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1) (172/250)


172. 귀금속상가 도난사건 (1)
2022.05.21.


2011년 겨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빌딩.

강준은 얼마 전 팀원들과 함께 박동식 수석이 제안한 금감원 직속 특별보험수사팀에 합류했다. 물론 외주용역의 형태였지만, 금감원의 보험조사관 명함을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사건을 배당받으러 두 실장과 함께 금감원 건물에 막 도착했다.

“소장님, 우리 큰 거 한 장은 받기로 한 거 맞죠?”

“그래, 정말 준다고 그랬다니까. 넌 속고만 살았냐?”

“에이, 확인 차원에서 한번 여쭤 본 거죠.”

“근데 김준혁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돈돈’거린 거냐? 송 실장, 얘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강준의 질문에 맞은편에서 앉아 커피를 마시던 송지희가 의외의 답변을 했다.

“소장님, 점점 빈부격차는 커지는데, 이제 돈 없이는 팍팍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가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결혼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죠.”

“에이, 둘이 힘 합쳐서 시작하면 되지 뭘…….”

강준은 회귀 전 세상이 더 빡빡하게 변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둘이 결혼하라는 말을 자신 있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린 이제 대기업 직원도 아니잖아요? 고용이 안정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무원처럼 연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거죠. 소장님이 또 이렇게 간간이 사무실 운영에 미적지근하게 나오시니까요…….”

“얼레…… 또 잔소리 시작이네. 알겠다. 알겠어! 이번 건 잘 해결하면 너희들 보너스 두둑하게 주마.”

“와! 약속하신 겁니다.”

옆에 있던 김준혁이 신이 난 듯 호응했다.

“보너스 받으면 넌 뭘 할 거냐?”

“전 이번에 주식 해 보려고요.”

“준혁 씨, 안 돼! 괜히 주식으로 까먹지 말고 적금에 넣어.”

“어허…… 이러다 월급 통장 넘어가는 거 아니냐?”

강준은 그건 절대 안 된다는 눈빛으로 김준혁을 바라봤다. 최후의 보루를 넘겨줄 수 없다는 듯 김준혁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눈빛에 화답했다.

“아주 둘이서 죽이 잘 맞으시네요. 뭐, 난 상관없어요. 각자 인생 각자 사는 거지 뭐!”

“무슨 소리야…… 주식은 무슨 주식! 절대 안 해! 약속!”

김준혁이 토라진 듯 답하는 송지희를 보며 번개같이 태세를 전환했다. 강준이 못 본 동안 순발력이 무척 좋아진 김준혁이었다.

“박 소장님 여기 계셨군요!”

막 위에서 내려온 박동식 수석이 카페에 모여 앉은 강준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다들 인사해. 우리한테 일감 주신 박동식 수석님이시다!”

“안녕하십니까?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의 김준혁 실장입니다!”

“전 송지희 실장입니다.”

둘은 깎듯이 허리를 접었다. 일감을 주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기본자세였다.

“반갑습니다. 전 금융감독원 보험국 수석조사관인 박동식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뭐든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준 대신에 김준혁이 사무실의 영업 사원이라도 된 듯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부탁드리는 입장이죠. 박 소장님이 무척 적극적인 직원분들을 두셨네요. 하하!”

“네, 저도 든든합니다.”

강준은 진지하게 답하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고개를 숙인 김준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일단 올라가셔 얘기하시죠. 정식으로 사건 브리핑을 해드리겠습니다.”

보험국 사무실로 올라간 박동식은 금감원 특별보험수사팀의 면면을 강준 일행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곤한 얼굴들이었다.

“한 해 쏟아지는 보험 관련 분쟁이 몇만 건입니다. 작년에도 손해보험이 10,460건, 생명보험이 10,289건이었네요. 둘을 합치면 금감원 전체 분쟁의 약 80퍼센트죠.”

“……엄청나네요.”

“그 분쟁 중에서 직접 조사에 나서야 하는 것도 특별보험수사팀의 업무입니다.”

“이렇게 저희처럼 외주를 주기도 하고요?”

“전문위원님들로 위촉해 두었습니다.”

박동식 수석은 대우를 섭섭지 않게 해 주겠다는 듯 한 번 웃고는 자료를 돌렸다.

“이번 사건의 개요입니다. 종로의 한 귀금속 상가에서 도난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습니다. 야간에 들어와 진열장을 부수고 가져간 것인데……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두 달 사이에 12건이라……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근데 상가의 점포주분들이 작년에 도난보험에 단체로 가입을 했더라고요. 인맥이 있는 사람이 보험설계사였겠죠…….”

“도난을 당한 점포주들이 보험금 신청을 했겠군요.”

“네, 맞습니다.”

듣고 있던 김준혁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입을 열었다.

“근데 수석님, 12건의 도난을 한 상가건물에서 당한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서 보험회사에서 도난당한 점포주들을 보험사기로 고소했습니다.”

“네? 도난당한 피해자들을요?”

“네. 해리츠보험에서 고소를 했습니다. 지금 경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고요.”

“와, 소장님!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제대로 조사해 보지도 않고 고소부터 하다니요?”

김준혁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옆에 있던 송지희도 거들었다.

“강력한 법무팀을 앞세워서 일단 고소부터 하고 보는 거네요. 평범한 보험계약자들이야 시간이 갈수록 법정 싸움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테니까요.”

“이건 정말 치졸한 방법이네요.”

강준이 흥분한 두 실장을 말렸다.

“그래도 먼저 연쇄적인 도난 사고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고. 감정적으로 해리츠보험에 화가 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야…….”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소장님께 사건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알아보니까 상가의 점포주들도 만만하신 분들이 아니더라고요. 저희 금감원에 보험분쟁으로 민원을 넣었는데, 해결이 안 되면 단체로 국회 시위에 나설 거라고 합니다…….”

