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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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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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3)
2022.05.23.
두원 귀금속 상가 경비원 여민구. 그의 기억은 섭씨 천도가 넘는 온도의 뜨거운 가마니 앞에서 시작되었다.
[인마! 그러니까 내가 다이아 같이 보석 박힌 건 가져오지 말라고 했잖아? 어차피 거기 박힌 거 뽑아 봐야 돈도 안 돼.]
[시발…… 시간 없어 죽겠는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확인을 해? 그냥 후다닥 주워오는 건데…….]
두꺼운 목장갑을 겹쳐 낀 채 가마니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남자는 영세 주물업체를 운영하는 김정팔이었다.
[넌 30년을 주물 밥 먹었다는 놈이 그렇게 눈썰미가 없냐?]
[아이 씨! 자꾸 잔소리할래? 나 금 전문이야 보석 같은 거는 내가 어떻게 아냐?]
[그래, 알았으니까 이제 슬슬 꺼내 봐.]
정팔이라는 남자가 집게를 가마니에 넣어 녹여낸 금덩이를 꺼냈다. 아직 붉은 열기가 식지 않은 순도 99%의 금덩이였다.
정팔은 진지한 표정으로 금덩이를 내려놓고는 감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봤냐? 영롱한 빛깔의 자태를…… 흐흐!]
그걸 지켜보는 여민구는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거렸다.
[역시 금이 최고다. 최고야! 멍청한 놈들이나 장물 팔다가 걸리는 거지. 이렇게 떡하니 금덩어리로 만들어 놓으면 얼마나 좋아! 환금성도 좋고!]
[근데 민구야, 우리 언제까지 해 먹을 수 있는 거냐?]
[대충 3억은 했으니까 슬슬 접어야지. 뭐든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거든. 그리고 상가에서도 털릴 때마다 CCTV를 하나씩 달아 놓더라고. 이제 사각지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해.]
꽤 신중한 타입의 여민구가 친구인 김정팔을 달래듯 말했다.
[그럼 우리 이거 언제 팔아먹냐?]
[한동안은 쥐 죽은 듯이 지내야지. 경찰이 수사 들어가면 장물아비들이랑 금덩이 팔아먹는 놈들부터 조지는 거 모르냐?]
[나 진짜 이번에 한몫 챙겨서 새 인생 시작할 거다!]
[뭐 할 건데?]
[배달 사무실이나 차릴 거다. 그게 꽤 돈이 되더라고…… 흐흐!]
김정팔은 여민구와 함께 비릿하게 웃어 댔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실실거리는 여민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컴퓨터를 조립하실 수 있다니 묻겠습니다. 이 컴퓨터 사양이 어떻게 됩니까?”
“네? 사양요……?”
“아까 분명 점포주들이 버리고 간 컴퓨터를 조립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컴퓨터 사양을 모른다고요? 이건 CPU가 어떻게 되죠? 하드용량은요?”
강준의 질문에 여민구의 안색이 굳었다.
“제 생각에는 경비원이신 여민구 씨가 계속 컴퓨터를 바꿔 왔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요?”
“난 그냥 버려진 컴퓨터를 주워왔던 것뿐인데…….”
“여기 있는 이 컴퓨터들! 증거품으로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강준이 갑자기 컴퓨터를 압수하겠다고 나서자 황당해하는 건 여민구뿐만 아니라 정대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조사관님…… 이걸 왜 가져가신다는 겁니까?”
“이 안에 경찰이 보면 안 되는 CCTV 영상이 기록되어 있을 거 같아서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여러 대의 컴퓨터들이 여기 있을 이유는 없잖습니까?”
정대환은 여민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민구 씨, 여기 CCTV 영상들 들어있는 거 맞아요?”
“……그럴 리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건 그냥 제가 중고로 다시 팔아먹으려고 주워 온 거라니까요…….”
“조사관님! 거보세요. 아니라잖아요?”
강준이 노린 건 비어 있는 CCTV 시간대였다. 여민구가 안에서 김정팔이 침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면 분명 CCTV의 사각지대를 노렸을 것이었다.
“경찰 조사서를 보니까 범인이 CCTV 사각지대로 출입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말이죠. 만약, 경비원인 여민구 씨가 미리 출입 장치를 개방해 줬다면?”
