문 바깥으로는 여러 대의 검정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
"누가 온 거 아닌가요?"
"그러게요…… 기도원에 오가는 차량은 아닌 거 같은데요?"
교인들을 실어 나르기에는 너무 고급차량 같았다.
"이거 열 수가 없습니다! 그냥 담을 타고 넘어가야겠는데요?"
강 형사는 가스총을 차고는 철제대문을 넘었다. 철컹하고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부에 누군가가 있다면 듣고도 남았을 소리였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강준과 김학필 경사도 따라서 대문을 넘었다.
그때, 강준의 스마트폰에서 문자가 도착했다.
[이제, 군산교회의 실체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김 경사님, 이거 보시죠."
강준의 문자를 본 김학필은 주변의 CCTV 카메라를 살폈다. 예상대로 입구를 비추는 두 대의 CCTV가 양쪽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문자 발신자가 이 안에 있는 모양이네요."
기도원의 앞마당에는 비닐하우스 여러 채가 있었다. 그리고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귀뚜라미 사육 농장이었다.
비닐하우스를 열자 높은 선반이 가득 찬 광경이 펼쳐졌다. 선반마다 귀뚜라미가 가득했다. 누가 있는지 없는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에 가려져 농장 안에서는 바깥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거였다.
"박 소장님, 이걸 도대체 왜 키우는 걸까요? 이게 돈이 되나요?"
"사이비 종교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주의 신격화, 경제적인 이득, 그리고 집단생활이라고 들었는데…… 여기서는 귀뚜라미 농장을 통해 집단생활과 자급자족 경제를 만들려고 시도한 모양이네요……."
"이런 식으로 신도들을 부려 먹었다는 건가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집단노동을 통해서 내부적인 결속력이 강해지는 것도 동시에 노린 거겠죠."
비닐하우스를 지나자 작은 교회당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교회당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스총을 든 강 형사가 잰걸음으로 교회당에 접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 강 형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거기, 다들 동작 그만! 손 들고 가만히 있어!"
활짝 열어젖힌 문 안으로는 몇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수십 명의 교인을 무릎 꿇린 채 폭행하는 광경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손에 각목을 쥔 장종식 회장이 흥분한 얼굴로 씩씩대며 불청객인 강 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장 회장은 들이닥친 이들이 형사라는 걸 직감하고는 김학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이게 누구신가? 김 반장님 아니십니까?"
"장종식 회장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 주시겠습니까?"
"이놈들이 날 협박해서요. 워낙 급박한 사안이라 안 서장님한테 미리 말씀을 못 드렸네요. 하하!"
직접 각목으로 교인들을 두들겨 팬 건지 장 회장의 이마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무슨 협박인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김학필의 질문에 눈동자를 굴리는 장 회장이 한 차례 침음한 후 답했다.
"제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했거든요. 나쁜 새끼들 같으니라고…… 내가 후원까지 해 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장 회장이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본 기도원 교인 중 한 명이 머리를 가격당한 듯 피를 뒤집어쓴 채 신음만 내쉬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강준이 군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장막파 황인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