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새천년교회 장막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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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새천년교회 장막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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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새천년교회 장막파 (2)
2022.05.27.
군산 시내 숙소.
김준혁은 침대에 누워 가져간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아까부터 ‘장막파’라는 문구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 중이었다. 하지만 검색 결과에서 ‘장막파’를 설명하는 정보는 딱히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장막절에 관한 내용만이 노출될 뿐이었다.
[장막절은 히브리인들이 천막을 짓고 1주일 동안 거주하면서 자신의 선조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한 것을 되새기는 절기를 말한다.]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 소장님, 뭐 떠오르는 거라도 있으세요?”
“떠오르는 거?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확실한 건 뭔가 세상 밖으로 떳떳하게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하긴 그러네요. 군산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봐도 장막파에 대한 언급이 없네요. 전혀! 단서가 없어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강준은 김준혁의 반대편 침대에 드러누웠다.
“일단 자라! 낼 아침에 지상덕 만나러 가기로 했잖냐.”
“어! 잠깐만요…… 소장님! 이거 보세요!”
호들갑을 떠는 김준혁이 노트북을 들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뭔데?”
“이게 소장님이 보셨다는 그 팔뚝의 문신 아니에요?”
“어, 그러네……! 이거 어디에서 찾은 거냐?”
“군산교회 수련회 사진이요. 딱 10년 전 사진이네요.”
“뭐? 10년 전?”
오래된 컬러사진 속에는 청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어울려 단체로 사진 찍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젊은 남녀들이었다.
하지만 횟집에서 만났던 남자와 같은 광기는 그들에게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까 지상덕 씨가 일한다는 전북주류에 대해서도 검색해 봤거든요.”
“김 실장이 나 씻는 동안 이것저것 많이 했네.”
“헤헤! 자료 조사가 제 전공 아닙니까?”
“그래 잘했다. 그럼, 함 읊어 봐라.”
“여기 창업자가 장종식 회장인데, 원래 곡물창고였던 부지에 공장을 세우고 20년 전부터 인근에서 사들인 쌀로 소주를 만들었어요. 시에서도 지역쌀로 만든 지역특산품으로 광고는 했지만, 말이 좋아 지역 쌀로 만들었다고 광고한 거지…… 실상은 수입산 전분 가루로 만든 소주였다네요.”
“누군가 또 그걸 들춰낸 사람이 있었나 보네?”
“지역 신문에서 기사가 하나 난 적이 있네요. 근데 그 후로 적당히 무마된 모양이에요. 시(市)에서도 그 이후로 전북주류를 향토기업으로 지정하고 계속 우대해줬고요.”
“공무원들이야…… 자기네들 실적으로 포장하려고 했을 테니까…….”
“하여간 그 회사에 지상덕이 근무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20년 전부터요…….”
“어, 그렇지. 좌우간 지상덕이 밤에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한다며. 낼 아침에 보잔다. 직접 만나서 장막파에 관해 물어보자고…… 20년 전 평안교회 시절 때의 일들도 같이 말이야.”
강준은 침대맡에 있던 조명을 껐다.
“20년 전 종말론이라…… 하여간 사이비교회는 확실했네요.”
“그래, 일단 자자!”
“소장님, 저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거 아시죠? 깨워주셔야 합니다.”
“그래 아침잠 없는 내가 깨워드리지. 얼른 불 꺼. 자자고!”
“네, 알겠습니다!”
호텔 방에 누운 강준은 왠지 이번 새천년교회의 사건이 교인들 간의 금전적 이익을 노린 보험공모 사기로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날씨는 축축하고 습했다.
전북주류는 안개가 낀 시의 외곽 벌판에 있었다. 공장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셋이 친하기는 했는데 영란이가 교회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서로 연락을 안 했던 모양이더라고요.”
전날 야근으로 피곤해 보이는 지상덕은 최대한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새천년교회 때문에 집을 나가버린 아내와 딸을 되찾고는 싶었지만, 보험사기에 연루된 상황에서 보험조사관이 들이닥치자 조심스러웠던 거였다.
