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5)
(176/250)
176.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5)
(176/250)
176.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5)
2022.05.25.
“골드바 있다며? 어딨어?”
“읍…… 으읍!”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켜. 안 그러면 진짜 손가락을 뽑아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여민구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야! 들어가서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부하 중 한 명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내부를 둘러본 그는 변기의 수조 뚜껑을 열었다.
“어! 김 실장님! 여기 있습니다!”
김성길은 직접 들어가 수조 안에 비닐 팩에 넣어 둔 골드바들을 확인했다. 총 7개. 시가 1억 4천만 원의 금이었다.
“여민구! 너 이게 다야?”
“……컥…… 크허허……!”
덩치 큰 부하가 여민구의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게 다냐니까? 다른 데 숨기고 있다가 걸리면 양손의 손가락 다 날아간다!”
김성길은 품 안에 있던 등산용 칼을 꺼내 보였다. 그는 한때 강남에서 활동하던 건달 출신이었다. 예전 버릇을 버리지 못한 그였다.
“……정 이사랑 전화 좀 하게 해 줘!”
“왜? 또 그 뱀 같은 혀를 놀려 보게?”
“진짜 오해가 있었어! 진짜야. 나도 경찰한테 쫓기고 있었다고. 그래서 연락을 못 한 거라니까!”
“와, 이 새끼 봐라…… 지금 이 상황에서 잔머리를 쓰네. 경비원이면 경비원답게 도둑이나 지킬 것이지 왜 잔머리를 쓰고 지랄이야!”
김성길은 부하에게 눈짓하자 둘이 여민구의 손을 탁자 위에 얹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진짜 저게 다야?”
“다라니까! 너희는 점포주들한테 얼마 털렸는지도 모르고 왔냐!”
“근데 이 아저씨가 아까부터 자꾸 뭘 잘했다고 큰소리치고…… 지랄이지? 어!”
말이 끝나자마자 날카로운 등산용 칼의 칼날이 여민구의 손등을 관통했다.
“크아아악! 아아아악!”
비명이 밖으로 새어 나가자 덩치 큰 부하가 여민구의 입에 수건을 틀어넣었다.
“시발, 당신 나 속이면 알지……? 얘들아, 이 인간 차에다 실어라.”
“네, 알겠습니다!”
“네, 형님!”
입던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끌려 나가는 여민구였다. 그리고 김성길은 가져온 가방에 골드바를 주워 담았다.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김성길은 골드바 하나를 자신의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수량이 맞지 않으면 여민구에게 뒤집어씌우면 그만이었다.
부하들도 모르게 챙긴 김성길은 혼자 실실 웃었다. 하지만 그때, 출입문을 나가던 부하들의 비명이 들렸다.
퍽! 퍼퍽! 뻑!
“뭐야!”
김성길의 눈앞에서는 일전에 그가 라이터를 빌린 적이 있었던 남자가 자신의 부하를 제압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직접 주먹을 쓰는 보험조사관 박강준이었다.
퍽! 퍽! 퍽!
“어휴, 얘는 꽤 맷집이 센데!”
“……으어어……!”
“아악!”
그 와중에 밖으로 도망치려는 여민구의 멱살을 잡아챈 강준이었다.
“다…… 당신 뭐야? 경찰이라도 돼? 이렇게 사람 폭행하고 이래도 되는 거야?”
“경찰이 아니니까 이렇게 때리지. 경찰이면 때릴 수 있었겠냐?”
강준이 여민구의 멱살을 끌고는 다시 원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김성길과 바짝 마주 보고 눈빛을 교환했다. 당장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기세였다.
“뭘 어쩌자는 거야?”
김성길은 슬쩍 뒷걸음질 치면서 탁자 위에 놓인 등산용 칼을 쥐려 했다. 그리고 그걸 놓치지 않은 강준이 김성길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털썩!
김성길은 동공에 초점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원룸에 막 도착했다. 함께 군산에 와 있던 김준혁 실장이었다.
