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 새천년교회 장막파 (3) (179/250)


179. 새천년교회 장막파 (3)
2022.05.28.


김학필은 다시 사건 현장인 군산교회를 찾았다.

현장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고, 폐지 수레는 현장 증거품으로 경찰서로 옮겨진 상태였다. 수레가 있던 위치에는 흰색 페인트로 영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김학필은 강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형사, CCTV 확인해 봤어?”

“네, 근처 몇 군데 CCTV 영상 확보해서 확인했는데, 수레는 경암동에 있는 폐지 줍는 노인이 끌고 온 겁니다. 근데 그때까지는 사체가 없는 상태였고요. 그 이후에 사체를 옮겨 놓았다는 건데, 교회 앞마당은 조명이 꺼진 시간이라 영상판독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럼? 사체를 갖다 놓은 사람을 못 찾았다는 거야?”

“주변 도로의 영상에는 사체를 가지고 갈 만한 사람이나 차량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야? 그럼 잘린 목이 교회 안에서 나왔다는 거야!?”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핸드폰 너머로 강 형사의 단언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장님, 살인은 교회 건물 내부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학필은 살인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교회 건물을 돌아봤다. 교회는 신축한 지 얼마 안 된 모습이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널찍한 홀에는 작은 예배실과 전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지하에는 교회사무실과 공동 식당이 있었다.

김학필은 측면출입구를 통해서 중앙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3층까지 뚫린 거대한 공간에는 몇백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예배석이 있었다.

마침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중년의 여신도가 눈에 띄었다. 김학필은 여신도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만 담임목사님이 혹시 어디 계시는지 아시나요?”

“아마 지금은 목회실에 계실 거예요. 근데 아시다시피 지금은 실신 직전이시죠…… 근데…… 누구신가요?”

“군산경찰서 김학필 경사입니다. 아시죠?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요.”

“참혹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근데 우리 교회가 아무래도 이 근방에서 독보적이라…… 다른 작은 교회들에서 우리를 질시하고 그런 부분들이 있었어요.”

중년 여인은 살인사건이 자신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어 했다.

“혹시 자매님은 여기 교회에서 어떻게 되십니까?”

“전 여기 군산교회 권사예요. 하느님의 사역을 부여받았죠. 제가 여기 교회 다닌 지는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전혀 없었고요. 저희는 공동체가 워낙 튼튼하니까요….”

김학필은 권사가 말하는 공동체라는 단어에서 냄새를 맡았다. 공동체가 튼튼하다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속성도 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김학필은 경찰서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김 반장…… 실은 말이야. 군산교회에 얼마 전부터 이단자들이 설치고 있어…….]

[새천년교회 신도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추수꾼이라고…… 남의 교회 잠입해서 신도 빼가는 놈들인데, 우리 군산교회에도 잠입했거든. 좀 복잡한 얘기긴 한데…… 그 새천년교회 놈들이 이번 사건에도 관여된 거 같아.]

[서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지난번에 제가 새천년교회 수사하겠다고 한 거…… 왜 막으신 겁니까?]

[그거야…… 자네가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설치니까 그랬던 거 아니야?]

김학필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서장의 태도가 찜찜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단 서장 말대로 교회 내부를 수사하다 보면 범인의 단서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CCTV는 교회 내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가리키고 있잖아?’

김학필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3층 목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지상덕의 자택.

강준은 군산에 내려오던 길에 만났던 장막파 남자의 정체를 알아냈다. 지상덕이 갖고 있던 옛 평안교회 학생회 사진을 통해서 말이었다.

“황인규라고…… 얘 어머니가 몸을 가누지 못하셔서 돌보느라 한동안 집에만 계속 있었거든요.”

“그게 언제부터 그런 거였죠?”

“원래는 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몸이 아프시기 시작하신 게 우리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년 후부터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럼, 일도 안 하고 줄곧 집에만 있었다고요?”

“친척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준 걸로 아는데…… 솔직히 자세한 건 저도 모르겠어요. 우리도 돈 모아서 가끔 도와주긴 했었는데…….”

