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5)
강준은 일단 박영란과 그녀의 딸 윤재를 찾으러 전주로 가는 국도로 향했다. 황인규의 행적을 경찰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날은 점점 싸늘해졌으며, 새벽공기는 차가워졌다. 송지희가 급하게 군산으로 내려와 김준혁을 간호했지만, 강준의 마음은 돌덩이를 얹힌 것처럼 무거웠다.
부하직원이 업무 중에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다. 몇 달을 재활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운전 중인 강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강준은 한 손으로 핸즈프리를 귀에다 꽂았다.
"네, 김 반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박영란의 주소지인 전주로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김덕근의 거주지에서 증거 물품이 나왔습니다. 최미향의 사체를 훼손한 전기톱이 발견됐습니다.
"네? 그럼, 김덕근도 붙잡았나요?"
―아뇨. 잠복을 따돌리고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김덕근이 배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강준은 차를 멈추고는 길가에 세웠다.
"김덕근이 혹시 군산교회의 신도였나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변 탐문을 해 보니 원래 해망동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답니다. 근데, 새만금 생기면서 매립이 되어 버렸잖습니까?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폐지를 수집하면서 생계를 이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선이 있었던 거군요."
―그렇죠. 원래 어부였으니까요.
"살해된 최미향과 연관 관계는 없었고요?"
―아직까지는요…… 하지만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되었으니 지금부터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말이 끊어졌다.
"……김 반장님, 황인규 씨는 그럼 수사선상에서 제외되는 겁니까?"
―그건 좀 더 두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최미향이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한 게 황인규였으니까요. 지금 경찰이 황인규의 행방도 계속 찾고 있습니다.
"네, 저도 박영란을 만나 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소장님, 조심하십시오! 지금은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될 것 같네요.
김학필 경사의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장막파…… 새천년교회 추수꾼…… 그리고 평안교회와 살인사건. 뭔가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었다.
"네, 그럼 또 연락드리죠."
짧게 답한 강준은 다시 핸들을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 * *
박영란의 집은 새로운 도심의 상업지구에 있었다.
그곳은 혁신도시라 칭해지는 전주의 새로운 주거지였다. 새로운 도심이라고는 해도 박영란은 가장 구석진 곳에 살고 있었다. 식당과 편의점이 들어선 번화한 골목의 뒤편. 임대수익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적당한 5층짜리 빌라들이 늘어서 있었다.
김학필 경사가 준 박영란의 주소는 그 빌라 중의 하나였다.
명성빌라 B102호
딩동! 딩동!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강준이 문에 귀를 댔지만, 안에서 들리는 인기척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강준은 1층과 지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흘렀을까? 누군가 지층으로 걸어 내려왔다.
동그란 얼굴의 여성이었다. 강준이 평안교회 수련회 사진에서 봤던 박영란이었다.
"박영란 씨 되시죠?"
"……네, 근데 누구시죠……?"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김학필 경사님과 함께 공조하고 있고요…… 남편분께서 꽤 걱정하시더군요."
"아…… 들어가서 말씀하시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제가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보고 싶어서 오신 거 아닌가요?"
은근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박영란이었다.
반지하 빌라 집은 10평이 조금 넘어 보이는 집이었다. 작은 거실의 중심에는 TV가 놓여 있었고, 그 위의 더 높은 곳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전형적인 기독교인의 집안 풍경이었다.
하지만 탁자 한편에 놓인 성경은 오랫동안 펼치지 않은 듯 먼지가 쌓여 있었다. 박영란은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퍼부었다.
"미향이 죽은 거 들었어요. 성경의 심판을 받은 거예요."
친구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하는 박영란이었다.
"소식을 들으셨군요."
"당연하죠. 전 이제 새천년교회 사람이에요. 군산에도 새천년교회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고요."
"……장막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강준의 되물음에 박영란이 놀란 듯 강준을 노려봤다.
"남편이 뭘 말한 거예요?"