“그러니까 부인께서는 지금 친구분들과도 연락이 안 된다는 거네요?”
“……그렇다고 봐야죠.”
명확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지상덕에 따르면 아내인 박영란의 친구는 둘이었다. 한 명은 군산교회 담임목사인 최재규의 딸이자 본인도 부담임 목사인 최미향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전북주류 장종식 회장의 딸인 장선미였다.
지상덕을 비롯한 그들은 모두 어릴 적에 평안교회를 다녔던 친구들이라고 했다.
“혹시 평안교회 때 일 생각 나십니까? 휴거로 한창 들썩였다고 들었는데요?”
“아, 물론이죠. 근데 저희야 어려서 뭣 모르고 다녔으니까요. 그 후로 최재규 목사님이 오셔서 완전히 다른 교회가 됐죠. 그게 지금의 군산교회고요.”
지상덕은 일견 군산교회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듯 보였다.
“혹시 장막파라고 들어보셨나요……?”
“……장막파요? 아뇨 전 못 들어봤는데요.”
“그럼 이 문신은요?”
강준은 어젯밤 김준혁이 찾은 군산교회 수련회에 등장했던 팔뚝 문신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자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상덕은 공장 점퍼를 걷어 올려 자신의 팔뚝을 내보였다.
“그거 저도 있는데요……?”
지상덕의 팔뚝 문신은 강준이 횟집에서 봤던 장막파 남자의 십자가 문신과 똑같았다.
“이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신앙심을 키운다고 학생부 몇몇이 했던 거였죠.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 사진은 또 뭐고요?”
강준은 그의 기억을 읽기 위해 지상덕의 문신을 손으로 만졌다.
[난 지금까지 속고 살았던 거야…… 우리 아빠를 그렇게 만든 게 바로 최 목사였어! 자기는 알고 있었어?]
지상덕의 눈앞에는 눈에 핏대를 세운 박영란이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도 뒤늦게 알았어…… 근데 생각해 봐. 지금까지 갈 곳 없는 우리를 거둬준 게 장 회장님이잖아. 그건 사실이잖아?]
[그딴 소리 하지도 마! 장 회장이 우리 아빠가 개척한 평안교회 재산 다 빼돌려서 술 공장 만든 거야! 앞에서는 착한 척! 위해주는 척! 뒤에서는 영혼까지 빨아먹고 있었던 거라고! 사악한 악마가 바로 장 회장이야!]
흥분한 박영란이 주체 되지 않는 분노를 남편인 지상덕에게 쏟아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 적 기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사관님…… 전화가 와서 잠시만요…….”
“네, 실례했습니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지상덕이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 잠시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는 잠시 후, 사색이 된 얼굴로 돌아왔다.
“조사관님…… 영란이 친구가 죽었답니다!”
“네? 누가요?”
“아까 말씀드렸던 군산교회 부담임 목사! 영란이 친구 최미향이요!”
“……아!”
“살해당했다네요……!”
강준이 간밤에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군산경찰서.
서의 분위기는 분주했다. 김학필 경사는 초조한 발걸음으로 회의실로 향했다. 경찰서장 주관의 긴급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인구 27만 명의 도시 군산의 살인사건.
그것도 아침에 시민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교회 앞마당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김학필은 주변 CCTV의 영상부터 확보했다.
나운동의 한복판에 있는 군산교회.
사체는 목 부위에서 잘려져 머리만 덩그러니 발견되었다. 목의 절단 부위는 전기톱으로 잘린 듯 절단면이 일률적이었다.
잘린 목은 교회 앞마당의 폐지를 옮기는 낡은 수레 위에 던져진 채 발견되었다. 범인은 경고문을 남기듯 수레의 종이상자에 붉은색 글씨를 남겼다.
[배교자는 지옥으로.]
