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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4) (175/250)


175.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4)
2022.05.24.


정대환 이사는 자신이 속았다는 걸 며칠이나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찰을 부를 수도, 보험조사관인 강준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직접 잡기로 했다. 자신에게 똥을 던지고 도망쳐버린 여민구를 말이었다.

“성길아, 네가 애들 데리고 가서 여민구 그 새끼 좀 잡아 와라.”

“네, 이사님.”

“군산에 있다니까 가서 쭉 뒤져 봐. 주머니에 돈 있으니까 그 근처에서 술 처마시고 있겠지.”

“근데 잡으면 어떻게 할까요? 반 죽여 놓을까요?”

“어…… 그 새끼한테 금덩이가 있을 거야. 그거 가지고 와. 내가 성길이 너 얼마나 믿는지 알지?”

“에이, 이사님도 제가 중간에 삥땅치고 이러는 놈 아닙니다!”

김성길은 비릿하게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정대환 이사가 제일 총애하는 후배였다. 정 이사가 두원 상가관리단을 먹을 때부터 김성길은 그를 착 달라붙어 보좌했던 인물이었다. 싫든 좋든 자신을 따라주는 김성길을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정 이사였다.

“이번 일만 잘 끝나고 나면 너도 하고 싶었던 금 도매 한번 해 봐. 내가 뒤에서 잘 밀어줄 테니까?”

“정말입니까?”

“내가 농담하는 거 봤어?”

정 이사의 날카로운 눈빛이 성길에게 꽂혔다. 흠칫 놀란 성길이었지만,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푹 접었다.

“그럼 출장 다녀오겠습니다!”

“중간중간 보고하는 거 잊지 말고, 가는 곳마다 사진 찍어서 보내. 알겠지?”

“네, 알죠.”

성길이 나가고 나자 정대환은 소파 쪽으로 자리를 이동해 앉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주물공장을 하던 김정팔이 앉아 있었다.

김정팔의 눈두덩이는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입술은 퉁퉁 부어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였다.

“군산에서 여민구 못 찾기만 해 봐……. 그때는 우리 상가에서 피해 본 것들 당신이 전부 물어내게 될 줄 알아!”

김정팔은 말없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일 뿐이었다. 정대환은 여민구가 금을 녹여 보관한다는 말을 기억해 내고는 인근의 주물공장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그중에서 김정팔의 주물공장을 찾아낸 것이었다. 물론 금을 비싼 가격으로 매입해 준다는 정 이사의 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근데 이사님…… 진짜 경찰에는 신고 안 하실 거죠?”

“그거야 김정팔 씨 당신한테 달린 거지. 남은 금 싹 다 가져오고 여민구 그 인간 잡아 오면 원만하게 무마되는 거고. 아니면 법으로 해결해야지. 우리도 어떻게 해?”

“전…… 진짜! 주물공장에 남아 있던 금 다 내드린 겁니다! 원래는 반씩 나누기로 했는데 여민구 그 양아치 새끼가 뒤통수 때리고 두 개 남기고 싹 다 가져갔다니까요?”

“뭐, 그거야 둘이 입 맞춰 보면 알지 않겠어?”

정대환으로서도 이판사판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 인간들을 그냥 놔둬서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도둑놈들한테 장물을 빼앗는다고 해서 그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군산 수송동.

골드바 하나를 처분한 여민구는 수중에 현금이 많았다. 그리고 그걸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우선 가게를 하나 인수할 생각이었다.

모든 거래에는 기록이 남지만, 무형적 권리인 권리금은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중에 가진 현금은 5천만 원. 그리고 골드바로 가진 자산이 2억 2천만 원.

여민구가 가진 현금은 인수할 노래방의 권리금으로는 조금 부족한 금액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골드바를 현금화시켜야 했다.

“여종구 씨?”

“아…… 네, 안녕하세요.”

커피숍에 앉아 있던 여민구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본명을 숨기고 인수할 노래방 사장을 만난 거였다.

