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2)
(173/250)
173.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2)
(173/250)
173.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2)
2022.05.22.
강준은 상가의 계단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셨다. 달달한 커피가 목 너머로 들어가자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상인들은 상가관리단을 의심하고, 보험사는 상인들의 자작극을 의심하고, 박동식 수석은 보험사를 의심한다…… 뭔가 꼬여 있군.”
강준은 스마트폰을 꺼내 송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소장님!
“경찰에서는 뭐라고 그래? 범인은 특정했대?”
―보험사에서 고소한 거 때문에 수사를 중단했는데요?
“뭐? 수사를 중단했다고? CCTV까지 있는데?”
―네, 금감원의 명함을 보여 주니까 움찔하긴 하는데…… 그래도 바로 재수사에 들어갈 것 같진 않더라고요.
“일단 여기 종로로 와, 같이 움직이자고.”
―참, 근데 재밌는 걸 하나 발견했네요.
송지희가 발견했다는 건 연남시 경찰서장이던 임철호가 종로경찰서의 서장 자리에 앉아 있더라는 얘기였다.
“뭐야? 새로 발령받은 거야?”
―네, 그렇다는데요. 솔직히 그 인간 한승일 시장이랑 붙어먹던 인간 아니에요?
회귀 전 경찰이었던 강준은 종로경찰서장 자리가 지방경찰청장으로 올라가기 위한 전 단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한승일은 완전히 대한당에서 아웃된 거로 알고 있었는데…… 임철호가 다시 무슨 끈을 잡은 건지 모르지만 운이 좋네.”
―설마 임철호가 우리 앞길을 방해하지는 않겠죠?
“명함 줬냐?”
―줬죠. 금감원 명함인데 그걸 안 쓰고 배겨요?
“잘했다! 잘했어…… 근데 말이야…… 혹시 임철호가 서장이라면 송 실장 이름도 알지 않겠어?”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에이! 망했네요! 이번 사건에 경찰 도움받기는 벌써 글렀네요.
“임철호 서장이 나를 특히 미워할 거거든……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건너와라. 오면 밥부터 먹자.”
전화를 끊은 강준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자판기 옆 계단에서 담배를 태울 모양이었다.
‘여긴 금연구역도 없나……?’
세 명의 남자 중 둘은 정장을 입었고 나머지 한 명은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그 편한 복장의 한 명이 강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강준은 점퍼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뱃불을 붙이고는 씩 웃으며 강준에게 돌려주려 했다.
“여기 상가관리단인가 봐요?”
“어, 어떻게…… 아! 이거 보고 아셨구나?”
남자의 가슴 상단 주머니에는 두원 상가관리단이라는 글귀가 오버로크로 새겨져 있었다. 남자는 라이터를 강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강준은 라이터를 받아 챙기며 자연스럽게 그의 기억을 읽었다.
[진짜, 그 새끼들 왜 그러는 거야?]
[정 이사님이 좀만 참으란다. 올해 계약기간 끝나면 싹 다 내보낸다니까.]
[그래서 김만수 그 인간이랑 그 떨거지들이 일부러 보험사기를 치는 건가? 쫓겨나기 전에 돈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흐흐흐! 그게 정답이네. 솔직히 이번에 나도 점포 하나 계약할까? 이사님이 조건 좀 파격적으로 해 주신다는데?]
담뱃불을 빌린 남자는 대화 속에서 정 이사와의 친분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었다. 남자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김만수의 말과는 다르게 오히려 상가관리단에서 상인들의 보험사기를 의심하고 있었다. 근데, 남자의 기억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었다.
계약기간! 통상적으로 2년마다 갱신하지만, 임대조건이 뒤바뀌면 재계약을 중지할 수도 있다.
‘혹시 상인들 내보내려고 수를 쓰는 거 아니야……?’
좌우간 강준은 김만수가 말한 정대환 이사를 만나 봐야 했다.
