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4) (180/250)

180화. 새천년교회 장막파 (4)

군산경찰서 형사과.

"노인네 신상은 알아봤어?"

"네, 이름은 김덕근, 47년생입니다. 올해로 만 65세이고요. 거주지는 경암동 928번지. 폐지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긴 하지만, 지금 사는 곳이 자기 명의의 땅입니다. 거기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고 있고요."

"노인네들이야 땅만 있고 재산이 없으니 건물을 올리지 못해서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자식들은?"

"자식은 없습니다. 예전에 결혼은 한번 했었던 걸로 나오고요."

"그래? 전처는 지금 어디 있어?"

"그게……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뭐?! 이 노인네 냄새가 난다니까… 일단은 풀어주고 두 명 붙여서 잠복 수사해봐."

강 형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한창 참고인 조사를 하는 수사과의 다른 형사들을 가리켰다. 참고인들은 모두 군산교회의 신도들이었다.

"저기…… 반장님, 인원 좀 더 붙여주셔야겠는데요? 이러다 진짜 밤새우겠습니다."

"알지, 알아! 나보고 또 서장님한테 혼나고 오라는 얘기 아니야?"

"에이 그래도 저희한테는 반장님밖에는 없습니다."

김학필은 결국 서장실로 향했다. 안대성 경찰서장은 최미향 피살사건으로 기자들이 몰려온 데에 대해서 화를 낼 것이 뻔했다. 안대성은 수사 과정이나 범인 검거보다는 치안 확보에 더 열중하는 사람이었다.

돌려 얘기하자면 안대성에게 공직 업무란 책잡히지 않도록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 안대성에게 기자들의 관심이 몰린 사건은 중대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학필의 예상과는 달리 안대성은 본인의 경찰서장 직위보다는 군산교회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주변 교회들에서 난리네. 이때다 싶어서 교인들을 흔들고, 우리 교회에 대한 정통성을 깎아내리려는 거지."

김학필은 이때다 싶어 질문을 던졌다. 강준에게 들은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장님, 20년 전 평안교회 때의 사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가 모르고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서요. 말씀하신 이단이라는 새천년교회도 혹시 그때 일파가 여전히 활동하는 건 아닐까요?"

"……뭐?"

외마디로 반문한 안대성 서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때 일은…… 박봉수 목사가 밑에 놈들 시켜서 한 거지. 박 목사를 따르는 강경파 세력이 있었거든."

"당시에 사건기록에는 신도들이 자살한 것에 박 목사가 직접 개입한 증거는 찾지 못했었네요. 그래서 결국은 교회 재산에 대한 횡령으로만 실형을 선고받은 거였고요……."

"20년 전의 일이야. 당시에 수사를 얼마나 했겠어? 자살이라는 데 그걸 타살이라고 우길 만한 증거가 있었겠냐고? 근데 뻔한 거잖아? 사이비교회 사건들 찾아봐. 목사가 직접 하나? 항상 일부 광신적인 신도들 내세워서 일을 벌이거든!"

김학필이 찾은 20년 전 사건기록에는 당시 장로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군산교회 최재규와 전북주류 장종식 회장이 조사자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당시 평안교회의 부담임 목사와 장로였다.

"당시 평안교회 신도 수가 약 300명이었습니다. 군소도시에서는 작은 규모는 아니었죠. 혹시 그때 서장님께서도 평안교회에서 직책 같은 걸 맡으셨나요?"

안대성은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이어나갔다.

"김 반장…… 자네는 교인도 아니고 해서 오해할까 봐 얘기를 안 했는데, 그때 최 목사는 휴거설에 엄청나게 반대했어. 근데 박봉수가 휴거에 대한 고집을 꺾지를 않더라고, 그게 왜 그랬는지 알아?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왜 그랬죠……?"

"헌금 때문이야, 헌금! 처음에는 박봉수도 휴거를 지나가는 얘기로만 설교 시간에 얘기했었는데, 생각보다 그게 호응이 좋은 거야. 그리고 그때는 아직 세기말이었잖아? 종말론이 먹히는 시대였다고. 그러니까 하나둘씩 신도들이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어찌 됐겠어? 직장 그만두고 오는 사람부터 집 팔아서 헌금 바치는 사람까지…… 걷잡을 수가 없었지."