"남편분이 아니라 군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황인규 씨를 봤습니다. 군산교회 비리를 폭로한다고 그러더군요."
"……인규는 믿음이 굳세죠."
"어릴 적 함께 평안교회 학생부에서 활동했었죠?"
"네, 우리 모두 평안교회 신도들이었어요. 아빠가 담임 목사였었죠. 결국 최재규 그 인간이 탐욕으로 다 망쳐 버렸지만……."
강준은 왠지 박영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따님인 윤재 양은 지금 어딨나요?"
"새천년교회 익산지부에 있어요……."
"아직 미성년자일 텐데 그렇게 혼자 내버려 둬도 되나요?"
"윤재는 잘 헤쳐 나가고 있어요! 박상훈 목사가 잘 끌어주고 있고요."
"박상훈 목사가 누구죠?"
"익산지부 담임 목사요. 그분을 통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죠."
강준은 그녀의 믿음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봐야 했다.
"남편분께서 걱정하시더군요."
"왜죠? 남편도 윤재를 익산지부에 보내는 걸 찬성했어요. 애초부터 새천년교회에 다니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고요."
"……지상덕 씨가 먼저 새천년교회에 나가자고 주장하셨다고요?"
강준은 광신도인 박영란이 자신의 딸을 데리고 가출한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영란의 입에서 직접 들은 얘기는 결이 달랐다.
"남편은 새천년교회에 진짜 구원이 있다고 했어요. 우린 둘 다 군산교회에서는 지난 몇십 년간 가짜 구원에 속아왔으니까요."
"20년 전…… 평안교회 시절에 신도들이 한꺼번에 자살한 일이 있었더군요. 그 사건…… 알고 계시죠?"
"최재규 목사의 거짓말에 신도들이 속았던 거죠. 최 목사는 아빠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어요."
"왜죠?"
"자기도 아빠와 같은 선지자가 되려 했던 거겠죠!"
강준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근데 신도들에게 죽으란다고…… 죽는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겐 구원받는 길이니까요."
"그리고…… 죽은 사람들 앞으로 보험금이 나왔다고 하던데…… 그걸 설계한 사람이 누군가요?"
"자세한 건 잘 몰라요. 하지만 아빠가 감옥에 들어가고 나서 교회를 차지한 건 최재규였죠. 그리고 장종식은 교회 돈을 빼돌려 공장을 차렸고요…….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
"아버님은 감옥에서 나오신 후, 어떻게 되셨나요?"
흥분한 박영란의 말이 빨라졌다.
"교회도 명예도 재산도! 그 모든 걸 잃어버리시고 나서 충격으로 정신이 좀 이상해지셨어요.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죠."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게……."
"거짓 선지자에게 모진 탄압을 받았으니까요. 최재규 목사…… 그 인간이 우리 아빠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강준은 박영란의 말에서 적의를 느꼈다.
"그럼…… 박영란 씨는 지금 최재규 목사의 딸인 최미향이 죽었으니 후련하시겠네요……?"
상대를 대놓고 자극하는 말이었다.
"후련……? 당연한 거죠!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행해지니까요!"
핏발 선 눈으로 강준을 노려보는 박영란이었다. 그때 박영란의 셔츠 소매 위로 십자가 문신이 슬쩍 보였다.
"……장막파시네요……!"
강준은 박영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영란아, 서울에서 내려온 보험조사관이 너한테 갈 거야. 윤재는 기도원에 보내 놔.]
[하늘의 심판 날이 올 때까지 우리 윤재는 아무 데도 못 보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20년 전에 장인어른이 주장했던 휴거, 기억나?]
[심판의 날을 잘못 예측했을 뿐이야! 장로들이 예언을 왜곡했다고!]
[아니, 결국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어.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거고!]
차가운 남편의 말에 당황하는 박영란이었다. 이윽고 전화를 끊은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기도문을 외치기 시작했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박영란의 팔뚝에 문신뿐만 아니라 손목에 있는 여러 개의 자해 흔도 함께 발견했다.