김학필 경사는 한눈에 군산교회의 살인이 전형적인 원한 관계에 의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보통 살인범은 사체를 감추는 데 주력하지만, 범인은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교회 앞마당에 사체를 전시했다.
그것도 새빨간 글씨로 ‘배교자’라는 표식을 남긴 채 말이다.
김학필은 이번 사건을 교회 신도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과 원한에서 비롯된 살인이라고 단정 지었다.
“강 형사, 피해자 신원 파악은 했어?”
“네, 이름은 최미향. 군산교회 전도사라고 하네요. 담임목사 친딸이고요.”
“뭐? 최미향?!”
김학필은 복도를 걸어가다 멈춰 서서 강 형사를 돌아보았다.
“반장님이 아시는 분이세요?”
사건 현장이 군산교회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었다. 최미향. 그녀는 친구인 지상덕의 아내 박영란의 친구였다.
김학필은 아내와 딸이 집을 나가서 불안해하던 지상덕의 불안한 눈초리가 떠올랐다.
“강 형사, 잠깐만 먼저 들어가 있어 봐. 난 전화 한 통 하고 들어갈게.”
“아이 참나…… 빨리 오셔야 해요. 서장님 늦으시면 불같이 화내시는 거 아시잖아요. 괜히 회의 길어지기 전에 자리 지키셔야 합니다.”
“알겠어! 알겠어! 금방 간다!”
김학필은 친구인 지상덕에게 빨리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할 것만 같았다. 최미향의 죽음은 왠지 박영란과 연관되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군산경찰서 회의실.
“강 형사 사건 보고해 봐.”
“오늘 새벽 5시에 교회 관리인이 교회 문을 열기 위해 군산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차량을 주차하고 들어가려던 찰나, 교회 앞마당에 놓인 폐지 수레 위의 사체 일부분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42세의 여성, 최미향입니다. 군산교회 부목사고요.”
“잠깐만…… 흐음.”
경찰서장 안대성은 깍지 낀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군산교회는 자신이 장로인 교회였다. 최미향은 담임목사 최재규의 딸이었다.
“사체가 놓인 수레 위에 ‘배교자는 지옥으로!’라는 문구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됩니다.”
“단정해서는 안 돼. 범인이 강도나 강간살인을 하고서 혼선을 주기 위해 그런 문구를 남겼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네, 맞습니다. 어디까지나 원한 관계는 추정일 뿐입니다.”
“사인은?”
“목이 잘리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체는 지금 어디 있어?”
“검시소에 넘겼습니다.”
“일단, 유족들한테 부검동의서 받아와.”
“네 알겠습니다.”
안대성은 김학필을 바라보았다. 김학필은 경찰서장 안대성이 뭘 말하려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사건은 빨리 마무리 지으라는 말일 것이었다.
“김 반장, 지금 당장 현장 가서 통제하고, 기자들이 목격자들한테 못 붙게 막아!”
“네…… 알겠습니다.”
안대성 서장은 의외로 간 작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경찰서장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준 사람은 전북주류 회장인 장종식이었다.
장종식은 안대성이 말단 순경이었던 시절부터 그를 위해 줄기차게 윗선에 뇌물을 제공해 줬다. 자신의 분수보다 과분한 자리는 사람을 위태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안대성이 자신의 그런 처지 정도는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대성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위태롭게 쌓은 성이 무너져 내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안대성에게 군산교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자신의 세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더 충격적인 것은 피살된 인물이 장종식 회장과 더불어 옛 평안교회의 부담임 목사였던 최재규의 친딸이라는 사실이었다.
“다 나가고 김 반장은 잠깐 남아.”
형사들이 우르르 자리를 빠져나가고 김 경사만 경찰 서장과 덩그러니 남았다. 새천년교회에 대해 수사하려던 김학필을 막던 서장이었다.
그런 서장이 왠지 이번에는 김학필에게 뭔가 부탁을 하려는 눈치였다. 일대일 면담은 서장이 부탁할 때면 늘 해오던 패턴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