안대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김학필이 반문했다.

"서장님…… 당시에 자살한 신도들 명의로 생명보험이 지급됐었습니다. 근데 수령인은 교회 종교법인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당시에만 수십억에 해당하는 돈인데…… 그게 혹시 군산교회로 흡수됐다면……."

말하는 도중 김학필은 서장의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

"김 반장…… 쓸데없는 소설 쓰지 말고 주변 교회들 탐문부터 해 봐. 거기도 새천년교회에서 나온 추수꾼들이 많을 거라고. 걔들이 자기네들 교리를 정당화시키고 신도들을 결집하려고 그런 살인을 저지른 걸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군산교회 내부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예전 평안교회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부터요……."

"군산교회는 여기서 20년 된 교회야. 장로교단의 상징이지. 내가 새천년교회 추수꾼을 찾아보라고 한 건 군산교회에 잠입한 이단을 잡으라는 거지. 군산교회를 조사하라는 게 아니잖아? 안 그래?"

서장은 이미 사건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확고함을 내비쳤다. 김학필로서는 그런 서장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네, 그럼 그런 방향으로 수사 진행을 하겠습니다!"

* * *

황인규를 만나러 가는 길에 김준혁은 다시 ‘평안교회’라는 키워드로 과거 뉴스를 검색했다. 다른 언론사들에서도 다루어졌지만, 전북지역의 지방일간지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한 기사들이 있었다. 신도들의 집단 자살 현장은 교회가 아니라 시 외곽의 정미소였다. 7구의 사체가 정미소 주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사인은 약물로 인한 집단 자살이었다. 그들은 모두 평안교회의 신도들이었다.

"휴거를 부르짖는 광신도들은 10월 28일 자정을 넘기자 허탈한 표정으로 해산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집단으로 독극물을 이용해 자살극을 벌였습니다."

김준혁은 계속 과거의 신문 기사를 검색했다.

"평안교회 박봉수 목사, 신도재산 갈취 및 사기 혐의로 징역 3년 확정. 하지만 보험사기는 언급이 없는데요?"

"혐의가 그냥 재산 갈취와 사기네……?"

"네. 김 반장님이 말씀하신 부분하고 안 맞는데요?"

김학필로부터 당시 평안교회 자살자들이 생명보험에 가입했다는 정보를 들은 강준이었다.

"김 실장, 잠깐만…… 왜 하필 정미소였지? 휴거를 믿고 모인 게 신도들이 모여든 곳이 교회였는데, 죽은 건 시 외곽의 정미소에서 죽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누군가 다른 곳에서 죽이고 사체를 그곳으로 옮겨 놨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강준이 탄 차량은 어느새 조촌동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거리 신호에 걸려 차량은 완전히 멈춰 섰다.

그때 슬쩍 강준이 바라본 사이드미러에서 트럭 하나가 맹렬한 속도로 다가왔다. 사이드미러의 거리감이 왜곡되어 있다고 해도 그건 분명 비정상적인 속도였다. 그리고 강준이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쾅’하는 충돌음이 들렸다.

쾅! 기긱긱긱! 터텅!

차가 뒤에서 부딪혀 완전히 전복됐고, 강준의 이마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 * *

강준이 다시 눈을 뜬 건 군산병원의 응급실에서였다. 다행히 이마가 찢긴 것 외에는 별다른 외상은 없었다.

"박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걱정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는 김학필 경사였다.

"김준혁은 어디 있나요?"

응급실을 돌아본 강준은 김준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했다.

"……김 실장님은 다리를 좀 다친 모양입니다. 지금 골절 수술을 받느라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강준은 처참한 심정이었다. 자신이 고집해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다가 부하직원이 크게 다친 거였다. 강준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을 찾았다.

"박 소장님! 일단 쉬시죠. 의사 선생님이 머리 쪽 CT 촬영도 해보셔야 한답니다. 교통사고라는 게 후유증이 남거든요."

"사고자는 누굽니까?"

"그, 그게…… 뺑소니입니다."