노래방 사장과 같이 온 사람은 부동산 업자였다. 그는 오늘은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겠다는 듯 과한 눈웃음을 치며 양쪽을 소개했다.

“여기 사장님 노래방이 수송동에서는 제일 잘된다고 보시면 돼요. 2년 전에 인테리어해서 내부도 아주 깔끔하고요. 그리고 노래방은 결국 단골 장사잖아요?”

“……단골손님들이 많아요?”

“아휴 그럼요! 사장님이 어찌나 꼼꼼하게 관리를 하셨는지 이 근처에서 첼로노래방이라고 하면 유명하죠.”

노래방 사장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지만, 내심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렇게 장사가 잘됐으면 가게를 내놓지도 않았겠지…….’

여민구는 시간 낭비할 거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보니까 권리금을 9천을 달라고 하셨는데…… 매출 장부 같은 거 좀 볼 수 있나요?”

“카드 내역이 있긴 한데…… 우리 가게는 대부분 현금으로 받았거든요. 아시잖아요? 이런 데서 굳이 카드 긁다가는…… 흐흐!”

사장은 자신의 노래방이 도우미를 불러 매출을 유지한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냐는 표정이었다. 여민구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현금이 돌아가는 장사. 그게 딱 여민구가 원하던 것이기도 했다.

“근데…… 9천은 좀…… 주인 바뀌고 그러면 결국 손님들도 같이 우르르 빠져나갈 텐데…… 그렇게 되면 결국 맨땅에 헤딩하는 거 아닌가?”

“에이, 사장님! 여기 수송동이 군산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거 알죠? 다른 데 알아봐요. 권리금 다 이 정도는 한다니까!”

부동산 업자는 권리금 조정의 뜻을 내비치는 여민구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라는 듯. 노래방 사장에게 최대한 자신을 어필하는 거였다.

“일단 그럼 며칠만 더 고민해 볼게요.”

“그래도 물건은 직접 보셔야죠. 가서 보시고 맘에 안 드시면 계약 안 하시면 되죠. 안 그래요? 사장님?”

노련한 부동산 업자는 견물생심이라고 눈으로 보여 주는 게 제일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직접 봐서 뭐 하겠어요? 시설이야 좋겠죠. 일단…… 오늘은 서로 입장 차를 알았으니까 연락드릴게요.”

여민구는 직접 노래방 물건을 보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노래방 사장을 만난 건 일종의 협상전략이었다. 계약을 앞두고 엎어지면 상대는 조바심이 나게 마련이다.

그는 권리금을 최대한 깎기 위해 일단 협상장을 떠난 것이었다.

커피숍에 남은 노래방 사장의 안색이 싹 변했다.

“권리금을 너무 높게 불렀나…….”

“사장님, 한 천만 원만 깎아 볼까요?”

“그래요, 그럼. 솔직히 오는 놈들마다 간만 보려고 하니까 내가 호가를 올려놓은 거지…… 뭐.”

그때 누군가가 그 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앉아 있던 둘의 맞은편에 앉았다.

“혹시…… 누구신지?”

“아까 만난 사람 말입니다. 경찰에서 쫓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 금감원 보험조사관 박강준이고요.”

강준은 내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민구가 자리를 뜨기를 기다려 부동산 업자와 매도인에게 접근한 거였다.

“그럼 저 사람 범죄자인 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네, 네! 협조해드려야죠.”

“그럼, 말씀하신 권리금을 3천만 원 깎아 준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계약 일자를 잡아 제게 알려 주십시오. 간단하죠.”

“아…… 유인하려는 겁니까?”

“숨겨 놓은 범죄수익금을 회수할 절호의 찬스니까요. 보증금 5천에 권리금 6천. 도합 1억 천이네요.”

“그렇죠.”

“이 근처에 골드바를 취급하는 곳들이 어디 있습니까?”

“글쎄요…… 이 근처에도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부동산 업자는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아! 여기 있네. 나운동 박 사장! 이 사람이 금은방 하니까 전화해서 물어보면 알 겁니다.”