곤혹스러운 표정의 박동식 수석이었다. 쏟아지는 보험분쟁을 처리하느라 그간 쉽지 않았던 게 얼굴에 보였다.

“금감원 윗선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사건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국회 눈치를 보고 있는 겁니다. 시끄러워지면 안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그 점포주들부터 만나 보겠습니다.”

“담당 형사는 이분입니다.”

박 수석이 내민 명함에는 종로경찰서 강력계 형사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송 실장은 종로경찰서로 가보고, 김 실장은 이번 두원 귀금속상가에서 청구된 도난 보험금 내역 좀 확인해 줘!”

“네, 알겠습니다.”

“얼른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강준은 박 수석과 악수를 한번 하고는 금감원 보험국을 빠져나왔다. 잠깐 읽은 박 수석의 기억에서는 그가 금감원장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 읽혔었다.

[박 수석, 어제 해리츠보험 경영진하고 만났는데 말이야…… 두원 귀금속상가 건 얼른 해결 좀 해 달라고 하더라고.]

[점포주들이 강경하게 저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SIU팀에서 결론을 내려줘야 하지 않겠어? 솔직히 말해서 자그마치 12건이야! 12건!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아?]

[종로경찰서에서 도난당하는 CCTV 영상을 확보하긴 했습니다…… 점포주들을 무조건 보험사기로 몰 수는 없습니다.]

박동식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사람 앞에는 명패로 금감원장 이해철이라고 적혀 있었다.

[……야, 박 수석. 너 지금 네가 뭐라도 된 거 같지? 보험국에 너 하나만 있는 거 아니다. 지난번에 부원장 일로 남들의 주목 좀 받아 보니 보이는 게 없어]

[오해입니다.]

[오해……? 뭐 좋아. 내가 계속 오해하지 않도록 이 사건 빨리 제대로 조사해서 보고서 올려! 알겠지?]

이해철 금감원장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눈엣가시인 박 수석을 잘라 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강준은 내부적으로 압박을 받는 박 수석이 자신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왠지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사람은 감정적인 동물이니까.

* * *

종로5가 두원 귀금속상가.

두원 귀금속상가는 예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액세서리 급의 장신구들보다는 순금이나 보석으로 된 목걸이와 반지가 많았다.

“내가 CCTV를 봤는데 작정하고 들이닥쳤더라고…… 들어오자마자 손에 든 망치로 펑펑 진열장을 깨드리더니 순식간에 쓸어 담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따로 금고에 넣어둔 게 많아서 피해가 적었지…….”

“그럼 피해 금액은 얼마나 되시는 겁니까?”

“나는 대략 2,500만 원 정도 되지.”

“다른 가게들도 그 정도 됩니까?”

“……더 많은 곳도 있고, 그보다 덜한 곳도 있고. 다 다르지.”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김만수는 그 상가에서만 30년째 장사를 하는 붙박이 상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피해자 점포주의 대표 격을 맡고 있었다.

“보고서를 보면 범인이 들이닥칠 때마다 정확히 한 점포씩을 털었더군요.”

“도망가야 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경보장치 울리고 그러면 곧바로 경비회사에서 들이닥치잖아, 그러니까 한 곳만 얼른 털고 도망쳤겠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많이 훔쳐서 달아난 거 아닙니까? 여기 보고서를 보니까 범인이 진열장을 깨고 5분 만에 상가를 빠져나갔다고 하던데요?”

강준의 질문에 김만수가 쓰고 있던 돋보기를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이 바닥을 잘 아는 놈이야. 우리가 진열장에 꼭 돈 되는 것만 진열하지는 않거든. 근데 희한하게 도금된 거 말고 18K, 24K, 백금 제품들만 추려서 가져갔어. 딱 보고 아는 거지! 이건 금이다. 이건 도금이다.”

김만수는 범인이 같은 귀금속 시장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거였다.

“혹시 여기 주변 분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야 모르지. 근데 말이야. 이상한 점은 또 있어.”

“그게 뭡니까?”

“여기 상가관리단에서 야간에 별도로 경비를 섰는데 그래도 여지없이 뚫렸다는 거야. 좀 이상하지 않아? 경비들이 어디서 뭘 하고…… 언제 내부순찰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총 12번의 도난사건. 그중에 단 한 번의 내부 경비와 부딪히지 않았다는 게 수상했다. 어쩌면 내부에 공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상가관리단에서는 좀 어떤가요? 여기 점포주분들하고요?”

“솔직히 말해 줘?”

“그러면 저야 좋죠.”

“여기 상인들이 불만이 많지. 해 주는 건 없는데 관리비만 받아 가니까.”

어느 집합 상가에서나 볼 수 있는 불만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거기 관리단 이사 중 한 명이 아주 양아치야. 정대환이라고…… 꼴에 이사 직책 달고 설치는 놈이 하나 있어.”

“그분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강준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김만수는 시선을 회피하며 답했다.

“……그런 건 아니지! ……내가 무슨 의심을 한다고 그래…… 나야 그냥 물어보니까 답해 준 것뿐이지!”

2,500만 원의 피해를 본 상인이라면 왠지 작은 빌미가 보이면 달려들어야 정상일 것 같았지만, 김만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발을 뒤로 뺐다.

능수능란한 책임회피인지 아니면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좀 전에 점포에 들어오자마자 읽었던 김만수의 기억에서는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만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바닥글:
<참고자료>
2010년 금융분쟁조정 실적 및 소제기 현황.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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