"네? 뺑소니요? CCTV 기록은 없었나요? 저희 차량에도 블랙박스가 있어서 뺑소니 차량의 모습이 찍혔을지도 모릅니다."

"번호판이 훼손된 트럭이었습니다. CCTV에 찍히긴 했지만, 번호판 인식이 안 되더라고요. 어쩌면 고의적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김학필 경사는 일단 강준을 진정시키려는 듯 다시 침대에 기대게 했다.

"소장님, 제게 장막파에 관해 물어보신 적이 있으시죠?"

"……뭔가 단서라도 찾으신 겁니까?"

"새천년교회 전도자들을 추수꾼이라고 하는데…… 그중 군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장막파일 수도 있습니다."

"황인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조사해보니까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군산교회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으니 목에다 피켓을 걸고 군산교회 비리를 고발한다며 돌아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글쎄요. 제 생각엔 일부러 미친 척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사람이 군산교회 신도들을 새천년교회로 포섭하는 일이 가능했을까요?"

강준은 아직 황인규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 모든 일을 꾸몄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최미향의 사체 옆에서 발견되었던 붉은 글씨와 황인규가 걸고 다녔던 피켓에 적힌 글씨를 확보해서 필적감정을 의뢰했습니다."

"제가 직접 황인규를 만나보겠습니다."

강준은 직접 황인규의 기억을 읽어 봐야 했다.

"지금 저희도 황인규가 있는 곳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거주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요."

김학필은 일단 강준은 충분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군산까지 오게 한 보험조사관인 강준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건 심적으로 무척 무거운 부담이었다.

* * *

군산경찰서 수사회의.

"사망 추정 시각은 새벽 두 시입니다. 결국 최미향이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집에서 나간 오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황인규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미향의 핸드폰 조사 결과 마지막 통화 상대는 황인규였다.

"범행동기는?"

"신도들의 진술로는 황인규가 최미향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고 있었고, 그런 연유로 둘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답니다."

"음…… 정황상 그렇다는 거지?"

"네, 결국 평소 조울증을 알고 있는 황인규가 말다툼 끝에 감정이 폭발해 최미향을 살해했을 수가 있으니까요."

"근데, 우발적이라고 하기엔 사체 훼손이 너무 심각하잖아?"

"그…… 그렇긴 하죠."

서장의 질문에 강태진 형사는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강 형사의 보고를 지켜보던 김학필 반장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근데 좀 의문스러운 것이 최미향의 핸드폰 통화 내역에서 명의자가 선불폰인 핸드폰 번호로도 연락 온 게 확인됐습니다."

"뭐? 그게 어떻다는 거야?"

"황인규는 조울증 환자인데…… 조울증 환자가 그렇게 철저하게 범죄를 계획할 수 있냐는 거죠. 우발적인 다툼이었다지만… CCTV에 걸리지도 않았고 톱으로 정교하게 목 부위를 잘라냈습니다. 게다가 ‘배교자는 지옥으로’라는 글귀도 적어놨고요."

회의실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조사해야 할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황인규가 미친놈이라는 거 아니야! 일단 기자들이 엉뚱한 기사 쓰기 전에 정신 나간 광신도 한 명이 살인을 저지르고 눈이 획 뒤집혀서 사체를 훼손했다고 발표하자고."

"서장님, 살해 도구는 어떻게 합니까? 아직 황인규 행적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잖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황인규 자택 수색해 봐! 톱이든 칼이든 뭔가 나올 거 아니야!"

안대성 경찰서장은 흥분한 목소리로 일선 형사들을 몰아붙였다.

"서장님, 수레를 끌고 온 김덕근은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이미 풀어줬잖아? 황인규 쪽으로 좁혀서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면서 김학필은 찜찜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강 형사, 검암동 사는 노인네가 수레를 그 멀리서 끌고 왔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그야…… 폐지가 도심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교회 앞마당에 두면 누가 훔쳐 가지도 않을 테니까요."

"군산교회 교인들이 전에도 김덕근의 수레를 교회 앞마당에서 본 적이 있대?"

"네, 종종 봤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 알겠어……."

김학필 경사는 조울증 환자인 황인규의 단독 범행으로 몰기엔 여러 가지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김덕근에게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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