“아, 소장님! 저랑 같이 들어가자니까 왜 먼저 가신 거예요?”
“너 일부로 늦게 온 거 아니었어?”
“일부로 늦다니요! 지금 군산 경찰 쪽에 협조 구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 이상하게 이럴 상황일 때마다 혼자만 일하는 기분이지?”
“거, 기분 탓입니다.”
“그래, 어쨌든 경찰은 언제 온대?”
“지금 출동한답니다.”
김준혁은 바닥에 드러누운 김성길의 안주머니에서 골드바를 챙겼다.
“역시 양아치 근성은 안 바뀌나 봅니다. 통수에 통수라니…… 쯧!”
강준은 구석에서 눈치를 살피는 여민구에게 다가갔다.
“금 거래소에서 당신이 골드바를 판 돈이 아마 8천만 원이 조금 넘지?”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데……?”
“에이, 왜 이러실까? 이거 다 녹취가 돼 있는데.”
강준은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 녹음파일에 여민구가 금 거래소 직원과 직접 거래하는 음성이 담겨 있었다.
“이래도 부인할래?”
“……이거 불법 녹취 아니야?”
“자꾸만 아까부터 법을 찾는데, 이제부터 법대로 처리할 거니까 너무 보채지 말라고.”
정신을 차린 김성길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했다.
“왜? 정대환 이사한테 전화하게?”
정 이사 얘기가 나오자 눈을 휘둥그레 뜨는 김성길이었다. 자신이 두원 귀금속 상가관리단 직원이라는 걸 알 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쯤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을 테니까 굳이 전화하지 마라. 바빠서 전화 못 받을 거거든.”
강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군산경찰서의 강력계 형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데려온 이진철 경감이 어떻게 된 거냐는 눈초리로 강준을 바라봤다.
“이 경감님, 여기가 제가 말씀드린 경비원 여민구 씨, 그리고 이쪽이 정대환 이사 부하인 김성길 씨, 그리고 여기는 그 똘만이들!”
강준의 친절한 설명에 형사들이 수갑부터 채웠다.
“박 소장님, 서울에서 정대환 이사랑 김정팔 씨 조사 끝냈답니다.”
“혐의 부인하죠?”
“하하! 당연히 그렇죠. 이놈들 데리고 가면 서로 맞춰 봐야죠.”
어쩌면 별거 아닌 도난사건에 광역수사대까지 동원하게 된 강준이었다. 강준은 군산까지 직접 와준 이진철이 맘속으로 고마웠다.
* * *
며칠 후, 해리츠보험은 보험사기로 고소한 두원 귀금속 상가의 점포주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해리츠보험에서 주장했던 대로 점포주들이 벌인 자작극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점포주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상가관리단 측이 벌인 조직적인 절도 사건도 아니었다.
단지 경비원이었던 여민구의 절도와 그 범죄를 이용하려고 했던 정대환 이사의 2차 범죄가 있었을 뿐이었다.
여의도 금융감독원.
“박 소장님 덕분에 해리츠보험이 많이 민망한 상황이 됐습니다.”
“앞으로 섣부르게 소송부터 하고 보는 일은 없어져야겠죠.”
“맞습니다. 법률적 우위를 바탕으로 보험계약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옳지 못하니까요.”
“금감원에서 보험사들의 그런 횡포를 막아 줘야 합니다.”
보험국의 박동식 수석은 강준의 말에 의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거대 보험사들의 횡포를 막을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건을 다룰 뿐이었다.
살해된 이진석 부원장처럼 말이었다.
“약속한 사건 수당은 1주일 이내에 소장님 법인 계좌로 지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또 의뢰하실 사건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동식은 자리를 뜨는 강준에게 악수를 청했다. 강준은 살짝 그의 기억을 읽으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뭐? 점포주들한테 혐의점이 없다고? 조사 제대로 한 거 맞아?]
[네, 경찰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경비원인 여민구가 주물공장 친구와 함께 둘이서 벌인 절도였습니다.]