“무슨 소리예요! 침입할 때 분명히 파손 흔적이 있었는데!”
“파손 흔적이 있었는데 경보장치는 작동한 겁니까?”
“……작동했겠죠! 그건 경비업체에 물어야지 왜? 나한테 묻는 거예요?”
흥분한 목소리로 변한 여민구였다.
“조사관님, 일단은 돌아가시죠. 여기 컴퓨터에 있는 건 제가 확인해 볼 테니까요. 금감원이 증거물 압수까지 하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상황을 수습하려는 정대환 이사였다. 강준도 자신이 증거물 압수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었다.
다만, 여민구를 한 번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 컴퓨터들에 CCTV가 담겨 있는지는 정대환 이사님께서 직접 확인해 주시죠. 어쨌든 제가 오늘 조사한 바는 경찰 쪽에 모두 보고가 들어갈 겁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뭐, 그러시던지요.”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정대환이었다.
* * *
두원 귀금속 상가관리단 사무실.
“어이! 여민구 씨, 어떻게 된 건지 해명 좀 해 봐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그 사람이 왜 절 의심하는지는 몰라도 전 진짜 억울하다니까요!”
“솔직하게 말 안 하면 나도 경찰에다 그냥 신고할 거예요.”
“휴우…… 답답하네. 참!”
“야! 다들 나가 있어!”
정대환은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을 전부 내보냈다. 그리고는 담배를 하나 꺼내 여민구에게 내밀었다.
“펴요.”
“……고맙습니다.”
“솔직히 내가 말할게요. 나도 눈치가 있는데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네.”
“…….”
여민구는 묵묵부답이었다.
“얼마나 해 먹었어요?”
“뭘 해 먹습니까? 난 진짜 아니라니까요.”
“이거 파고들면 잡히는 거 금방이에요. 그냥 솔직하게 말합시다. 나도 이거 가지고 시끄러워지는 거 싫거든요. 내 선에서 처리하고 말지.”
정대환은 은근슬쩍 경비원인 여민구를 회유했다.
“…….”
“나도 여민구 씨를 법적으로 처리하고 싶진 않아요. 여기 점포주들이 얼마를 손해 봤건 그건 나랑 상관도 없고…… 오히려 차라리 그 인간들 보험사기로 걸려들어서 상가에서 나가 주면 고맙죠.”
“…….”
여민구는 고개를 숙이고는 담배 연기를 깊게 내뱉었다.
“정 이사님이…… 혹시 무마해 주실 수 있는 겁니까?”
“그전에 확인은 하고 갑시다. 얼마나 했어요? 대충 몇억은 되는 거 같은데.”
“보석류는 그냥 폐기했고, 금만 추출했습니다. 한 1억 조금 넘습니다.”
“1억이 조금 넘는다고 하셨는데…….”
믿지 못하겠다는 눈길로 여민구를 빤히 바라보는 정대환이었다.
“밖에서 도와준 친구가 있으니 그 친구 챙겨주고 나면 1억 좀 넘는다는 거죠.”
“그 부분은 알아서 하시고 난 이거 정도면 될 거 같은데?”
정대환은 손가락 8개를 펼쳐 보였다. 8천만 원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여민구가 범죄수익을 숨기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이사님이 금감원에서 나왔다는 저 사람 막아주실 수 있는 겁니까?”
“에이, 저 사람 아무런 힘도 없어요. 그냥 민원 해결하려고 나온 거지 뭐. 경찰도 안 움직이는 걸 본인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하긴 그렇죠.”
“근데 아까 그 조사관이 말한 컴퓨터…… 그 안에 진짜 CCTV 화면이 들어있는 거예요?”
“아뇨…… 없죠.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여기서 말을 안 하면 내가 직접 확인해 봅니다?”
정대환 이사는 여민구를 겁박했다. 하지만 여민구는 이번에는 한 번 버텨 볼까 싶기도 했다.
“됐어요. 말하기 싫으면…… 대신 조사관이건 경찰이건 책잡히지 않게 확실히 처리해요. 불태워 버리든지 녹여 버리든지……!”