황인규라는 인물은 점점 세상에서 소외되어갔던 걸로 보였다.

“근데 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좀 이상해졌죠…… 조울증이 있는 건지 우울할 때는 사람들하고 연락을 완전히 끊어 버렸는데, 또 기분이 올라갔을 때는 우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옛날얘기를 늘어놓더라고요.”

“친구분들도 점점 꺼렸겠네요.”

“그렇죠…… 한두 번이야 어떻게 받아주지만, 그게 계속 반복되니까.”

지상덕에게 함께 얘기를 듣던 김준혁이 노트북을 꺼내 포털 지도사이트에 있는 로드뷰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건 군산의 새천년교회 주소지로 되어 있는 조촌동의 낡은 5층 상가건물 사진이었다.

“여기가 황인규 씨 자택이 있는 곳 맞나요?”

“어! 여기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군산에 새천년교회라고 검색되는 곳이 여기 한 곳이었거든요.”

김준혁의 말을 듣던 지상덕은 고개를 떨궜다. 뭔가 사연이 있는 듯했다. 강준은 그런 지상덕을 설득했다.

“저희한테 솔직히 말씀해주시죠. 경찰인 김학필 반장에게 수사를 부탁한 거 보면…… 뭔가 아시고 있는 게 있는 거 같은데요?”

“제가 생각할 때는 인규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듯해서요…… 군산에 새천년교회가 들어서기 몇 년 전부터 자기 집 창문에다 새천년교회라고 필름지로 붙여놨었거든요.”

“……신도가 있었나요?”

“신도가 있긴요…… 한 명도 없었죠. 그냥 혼자서 전주까지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교회에서 생활했나 보더라고요. 근데 조울증이 있다 보니까 누가 반겨줬겠어요? 다들 배척했겠죠.”

“결국 이단으로 판명 난 새천년교회에서 황인규 씨를 받아준 거군요?”

“제 추측에는 그런 거 같아요…….”

강준은 황인규를 만나봐야 했다. 그가 군산에서 활동하는 새천년교회의 추수꾼인 게 분명했다.

“부인 되시는 박영란 씨도 그럼 황인규한테 넘어간 건가요?”

“그게 저도 좀 이상해요. 인규가 정상이 아니란 건 영란이도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런 인규한테 넘어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어쨌든… 지금 부인께서는 그 새천년교회의 신도가 되셨다는 말씀이시죠?”

“……모르죠. 저도 어떻게 된 건지…… 혼란스럽네요.”

지상덕은 부인인 박영란이 새천년교회의 신도가 됐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방안에서 뭔가를 꺼내왔다.

“이게 뭡니까?”

“얼마 전에 집으로 온 건데 윤재의 생명보험 증서입니다.”

“누가 가출한 상태인 딸의 명의로 보험을 들었다는 겁니까?”

“영란이가 무슨 생각인지 윤재 명의로 보험을 들었더라고요. 윤재는 주소지 이전이 아직 안 돼 있었거든요. 이걸 보고 솔직히 놀라서 학필이한테 부탁한 겁니다. 그 광신도들이 윤재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새천년교회의 신도들 사이에서 벌어진 자동차 보험사기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어 고의로 사고는 낸 평범한 보험사기였다.

하지만 보험사기는 점점 그 강도를 더해 가는 법이다. 광신도들이 교회에 헌납하기 위해 보험사기를 벌였다면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그를 순교자로 포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가 황인규 씨를 만나 보겠습니다.”

“저도 군산교회로 가 보겠습니다. 친구가 죽었는데, 영란이도 모습을 드러내겠죠…….”

“만약 부인을 만나게 되시면 너무 다그치지는 마십시오. 어차피 종교에 빠진 상태라면 말로 설득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시 데리고 와야죠.”

강준은 이 타이밍에 지상덕을 한번 자극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근데 제가 듣기로는…… 박영란 씨는 20년 전 평안교회 일로 장종식 회장에게 억한 마음을 가지신 거 같던데… 그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자신이 말하지 않은 20년 전 평안교회 때의 일을 언급하는 강준에게 지상덕은 깜짝 놀란 듯했다.