[경비원? 그럼 내부자잖아. 충분히 점포주들하고 공모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원장님! 그렇게 엮는 건 억지입니다.]
[……야, 박 수석 너 많이 컸다? 내 말에 언제부터 그렇게 토를 달았어? 어!]
이해철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박동식을 쏘아봤다. 그리고 회유하듯 말을 이었다.
[박 수석…… 서로 원만하게 맞춰 가는 게 사회생활 아냐? 각자 입장이라는 게 있는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상대를 몰아세우면 되겠어?]
[……네.]
[나도 박 수석이 뭘 말하려는 지 알아. 보험사기를 계속 우기는 게 무리라는 것도 알고! 근데 말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고 저쪽을 설득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가 감독기관이지 설득하는 기관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참나…… 말이 안 통하는군. 나가! 책상 앞에 앉아서 왜 자네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도 성찰해 보라고!]
이해철 원장은 박동식 수석을 업무에서 배제시킬 수도 있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박 수석도 고민이 많군…… 이해철 금감원장이 저렇게 사람을 갈궈 대니……!’
강준은 박동식 수석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보험국을 빠져나왔다. 어쨌든 두원 귀금속상가의 도난사건은 박동식 수석을 도운 격이었다.
해리츠보험과 각을 세우고 있었던 박 수석의 주장이 옳았다는 게 증명된 거니 말이었다. 게다가 금감원으로서도 민원분쟁이 해결됐으니 아무리 금감원장이 삐딱하게 나간다고 해도 박동식의 입지는 더 공고해질 터였다.
* * *
종로경찰서.
두원 귀금속상가의 도난사건이 해결되고 나자 종로경찰서의 담당 형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듣던 대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경비원이 범인이라는 걸 아셨습니까?”
“대단할 거 전혀 없습니다. CCTV 시간대만 꼼꼼히 확인했어도 될 일이었으니까요.”
강준은 일부러 태업한 형사들의 행태를 에둘러 비난했다.
“하하…… 그야 그렇죠. 아시다시피 저희도 윗선에서 미적지근하게 나오면 뭐랄까…… 사건에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건에 힘을 뺄 수는 없으니까요.”
“윗선 핑계만 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민망해진 담당 형사가 화제를 돌렸다.
“아, 저희가 회수한 범죄수익을 피해자에게 나눠 줬는데 그사이에 금값이 내렸다네요. 다행이죠. 금값이 올랐으면 피해자분들이 본 손해를 만회할 길이 없잖습니까?”
“정대환 이사는 여전히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겁니까?”
“네, 완강히 부인하기는 하는데 자기네들끼리 그렇게 의리가 좋지 못해요. 김성길이 다 토해내는데 본인이 버티고 있을 수가 없죠.”
“생각보다 의리가 얄팍한가 보네요.”
“본인이 감방에서 몇 년 썩을지가 결정되는 건데, 그거 앞에서 장사 없죠.”
강준은 담당 형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휴게실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자신을 만나러 찾아온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여민구 체포 당시 공조했던 군산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이었다.
“군산경찰서 김학필 경사입니다. 저희가 골치 아픈 사건이 하나 있어서 상담을 좀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혹시 정식으로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 오신 건가요?”
“아…… 그보다는…….”
말을 얼버무리는 김학필이었다.
“괜찮습니다. 편히 말씀하시죠.”
군산경찰서의 형사과 반장이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사건을 의뢰할 만큼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김학필 경사였다. 하지만 강준을 만나기 위해 서울까지 찾아온 만큼 매몰차게 굴 수는 없었다.
‘근데 궁금하긴 하군……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익산에서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차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경찰조사에 응하지 않는다고요?”
“네, 종교와 관련되어 있어서요.”
“……종교라면?”
“새천년교회 익산지부 사람들인 거로 확인됐습니다.”
“네? 새천년교회요?”
강준은 회귀 전 새천년교회가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판명 나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곳임을 떠올렸다.
“사이비교회라…… 가만 놔두면 독버섯처럼 번지게 되죠…….”
호기심이 생긴 강준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