“정 이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말씀하신 거는 확실히 챙겨드릴 테니까……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신뢰를 제일 중요시하는 거 알죠? 괜한 짓 하다가 걸리면 제가 전과자 만들어드립니다.”
손을 내밀며 조롱하듯 웃어 보이는 정대환이었다. 경비원인 여민구의 신상정보를 죄다 가진 그였다. CCTV 화면 같은 결정적인 증언이 없다고 해도 얼마든지 그를 감방에 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8천만 원. 정대환이 여민구를 그저 눈감아준 대가였다.
* * *
그날 저녁, 김정팔의 주물업체.
종로3가 뒷골목에 있는 그의 주물업체는 차량이 제대로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에 있었다. 그래서 작은 제품을 취급하는 액세서리와 귀금속 주물업체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멈춘 여민구가 뒷좌석에다 끈으로 둘둘 묶은 컴퓨터 본체를 끌어 내렸다. 총 5개의 컴퓨터에는 각각 CCTV 영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여민구는 경찰 조사가 나오면 CCTV 영상의 파일을 넘기고는 그 본체를 다른 걸로 교체해 왔다. 어설프게나마 영상을 삭제해도 하드에 기록이 남아 복구된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강준의 말대로 여민구가 보관하고 있던 본체의 하드를 돌려 보면 범행 전 사각지대로 걸어가는 여민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외부 침입자와 공모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증거였다.
여민구는 헉헉대며 그 본체를 두 개씩 들어 주물공장으로 옮겼다.
“뭐야 이게 다?”
“가마니에 이거 다 들어가냐?”
“부피가 너무 크잖아? 뭐 어떻게 넣으면 넣겠지만…….”
“그럼 잔말 말고 싹 다 녹여 버려!”
“진짜…… 힘들다! 힘들어!”
김정팔은 투덜거리며 본체 뒤쪽의 나사를 돌려 뒤판을 떼어냈다.
“뭐 해? 그냥 넣어!”
“그냥 넣으면 이게 한꺼번에 되겠냐? 본체가 5개라며? 겹쳐서 한 방에 태워야지!”
“……알았어. 나머지 들고 올 테니까 분해하고 있어.”
여민구는 밖으로 나왔을 때, 나머지 본체 3개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어! 뭐야? 이거!”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여민구였다. 들어온 골목길로 되돌아 뛰어갔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낡은 컴퓨터 본체, 주머니 가벼운 한량이라면 몇십만 원을 바라보고 훔쳤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시발…… 이거 어떻게 하지?”
머리를 긁으며 돌아온 여민구에게 김정팔이 뭐 하자는 거냐는 듯 쳐다봤다.
“이거나 태우고 끝내.”
“뭐야? 다섯 대 가져왔다며?”
“몰라! 시발…… 어떻게든 되겠지.”
중고시장에 팔려 나간다면 자신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유출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경찰은 수사를 중단한 사건이었으며 정대환 이사도 막아 준다고 했으니까.
“어떻게? 그냥 닫아?”
“어, 닫아.”
벌겋게 달아오른 가마니가 닫혔다. 플라스틱이든 쇠붙이든 그 안에서 모든 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드를 제대로 떼어 내는 법도 몰라 본체 그대로 가져온 여민구였다.
그는 내내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정팔아, 우리 그냥 여기서 째자.”
“뭐? 벌써? 나 여기 주물공장 정리도 안 했는데…….”
“시발 이거 팔아 봤자 얼마나 한다고 그래?”
“그래도 이거 제대로 받으면 몇천은 된다.”
“요즘 누가 이런 데서 주물공장 한다고 그래? 큰 건은 인천 쪽으로 다 가지. 돈도 안 되는 자잘한 오더만 받아서 하는 거 아니야!”
버럭 화를 내는 여민구를 보며 김정팔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꿍쳐 놓은 금붙이들을 정리해야 할 때였다.
“민구야, 너 어디로 갈 거냐?”
“몰라…… 시발, 당분간 숨어 지내야지.”
“너 이번에도 내 뒤통수 때렸다간 알지……? 나 너 지옥까지 따라갈 거야!”
김정팔이 이번에는 절대 안 당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여민구는 일전에 그를 한 번 배신한 전적이 있었다. 김정팔은 그런 그가 이번에도 배신하지는 않을지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