“상가관리단 사무실은 어딥니까?”
“7층에 있는데……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
“금융감독원 특별보험수사팀에서 나왔습니다. 여기 상가에 도난이 잦았다고 하더라고요.”
“아! 네네! 맞아요…… 근데 그게 너무 자주 반복돼서 의심스러운 점이 좀 있긴 한데, 역시나 금감원에서까지 바로 나오셨네요.”
“네, 금감원으로 민원을 넣으셨더라고요. 여기 상인분들께서…….”
그 말을 들은 남자들이 조롱하듯 자기네들끼리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도난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건 상가관리단의 책임도 있는 거 아닙니까? 상인들이 매달 관리비를 납부할 때는 그런 도난을 막아 달라는 의미가 아닌가요?”
“아니……! 잘 몰라서 그러시나 본데, 우리는 그것 때문에 야근까지 하면서 상가를 지켰거든요.”
“그래도 도둑이 들어와 점포를 털어간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강준의 날 선 질문에 남자들은 대꾸하지 못했다. 도둑이 든 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압니까? 누구랑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건지!”
“야! 성길아, 그만하고 가자…….”
정장을 입은 남자가 강준과 대화하던 성길이라는 남자를 말렸다.
“아니, 우리를 오해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제대로 알려드리려고 했던 거지…….”
“그 자세한 얘기는 사무실에서 듣겠습니다.”
“네, 그러시던지요…….”
살짝 고개를 숙인 강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남자가 알려준 7층의 상가관리단으로 향했다.
갑자기 찾아온 강준의 방문에 상가관리단 정대환 이사는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융감독원 특별보험수사팀이라는 명함 때문이었다.
“이게 금융감독원에서 수사를 나오실 일입니까?”
“경찰도 수사를 안 하고 있으니까 민원을 넣으신 분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고…… 사건 경위도 파악해 봐야 하니까요.”
“뭐 저희도 직원들 야간에 세우면서까지 대비를 했는데 번번이 뚫려서 면목이 없죠. 근데…… 도둑이 귀신같이 뚫고 들어오는 데 저희가 뭘 더 어떻게 합니까?”
정대환을 양아치라고 표현했던 김만수의 말처럼 그는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반응했다.
“도둑이 어디를 통해서 상가로 들어왔나요?”
“그때그때 마다 달라서요… 화장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낮에 상가에 숨어 있다가 훔쳐서 달아나고 그랬더라고요.”
“경보장치는 작동을 안 했습니까?”
“했죠. 근데 경비회사에서도 오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틈에 얼른 도망친 거죠.”
경보음이 울렸는데도 그 틈에 12번이나 붙잡히지 않고 도주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까 직원들이 야간 경비를 섰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경비를 서는 게 계속 매장을 돌아다니고 있을 수는 없는 거잖습니까?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3개 층을 두 사람이 어떻게 커버해요?”
오히려 되묻는 정대환이었다.
“CCTV는 누가 확인하고 있는 겁니까?”
“그건 지하 경비실에서 보고 있죠…… 저희도 가끔 확인하고요.”
“한번 가 볼 수 있을까요?”
“뭐…… 그야…… 가능하죠.”
떨떠름한 표정을 내비치는 정대환이었다. 그런 그가 강준이 금감원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나왔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강준은 지하 경비실로 내려가는 와중에 슬쩍 정대환의 기억을 읽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서 읽힌 건 그가 내내 인근 상가관리단의 사무실에서 밤새도록 도박을 하는 광경뿐이었다.
야간에 직원을 배치했다는 것도 강준이 보기엔 사무실을 도박장으로 이용한 걸 경비를 섰다는 식으로 갈음해 말한 거였다.