강준은 슬슬 여민구를 체포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 * *

김성길은 후배 두 명과 함께 군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현지의 흥신소였다. 풍부한 활동 자금. 괜히 먼 길 에둘러 갈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 인간이 수송동에 원룸에 있다는 거죠?”

“확실합니다. 확실해…… 우리가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하게 한다니까요. 틀리면 환불도 해드려요.”

“어떻게 알아냈는데요?”

“에이, 그건 영업비밀인데 어떻게 알려 줍니까? 헤헤!”

“알겠어요. 그럼 잔금 내면 주소 준다는 거죠?”

“오백만 냥 되겠습니다.”

성길은 오만 원권 지폐뭉치 한 다발을 내밀었다.

“됐죠?”

흥신소 사장은 비릿하게 웃으며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수송동의 한 오피스텔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럼, 또 연락드리죠.”

“밤 12시 이전에는 안 들어옵니다. 저녁마다 요즘 술을 퍼마셔요. 차라리 아침에 가 봐요.”

“네, 참고하죠.”

김성길 일행이 나가고 나자 흥신소 사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야, 그거 기똥차네! 어디 있는지가 훤히 다 보이니까. 굳이 애들 돌릴 필요도 없고, 돈 굳었다! 흐흐! 지금 잔금 보낼 테니까 확인하고 메시지 줘라.”

흥신소 사장이 말했던 것처럼 직원을 동원해 여민구의 뒤를 쫓은 게 아니었다. 해외에 있는 또 다른 업체에 하청을 줘서 여민구의 스마트폰에 위치가 발신되는 백도어 앱을 깐 것이었다.

덕분에 흥신소 사장은 앉아서 의뢰인이 찾아 달라는 사람의 실시간 위치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와…… 세상 참 좋아졌네. 우리 때는 쌔빠지게 바람피우는 인간들 쫓아다니고 그랬는데…… 흐흐!”

한편 흥신소를 나온 김성길 일행은 거침없이 오피스텔로 들이닥쳤다.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성격 급한 정대환 이사가 어찌 나올지 안 봐도 눈에 훤했기 때문이었다.

오피스텔에 도착한 김성길은 부하 한 명을 시켜 5층에 있는 여민구의 원룸 창문 쪽으로 보냈다. 그가 집에 있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성길은 여민구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올라가자! 안 받으면 직접 얘기해야지!”

“아주 뼈를 아작 내 놓겠습니다.”

“아이고 살살 해라. 우리 지금 깡패짓 하는 거 아니잖아? 훔쳐 간 거 돌려받으려는 거지. 안 그래?”

“맞습니다. 형님!”

몸집이 큰 부하가 양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당장이라도 여민구를 잡아 죽이겠다는 양 앞장섰다.

성길은 5층에 도착해 아까 창 쪽을 관찰하러 간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때? 집에 있냐?”

―네, 좀 전에 침대에서 일어나서 왔다 갔다 하는 거 봤습니다.

“그래, 알았다. 너도 따라 올라와.”

김성길은 512호의 대문 앞에 섰다.

띵동! 띵동!

벨이 울렸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관리실에서 나왔습니다. 아랫집에서 누수가 된다고 해서요. 화장실에서 물이 샌답니다.”

잠시 후,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여민구, 이 개새끼야!”

몸집이 큰 부하가 여민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는 여민구를 안으로 밀어붙였다.

소파를 제외하고는 바닥에는 온통 술병과 음식물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원룸 한쪽 구석에는 그가 가져온 캐리어 가방이 세워져 있었다.

“저거 뒤져봐라.”

“네, 형님!”

뒤이어 따라오던 부하가 캐리어 가방을 열어 바닥에 쏟아냈다.

“여민구 씨…… 금덩어리 어디다 숨겼어? 불쌍한 인간 경비원 시켜 줬더니만 이렇게 배신을 때려? 몹쓸 사람이네…… 어떻게 인생을 이따위로 사는 거야? 한심하게…… 어!”

“읍…… 으으읍!”

여전히 덩치 큰 부하에게 턱을 잡힌 여민구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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