"외람되지만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팔뚝에 있는 십자가 문신이요. 혹시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신앙의 의미죠. 우린 기독교인이니까요."
"혹시 장막파를 나타내는 표식이 아닌가요?"
"……우린 사이비가 아니에요. 사이비는 따로 있죠! 그 사이비를 심판하는 게 우리 장막파고요."
"방금 우리 장막파라고 하셨죠? 기도원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나요?"
"기도원요……? 아뇨."
기도원 얘기가 나오자 입을 꾹 다무는 박영란이었다. 강준은 그녀의 딸 윤재가 있는 기도원을 찾아야 했다.
"윤재 양이 있는 곳을 알려……."
"이 더러운 사탄아!"
박영란은 적의를 띤 눈으로 강준을 노려보다 벌떡 일어나 손으로 현관을 가리켰다.
"악마의 시험에 들지 말지어다……! 오! 하나님!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그녀의 눈에 다시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입에서는 중얼거리는 기도문과 함께 방언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 *
새천년교회 익산지부.
윤재를 찾으러 간 새천년교회는 익산역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언덕에 있었다. 그곳은 사이비교회라고 하기엔 무척 평범했다. 다른 일반 대형교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보였다.
강준이 1층으로 들어가자 큰 카페 공간이 나왔다. 세련된 실내와 편안한 분위기는 그곳이 교회가 아니라 고급 카페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이상한 건 사람들이 마치 보험영업을 하는 것처럼 일대일 상담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겉보기엔 대학생 같은 청년들과 또 한 무리의 여자들.
강준의 등장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듯했지만, 어느새 강준에게 다가온 중년의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보러 오셨어요?"
눈웃음을 짓는 중년 여자는 무척 친절하고 따뜻했다.
"네, 사람을 좀 찾으러 왔습니다."
"여기 신도분이세요?"
"네, 지윤재라고…… 기도원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시구나…… 일단 앉으세요. 커피는 뭐로 하실래요? 아메리카노?"
누군가를 찾아왔다는 강준의 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중년 여자였다. 잠시 후, 자연스럽게 강준과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게 되었다.
강준은 스마트폰에 지윤재의 사진을 띄워 보여 주며 물었다.
"이 학생입니다. 나이는 17살이고요. 청소년부에 있겠네요."
"글쎄요, 전 처음 보는 얼굴이에요. 여기는 워낙 많은 분이 오가시니까 일일이 알지는 못하죠."
"여기 학생들이 기도원에 들어가기도 하나요?"
카페 주변에 붙여진 홍보물에는 새천년교회의 청년들을 모집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홍보물에는 지난여름에 모였던 수련회 같은 단체 사진도 있었다.
"우리 새천년교회는 무척 개방적이에요. 지부의 전도사님들이 각기 운영하는 기도원들이 있죠. 그걸 지부에서 다 관여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믿음은 자율적인 거니까요."
중년 여자의 대답은 강준에게 기분 나쁘도록 음침하게 느껴졌다.
"아마 윤재 양은 믿음이 깊은 아이니까 어디선가 하나님을 향한 길을 찾아가고 있을 거로 생각해요."
"집단생활을 하는 게 여기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인가요? 종말을 빌미로 아이들에게 겁을 주면서요?"
"우린 집단생활을 하라고 주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종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신다는 종교적인 언어죠.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고 주장했던 것이 기존의 교회들이고요."
"박상훈 목사를 만나고 싶네요. 여기 새천년교회 익산지부의 담임목사라고 하더군요."
기도원을 관리했다던 중년의 여자는 공격적인 강준의 말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그런 공격이 일상적이라는 듯.
여자는 태연히 가방 속에서 홍보물을 한 장 꺼내 강준에게 건넸다. 빳빳한 인쇄물에는 ‘하나님의 낙원’이라는 개척 공동체를 홍보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찾으시는 윤재 양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