결국 두원 귀금속상가에 야간에 남아 있었던 건 야간 경비원 1명뿐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경비는 CCTV가 있는 지하 경비실에 있었을 것이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곳에 경비실이 있었다. 좁은 공간에는 나이 든 경비원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여민구 씨! 여기 금감원에서 수사관님이 나오셨는데 그간 우리가 도둑맞았던 것들 좀 얘기해드려요.”
“아…… 알겠습니다.”
긴장한 듯 보이는 여민구라는 사람은 자신보다 한참 연배가 아래인 정대환에게 굽신거렸다. 그런 그가 정대환과 같이 도박판을 벌였을 것 같진 않았다.
“도둑이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 항상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거든요. 근데 그 오토바이가 번호판이 없어요. 그래서 경찰도 여태 못 잡은 거고요.”
“도망칠 때 쫓아간 적은 없습니까?”
“그게…… 제가 직접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어서요. 물론 CCTV로 본 적은 있지만.”
“그럼 바로 경비업체에 연락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처음엔 저도 놀라서 뛰쳐나가기부터 했는데…… 몇 번 그런 일이 있다 보니까 저도 나중에는 경비업체에 연락부터 했죠.”
자신을 고용한 상가관리단의 정대환이 지켜보는 가운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여민구였다.
“경비업체는 바로 왔습니까?”
“자기네들 딴에는 바로 왔다는데 제가 보니까 그 사람들 도착했을 때는 벌써 도망치고 없더라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2번이나 동일한 수법으로 당한다는 게 좀 그렇지 않나요?”
강준의 질문은 정대환 이사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정대환이 눈치채고는 여민구 대신 답했다.
“뭐 혼자서 재빠르게 움직이니까…… 그래서 내가 점포주들한테 그랬거든요. 비싼 거는 제발 좀 따로 금고에 넣어두시라고…….”
“근데도 그냥 진열대에 두고 퇴근을 하신 겁니까?”
“네…… 자기네들은 도난보험 들어 놨다 이거지 뭐…… 처음에 38호 제이미가 도둑을 맞았는데 보험금 신청을 한 거예요. 근데 보니까 보험금이 꽤 괜찮게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솔직히 점포주들도 신경 안 쓰는 거예요. 훔쳐 가면 오히려 잘됐다 그랬을 걸요?”
상가에서 노련한 장사꾼이던 김만수가 왜 정대환 이사와 노골적으로 부딪히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됐다. 본인들도 구린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보험사기를 저지른 건 아니었지만.
“경비업체 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출동 내역을 알아봐야 할 거 같네요.”
“아…… 그…… 그게 어디 있더라…….”
“본인 핸드폰에 있지 않으세요?”
“아! 맞다 그러네.”
여민구는 잠시 착각했다는 듯 머쓱하게 웃고는 핸드폰을 열었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여기가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는데…… 1566에 45XX이네요.”
“평소에 경비업체에 신고는 전화로 합니까?”
“아뇨. 버튼으로 하죠. 비상 버튼이 있거든요.”
여민구의 책상에는 경비업체에서 설치해 놓고 간 걸로 보이는 비상 버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버튼 아래로 여러 대의 컴퓨터 본체들이 놓여 있었다.
“혹시 이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제가 취미로 컴퓨터 조립도 하고 그러거든요. 여기 점포주분들이 가끔 이사 나가실 때 컴퓨터 같은 거 버리고 가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나이는 많았지만 컴퓨터 지식이 많아보이는 여민구였다. 강준은 그런 그에 대해 좀 더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었다.
경비업체의 경보음은 대부분 출입문의 개폐로 작동된다. 두 개의 센서가 출입문 개방으로 떨어지게 되면 울리는 원리였다.
하지만 경비가 해제 모드였다면? 센서도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고, 경보음도 울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경비업체의 기록에서 두원 귀금속상가의 경비 잠금 시간과 실제 도난 시간을 비교해 보면 금세 드러날 일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그전에 먼저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자신 앞에서 사람 좋은 듯 허허실실 웃고 있는 여민구, 그의 기억으로 들어가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