“어…어…혹시… 알고 계신 겁니까?”

“박영란 씨의 아버님께서 평안교회를 개척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네… 목사님이셨습니다. 휴거 사건 때 신도 몇 명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때 책임을 지고 목사님이 교도소에 들어가셨어요. 남은 영란이나 원래 고아였던 저는 남은 교인들 도움으로 살았던 거고요…….”

“그 도움을 줬다는 사람이 바로 장종식 회장이고요?”

“조사관님……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강준은 당신 기억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이 비밀이라는 게 어딨겠습니까? 어쨌든 20년 전 일에 대해 좀 더 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상덕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만큼 평안교회에서의 과거 일들은 지상덕이나 그의 부인 박영란에게 큰 그늘임에 틀림이 없었다.

* * *

군산교회 3층 목회실.

다행히도 담임 목사인 최재규는 그의 집무실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슬픔에 잠겨 계실 텐데…… 아무래도 타살 사건이다 보니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게 됐습니다.”

김학필 경사는 허리를 접어 조의를 표하고는 넋이 나가 보이는 최재규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최재규의 풀어헤친 양복 셔츠에 눈물 자국이 맺혀 있었다.

아무리 목사였지만 자식 잃은 슬픔 앞에서는 정신적으로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김학필 경사를 멍하니 올려봤다.

“따님을 해친 범인이 교회 안에 잠입해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만…… 혹시 따님과 원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요?”

“……우리 미향이는 절대로 원한을 살만한 아이가 아니었어요! 부담임 목사로 얼마나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는데…… 흑흑!”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최재규였다. 김학필은 잠시 그가 울게 내버려 둔 후, 진정하기를 기다려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목사님께서는 원한을 살만한 사람들이 있으셨습니까?”

“……나? 나 말이요? 허허 나 군산교회 담임목사로 벌써 20년입니다. 내가 무슨 원한을 산단 말입니까?!”

최재규는 안경 너머로 김학필을 잠시 쏘아보았다.

“최근에 새천년교회 사람들이 군산교회에 잠입한 걸로 들었습니다.”

“……그건 나도 압니다…….”

“혹시 신도명부를 제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아…… 아…… 신도명부! 그래! 그걸 보면 최근에 들어온 사람들을 추려낼 수 있으니까…… 맞아!”

최재규는 벽장에서 신도명부라고 적힌 파일철을 끄집어냈다. 거기에는 신도들의 명세서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가족관계에서부터 어떤 직장에 다니며 얼마나 헌금은 했는지, 그리고 출석률까지…… 만약, 최미향을 죽인 범인이 교회 안에 있다면 제일 먼저 조사해야 할 기초자료였다.

“상심이 크시겠지만, 몇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최재규는 휴지를 뽑아 눈물로 범벅된 눈과 코를 닦았다. 그는 여전히 얼이 빠진 상태였다. 자신의 딸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어젯밤 따님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요?”

“……저녁 먹고 집에 있다가 갑자기 연락을 받고 나갔어요. 무슨 전화를 받더니 옷을 갈아입더라고요, 늦은 시간이라 어딜 가냐고 하니까 잠깐 아는 사람 만난다고 했었죠…….”

“아는 사람이면 교회 신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교회 사람이면 교회 사람 만난다고 보통 얘기를 하니까요. 근데 아는 사람이라고 한 거 보니까…… 도통 모르겠어요.”

최재규 목사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형사님! 미향이 핸드폰에 있는 번호를 추적해 봐요! 분명히 전화가 왔었으니까 누군지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저희가 따님 핸드폰은 증거품으로 가지고 있으니까 포렌식을 의뢰해 보겠습니다.”

김학필은 범인을 잡는 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우발적인 범행도 아닌 데다 원한 관계에 의한 잔인한 살인이었다. 마지막 통화 상대부터 차근차근 주변을 조사하다 보면 범인을 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말이었다.

16555218038147.png

1655521803815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